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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단길로 간다 ㅣ 푸른숲 역사 동화 6
이현 지음, 백대승 그림, 전국초등사회교과 모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11월
평점 :
푸른숲 역사동화 시리즈는 참 좋다. 역사와 문학의 만남으로 동화의 참맛을 만끽하게 된다. 특히 열너댓 살의 등장인물들이 어쩜 그리 당차고 야무진지, 요즘엔 부모가 자녀를 너무 나약하게 키우는 거 아닌가 급반성하게 된다. 내가 클때만 해도 6학년이 되면 촌에서도 혼자 기차를 태워 친척을 찾아가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비로소 나이값을 인정해줬다. 촌놈의 상경기는 오랫동안 영웅담처럼 부풀려져서 어린 나를 달뜨게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인천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그 맛을 보지 못했다.
발해의 상경에서 금씨 상단의 외동딸로 곱게 자란 홍라는 열네 살이다. 요즘 말로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잘난체 하는 '중2병'의 나이다. 홍라는 어머니를 따라 일본교역길에 나섰다가 풍랑으로 어머니를 잃고 상단을 지키고 일으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떠맡게 된다. 열네 살이 빚더미를 떠안은 상단을 지키기 위해 장삿길에 나서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비록 호위무사 친샤와 별자리를 볼 줄 아는 열일곱 살 월보가 곁에서 돕는다 해도... 일본과 신라, 거란과 당나라 뿐 아니라 서역과 활발한 국제무역의 중심지였던 발해의 상단을 따라 교역로를 더듬어가는 여정은 만만찮다. 빚을 독촉하는 섭씨 아들 말갈 소년 쥬신타와 신라소년 비녕자가 함께가는 길이지만 물길과 수천리 육로를 달리는 건 막막하다. 더구나 시일이 촉박한 사장시 아들의 결혼식에 쓸 비단 5백필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는... 열네 살 홍라, 두 살 위의 쥬신타, 열일 곱 살의 월보와 더 어린 비녕자 등 십대의 이들이 헤쳐가야 할 길은 까마득하다. 그럼에도 씩씩하게 나아가는 그들을 따라가려면, 책 뒤에 나온 교역로를 먼저 살펴봐야 홍라의 비단길을 헤아릴 수 있다.
홍라는 고구려의 후예인 어머니 금기옥과 흑수 말갈 최고의 궁수인 아골타를 아버지로 둔 다문화가족이다. 당시에도 국제결혼이 있었고, 발해와 말갈은 말이 달랐지만 뜻을 통함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던 듯하다. 신라 또한 발해와 말갈인들과 소통함에는 통역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통역을 세우지 않아도 웬만한 의사소통은 할 수 있었던 듯하다. 아버지와의 만남으로 자신을 의탁할 수도 있었지만, 홍라는 무엇을 위해 상단을 지키고 일으키려는지 자신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아버지의 물음에 명확하게 답하지 못한다. 자신이 가야할 길을 따라 온갖 역경과 우여곡절을 거쳐 솔빈을 거쳐 등주에 이르고 청해진에서 장보고의 죽음으로 혼란한 틈에 위기에 처한다. 역사적 사실과 상단의 흥정과 협상은 위태로우면서도 흥미롭게 전개된다.
백대승 화가의 삽화는 이야기 전개와 복선을 짐작케하며 화려하고 멋진 분위기를 연출한다. 동화에서의 삽화는 비중있는 역할을 맡은 등장인물에 비길만큼 매력적이다.
역사적 기록이 많지 않은 발해는 잃어버린 우리민족의 역사다. 비록 중국이나 이웃나라의 기록에 의지해서라도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우리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서태지의 '발해를 꿈꾸며' 노래를 듣고 자란 세대는 오늘도 발해를 꿈꾼다. 이 책을 읽은 어린 독자들은 '돈이 최고'가 된 세상에서 자기 인생의 비단길을 찾은 홍라처럼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제 아무리 잘나고 똑똑한 사람이라도 함께 하는 이들의 수고와 도움이 없다면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을... 나를 돕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소중한 그 무엇을 희생시키는 것이 결코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친샤와 월보와 쥬신타와 비녕자에게도 그들의 길이 있음을... 홍라가 마음을 비우고 자기 짐을 내려놓고 나서, 스스로 어떤 길을 가야할지 깨달은 것처럼...
우리가 동화에서 흔히 발견하는 어려움도 척척 헤쳐나가 성공에 이르는 비현실적인 결말을 내세우지 않는다. 또한 등장인물이 영웅처럼 무엇이나 해결하지 못한 채 속수무책이라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내 인생의 비단길을 찾기까지 고통과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도 이해된다.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은 쥬신타와 월보와 비녕자, 친샤와 홍라처럼, 우리도 나아갈 길을 꿋꿋이 찾아나가자.
발해의 역사와 금씨상단 홍라의 삶과 교역의 어려움을 잘 버무려낸 수준높은 동화로 초등 고학년 이상 일독을 권한다.
발해 소녀 홍라가 살았던 그때 발해와 세계에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 책을 읽고 깊이 있는 역사공부를 시작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