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에 가까운 그 냄새로 흰 것은 가장희게 되고 깨끗한 것은 가장 깨끗하게 된다는 사실이잘 믿기지 않았다. - P173
나는 바짓단을 털어주며 말했다. 산아는 아주 어렵게세상에 나왔다. 팔개월 만에 미숙아로 태어난 것이다. 출산한 은혜를 보러 갔을 때 너무 작고 발갛던 산아가 떠올랐다. 그때 이미 남편과 시댁에게서 마음이 떠나 있던 은혜는 달이 안 찬 아기라고 안아보지도 않고 횡하니 병원을 나가던 남편을 욕할 의욕도 잃은 상황이었다. 그런 산아에게 바다처럼 큰마음이 생겨나고 있었다. 고여 있는물웅덩이가 아니라 더 많은 것들이 생생히 사는 마음이. - P181
"사람들은 어쩐지 자주 보는 건 결국 싫어해. 마음이 닳아버리나봐." "건전지예요? 닳게?" - P180
영국의 하이드파크, 큐가든, 프랑스의 베르사유정원 등지를 돌며 거기 심긴 장미와 인도철쭉까지 소중히 기록했던 그이지만 미국에서는 센트럴파크의 나뭇잎 한장 기록하지 않았다. 마치 미국의 어떤것이 옮겨올까 저어하는 결벽주의자처럼 대부분의 여정을 기록에서 건너뛰었다. - P187
"내가 만약에 네 앞에서 단무지를 먹으면 헤어지자는신호인 줄 알어. 난 그만큼 그게 싫으니까." - P195
‘노력하지 않는 거지. 노력하면 왜 안 돼, 변명이지." ‘운 좋은 사람들은 꼭 그렇게 말하더라." - P201
"너 사과 잘하니?"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리사는 그렇게 말했다. "가서 사과해. 미안해, 한마디면 된다더라." - P205
"당연히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요." 아랑씨는 내 질문에 가장 현명한 대답을 해주었다. "어떤 경우든 공간이 사람과 연관되지 않을 리는 없으니까요." - P209
순신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머리는 왜 자르고 나타났냐고 대체 왜 이러느냐고 자기가 뭘 잘못했느냐고. 그때 네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말해주지 못한 일을 나는 오랫동안 후회했다. - P222
150마리의 동물을 처리하는 데는 독살, 교살, 액살, 척살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결과적으로 해방이 될때까지 경성에 미군 폭격이 없었던 점을 생각한다면 더한스러운 참상이었다. - P235
"왕주무관은 그냥 먹든가 개인카드를 쓰든가 하면 되지, 뭘 장급처럼 몸을 사려. 계속 승진해서 3, 4급까지 갈거야? 아니잖아. 요즘 세대들 공무원직에 오래 안 붙어 있거든." - P243
"한옥 대문에? 유리 손잡이를?" - P250
나는 그냥 웃어넘겼다. 산아는 왜 옛날이야기들은 이렇게 슬프게 끝나는지 모르겠다고, 역사책 읽을 때마다 해피엔드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너무 옳은 말이라서 또다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역사가 슬픈 건 죽은 이들 때문일수도 있고, 늘 미완으로 남는 소망 때문일 수도 있을 것같았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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