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그리고 지금 여기에두 사람이 있다.
오래, 여기, 함께. - P124

일터 (카페)로 가려면 시장을 통과해야 한다. 아치형지붕으로 덮인 재래시장인데, 그곳을 걷노라면, 고층 빌딩이 있는 대도시나 커다란 나무가 있는 산책길과 다르게 나의 시선은 아래로, 땅으로 향한다. - P125

"오늘도 장사 잘혀!
"그럼요. 할머니도 오늘 대박 나세요." - P128

나를 키웠던 시장으로 다시 돌아와 매일 이 길을걸으며 나무가 된 사람들의 삶을 책처럼 펼친다. 더듬더듬 읽다 보면, 그 삶을 글로 옮기는 날도 오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내가 아는 이 나무들을 증언하고 싶다. 가지가 꺾이는 아픔을 겪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 그 굽은삶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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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라는 풍토에는 전체적으로 그런, 약간은 수줍은 구석이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말하자면,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그리스의 신전, 혹은 나이아가라 폭포처럼-엄청나게 큰 감동이나 경탄, 혹은 깊은 생각 같은 걸 직접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 P119

이렇게 인구가 적은 나라에서 이토록 펍이 많은데도 용케 운영이 된다는 게 나로서는 놀랍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다들 장사가 되는 걸 보면 신통한 노릇이다 - P119

세상에는 입을 열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말문이 트이면 온화한 어조로 몹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있는데(그리 많지는 않지만), 아일랜드는 그런 느낌이 드는 나라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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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하기 전에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어. 한동안 못 볼 테니까. 정확히는 4년 6개월간말이야. 다들 온대. 같이 사진도 찍었어. 사진 넣는 줄목걸이도 나눠 줬어. 예식장에서 사은품으로 줬거든. 오늘 찍은 사진 넣어서 목에 걸고 오라고 했어. 일일이 누군지 물어보며 민망해하지않아도 되게 말이야. 다들 놀리더라. - P8

"괜찮겠어. 내겐 넉 달이지만 네게는 4년 반이넘는 시간이야. 아무리 기다림의 배로 시간을 반으로 줄인다 해도 말야. 쉽게 생각하지 마."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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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발을 맞추면 어느새 어제의 나도 내일의 나도사라진다. 어쩌면 그런 게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닐까싶다. 어제 만난 나는 어제에 두고, 내일이 되어야만날 수 있는 나는 내일에 맡기고. 그렇게 오늘 다시태어난다. 오늘의 나로.
오늘 새로 태어난 나와 당신에게, 오늘 죽고 내일 다시태어날 나와 당신에게 시 한 편을 선물하고 싶다. - P96

카뮈는 이런 여행을 ‘우리의 마음속에 있던 일종의내면적 무대장치를 부숴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가면을쓰고 연기해야 할 무대(일상)를 잠시 떠나는 순간, 비로소 진짜 순수한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불안하고, 외롭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을 갈구하는존재. 나는 그 바다 앞에서 내 안에 침잠해 있던 존재가표면 위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 P101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전에 엄마와 나는 급하게 우동 한 그릇을 먹었다. 나는 사는 게 무서운 날,
뜨거운 국물에 얼굴을 박고 후루룩후루룩 면발을 삼키던 엄마의 얼굴과 새벽 시장의 칼바람과 피로에 누렇게뜬 상인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 서글픈 장면이 어째서내게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으나 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누군가의 성공담보다 더 힘이 될 때가 있다.
삶은 그냥 애쓰는 것이고, 피로한 일이고, 그럼에도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나 역시 그들처럼 해볼 수 있을것 같다. - P112

그 방에서 버려졌던 마음이 다시 태어났다. 부서졌으나 아주 망가지지는 않겠다는 각오로, 상처 입었으나 병들어 죽지 않을 마음으로, 오래 가난하지 않을 희망으로,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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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 어떤 의미에서는 뒤로 가는 실험을 하는 것이 앞으로 가는 실험과 비교해서 뒤지지 않을 수도 있다. 뒤로가나 앞으로 가나 우리들 모두는 둥근 공처럼 생긴 별에 산다.
만난다, 어디에선가," - P100

모국어의 층이 나도 모르게 점점 엷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 때도 있었고 어쩌면 그 감각은 의도적으로 잃어버리려 애써야 하는 건지도 모르지. 새로운 것이 나오기 위해서는 필연적일 수도 있을 만큼." - P121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포르투갈 시인이 있잖아. 그 사람이 생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 나는 포르투갈어로 시를 쓰지 않는다. 나는 나로 시를 쓴다.‘ 이 말이 내 경우에도딱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우리가 한국어라는 뜨거운 언어공동체 속에 있긴 하지만, 결국은 ‘나‘를 쓰는 거잖아. 나‘라는 존재가 바로 언어지." - P101

"응. 눈 내리는 것을 볼 때마다 아득해지잖아. 나는 늘 눈송이들이 어떤 마음을 나르고 있다고 생각했어. 차가운 것이 애가 타니 어쩔 수 없어지는 거지. 그때의 눈은 흡사 그리움의 결정처럼 보이지. 극지방이 아닌 이상, 눈은 보통 며칠을 버티지 못하고 스르르 녹아버리잖아. 그리움도다르지 않지. 서서히 옅어지지. 하지만 남아 있지. 그리고반드시 다시 찾아오지." - P105

"시인으로서의 삶이 지난하다는 걸 모르고 열정만 가득하던 시절, 말의 어려움과 지난함과 지극한 가벼움과 가벼움뒤에 서 있는 사랑과 삶을 알아보지 못하고 다만 젊어서 불렀던 노래들이 그 시집 안에는 담겨 있습니다." - P109

허수경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시란,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삶의 내용이지. 시인은 탄생과 탄생을 거듭하다가 어느 날 폭발해버리는 존재고."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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