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진실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진실이 밝혀지는 게 두려운 자들은 누구일까?
국민이 끈기 있게 진상 규명을 위해 지치지 않고 행동한다면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그 시기를 앞당기고 진실에 한 발 더 다가서고 싶어 릴레이 강연회에 함께 한다.
세월호 3년상을 치르는 시민상주모임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도......
시민상주모임 릴레이 강연회 두번째 마당
길 위에서 희망을 묻다
강연: 이호진 프란치스코 (단원고, 고 이승현 군 아버지)
2014년 10월 13일 월요일 저녁 7시
전남대학교 용봉문화관 4층 강당

세월호의 진실에 다가서는 노력이 더해질 때, 제 아무리 감추려고 들어도 밝혀질 것이다.
5월 광주의 진실을 밝히는 일에 유족들이 제일 열심이었던 것처럼,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일에도 유족들은 목숨을 걸고 애쓴다.
우리도 그들과 함께 진실을 밝히는 일에 힘을 쏟고 행동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9월에 깁스를 풀고, 제일 뜻깊은 일은 세월호 릴레이 강연회 참석이었다.
도서관에 오는 이들과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한 이들에게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도 받았지만
대체 왜 그들은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았고, 정부는 왜 무엇을 감추려 하는지 진실에 접근하고 싶었다.

9월 15일, 한국일보 서화숙 선임기자의 강연에는 고, 이승현군 아버지와 누나 유민양도 함께 했었다.
서화숙씨 강연에서 들은 기억과 메모를 더듬어 간추리면...
사람들은 세월호에서 그냥 있으라는 지시에 따른 아이들이 잘못된 교육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유교사상으로 복종된 게 아니다.
대형사고에는 지휘부의 지시를 따르는 게 선진국 시민정신이라고 믿고 따랐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믿은 아이들에게
진짜 선진국을 만들어 주고, 가만히 있어도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
유족들의 요청사항은
1. 지식인이 발언할 기회가 있으면 시민을 상대로 설득해 달라.
2. 정권퇴진을 원하지 않는다. 진실규명을 통해 책임자를 처벌해달라.
3. 사건사고의 재발을 방지하라.
나쁜 놈들은 잘 살고 있는데 유족들이 홧병나서 죽으면 어쩌나?
반드시 진실을 밝혀서, 유족들이 일상에서 웃고 즐겁게 살 수 있게 하자.
따뜻함이 꼭 필요하지만 따뜻한 것으로 다 되진 않는다.
착한 시민 따뜻한 시민도 필요하지만, 우린 독한 시민이 되자!
대통령의 직무시간인데 밝히지 않는 7시간의 비밀은 무엇인가?
대통령이 얼마나 똑똑하냐가 아니라, 국민이 무섭게 감시해야 한다.
시민이 부릅뜨고 적극적으로 진실을 알리는 1인 미디어의 역할을 해야 한다.
왜 일베들이 뻔뻔하게 활동하는가?
일베들이 무서워서 피하지 말고, 대적하는 시민이 많아질 때 그들이 꼼짝 못한다.
유족들은 일베들의 자식들까지도 안전하게 되는 나라를 만들고자 한다.
일베의 호남비하 발언에 그냥 넘어가지 마라. 고소고발로 그들을 떨게 하라.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1/n을 하자.
그날 강연회 압권은 마지막 질문자의 발언이었다.
광주라고 민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 다만 학습된 효과가 있을 뿐이다.
세월호의 한 축은 무능한 정부다.
기자님은 독한시민론과 시민의 1인 미디어 역할을 얘기하는데, 무능한 언론에 대한 반성은 없다.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재발방지 등 국민의 알 권리를 언론에 위탁했는데, 언론은 그렇게 했는가?
시민에게 요구할 게 아니라, 언론이 달라져야 한다.
세월호의 진실과 남은 사람들의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끈질긴 탐사를 기획하고 있는가?
조목조목 차분하게 따져가며 질문한 그분에게 청중은 공감의 박수를 보냈고, 기자는 답했다.
언론의 잘못과 한계를 인정한다. 지금은 예전보다 출입기자조차 정보 접근이 어렵다.
1994년 서해페리호 사건 때도 과적이나 인원 속여 태우기 등 비리가 있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그땐 해경이 적극적으로 구조했는데, 이번엔 해경이 헬기와 어선의 접근금지 및 구조를 방해했다. 그때보다 좋은 것은 유족을 위한 트라우마센터를 만들게 됐다.
공.관은 점점 낙후했고, 시민은 너무나 진화되었다.
대부분 특종은 시민제보와 언론의 결합으로 나온다.
기자는 의문을 제기하고, 시민이 나서야 함을 발언한다...
기록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있어서 제외했고, 이 외에도 몇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메모하지 못했고 다 기억하지도 못했다.
서화숙 기자의 저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