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 숟가락 하나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개정판
현기영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주인공 별명이 '똥깅이'래서 무슨 뜻인가 궁금했는데, 바닷게를 이르는 제주도 방언이다. 똥깅이는 냇가에 뿔뿔 기어다니는 민물게로 축축한 흙 구멍에 살아 색깔이 칙칙하고 다리에 털이 숭숭숭 돋아, 생긴 모양이 흉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나무에서 떨어지며 돌에 부딪혀 머리에 난 상처가 꿰매지 않고 저절로 아물어, 마치 젖은 땅에 찍힌 말 발자국과 비슷해 '땜통'이란 별명을 갖게 된 주인공은 '똥깅이|'라고도 불렸다.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새로운 권력을 형성한 집단이 정치적 야욕의 제물로 삼은 제주 백성들. 한라산과 해변 사이의 중산간 지대 130여 개 노형마을이 불타고, 주민의 절반은 산으로 달아나 폭도라는 누명아래 사살되고, 그 가족이나 마소까지도 처형되는 대 살육'의 4.3사태를 체험한 입장에선 절대로 객관화가 불가능할 것이다. 작가는 정치적 언급은 피하고 똥깅이의 눈높이에 맞춘 추억의 조각들을 늘어놓는 것으로 4.3을 진술한다. 독자들이 4.3의 진실을 알아내기에 더 좋을 듯하다. 


사태의 방홧불에 타버린 식량과 계속되는 가뭄과 흉작으로 먹을 것에 굶주렸던 똥깅이는 '의붓 아이 밥먹듯 늘 배가 고팠다'라고 회상한다. 유격대 대장 이덕구의 시신을 예수의 십자가처럼 높이 들어올려 앞가슴에 꽂아놓은 '숟가락 하나'가 똥깅이의 기억에 강한 이미지로 남아 책 제목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지 않앰시냐. 그러니까 먹는 것이 제일로 중한 거다."라는 숟갈론으로 굶주림 속에서 자식을 먹이는 일이 최고의 선이었음을 고백한다.


이런 황폐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아이들의 의무는 무조건 자라나는 것이었고, 우리의 똥깅이도 태어나서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산자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다. 그 성장기에 자연과의 어울림을 통해 조화를 배우고, 친구들과 싸우며 양보와 타협을 배워나가며, 은밀함을 통해 성(性)에 눈 떠가는 아름다운 추억들~ 그 추억여행을 따라가며 배꼽을 잡기도, 가슴 아린 동감에 눈시울이 젖기도 한다. 


진짜의 이름은 출석부에만 있을 뿐, 기영이는 땜통이나 똥깅이로, 원경이는 웬깅이(왼손잡이), 준영이는 주넹이(지네), 입술 오무라든 모양이 닭의 미주알 같다고 닭똥고망으로, 이름과 상관없이 엉덩이를 '언데니'라고 발음해 붙은 언데니, 그 외에도 돌패기, 쇠똥이등 그 동무들과 어울리는 유년시절이 그려진다.  돼지를 잡으면 돼지오줌통으로 추구를 하고,  양쪽 콧구멍에서 누렁코가 동시에 기어 나와 윗입술에 닿으려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후루룩 소리와 함께 콧구멍 속으로 도로 빨려 들어가는 신기함. 보리 풍년엔 보리방귀, 고구마를 먹으면 뽀르륵 뽕뽕 줄방귀. 비 오는 날 볶은 콩을 먹으며 어머니가 들려주는 한라꿍 이야기는 일상의 평화와 안식을 느끼게 한다. 때론 제주도만의 특색이라 완전한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들의 성장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너무 재미있어 아무 곳이나 펼치고 읽어도 이해되는 소설이다. 


오랜 동안 아버지의 부재에서 오는 소년의 비애, 그 우울함 속에 문학에 빠져들고, 성깔이 치받쳐 오르면 저돌적 충동에 사로잡히는 혈족의 기질이 드러난다. 어느 날 갑자기 돌아와 한 식구가 된 아버지와의 적대감. 투쟁의 대상으로 삼았던 아버지가 살아서는 늘 실패했지만, 죽음만큼은 모닥불 꺼지듯 자연스럽게 가신 최후의 승리였음을 확인한다. 


이제 살아온 세월이 더 많은 중늙은이가 되어, 똥깅이를 따라 곡괭이로 하나씩 추억을 파헤치며 예전의 똥깅이가 지금의 자신을 낳았노라고...   세월을 살아오면서 생김까지도 아버지를 닮아, 이제는 죽음 앞에 바로 놓인 자신을 자연으로 데려가고자 귀향 연습을 하노라 고백하며 마친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의 치부를 가리고, 때론 과장하고픈 허영도 있을진대 자신의 어린시절을 진솔하게 그려낸 작가의 용기가 돋보인다. 우리도 유년의 추억을 두레박으로 퍼 올린다면 똥깅이의 추억 절반은 되지 않을까 싶다! 
 

아주 오래전(지금 고딩인 막내가 초등 2학년이던 때)에 내가 읽고 썼던 건데 뒤늦게 찾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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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04-19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땜통, 똥깅이, 웬깅이, 주넹이, 닭똥고망, 언데이... 부르는 이름이 재밌어요.
출판사 이름이나 배경 사건이 주는 무거움과 대비되서 더 그런것도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름은 그 자체로 시,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가장 짧은 시'인듯..^ ^

순오기 2011-04-19 20:12   좋아요 0 | URL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가장 짧은 시... 멋진 표현이네요.^^

2011-04-19 0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4-19 20:11   좋아요 0 | URL
^^

2011-04-20 0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1-04-19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주 오래전 읽은 책이네요.
막내가 초등2년에 쓴 글이라니 정말 대단해요!

순오기 2011-04-19 20:10   좋아요 0 | URL
앗~ 아이가 쓴 글로 오해의 소지가 있어 '내가' 읽고 썼다고 수정했어요.ㅋㅋ

꿈꾸는섬 2011-04-21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너무 좋지요. 저도 오래전에 읽었어요. 이 책은 남편이 먼저 읽고 읽으라고 주더라구요.ㅎㅎ

순오기 2011-05-03 03:34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을 보면 역사의 사실과 진실을 아는데 도움이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