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자전거 때문이었다. 집에 자전거가 생긴 이래로되는 일이 도통 없었다. 내가 연재하는 웹툰의 조회수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도 자전거를 집에 들인 직후였다. - P131
세상으로부터 미끄러진다는 느낌을더이상 받지 않기 위해 서로에게 뿌리를 내렸다. 어둠을 움켜쥐고 자라는 음지식물처럼. ‘우리‘라는 견고한 껍질 안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안전했다.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었고 모든것은 공유되었다. 가족보다도 가깝고 서로를 분신처럼 아꼈던우리. 우리의 공동생활은 삼 년 팔 개월 동안 아무 탈 없이 지속되었다. - P135
그는 내앞에서 자랑스러운 듯 떠들었다. "결국 플롯은 뻔하고, 핵심은 테크닉이야." 엄청난 비밀을 알려주려는 사람처럼 그는 내게 말했지만, 그건 굳이 에로 비디오를 수백 편 보지 않더라도알 수 있는 사실에 불과했다. - P141
. "혹시, 룸메이트 구한다는 분?" 안나가 처음 내 앞에 나타났을 때, 제일 먼저 내 시선이 머문 곳은 그녀의 눈이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본 것 중 가장 작은 눈. 안나가 살아온시간 동안 끊임없이 놀림거리가 되었을 그 눈. 안나는 나의 시선을 의식한 듯 눈길을 피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내가 안나와사이좋게 지낼 수 있으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 P145
얼굴 바로 아래 늘어져 있는 제이의 턱살을 훔쳐보았다. 턱살이 접힌 자리에 흥건하게 고여 있던 땀이 뚝 뚝 떨어져내렸다. 땀 탓에 제이가 입은 민소매 티셔츠는 군데군데 색이 짙어져 있었다. 육중한 가슴과 뱃살에 파묻힌 티셔츠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땀을 닦기 위해 제이가 팔을 들 때마다팔뚝 살이 덜렁거렸다. 보살 나셨네, 보살 나셨어. P와 안나를관통한 분노의 화살은 애꿎은 제이의 육체에 겨누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도대체, 왜 이 모양인가, 자책감이 밀려왔다. - P154
"내 자전거잖아." "그래그래 니 거지." "내 거라고." "그래, 틀림없이 니 거야." - P161
왠지 나는 이제 유머가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 P163
우리는 아쿠아리움의 수족관 사이를 거닐며 시간을 때우고있어. 약속 시간은 훨씬 전에 지났지만 당신의 전화가 오기를기다리면서. 이곳에 들어온 것은 할일이 없어서였어.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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