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사악한 사람들의 짓이 아니라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의 짓이었다.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은 영혼이 ‘자신의 선한 양심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분이 선에 대한 자신들의관념을 거부하신 것을 악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Nietzsche 1969, p. 229, Westphal 1993, pp. 262-263). - P91

배제는 ‘악한마음‘에 의한 죄일 수도 있지만, 또한 ‘선한 양심에 의한 죄일 수도 있다. "세상의 악당들이 어떤 해를 입힌다 할지라도 선한 사람이 입히는피해만큼 해롭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니체의 경고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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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 주고, 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을위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의 정체성을 재조정하려는 의지는 그들의 인간성을 인식하려는 목적을 제외한 그들에 대한 그 어떤 판단보다 중요하다. 포용하려는 의지는 다른 사람들에 관한 그 어떤 ‘진리‘보다, 그들의 ‘정의‘에 대한 그 어떤 판단보다 우선한다. 이 의지는 절대적으로 무차별적이며,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세계를 ‘선‘과
‘약‘이라는 도덕적 범주로 구별하려는 시도를 초월한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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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의용기 있는 행동은 또 다른 의미에서 정치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정치를 위한 정치적 행동이 아니라 복음을 살아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이 몸에 각인되어 있었기에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 삶의 태도,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남달랐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들은 가장 반정치적인 방식으로 정치를 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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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외상 후 성장에이르는 여러 방법을 소개했는데, 그중 지난 나의 경험을돌아보았을 때 가장 근본적이고 강력한 방법은 바로 ‘다시쓰기 rewriting‘이다. - P19

스피노자는 윤리학에서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 고통이기를 멈춘다"라고 했다. 어디선가 이 글귀를 읽고 고개가 끄덕여져 메모해두었다. 물론 글로 마음을 표현하자마자 고통이 행복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걱정이 희망으로 곧바로 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모호해서 더 크고두려웠던 것들을 묘사하는 동안 그 실체가 보이고, 내 생각과 감정을 글로 설명하고 명명하는 동안 몰랐던 고통의크기와 의미가 선명해진다. 그러면 그것은 더이상 내게 고통이 아닌 다른 모양과 색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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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중심되는 사명은 하느님의 말씀을 지금, 여기에 밝히는 것이다. 미래를 열어보이는 것도 현재무엇이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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