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내부는 궁극이다. 마지막이다. 막다른 길이다. 거기서 더 나아갈 수 없다. 언제나 ‘나’는 가장 나중에 만난다.

텍스트는 독자의 그릇만큼 담긴다. 그릇의 크기와 모양이 텍스트를 제한한다. 유한 속으로 들어온 무한은 유한에 의해, 유한을 통해 이해되고, 시간 속으로 들어온 영원은 시간에 의해, 시간을 통해 해석된다.

제도 속으로 들어와 제도화된 종교와 그런 종교에 익숙해진종교인은 신을 자루 속에 넣는 데 성공한다. 고정적 존재로,
파악 가능한, 쉬운 존재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제도 속에 정착하고 의례 속에 고정된 신은 가시적이고 고정되고 익숙한존재, 무엇인가의 대체물이 된다.

말들은 그 뜻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 사전적으로 정의가 분명한 단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사진은 단어를 고정하지 못한다. 말은 갇히지 않는다

그런데 그가 죽은 후 그의 서재에서 수없이 고쳐쓴 방대한 분량의 원고 뭉치가 발견되었다. 작가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는 관념, 인간의 선택이 아니라 신의 선택,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신의 영감에 의해 위대한 작가와 작품이 탄생한다는 낭만적인 관념이 지배하던 시대의 웃지 못할에피소드라고 해야 할 것이다.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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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 그거 좋지. 그러나 이거 하나는 기억하게. 기회는 기차와도 같아.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지. - P79

그를 보고 있으면 자꾸만 생각이 많아졌다. 그라는 사람이 궁금했고, 그보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고, 그보다 그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내 감정을 휘저어놓는지 알고 싶어졌다. 내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감정들이 자꾸만 떠올라 초당 수천 미터는 뻗어가는 것 같았고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그 에너지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곤혹스러웠다. - P88

광어죠. 아니, 우럭인가? 제가 사실 생선을 잘 구별못해요. 그냥 비싼 건 다 맛있더라고요.
-맞고 틀려요. 당신이 맛보고 있는 건 우럭, 그러나그것은 비단 우럭의 맛이 아닙니다. 혀끝에 감도는 건 우주의 맛이기도 해요.
-네? 그게 무슨 (개떡 같은) 말씀이신지..……… - P105

-그럼 오늘부터 저를 우럭이라고 부르세요. 쫄깃하게.
술 취한 나는 인간도 아니다, 방금 무슨 말을 내뱉은 거야, 정말 돌았군, 하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남자가 또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요, 광어라고 부르겠습니다. 속이 다 보이거든요. - P107

--형, 내가 이쪽인 줄 알고 있었어요?
-네, 처음 본 순간부터 알고 있었는데요.
-우리가 이렇게 될 것도 알고 있었어요?
네, 그것도 처음부터.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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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동생도 지금 제주도에 와 있나요?" - P5

"사실 소영씨도 소영씨지만 동생에게도 밥 한끼 꼭 사고싶었다"고. 더 정확히는 "챙겨 먹이고 싶었다"고.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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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사람들은 이 항로를 ‘기다림의 궤도‘라고 불러. 태양을 중심으로 나선을 그리며 돌다가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지. - P11

"우린 지금 초속 29만 3000킬로미터로 날고 있수다. 아파트 조각내는 태풍이 기껏해야 초속 수십미터라고." - P15

대합실은 비어 있었어. 안은 먼지로 흙색이었고 내려앉은 바닥에는 물이 차 있었어. 썩은 웅덩이에는 물풀이 자라고 있었고 벌레들이 알을 까서 자욱했어. 면세점이 어디 있냐며 뒤에서 소리치던 아주머니가 입을 다물었어. - P38

20세기에 살았던 무슨 과학자가 그랬는데. 외계인은 분명히 있지만 만날 수 없다고.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 별과 별 사이를 막고 있기 때문에.
지구가 45억 년간 우주에 있었다 해도 인류는 겨우 200만 년 전에 태어났고, 식탁에서 지적인 대화를 나누게 된 건 고작 2만 년 정도였다고. 외계인이 우리와 만나 차라도 나누려면 그처럼 먼 거리를 달려와 그처럼 짧은 시간 사이에 멈춰야 한다고. - P70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당신이 이미 이 세상에 없다 해도. 오래전에 어느 별에 정착해 좋은 사람 만나 아들딸 열쯤 낳고, 가족들의 축복 속에 한 생을 마감했다 해도.
혹은 어느 빛의 궤도에 올라, 지구가 회복되기를기다리며 아득한 여행을 하고 있다 해도. 어쩌면아득한 성계 너머에서 이제 막 배에서 내리며, 어린 날의 가벼운 추억거리처럼 나를 회상하고 있다고 해도, ‘아, 그런 사람이 있었죠. 오래전에 다른 시간대에서 죽었겠지만.‘ - P78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우주를 사랑하는 것이며한 사람을 위한 일은 우주를 위한 일이고한 사람을 위한 선물은 우주를 위한 선물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 이 책이 당신께도 좋은 선물이 되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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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고 싶은 욕망은 별로 없지만 밥벌이를 오랫동안 하고 싶다는 욕망은 크다. 15년 이상 국민연금을 냈으니 노년이 되면 쥐꼬리만 한 연금은 나오겠지만, 최소 100만 원은 스스로 버는 노인이 되고 싶다. - P136

이유 없이 누군가를 싫어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사적으로 품은 감정 때문에 타인을 저평가하려 하지 않는다. 동의하지 않는 말들은 전하지않으려고 노력한다. 엄청나게 힘든 일이지만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 - P139

나와 친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특성을살피곤 한다. 약속 시간을 지키는 데 강박적인 친구, 뭔가를 받으면 꼭 보답하는 친구, 우울한 사람이 있으면 곁을 내주려고 노력하는 친구, 지난한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일말의 희망을 찾는 친구, 타인의 힘듦을 먼저 보는 친구, 가족애가 투철한친구, 무례한 행동을 절대 못 참는 친구, 권위적사람 앞에서는 ‘썩소‘를 감추지 못하는 친구 등.
나와 닮은 구석이 많아서 친해지기도 하고 비슷한구석이라고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절친이 되기도 한다. - P145

인터뷰하며 내내 공감했던 이야기. 그 후배가the other라면 흘려보내라는 말을 Y에게 해주고싶었다. 얼마 후 Y는 후배로부터 사과 메일을 받았다. - P148

눈이 멀어가는 아내와 결혼한 서한영교는 아내가 아이를 품은 10개월 동안 목화솜을 직접 재배하고 손물레를 만들어 실을 자아 아이 담요를 만들었다. 딱 10개월이 걸렸다. 아이가 엄마 배 속에서 자라고 있을 때, 아빠는 목화씨를 심고 가꾸어솜을 만들고 실을 만들고 담요를 만들었다. 그리고담요가 완성된 날, 아내에게 말한다. "나 있지, 더잘 살고 싶어져." - P152

Don‘t even think you know! Don‘t think you knoweverything! (알지도 못하면서! 네가 다 안다고 생각하지마!) 내가 그렇게 자주 되뇐 말이 아니었던가. - P157

상대가 어려운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섣불리 반응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것이 지난하게 고민할수밖에 없었던 상대의 시간에 대한 예의다. - P160

2022년 봄, 여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계절이었다. 이틀에 한 번꼴로 새벽에 일어나 일기를써야만 마음이 풀렸다.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에 나오는 문장, "누군가의슬픔을 알면, 정말 알면, 무엇도 쉬이 질투하게 되지 않는 법이니까. 어려운 형편은 모르고, ‘좋아 보이는 면만 어설프게 알 때 질투가 생긴다. 우리는그저 서로를 애틋해했다"를 여러 번 읽으며 깊은위로를 얻었다. - P167

"질문이 형편없었던 거 아닌가요?"라고 묻는다면 "형편없는 질문이라는 게 있을까요?"라고 반문하고 싶다.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한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질문은 하는 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 성장할 수 있는 기회다. - P172

얼마 전, 내가 받은 두 통의 사과 메일을 비교해보았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 미안하지만 자신에겐이런저런 사정이 있었다며 모든 문장에 ‘ㅠㅠ‘를단 사람과 "약속을 지키지 않아 미안합니다. 다음부터는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라고 심플하게 사과한 사람. 후자의 메일만 진짜 사과로 느껴졌다. - P175

중요한 건 타인이 눈치채지 못할 마음이 아니다.
행동, 즉 처사다. - P179

정확한 사람을 좋아한다. 일에 있어서는 하지만관계에 있어 언제나 정확한 사람은 친해지기 어렵다. 딱 자신에게 도움되는 만큼의 친밀만 허락하는사람. 그것은 적당한 거리라기보다는 칼보다 먼져 나간 방패다. - P184

있을 때 잘해야지 헤어지는 마당에 좋은 인상을주는 게 뭔 소용인가 싶지만, 마지막이라서 진심을표현하는 일이 가능할 수 있다. 첫인상도 중요하지만 더 오래 남는 건 끝인상. 첫인상은 내가 어찌할도리가 없는 경우가 많지만, 끝인상은 내가 만들수 있다. - P204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답은 못 줘도 들어줄 순 있어요. 잘 들어줄게요."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도 꼭 같은 말을 해주고싶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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