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3 - 10月-12月 ㅣ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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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완독. 세권이 결국은 하나의 축을 따라가고 있으므로 책은 한권만 올리면 된다.
1권부터 따져보면 다 읽는데 반년 걸렸네. 작가가 중간에 쉰 탓도 물론 있지만.
이걸 다 읽으려고 3권 읽기 전에 조지 오웰의 1984년도 찾아서 읽었다. 뭔가 힌트가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별로 없는 것 같다. 오웰의 1984년이나 하루키의 1Q84년이나 '말이 안 된다'는 공통점 외엔.

1. 그러니까,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기 위해서 리틀 피플과 공기 번데기가 달이 두 개인 세상을 만들었던 것이고, 두 사람의 사랑이 없었다면 그저 'honky-tonk parade'가 되었을 것을, 두 사람이 사랑이 있었기에 달이 두 개가 떠 있는 1Q84의 세상이 그저 'make-believe'가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2. 3권에는 아오마메와 덴고 외에 두 개의 달을 바라보는 세번째 인물이 등장한다. 역시 아오마메와 덴고처럼 세상과 거리를 정해 놓고 홀로 존재하듯 하는 이인 우시카와. (다시 보니 1권의 표지는 아오마메, 2권의 표지는 덴고, 3권의 표지는 우시카와의 그림자인 것 같다.) 아오마메와 덴고보다, 나는 오히려 이 인물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의 몸으로부터 새로운 공기번데기가 만들어지고, 그 번데기는 어떤 도터를 잉태하게 될까. 그의 영혼은 남아 도터로 아니면 아예 퍼시버로 돌아와 1Q85년이 열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공상을 잠깐 해봤다.

3. 타이거가 왼쪽 옆얼굴을 보이고 있는, 덴고와 아오마메가 마침내 손을 잡고 함께 있을 수 있게 된 달이 한 개인 세계는, 1984년과 어떤 점이 다를까. 선구는 없고, 그렇다면 노부인과 다마루가 선구의 리더를 암살할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고, 후카에리는 애시당초 있을 필요가 없고. 우시카와는 아마도 변호사 자격을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덴고의 연상의 여자친구도 상실되지 않아서 금요일에 덴고와 아오마메가 함께 있는 덴고의 방으로 찾아올지도 모른다.. 이모든 세계는 동시에 존재하는 (혹은 할 수 있는) 패럴렐 유니버스의 각각의 모습일까. 아니면 그냥 우리가 아는 시간과 공간 만이 있고, 1Q84는 덴고와 아오마메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겐 그저 honky-tonk parade에 지나지 않는 걸까.

4. 나의 하늘에 연한 초록색 하드보드지로 만든 창백한 달 하나를 매달아 본다. 이것이 그저 make-believe에 지나는 것이 될 수는 없다고 믿어 줄 그대, 어디에 있는지.

5. NHK 수금원의 노크.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모르겠다. 몰라서 괴롭다. 소설 속의 어떤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괴롭다는 느낌까지 든 건 또.





It's only a papermoon

Say, its only a paper moon
Sailing over a cardboard sea
But it wouldn't be make-believe
If you believed in me

Yes, it's only a canvas sky
Hanging over a muslin tree
But it wouldn't be make-believe
If you believed in me

Without your love
It's a honky-tonk parade
Without your love
It's a melody played in a penny arcade

It's a Barnum and Bailey world
Just as phony as it can be
But it wouldn't be make-believe
If you believed 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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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ㅣ 패러독스 2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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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방법>이라는, '책 읽기'에 대한 아주 훌륭한, 거의 성경처럼 여러 번 읽어서 체화하고 싶었던 (그렇지만 뭐 결국 그 이후로 다시 읽지는 않아서 Forgotten Book 속으로 점점 잠수해 가는 중이지만) 책의 저자인 피에르 바야르의 책들인 '패러독스' 시리즈가 계속 번역되어 나왔는지 몰랐다. 사실 그 책도 네이버의 오늘의 책에 소개되었던 것을, 제목에 혹해서 읽었기 때문에 작가에게 큰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알라딘의 '책 추천 마법사'가 전에 읽었던 책의 저자의 다른 책들 중 한 권으로 이 책을 올려준 것이다. 잘 했어요, 알라딘~!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기보단(첫줄부터 꼼꼼히 읽어야 하고, 마지막 범인이 밝혀질 때까지 맘을 졸이면서 기다리기엔 내 심장은 너무 연약하다. 푸핫), 수퍼 히어로 취향으로 브라운 신부 전집과 셜록 홈즈를 읽고, 내친 김에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중 베스트라는 10권을 반값에 사서 주욱 읽었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은 충격이었다. 가장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을 멋지게 범인으로 만든 크리스티 여사. 가장 사소해 보였던 일을 실마리로 잡고서 휘몰아치는 추리력을 보여준 에르퀼 푸아로. 그리고 범인에게 하는 푸아로의 마지막 제안(이게 특히 소름끼쳤다. 크리스티 여사는 어쩌면 체온이 34도쯤 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 그런데 피에르 바야르는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를 묻고 있다. 이러니 내가 어떻게 이 책을 읽지 않을 수 있었겠느냔 말이다. 그것도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기억에 생생한데 말이다.
책의 4분의 3 정도는 '왜 (독자에 의한) 수사가 재개될 수 있고, 재개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증에 바쳐진다. 핵심은 이론 vs 망상, '적합성으로서의 진실' vs '드러남으로서의 진실'의 경계, 혹은 그 사이에 있는 세계와 그 해석에 있다.
그리고 마지막 4분의 1에서 그가 지목하는 범인은! 짠! 애거서 크리스티가 거의 대부분의 독자로 하여금 범인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그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보다 더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이며, 놀랍게도 그것이 정말이지 더 진실(!)에 가까울 것만 같다! (심지어는 이 사건이 에르퀼 푸아로 vs 제인 마플 대결이라고 한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저쪽 세상에서 이 글을 읽었다면, 흠, 그래도 누군가는 진실을 꿰뚫어 보는군 하면서 빙긋 웃을까, 아니면 자기가 내세운 범인을 완전히 납득시키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한숨을 쉴까.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국어 교과서에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의 설명문(논설문?)이 있었다. 제목이 확실한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 글은 지금 생각해 보면 구조주의 비평에 대한 글이었는데, 뭐 난 구조주의가 뭔지, 그 시절에도 그랬지만 그 이후로도 한 번도 공부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있다. 그냥 그 글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글의 마지막 단락이 그 이후 나의 독서 방식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기억하기로는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문학 작품이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하는 재미 없는 여로가 아니라, 모든 것이 갖추어서 있어서 이것저것 누려볼 수 있는 주택이다.'
그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아하! 했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겉에서 보기에 끌리는 어떤 집에 들어갔을 때, 겉모습과는 다른 허술한 내부에 왕 실망해서 그냥 나올 수도 있고, 정말 멋진 집이지만 어쩐지 편하지 않아서 불안하게 빙빙 둘러보기만 할 수도 있고, 모든 방이 다 꽝인데 딱 한 방만 나의 맘에 쏙 들어서 그 집을 좋은 집으로 기억하고 나설 수도 있는, 한마디로 내 멋대로 느끼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김한길의 <여자의 남자>는 있을 수 없는 순수한 신파 러브스토리이지만, 그 책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애 편지와 자끄 프레베르의 시를 여러 편 담고 있다는 점 때문에 내게는 '명작에 근접한 책'이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 같은 책은 명성이 자자하지만, 내가 보기엔 담도 너무나 높고, 지붕도 너무나 높아서 문턱을 넘어서는 것조차 꺼려지는 그런 집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진짜 '구조주의'란 것이 이런 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인지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모른다. 나는 그 설명문조차 제멋대로 읽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책읽기는 결국 '작품을 완성하는 이는 독자'라는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거기다가,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갖고 새로운 생각을 한다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읽는 그 당시의 독자'라고 할 수 있다.

추리 소설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독자의 개입이 가장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장르이다. 전지적인 작가가 사건의 전모를 계획하여 실행하고, 그것을 여러 조각으로 잘라서 마구 섞은 후 일종의 게임처럼 독자에게 맞춰 보라고 던져 준다. 조각들은 단지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을 뿐 탐정과 독자에게 똑같이, 모두 드러나 있다(혹은 그런 것처럼 보인다). 이미 사건은 일어났고, 일어난 방식은 단 한 가지, 이미 작가가 첫 줄을 쓰는 순간부터 정해져 있었던 한 가지 방식 뿐이기에 독자가 이것저것 상상해 봤자이다. (이래서 내가 추리 소설을 잘 읽지 못한다. 단 한 가지 정해진 결론, 정답이 있다고 생각히기 때문에. 게다가 독자가 탐정과 출발선은 비슷한 것 같지만, 결코 탐정을 이길 수 없는게, 탐정은 책에 서술되지 않은 어느 시간과 공간 귀퉁이에서 자기만 할 수 있는 중요한 수사를 하고 있지만, 독자는 속수무책이기 때문에.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기 때문에.)

그런데 피에르 바야르는 그렇지가 않다고 한다. 그는 우선 이 사건의 화자가 믿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왜 믿을 수 없는지까지 말하면 스포일러가 된다!). 그리고 푸아로의 추리대로 실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에 대해 설명한다. 다음으로 푸아로가 범인으로 지목한 이는 아무 것도 진짜로 '자백'한 것은 없음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여러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푸아로의 성격과 행동으로부터, 우리가 푸아로의 설명을 전적으로 받아들어야 할 이유가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리 하여, 결국 수사는 재개되고, 전혀 다른 이가 범인으로 지목되며, 이는 단순한 독자가 단순한 눈으로 읽었던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한 색채를 이 작품에 부여하게 된다.

능동적인 책읽기, 작품의 숨은 의도를 찾거나 혹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궁극적으로는 '작품을 완성시키는 독자'로서 책읽기가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멋진 책.

다음은 '셜록 홈즈가 틀렸다'를 읽을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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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ㅣ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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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의사이고 포복절도할 이야기라고 해서 골랐다. 5년 반 동안 무려 147쇄나 찍힌 소설이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이야기였고. 어른들을 위한 잔혹(!) 동화 쯤? 아르토 파실린나의 <자살여행>이나 파울로 코엘료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와 같이 묶일 만한. 요컨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위악을 떨면서, 결국 중요한 건 나 자신, 생의 의지다! 라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

이라부 같은 의사라면, 난 오분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면 안된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외모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다른 사람이 자기에 대해 어떤 생각(첫인상이든 선입견이든)을 품게 될지에 대해 100% 무관심하며 자기 좋은대로, 그러니까 다섯 살 난 어린애처럼 당당한 것, '성격이란 건 기득권이야'를 외치며 상대방을 포기시키는 유형의 인간들을 나는 싫어한다. 위악이 위선보다 나쁘다. 도대체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모두 굵은 바늘로 비타민 주사를 찔러대면서 눈이 반짝거리는 의사를, 소설이니까 봐주는 거지, 현실에서 어떻게 봐 준단 말인가. 그러면서 마음 속에서 억압되어 있으면서 몸의 병을 불러일으키는 의뢰인(환자)들의 고민을 배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라니. 이건 판타지 소설이다. 

불쾌하기까지 한 이라부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그러나 연민이 든다. 그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본다. 물론 나는 그들처럼 고민도 화끈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일상 생활과 직업을 하지 못할 만큼의 강박증은 (아직까지는) 보이고 있지 않지만 말이다. 어쩌면 일상 생활도 힘들게 하는 강박을 고치려면, 이라부같은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적 인물을 만나야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판타지 소설을 좋아한다..)

오쿠다 히데오라는 작가의 책이 많이 출판되어 흥미가 있었는데, 매사가 이런 식이라면 더 읽지 않겠다. 그렇지만 문득 '이라부라면 내겐 어떤 처방을 내릴까'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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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버연대기 1 - 앰버의 아홉 왕자
로저 젤라즈니 지음, 최용준 옮김 / 사람과책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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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앰버의 아홉 왕자. 첫 출간된지 무려 10년 만에, 그리고 절판 후에 어찌어찌해서 내가 구해서 읽은지 무려 2년 반만에, 다른 출판사에서 새로 저작권 계약을 해서 새 번역으로 재출간! 출간된지 두달이나 지났는데 난 왜 모른거얏. 

앰버를 실제로 읽은 것에는 좀 나만 복잡하고 독특한 사연이 있다.
사실 앰버에 대해 듣기는 더 오래되었었다.
알라딘에서 이전에 책 주문했던 걸 뒤져보니 2004년에 친구에게 보낸 게 있었다.
그리고 오랫 동안 책을 읽지 못하다가 2007년 겨울, 전문의 시험 준비를 위한 비공식 유급 휴가 덕에 온갖 것들을 보다가 앰버에도 생각이 미쳐서, 앰버에 대해 글을 
쓴 어떤 블로그에다가 미친 척하고 '책 좀 빌려주세요'라고 남긴 것에 그 블로거가 '좋습니다'해서 off-line 번개(!)로 책을 받아서 읽었다. (그 블로거 분과는 그걸로 끝이었다.. 마침표 두개.. ㅎ) 
그런데 읽으면서 그만 홀딱 빠져 버렸다. 독특한 세계와 안티 히어로인 코윈에게. 그리고 읽으면서 이런 게 나보다 시각적 상상력이 월등한 어떤 천재 감독 (이걸 영화로 만드는 감독은 무조건 천재!)이 영화로 만들면, 이 책도 재판되고, 환상적인 세계는 눈 앞에 나타나고 얼마나 좋아, 자아, 캐스팅은, 코윈 역에는 크리스천 베일, 브랜드는 에드워드 노튼, 랜덤은 마크 월버그, 피오나는 에바 그린, 이러면서 놀았던 것이다.(나도 이제 앰버를 아는 사람이닷 참조)
그러다가 이런 책이 내 수중에 없어서 생각날 때마다 들춰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데, 절판되어 헌책방 발품 된통 팔기 전엔 구할 수 없다는 현실에서, 나는 그만 친구에게 3년 전 선물했던 책을 돌려줄 수 없겠냐고 하고 말았다..;;; 물론 나의 착한 친구는 깨끗이 보관하고 있었던 책을 보내주었고, 나는 받는 날 바로 내 책도장을 찍어서 (그렇다.. 물욕에 눈이 멀었다..;;;) 내 머리맡 책선반에 올려 놓고 희희낙낙하면서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우연찮게, 사실은 알라딘의 야심찬 추천마법사 서비스를 보다가 재판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역시 알라딘은 내게 이 책을 추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게 아니고 사실은 톨킨의 후린의 아이들을 추천했는데, 그 페이지에서 이 책을 구입한 사람들은 다음 책도~에서 발견). 그래서 주문했고, 그래서 오늘 받았다. 왔노라, 보았노라, 읽었노라~!

클래식 앰버의 첫 권은 일단 들면 정말 놓기가 쉽지 않다. 처음에는 그저 새 책이 온 것이 반가와서 첫 페이지만 열었을 뿐인데,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까지 곧장 쭉 읽어버렸다. 어쩔 수 없었다.
번역은.. 최용준 님 (이온추진엔진에 대한 연구로 미시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분! 도대체 이온추진엔진으로 번역을 하시는 건지 완전 천재일 거라고 생각함)도 나쁘진 않았지만, 초판의 김상훈 님 번역보다 매끄러운 나머지 어쩐지 투박하고 하드한 느낌이 약간 무뎌진 감이 있지만, 나쁘지 않았다. 
(예를 들면, 내가 초판 앰버에서 가장 좋아한 문장 중 하나는 김상훈 님 역에서는
"심장이 앞으로 튀어나왔고, 흉골에 쾅 부딪힌 다음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내게 간원하고 있었다." 인데, 최용준 님 역에서는 "심장이 튀어나오다가 흉골에 부딪힌 것만 같았다."라고 되어 있다..)
표지는 물론 새로운 앰버가 더 세련되고, 내부 종이도 왠지 재생지인지 중성지인지 윤이 나지 않고 약간 갱지 느낌이 나는, 개인적으론 가벼워서 더 좋아하는 재질이지만, 그리고 구판 앰버 표지는 약간 만화같은 느낌이었지만, 신판 앰버 표지는 넘 순하다! 앰버는 절대 그저 판타지일 수만은 없기 때문에. 
앰버의 인물들을 보라. 반지 전쟁의 프로도와 갠달프, 어스시 시리즈의 게드와 오지언, 그리고 아렌, 테나르, 기타 등등 용들, 나니아 연대기의 아슬란과 아이들에 비교할 만한 인물이, 그야말로 고귀한 성품을 지닌 조용한 영웅이, 앰버 연대기에는 없다. 자신이 엄청난 권력과 능력을 지닌 왕자라는 사실을 잊고 그림자에서 약한 보통 인간들과 너무나도 오래 어울려 산 덕분에 약간은 정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코윈도, 왕위라는 최고 권력을 얻는 것에 결정적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만 용납할 뿐이다. 그러니까 앰버 연대기의 앰버의 왕자와 공주들은 모두 마키아벨리적 인물, 목적을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들이다. 권력을 가시권에 둔 사람들의 행태를 구경할 때, 고귀함이란 걸 발견한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그야말로 판타지에 가깝기 때문에, 어쩌면 앰버의 인물들은 많은 판타지의 인물들 중에서도 현실적이고 입체적이고 다이내믹하다. 그런 것이 앰버 연대기의 많은 매력들 중 하나이다.

일단 1권을 읽었으니, 읽고 있던 1984년으로 다시 돌아가서 매듭 짓고, 다음에 2탄부터 보든가 해야겠다. 솔직히, 2~3탄은 긴장이 좀 떨어진다.. 4, 5권은 앰버의 대척점에 선 카오스와 음모들이 드러나면서 다시 재밌어지지만. 그래서 난 앰버 연대기의 1권은 너덧번 읽었지만, 그 이후는 한 번 밖엔 안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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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1 - 상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ㅣ 밀레니엄 (아르테)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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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절대 함부로 집어들어서는 안되는 책이다. 특히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데 밤에 읽기 시작하는 것은 되도록 삼가할 것.
밤 샌단 말이다..-.-;;

 1.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영국에는 해리 포터, 스웨덴에는 밀레니엄' 이런 광고 문구 때문이었다.
즉, 해리포터와 묶여서 홍보되기 때문에 판타지인 줄 알았다는 것..-_-
그래서 무려 <끝없는 이야기>와 같이 주문해서, 좋다, 이번 여름은 판타지와 함께~ 이랬던 것이다.
그런데.. 실체는 스릴러다. 그것도 꽉 짜인. 추리 소설이기도 하고.  아주 이상한 환경에서 만난 독특한 남녀에 관한 연애 소설이기도 하고.
하여튼 20분처럼 느껴지는 두시간 반짜리 영화를 본 기분이라고나.
그러니까 재미는 끝내준다. 아무리 책 읽기 귀찮아 하는 사람이라도 도입부를 넘어 주인공이 헤데뷔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만 잘 따라간다면, 그 다음은 내릴 수 없는 롤러코스터 위에 탄 기분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2부와 3부 도합 네권의 책을 주문하고 말았다.

2. 책상 위에 책을 그냥 놓아 둘 수 없었다.
표지의 소녀의 눈초리가 호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지는 곁눈질로 흘낏거리기만 했다.
경제전문 탐사 기자가 한 기업의 비리를 파헤치는 이야기가 짠하고 나오는데 왜 이런 호러스러운 표지가 필요할까 싶었는데.
책을 읽어가다가 문득 표지를 자세히 보니 이 호러소녀가 목에 걸고 있는 목걸이 같은 것이 사실은 각양각색의 여자 머리(얼굴 아님)로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꿈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3. 내 책장의 가장 잘 보이는 좋은 자리에 꽂힌 소설 중 하나인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과 별로 감흥은 없었던 <기발한 자살 여행>을 이어, 아마 세번째 북유럽 소설을 본 것인가 보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같은 노르딕 나라들은 내게는 그저 아주아주 먼 나라일 뿐이다.

복지 제도가 잘 되어 있고, 시민들의 사고도 합리적이고, 거의 모든 문화를 포용하는, 그래서 살아볼 만한 나라일 거라는 긍정적이지만 피상적인 느낌과, 동시에 겨울이 긴데다가 밤이 끔찍하게 길고, 좀 춥다 싶으면 기온이 영하 40도까지도 내려가 버리는, 결코 우호적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 기후가 있는 그런 나라들.

앞서 읽은 두 소설은 모두 너무나 많은 것을 잘 보장해 복지 제도 속에 있지만, 사람들은 추운 날씨만큼 서늘하게, 불행하게 사는 모습을 담고 있다. 마치 모든 것을 가져봤기 때문에 조금씩 쇠퇴하는 것만 남은 늙은 이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그 속에서도 눈이 차가운 만큼 뜨거운 스밀라가 있고, 결국은 살아 보겠다고 좋은 죽을 자리를 물색하는 자살여행자들이 있다.

이 소설의 스웨덴은 한 술 더 뜬다. '스웨덴 여성의 13%는 성폭력을 당해 본 경험이 있다'라니.
게다가 경제 범죄에 사이코패스에 신나치극우에..
우리 나라 신문 기사 기가 차는 것만큼 이 나라에서도 못 살겠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이유로)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건 '이야깃거리'를 찾아서 만든 소설이겠고 대부분의 스웨덴 사람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소시민이겠지만, 

4. 작가는 원고 넘기고 다음 날인가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고 한다.
뜬금없이 빅픽처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이 작가, 자기 죽음을 연출하고, 어디 숨어서 자기 책의 성공을 보며 이름 없이 유유자적 살고 있는 것 아냐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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