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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 ㅣ 미래의 문학 10
새뮤얼 딜레이니 지음, 공보경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2년 5월
평점 :
“농사, 사냥, 어업 같은 일에 종사 하는 인구의 수는 점점 줄어들어서, 사람들 대다수는 노동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디서 자는지 같은 방식-사이의 괴리가 점점 커져갔어. 애슈턴 클라크는 이런 괴리가 인류에게 심리적으로 상처를 준다고 지적했어. 신석기 시대 혁명 기간 동안 인류가 곡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고, 본인이 선택 한 곳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방식을 익히면서 키워온 자제력과 자기 책임 능력을 이 괴리가 심각하게 위협하게 된 거야. 애슈턴 클라크 이전에 많은 사람들은 산업혁명 이래로 그런 위협이 꾸준히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어. 애슈턴 클라크는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거야. 기술 사회가 크게 발전하면 인류의 노동과 인류의 생활 방식은 돈 문제를 제외하면 직접적인 관계가 없게 돼. 인간은 일을 통해 무언가에 변화를 가하고, 물건을 만들고, 없던 것을 만들어내고, 이쪽에 있던 걸 저쪽으로 옮기면서 살고 싶어 하거든. 노동에 에너지를 쏟아 넣고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한단 말이야. 그렇게 되지 않으면 헛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게 돼.
만약 애슈턴 클라크가 그 시기가 아니라 100년 전이나 100년 후에 살았으면 오늘날 사람들은 애슈턴 클라크라는 이름조차 들어 보지 못했을 거야. 당시 기술은 마침 애슈턴 클라크가 말하는 노동을 실현시킬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거든. 소쿠엣은 플러그와 소켓, 신경 반응 회로, 나아가 인간이 직접적인 신경 연결을 통해 손과 발을 움직여 기계를 제어할 수 있는 기본적인 기술을 발명했어. 노동의 개념이 혁명적으로 바뀌게 된 거야. 주요 산업의 모든 노동은 인간이 ‘직접‘ 기계를 제어하는 일로 세분화됐어. 전에는 한 사람이 공장을 운영하는 게 가능했어. 아침에 일어나 스위치만 켜놓고 반 나절을 더 자다가 점심에 글자판 몇 개를 확인하고 저녁에 스위치 를 끄고 일을 마치면 되는 거였으니까. 이제는 사람이 직접 공장으로 가서 자기 몸의 소켓에 플러그를 연결해. 왼발을 써서 원재료를 공장에 투입하고, 수만 가지 정밀 부품을 한 손으로 만들어. 다른 손으로 조립을 해서 오른발로 완제품을 내보내고 본인 눈으로 직접 제품을 검수해, 이제 훨씬 만족스러운 노동자가 된 거야. 그런 노동의 속성 때문에 대부분의 노동은 플러그인 일자리로 전환됐고 전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진행이 됐어. 생산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일부 있기는 했지만, 클라크는 사회 전체로 따지면 그것도 심리적 이점이 된다고 봤어. 애슈턴 클라크는 인류를 노동하는 인간으로 바꾼 철학자라고들 하지. 이 시스템에서는 인간소외에 따른 정신병 발 발 비율이 현저하게 낮아. 노동 변화는 전쟁을 드물다 못해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었어. 초기에는 좀 혼란스러웠지만 그 후 800년 동안 세계 경제망은 안정됐지. 애슈턴 클라크는 노동자들의 선지자가 됐어. 그래서 요즘도 누가 직업을 바꾸겠다고 하면 애슈턴 클라크의 가호가 깃들기를 바란다는 인사말을 하는 거야˝
- 새뮤얼 레이 딜레이니, 공보경 역, <노바>, 폴라북스. pp. 378-381.
*요약을 못하고 이 긴 걸 다 붙이다니.
아무튼. 간디가 현대 세계의 일곱 개의 죄악 중 하나로 꼽은 것이 ‘노동 없는 건강‘이다. 노동 없이 헬스클럽 같은 데서 만드는 건강을 말하는 걸까 했었다. 여기서는 노동 없이는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건강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튼. 만약 이런 시대에 트럼프나 머스크나 삼성의 ’오너’ 같은 슈퍼자본가들을 데려다 놓으면, 그들은 몸에 소켓을 장착하려고 할까? 그들에겐 확실히 자제력과 책임감이 부족한데…
아무튼. 애슈턴 클라크의 가호가 모든 노동자들에게 있기를.
#노바 #노동의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