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망 가마슈 시리즈를 드디어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다 읽었다. 며칠 전에 -5번 <냉혹한 이야기>까지 읽은 후- ‘인격적으로까지 완벽한‘ 아르망 가마슈가 맘에 안 드네, 작가가 결국 마콘도처럼 사라지게 할 거라느니, 플롯이 장황하다느니 투덭투덜하는 글을 썼었는데 바로 다음 권인 <네 시체를 묻어라>를 읽고 오, 내가 너무 성급했군 하고 조금 반성했다. 이후의 책들은 다행히(?) <네 시체를 묻어라>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 준수했다 (그래도 8번 <아름다운 수수께끼>는 다소 지루했다). 그래서 시리즈 중 최고이자 시리즈를 떠나서도 훌륭한 이 책에다가 -상도 가장 많이 받았음- 글을 쓴다. 이 소설에서는 세 가지 이야기-1)가마슈가 부하들을 잃고 몸과 마음에 큰 타격을 입고(그렇지만 물론 가마슈는 그 타격이 자기를 무너뜨릴 가능성을 용납하지 않는 인간) 장 기 보부아르는 회복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타격을 입은 얼마되지 않은 과거의 사건, 2)상심한 가마슈가 도서관에서 과거의 역사를 읽으면서 소일하던 중 맞닥뜨린 살인사건, 그리고 3)이전 책에서 개운치 않게 종료된 스리파인스의 살인사건을 장 기가 가마슈의 부탁을 받고 다시 수사하는 이야기-를 동시에 풀어가는데 각 사건으로의 전환이 아주 자연스럽게 잘 짜여져서 읽는 재미가 크다. 1번 사건의 충격의 여파에서 여전히 힘들어하는 가마슈와 장 기가 각각 2번과 3번 사건을 풀면서 회복된다는 뻔할 것 같은 이야기는 없다. 살인사건은 그냥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을 도울 뿐, 진짜 이야기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의 감정과 마음 속의 진실들이다. 모든 인물들이 이해되고 그만큼 나의 시야도 넓어지는 느낌. 그저그런 장르소설을 넘어서는 울림이 있는 소설이다. 시리즈 7번도 6번만큼은 아니었지만 괜찮았고, 8번은 좀 지루했지만 9번을 읽기 위해서는 필수였다. 9번은 흥미진진하게 밤샐 뻔하면서 읽었다. 그래도 6번만큼은 아니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9권이지만 작가는 계속 써서 작년까지 전부 20권을 출간하였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는 대략 2권에 1년 가량의 시간이 지나는 것 같은데 최신작에서 가마슈는 거의 일흔이 되었겠네. 9권에서와 같이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는 일까지는 못하실 것 같고 장 기의 장인이자 카운슬러나 멘토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있지는 않을까? 나는 9권에서 시리즈가 종료되었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가마슈가 은퇴해서 스리파인즈에 정착하고 장 기와 아니 가마슈가 결혼하는 것 이상의 괜찮은 결말은 생각하기 어랴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스리파인즈. 나는 정말 작가가 천국처럼 보이는 스리파인즈에 사실은 (잠재적) 살인자로 우글거리는 곳이었다… 같는 장르적 운명을 정해놓은 줄 알았다. 아니었다. 1권의 범인은 스리파인즈의 소위 ‘이너서클’ 주민이었고 5권의 범인도 그랬지만 그건 가마슈의 오판이었다(스포 죄송). 9권에서 스리파인즈 주민들은 가마슈와 장 기의 피난소이자 보호자가 되고 가마슈는 결국 그들의 일부가 된다. 스리파인즈는 겉과 속이 다른 곳이 아니었고 마콘도처럼 사라지지도 않을 것 같다. 오해해서 미안.
2074년(!)까지 대여한 아르망 가마슈 시리즈를 드디어 읽고 있다. 아르망 가마슈는 내 타입이 아니다. 그냥 잘 생긴 게 아니라 ‘신뢰를 주는’ 눈빛과 외모를 지닌 초로의 살인반 반장. 아내는 첫사랑인데 둘 사이의 사랑과 믿음은 35년이 지나도록 변함이 없고 자녀들과의 관계도 그러하다. 거기다 옥스퍼드(케임브리지였던가?)에서 공부해서 완벽한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고(소설의 주무대는 캐나다의 퀘벡이라 프랑스라 프랑스어가 모어) 시를 자우자재로 인용하는 지적인 면모에… 여기까지만 해도 현실감이 희미한데, 내가 가장 참기 힘든 부분은, 그가 ’인격적으로‘도 완벽하는 것이다. 우리가 소설 속의 천재들을 마음으로 너그럽게 인정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인간적/인격적인 결함 때문 아닌가?(나만 그런가?) 하여튼 나는 이런 인물에게는 도무지 마음이 가지 않는다(질투…?).두 번째로 스리파인즈라는 마을. 작가가 창조한 스리파인즈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자나가다가 이 마을을 발견한 사람들 중 -그럴 만한 여력이 있다면- 눌러 앉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아름다운 이 마을에 그렇게 사람들이 차면서, 거의 사건 사고가 없는 마을에 가끔 생기는 사건이 최악의 사건인 살인이다. 작가가 이 마을 사람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을 읽다 보면 모든 사람들이 언젠가는 살인을 할 것만 같다. 그렇게 마을의 사람들이 하나씩 지워지고, 끝내는 고립 속에 자기 복제만 계속하다가 사라져 버리는 마콘도처럼 되지 않을까. 소설들 자체도 크게 맘에 들지 않는다. 첫 번째 <스틸 라이프>는 읽은 지 꽤 되었지만 근사한 코지 미스터리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다음 권으로 갈수록 플롯들이 점점 더 장황해진다. 책 뒤에 붙은 해설에서는 뭐 인간의 마음이 심리가 선과 악이 깊이가 어쩌고 호의적으로 의미를 부여해놨지만, 내가 보기에 작가는 너무 많은 걸 담으려고 많이 무리하고 있는 듯하다. 2074년까지 읽으면 되니까 여기서 쉬었다 갈까? 하다가 어차피 2074년까지 살지도 못할/않을 거고 시간을 흘려보내기에 크게 나쁘지 않아서 번역된 것까지는 이어 다 읽어 볼 생각이다. 어쩌면 다음 권 아니면 다다음 권에서라도 오! 내가 성급한 판단을 내렸던 거였어! 할 지도 모르지.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체로 결론이 ‘인생은 아름답다’인 건데, 그걸 누가 모르나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다 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렇게 읽다가 보면 심술이 불뚝불뚝 속에서 올라오고 얼마쯤 읽다가 말곤 했다. 이 책도 삼분의 일쯤 읽다가 한번 덮었다. 손이 맵지 못하고 아마 일머리도 모자랄 것이고 그 와중에 딱 심지는 굳은 오춘실 씨가 겪어온, 고생이란 말도 모자랄 인생에 이제는 해실해실 웃으며 사신다니 막 답답하고 화가 치밀었다. 뭐 이런 인간승리 같은 걸 딸이 쓰고 있어. 그 답답한 걸 남의 일이 아니라 마치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감정이입이 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혼자 막 심술을 부리다가, 길지 않은 책이고 수영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시 읽었다. 결국 오춘실 씨에게 두손두발 다 들었다. 손목 발목 골반 척추 다 한 번씩은 부러지고 오랜 세월 고된 노동으로 팔이 다 펴지지도 않는데 웃고 배우고 참견하고 ‘나 잘 산 얘기 많이 썼어?‘라고 물으시는 오춘실 씨. 그걸 마음에 골병이 든 딸이 쓰는데, ’나는 엄미가 부끄러웠고 부끄러워 하는 내가 더 부끄럽다’라는 고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쩌면 독립하기 전의 가정환경을 숨기려는 질풍노도의 시기 또는 K-장녀/외동딸의 분투 같은 것은 그저 쓰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르겠지만, 엄마의 삶 자체를 긍정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의 병에서도 풀려나는 글이, 뒤로 갈수록 많이 좋았다. 엄마를 볼 때마다 엄마가 나 때문에 포기한 것이 얼마나 많을까 채워드리고 싶어도 이젠 기력이 없으셔서 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금 하고 싶어 하시는 것을 할 수 있는 것만큼 즐겁게 하시는 걸 더 많이 기쁘게 응원해야지.
올해가 끝나기 전에 출간된 ‘벽돌 판타지’ 세 권을 모두 읽었다! *뿌듯* 당장 해치워도 늦은 일들을 무려 1년 후로 연기하고서 쏟아부은 시간이니 마음껏 뿌듯해 하자! (이러는 게 어쩐지 슬프다…) 랜드가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거의 없으니 더 재밌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영웅은 흔해도 매력적이긴 하지만 1천 페이지에 걸쳐 계속 그러면서 징징댄다면 지겨웠을 것이다. 맷의 매력이 슬슬 올라오는 것 같고 모레인이 좀 별로가 된 것도 내맘에는 들고 새로운 짜증둥이로 에그웨인이 등극함. 그럭저럭 세계를 알고 나니 다음 권은 언제 나오나. 1년에 한 권 씩 나와도 십 년이 더 걸릴 텐데 그럼 내 나이가… 이번 생에서 다 읽을 수 있으려나. 하긴 원서도 1990년에서 2013년까지 20년이 넘게 걸려서 완성된 걸 생각하면. 미국에서 1990년에 지금 내 나이로 읽기 시작했다면 끝을 보지 못하고 다른 세상으로 갔을 수도 있다… ㄷㄷㄷ
벽돌 판타지 두 번째 독파. 1탄보다 훨씬 재밌었다. 인물들이 늘어나고 많은 세계와 사건과 모험이 등장하고 1100페이지(!)에 걸쳐 지루할 틈 없이 긴박하게 흘러간다. 그렇다고 분량이 어마어마한 만큼 순식간에 촤라락 책장이 넘어가서 마지막장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얘네(랜드 포함 중요 인물들)가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나는지(시간의 물레가 얘네들을 중심으로 패턴을 짠다고 하니까 벗어나는 것 자체는 확실하겠고) 궁금해서 미치겠는데 남은 페이지는 어마어마하고… 그래서 챗지피티를 닥달해서 스포일러 세례를 받으며 읽는데 읽으면서 보니 챗지피티가 내준 답들의 상당수가 그넘의 할루시네이션이었다. 그걸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정확한 답변을 얻으려 했지만 결론은… 위키피디아였다. 챗지피티가 위키피디아부터 참조해서 답을 냈으면 싸울 필요가 없었을 텐데 -.- 챗지피티와 싸우지 않았다면 이틀은 더 빨리 끝낼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시리즈의 세계에서는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든 시간의 물레가 자아내는(혹은 자아내기로 작정한) 패턴 속으로 끌려가게 되어있다는 결정론적 세계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이 달랐으면 전혀 다른 미래-결과의 세계가 생긴다는 비결정론적 세계관이 충돌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읽는 이야기는 그 중 하나의 선택들만 따라가서 생기는 이야기일 뿐인 건데. 인간의 선택이란 결국 그의 가장 깊은 가치관과 소망에 닿아있고 랜드 같은 인간적 인간은 그 많은 세계들 중 단 하나만을, 가능성을 넘어서 실재하는 세계로 만들어 결국 이야기는 하나만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2탄을 읽으면서 문득, 내내 궁금했던 것 한 가지: 물레란 실을 뽑아내는 도구 아닌가? 실만 나올 뿐 옷감을 -즉 패턴을- 만들려면 베틀이 필요하다. 따라서 시간의 물레(Wheel of Time)가 아니라 시간의 베틀(Loom of Time)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