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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9월
평점 :
A Espiã
Paulo Coelho (2016) / 오진영 역 / 문학동네 (2016)
2016-10-6
읽는 내내 신경질이 났다. 아 정말 파울로 코엘료에게 뭘 바래. 이 작가에게 뭘 바래선 안 된다고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지만 `마타 하리`에 대한 이야기라지 않는가. 소재가 흥미진진하니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말이 맞다. 중요한 것은 작가이다.
마르하레타 젤러, 예명 마타 하리였던 여자가 스파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형(총살)당한 것이 문제가 많은 판결과 집행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를 무기로 휘둘러 많은 권력자들(남자들)을 굴복시키고 돈과 사치와 유명세를 누렸지만, 스파이 혐의에 대해서는 아무런 증거가 없는, 기껏해야 `잠재적 피의자`일 뿐이었다. 그냥 망신만 주고 끝냈어도 충분할 사건을, 재판과 처형까지 짧은 시간 안에 해치워버렸다는 건 전시 상황에 대중의 분노를 받아낼 쓰레기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최대한 지저분하고 선정적으로 그녀의 사생활을 과장해서 대중에게 알리고, 이런 여자니까 이런 일을 충분히-당연히 할 만하다, 라고 일종의 마녀 사냥을 벌인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여자`였기에 가능한 방식이었을 수도 있다. `방탕한 여자`였다는 것이 유죄의 증거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점이 마타 하리 사건에서 되돌아봐야 할 점이고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하지만 `인간` 마타 하리에 대한 이야기라면 다르다. 나는 코엘료가 그녀의 일생에서 뭔가 `인간적인 보석`을 건졌기에 글을 쓴 줄 알았다. 소설의 대부분은 마타 하리가 총살 당하기 전, 사면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한 상태에서 변호사에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편지 형식인데, 아무리 잘 봐도 허영과 과대망상과 그에 필수인 자기합리화 뿐이다. 작가가 실재 마타 하리를 그런 인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그린 건 아닌가 싶을 만큼. `죄라고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는 것밖에 없다`거나 `남성 중심의 관습에 저항했기 때문에 유죄`라거나, 심지어는 오스카 와일드와 마타 하리를 동류로 묶겠다고(드레퓌스 사건과는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헐. 코엘료의 마타 하리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소설 속에서 마타 하리는 말한다. 희생자가 아니라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간 사람, 치러야 할 대가를 당당히 치른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한다고. 무슨 자뻑. 그녀는 희생자이다. 그것도 (그런게 있었다면) 치러야 할 것보다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른. 그러나그녀가 뭘 위해 어디로 나갔단 말인가? 남성 중심 권력에 엿 먹이기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무기로 휘둘렀던가? 그렇게 해서 그녀는 순교자인가?
내 생각은 이렇다. 정당하게 판결을 받았다면 대중적 망신(자신을 실재보다 더 대단한 사람으로 과신했던 것이 대한) 속에서 조용히 저물었을 인생을, 권력이 과잉으로 반응해서 오히려 역사에 가엾은 희생자에다가 순교자 이미지까지 덧씌워 남겼으니, 역시 권력은 근시안적이고 멍청하다.
여기에 파울로 코엘료 특유의 `사랑이 모든 것` 드립. 마타 하리가 사랑을 비웃고 정복하려고 했기에 결국 망했다는 건가 뭔가 아무튼 억지로 몇 군데 끼워 넣긴 했는데 그저 뜬끔없다는 생각 밖엔.
신경질내면서도 끝까지 읽느라 시간 버려 열받는다고 이렇게 긴 글을 찍는다고 시간 버려.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작가의 무려 `친필사인`이 박힌 책이 왔던데. 쓰레길라고 생각하는 책을 양심상 누구에게 줄 수도 없고, 그만큼 팔 수도 없고. 도서정가제 시절 반값으로 산 책이라면 그냥 재활용 쓰레기에다가 같이 묶어 버리면 되겠지만 또 버리려고 하면 돈 생각이 나고. 아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