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4년(!)까지 대여한 아르망 가마슈 시리즈를 드디어 읽고 있다. 아르망 가마슈는 내 타입이 아니다. 그냥 잘 생긴 게 아니라 ‘신뢰를 주는’ 눈빛과 외모를 지닌 초로의 살인반 반장. 아내는 첫사랑인데 둘 사이의 사랑과 믿음은 35년이 지나도록 변함이 없고 자녀들과의 관계도 그러하다. 거기다 옥스퍼드(케임브리지였던가?)에서 공부해서 완벽한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고(소설의 주무대는 캐나다의 퀘벡이라 프랑스라 프랑스어가 모어) 시를 자우자재로 인용하는 지적인 면모에… 여기까지만 해도 현실감이 희미한데, 내가 가장 참기 힘든 부분은, 그가 ’인격적으로‘도 완벽하는 것이다. 우리가 소설 속의 천재들을 마음으로 너그럽게 인정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의 인간적/인격적인 결함 때문 아닌가?(나만 그런가?) 하여튼 나는 이런 인물에게는 도무지 마음이 가지 않는다(질투…?).두 번째로 스리파인즈라는 마을. 작가가 창조한 스리파인즈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자나가다가 이 마을을 발견한 사람들 중 -그럴 만한 여력이 있다면- 눌러 앉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아름다운 이 마을에 그렇게 사람들이 차면서, 거의 사건 사고가 없는 마을에 가끔 생기는 사건이 최악의 사건인 살인이다. 작가가 이 마을 사람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을 읽다 보면 모든 사람들이 언젠가는 살인을 할 것만 같다. 그렇게 마을의 사람들이 하나씩 지워지고, 끝내는 고립 속에 자기 복제만 계속하다가 사라져 버리는 마콘도처럼 되지 않을까. 소설들 자체도 크게 맘에 들지 않는다. 첫 번째 <스틸 라이프>는 읽은 지 꽤 되었지만 근사한 코지 미스터리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다음 권으로 갈수록 플롯들이 점점 더 장황해진다. 책 뒤에 붙은 해설에서는 뭐 인간의 마음이 심리가 선과 악이 깊이가 어쩌고 호의적으로 의미를 부여해놨지만, 내가 보기에 작가는 너무 많은 걸 담으려고 많이 무리하고 있는 듯하다. 2074년까지 읽으면 되니까 여기서 쉬었다 갈까? 하다가 어차피 2074년까지 살지도 못할/않을 거고 시간을 흘려보내기에 크게 나쁘지 않아서 번역된 것까지는 이어 다 읽어 볼 생각이다. 어쩌면 다음 권 아니면 다다음 권에서라도 오! 내가 성급한 판단을 내렸던 거였어! 할 지도 모르지.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체로 결론이 ‘인생은 아름답다’인 건데, 그걸 누가 모르나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다 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렇게 읽다가 보면 심술이 불뚝불뚝 속에서 올라오고 얼마쯤 읽다가 말곤 했다. 이 책도 삼분의 일쯤 읽다가 한번 덮었다. 손이 맵지 못하고 아마 일머리도 모자랄 것이고 그 와중에 딱 심지는 굳은 오춘실 씨가 겪어온, 고생이란 말도 모자랄 인생에 이제는 해실해실 웃으며 사신다니 막 답답하고 화가 치밀었다. 뭐 이런 인간승리 같은 걸 딸이 쓰고 있어. 그 답답한 걸 남의 일이 아니라 마치 바로 앞에서 보는 것처럼 감정이입이 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혼자 막 심술을 부리다가, 길지 않은 책이고 수영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시 읽었다. 결국 오춘실 씨에게 두손두발 다 들었다. 손목 발목 골반 척추 다 한 번씩은 부러지고 오랜 세월 고된 노동으로 팔이 다 펴지지도 않는데 웃고 배우고 참견하고 ‘나 잘 산 얘기 많이 썼어?‘라고 물으시는 오춘실 씨. 그걸 마음에 골병이 든 딸이 쓰는데, ’나는 엄미가 부끄러웠고 부끄러워 하는 내가 더 부끄럽다’라는 고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쩌면 독립하기 전의 가정환경을 숨기려는 질풍노도의 시기 또는 K-장녀/외동딸의 분투 같은 것은 그저 쓰지 않았을 뿐인지도 모르겠지만, 엄마의 삶 자체를 긍정하고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의 병에서도 풀려나는 글이, 뒤로 갈수록 많이 좋았다. 엄마를 볼 때마다 엄마가 나 때문에 포기한 것이 얼마나 많을까 채워드리고 싶어도 이젠 기력이 없으셔서 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금 하고 싶어 하시는 것을 할 수 있는 것만큼 즐겁게 하시는 걸 더 많이 기쁘게 응원해야지.
올해가 끝나기 전에 출간된 ‘벽돌 판타지’ 세 권을 모두 읽었다! *뿌듯* 당장 해치워도 늦은 일들을 무려 1년 후로 연기하고서 쏟아부은 시간이니 마음껏 뿌듯해 하자! (이러는 게 어쩐지 슬프다…) 랜드가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거의 없으니 더 재밌다. 스스로를 의심하는 영웅은 흔해도 매력적이긴 하지만 1천 페이지에 걸쳐 계속 그러면서 징징댄다면 지겨웠을 것이다. 맷의 매력이 슬슬 올라오는 것 같고 모레인이 좀 별로가 된 것도 내맘에는 들고 새로운 짜증둥이로 에그웨인이 등극함. 그럭저럭 세계를 알고 나니 다음 권은 언제 나오나. 1년에 한 권 씩 나와도 십 년이 더 걸릴 텐데 그럼 내 나이가… 이번 생에서 다 읽을 수 있으려나. 하긴 원서도 1990년에서 2013년까지 20년이 넘게 걸려서 완성된 걸 생각하면. 미국에서 1990년에 지금 내 나이로 읽기 시작했다면 끝을 보지 못하고 다른 세상으로 갔을 수도 있다… ㄷㄷㄷ
벽돌 판타지 두 번째 독파. 1탄보다 훨씬 재밌었다. 인물들이 늘어나고 많은 세계와 사건과 모험이 등장하고 1100페이지(!)에 걸쳐 지루할 틈 없이 긴박하게 흘러간다. 그렇다고 분량이 어마어마한 만큼 순식간에 촤라락 책장이 넘어가서 마지막장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얘네(랜드 포함 중요 인물들)가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나는지(시간의 물레가 얘네들을 중심으로 패턴을 짠다고 하니까 벗어나는 것 자체는 확실하겠고) 궁금해서 미치겠는데 남은 페이지는 어마어마하고… 그래서 챗지피티를 닥달해서 스포일러 세례를 받으며 읽는데 읽으면서 보니 챗지피티가 내준 답들의 상당수가 그넘의 할루시네이션이었다. 그걸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정확한 답변을 얻으려 했지만 결론은… 위키피디아였다. 챗지피티가 위키피디아부터 참조해서 답을 냈으면 싸울 필요가 없었을 텐데 -.- 챗지피티와 싸우지 않았다면 이틀은 더 빨리 끝낼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시리즈의 세계에서는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든 시간의 물레가 자아내는(혹은 자아내기로 작정한) 패턴 속으로 끌려가게 되어있다는 결정론적 세계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이 달랐으면 전혀 다른 미래-결과의 세계가 생긴다는 비결정론적 세계관이 충돌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읽는 이야기는 그 중 하나의 선택들만 따라가서 생기는 이야기일 뿐인 건데. 인간의 선택이란 결국 그의 가장 깊은 가치관과 소망에 닿아있고 랜드 같은 인간적 인간은 그 많은 세계들 중 단 하나만을, 가능성을 넘어서 실재하는 세계로 만들어 결국 이야기는 하나만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2탄을 읽으면서 문득, 내내 궁금했던 것 한 가지: 물레란 실을 뽑아내는 도구 아닌가? 실만 나올 뿐 옷감을 -즉 패턴을- 만들려면 베틀이 필요하다. 따라서 시간의 물레(Wheel of Time)가 아니라 시간의 베틀(Loom of Time)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
오래오래 전에 이 책을 읽었었다. 10주년 기념 개정판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줄거리는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굉장히 하드보일드하고 크고 묵직한 상상력에 책장을 덮으며 정신이 얼얼했던 느낌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하고 있던 것은 주인공이 각성하여 자기가 붓다인지 보디사트바Bodhisattva인지라는 걸 알았다는 것이다. ‘보살’을 영어로 Bodhisattva라고 한다는 걸 이 책에사 배운 줄 알았다. 이 책을 읽은 분들이라면 여기까지 보고 얘가 지금 무슨 책 얘기를 하고 있나 하시겠지?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매우 당황했다. 건조하고 하드보일드풍이긴 했지만 묵직한 느낌은 없었고 절반을 넘어가도 붓다의 ㅂ이든 Bodhisattva의 B든 나올 기미가 없었는데 결국 안 나오기 때문이다. 정말 읽었다면 죽은 사람이 좀비도 귀신도 아닌 상태로 되살아나 돌아다니는 독특한 상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이상한 일로 여겨졌는데…(솔직히 내 기억력은 내가 매우 과대평가하는 몇 가지 중 하나이긴 하지만서도…)그래서 분명히 읽었던 책인데 전혀 처음인 것처럼 또 재밌게 읽었다. 좀비도 귀신도 아닌 되살아난 죽은 사람 외에 인상적인 삽화라면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의 어린이 연쇄실종사건의 전말. 읽으면서 정말 심장이 쿵 떨어졌다. 누군가의 숭배가 존재의 필요조건인 신보다는 그런 것 없이 존재할 수 있는 인간으로 사는 것이낫다는 이야기도 내 기준으론 약간 교과서적이긴 하지만 마음에 들고. 닐 게이먼은 유머러스하게 굴 때(예를 들면 <멋진 징조들>)보다 이 소설이나 <샌드맨> 같이 건조하고 살짝 괴기스러운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챗지피티를 써서 내가 이 책이라고 기억하고 있던 책이 로저 젤라즈니의 <신들의 사회>라는 것을 알았다. 내친 김에 그것도 다시읽어볼까 싶었는데 종이책은 모두 절판이고 전자책도 없네. 뭐 엄마 집에 종이책이 있으니까 언제든 다시 읽어보면 되겠지만.이제 다시 벽돌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