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에 휴전협정이 체결되었고 2년 뒤인 1955년에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그때는 4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교실 일부 벽면이 전쟁의 상흔으로 허물어져 있었다. - P206

사는 동안 이렇게 여러 이유와 인연으로 만든 모임들이제법 되다보니, 한창 중년의 시기를 지나는 동안에는 망년회를 하는 연말쯤에 부부 동반으로 자주 나가니까 딸내미가 "연예인 부부, 오늘 저녁은 어디로 가시나요?" 이러면서 놀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거의 다 정리가 되고 다들모임 자체를 안 한다. - P240

가만히 살펴보면 남자들은 지나간 시절에 대한 이야기들을 질리지도 않고 모일 때마다 해서, 여자들도 이들이대학교 다닐 때 무슨 짓을 했는지 무슨 사건을 일으켰는지다 알 정도이다. - P238

돌아보면 그동안 맺어왔던 모든 인간관계가 지속적으로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게 확실하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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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을 배우는 동안 단 한 번도 생각을 멈추는성공한 적 없었으나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내가노인들의 운동이라고 우습게 여겼던 ‘기‘라는 단어가프랑스어로는 ‘l‘énergie 에너지‘이고, 그 에너지란 나이가아닌 삶을 향한 육체적, 정신적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
태도가 나이를, 외모를, 스펙을 이긴다는 것. - P20

막이 오르기 직전에 심호흡을 하고 기도하는 곳. 한 걸음 나아가면 탄생하고, 한 걸음 물러나면 무릎가 되는자궁이자 무덤. 요즘 나는 컴퓨터 화면 앞에서 그곳을생각한다. 어쩌면 지금 이 자리가 그곳인지도 모르겠다. - P31

글을 쓰는 삶을 산 이후로 나의 오랜 두려움은 목소리를 잃고 길을 잃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런 두려움 때문에 번역을 시작했던 것 같다. 다른 작가들의 목소리를조금 더 가까이 들어보고 싶어서, 할 수 있다면 그것을내 안으로 옮겨 오고 싶어서. - P33

글쓰기가 문장을 무덤 속에 파묻으며 언젠가 그것이 집이 되기를 희망하는 일이라면, 번역은 누군가 단단하게 세운 집을 부서뜨리고 그것의 잔해를 옮겨 와 재건하는 일이다. 부서뜨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 P3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언어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이민자들이 각기 다른 억양으로래하듯 프랑스어를 말할 때, 외국인들끼리 완벽하지 않은 프랑스어로 서로의 말을 알아들으려 애쓸 때, 가장간소한 말로 더듬더듬 사랑을 고백할 때,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었다. - P38

예를 들자면 그에게 봄바람은 ‘살랑살랑‘ 부는 것이아니라 ‘사랑사랑‘ 분다. 물론 연속되는 ‘ㄹ‘ 발음이 어려운 탓도 있지만, 봄바람이 주는 설렘과 사랑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 역시 사랑사랑 부는 바람이싫지 않아서 얄궂게도 고쳐주지 않는다. - P43

여름밤은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시간이다. 더위에지친 하루도, 어쩐지 소원해진 우리 관계도, 거기 찰싹붙어 있는 그 커플도, 싸구려 술잔도 모두 쨍그랑. 내가프랑스에서 살며 18년 동안 깨부순 푀르식틱트 유리잔을 쌓아보면 작은 무덤 하나는 나올 것이다. - P55

잔은 액체에 형체를 만들어주고 형체는 감각을 부여한다. 그리고 감각은 구체적인 기억을 남긴다. 나는 잔을 쥐고 있던 손과 살포시 포갠 손, 잔에 닿았던 입술과잔을 채우던 숨과 내게 와 닿았던 입술을 기억한다. 그짧고 짙은 숨의 온도를. - P59

"역시, 내 꿈은 정확해!"
엄마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사람이고, 그래서 꿈조차도
‘좋은 쪽‘으로 가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나는 그런 엄마가 귀엽고, 귀찮고, 또 그런 엄마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 P64

"Girls, Did you shop at H&M얘들아, H&M에서 쇼핑했니?"
언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때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누구에게나 잊히지않는 청춘의 한 장면이 있지 않은가. 나는 그때 막연히내가 가장 젊은 순간을 살고 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 P79

"그럼 시간을 믿어봐. 시간이 자네 편인 날이 와. 시간이 자네의 힘이 되는 날이 온다고."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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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뒤꿈치예요?"
내가 물었다. - P77

"검정고시로 박사 따기 어렵냐고. 고등학교 검정고시는 금방할 거 같은데. 우리는 나이도 있고 하니까 대학교는 건너뛰려고 대학원 검정고시는 아무래도 어렵겠지? 너 대학원가봤어? 나보다 학교 오래 다녔잖아." - P83

"왜가 아니라 그거는 원래 없어. 여기서 울릉도까지 가는지하철 없잖아. 그거랑 똑같은 거야. 그냥 없어."
이구가 다짜고짜 내 멱살을 잡았다. 땅에서 몸이 십 센티미터 정도 올라갔다. - P83

그런데 천구야, 이름에 속지 마라. 이름에 현혹돼서 본질을잃으면 손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어. 물속에서 쥐는 모래처럼흩어지는 거다. 본질에도 현혹되지 마라. 어떤 게 본질이고허상인지 네 맘속에서 정하는 순간 본질적인 건 신기루처럼사라져버려. 그러니까 말이다. 내가 물어보자, 그런 물건이정말 있다면, 세상에 존재한다면 말이다. 너는 그걸 어떻게할거 같냐?"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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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졌으나 아주 망가지지는 않겠다는 각오로,
상처 입었으나 병들어 죽지 않을 마음으로,
오래 가난하지 않을 희망으로.

겨울이다. 눈이 왔다. 두꺼운 옷을 챙겨 입고 길을 나섰다. 이른 아침, 시골 마을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 - P7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살았던 3년은 내세울 것 없는 내 인생의 가장 화려한 경력이다. 깨끗한 물과 빛과 - P21

"유진, 제발 숨을 쉬어. 급할수록 그 자리에 멈춰서숨을 쉬라고. 머릿속을 비우고, 생각을 멈추고, 호흡에만 집중해."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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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그리고 누군가 죽으면,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위스키 잔을 비운다. 그것이 아일레이섬이다.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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