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미래의 문학 10
새뮤얼 딜레이니 지음, 공보경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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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딜레이니의 작품 중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 된 <바벨-17>과 <노바>를 모두 읽었다.

음. 내 타입은 아니다. 뭔가 매우 잘난 (척하는) 작가라는 느낌. 세계는 방대하고 묘사가 현란하며 바탕을 이루는 세계관은 묵직하다. 둘 다 쉬엄쉬엄 읽을 수는 없었지만 <바벨-17>이 읽기에 조금이라도 수월했다. 주인공 한 사람만 쫓아가먄 됐으니까.

<노바>는 처음부터 <모비딕>을 떠올리게 했다. 신체에 커다란 상처가 있으며 하나의 목표에 집착하는 외골수 선장을 세상에 대한 순수한 눈과 호기심을 간직한 소년이 따르게 되면서 선장은 멸망하고 소년은 자란다…

노동에 대한 관점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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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 미래의 문학 10
새뮤얼 딜레이니 지음, 공보경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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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사냥, 어업 같은 일에 종사 하는 인구의 수는 점점 줄어들어서, 사람들 대다수는 노동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디서 자는지 같은 방식-사이의 괴리가 점점 커져갔어. 애슈턴 클라크는 이런 괴리가 인류에게 심리적으로 상처를 준다고 지적했어. 신석기 시대 혁명 기간 동안 인류가 곡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고, 본인이 선택 한 곳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방식을 익히면서 키워온 자제력과 자기 책임 능력을 이 괴리가 심각하게 위협하게 된 거야. 애슈턴 클라크 이전에 많은 사람들은 산업혁명 이래로 그런 위협이 꾸준히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어. 애슈턴 클라크는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거야. 기술 사회가 크게 발전하면 인류의 노동과 인류의 생활 방식은 돈 문제를 제외하면 직접적인 관계가 없게 돼. 인간은 일을 통해 무언가에 변화를 가하고, 물건을 만들고, 없던 것을 만들어내고, 이쪽에 있던 걸 저쪽으로 옮기면서 살고 싶어 하거든. 노동에 에너지를 쏟아 넣고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한단 말이야. 그렇게 되지 않으면 헛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빠지게 돼.

만약 애슈턴 클라크가 그 시기가 아니라 100년 전이나 100년 후에 살았으면 오늘날 사람들은 애슈턴 클라크라는 이름조차 들어 보지 못했을 거야. 당시 기술은 마침 애슈턴 클라크가 말하는 노동을 실현시킬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거든. 소쿠엣은 플러그와 소켓, 신경 반응 회로, 나아가 인간이 직접적인 신경 연결을 통해 손과 발을 움직여 기계를 제어할 수 있는 기본적인 기술을 발명했어. 노동의 개념이 혁명적으로 바뀌게 된 거야. 주요 산업의 모든 노동은 인간이 ‘직접‘ 기계를 제어하는 일로 세분화됐어. 전에는 한 사람이 공장을 운영하는 게 가능했어. 아침에 일어나 스위치만 켜놓고 반 나절을 더 자다가 점심에 글자판 몇 개를 확인하고 저녁에 스위치 를 끄고 일을 마치면 되는 거였으니까. 이제는 사람이 직접 공장으로 가서 자기 몸의 소켓에 플러그를 연결해. 왼발을 써서 원재료를 공장에 투입하고, 수만 가지 정밀 부품을 한 손으로 만들어. 다른 손으로 조립을 해서 오른발로 완제품을 내보내고 본인 눈으로 직접 제품을 검수해, 이제 훨씬 만족스러운 노동자가 된 거야. 그런 노동의 속성 때문에 대부분의 노동은 플러그인 일자리로 전환됐고 전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진행이 됐어. 생산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일부 있기는 했지만, 클라크는 사회 전체로 따지면 그것도 심리적 이점이 된다고 봤어. 애슈턴 클라크는 인류를 노동하는 인간으로 바꾼 철학자라고들 하지. 이 시스템에서는 인간소외에 따른 정신병 발 발 비율이 현저하게 낮아. 노동 변화는 전쟁을 드물다 못해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었어. 초기에는 좀 혼란스러웠지만 그 후 800년 동안 세계 경제망은 안정됐지. 애슈턴 클라크는 노동자들의 선지자가 됐어. 그래서 요즘도 누가 직업을 바꾸겠다고 하면 애슈턴 클라크의 가호가 깃들기를 바란다는 인사말을 하는 거야˝

- 새뮤얼 레이 딜레이니, 공보경 역, <노바>, 폴라북스. pp. 378-381.

*요약을 못하고 이 긴 걸 다 붙이다니.

아무튼. 간디가 현대 세계의 일곱 개의 죄악 중 하나로 꼽은 것이 ‘노동 없는 건강‘이다. 노동 없이 헬스클럽 같은 데서 만드는 건강을 말하는 걸까 했었다. 여기서는 노동 없이는 (적어도 정신적으로는) 건강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아무튼. 만약 이런 시대에 트럼프나 머스크나 삼성의 ’오너’ 같은 슈퍼자본가들을 데려다 놓으면, 그들은 몸에 소켓을 장착하려고 할까? 그들에겐 확실히 자제력과 책임감이 부족한데…

아무튼. 애슈턴 클라크의 가호가 모든 노동자들에게 있기를.

#노바 #노동의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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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시콘
맥스 배리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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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이 넘게 책장에서 이리저리 자리만 옮겨가며 꽂혀 있던 책이 어느날 눈을 자꾸만 잡아끌었다. <렉시콘>이란 단어를 말할 때 어감이 맘에 들었다. 영단어 lexicon을 내가 발음하면 아마 영어가 모어인 사람들은 대부분 한 번에 알아듣지는 못할 것이다. 한국어는 영어의 L과 R을 거의 같은 ㄹ로 발음하니까 Rexicon이라고 말했는지 Lexicon이라고 말했는지 헷갈려하겠지. 아니 Rexicon이라는 단어는 없으니가 Rexicon이라고 들었어도 Lexicon이라고 이해해줄까? -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말이고, 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어이다. 정말로 적절한 단어는 설득을 넘어 거부할 수 없이 몸이 움직이게 하는 명령이 될 수 있다. 단어를 가장 잘 다루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고, 그래서 이 소설에는 ‘시인’(진짜 시를 쓰는 건 아니고 상징적으로 부르는 말이지만)들이 사람들을 죽이며 돌아다닌다(직접 몸에 손을 대기보다는 자살이나 살인을 하도록 만든다)!
사람을 설득하려면 먼저 그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 시인들은 짧은 시간에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구조화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조합해서 그 사람이 (아마도 이미 정립된) 몇백 개의 범주 중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를 알아낸다. 그리고 그 범주의 사람의 머리뚜껑(내 표현)을 열게 하는 단어를 그 사람에게 시킬 행동과 붙여서 던지면, 뙇! 상대방은 정확히 시인이 원하는 행동을 한다. 누우라면 눕고 달라면 주고 잊으라면 잊고 죽이라면 죽이고 죽으라면 죽고.

참 쉽좋잉? 싶지만 물론 지난한 훈련이 필요하고 (일단, 미묘한 차이만 있을 뿐인 몇백 개의 범주와 그 범주 각각에 대응하는 단어의 목록을 외운다는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그게 정말 가능하다는 학문적 배경-심리언어학, 기타 등등-부터 배워야한다) 무엇보다 시인 자신은 이런 단어의 조작에 쉽게 설득당하지-’구부러지지’- 않아야 한다. 대략 넓게는 광고 좁게는 한 사람을 타겟으로 하는 가스라이팅에 대한 느슨한 은유이다.

설득-말이 뇌에서 일으키는 화학작용 같은 것, 신경언어학과 같은 개념을 설명하고 있으니 SF라고 분류할 수 있으나. 세계관의 내적 논리가 아주 잘 맞아들어가지는 않는다. 발화되는 단어를 ’듣는‘ 청각이 일련의 뇌활동의 시작이 되는 것처럼 죽 나가다가(예를 들면 상대의 모어가 아닌 언어로 상대를 구부리기는 쉽지 않다), 모든 단어의 끝판왕, 모든 범주의 사람을 한꺼번에 구부릴 수 있는 ’날단어’에 이르면 갑자기 보기만 해도 구부러지는 것으로 설정이 바뀐다? 마치 단어 자체가 실재하는 물리적인 힘을 가진 것처럼(뇌파를 바꾸는 광선이 마구 뿜어져 나오는 건가…?). 그래서 별점을 높게 주지 않음.

번역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판타지/SF에서 특히 열린책들이 출간한 책에서 자주 보는 번역가이고 늘 괜찮았는데 이 소설은 영 꽝이다. 지나친 직역이네 싶게 대화들이 매우매우 어색하고 대명사들이 무엇을 지시하는지 몇 번을 읽어도 애매한 부분들이 많다. 초벌 번역 받아서 그대로 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정말 내 생각인 건지. 여러가지 말들에 영향을 받은 것 이상으로 내가 구부러진 것이라면 나는 나를 구부러뜨린 말과 그 말을 처음 발화한 사람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 건가. 스스로 생각한다는 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그러라고 나를 구부러뜨리는?- 책이다.

또 하나. 시인들이 상대를 이해/파악하기 위해 던지는 중요한 질문이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왜 그것을 했습니까?‘이다. 대답하려고 열심히 생각해봤는데… 진심 모르겠다… 고로 시인들은 나를 파악할 수 없고… 나는 구부러지지 않는다… 가 아니라 나는 도대체가 나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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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재밌게 읽었다고 할 수 있지만… 너무 길다.
눈 앞에서 보는 듯 묘사해 내는 작가의 능력이 정말 대단하다…지만 너무 길다. 웹소설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거라는데 웹소설이란 걸 처음 읽어본다. 드라마 몰아보기한 거랑 비슷한 것 같은데… 암튼 너무 길다.

읽는 내내 윤뚱의 마음을 먹어버린 카마의 모습이 궁금했다. 어떤 마구니에 붙들려 있을까? 맘 속애 키우는 카마 때문에 이 모든 짓을 저질렀다고 해도 윤뚱의 죄가 줄어드는 건 아니지민. 왜캬면 카마는 결국 자기자신이기 때문에.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무얼 보든 기승전윤수괴네. 에휴 탄핵심판이라도 빨리 끝나야지.

#사바삼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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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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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올해의 책을 뽑혔다고 해서 읽었다.
딱 소설의 시간 -크리스마스 직전의 며칠-에 읽어서 읽는 동안 소설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추위, 고단함, 불안한 안심, 쓸쓸함, 그런 것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떠올렸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약한 사람들은 서로 돕지만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끌어안고 지키느라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줄 손이나 마음이 없는 거다. 그런 사람들의 삶에는 무슨 의미가 있나. 남의 삶의 의미를 생각하기 전에 내 거나 어땋게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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