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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뚝 2·3 - 다시 읽는 박완서 ㅣ 다시 읽는 한국문학 22
박완서 지음 / 맑은소리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지난 3월 25일 MBC스페셜에서 박완서 작가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아쉽게도 앞부분은 놓치고 10여분이 지나서 보게 되었지만, 현대문학 3월호의 박완서 추모 특집에 실린 이야기와 인터뷰도 나왔다. 노란 옷을 입고 노란 벽에 서서 찍은 박완서 님의 사진은 봄날이건만, 이제 그분은 우리 곁에서 숨쉬고 말하며 함께 지내지 못한다.
나는 오랫동안 박완서 작가의 팬이었다.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처녀작 <나목>부터 읽기 시작해 신문에 연재됐던 <휘청거리는 오후>나 <도시의 흉년>을 읽었고, 작품이 나올 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 들었다. 80년대 인천에서 유치원 근무할 때, 자모 중에 소설 쓰는 이(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우단의자가 있는 읍'으로 당선된 조혜경)가 있어, 여성동아 출신 작가들 모임에서 낸 여성문학 무크지를 알게 됐고 박완서 작가의 소식을 종종 전해 들었었다. 이런 인연으로 나혼자 친숙한 느낌을 갖고 좋아하는 작가다.
하동군에서 토지의 최참판댁을 복원하고 평사리문학상을 공모했는데, 2001년 11월 11일 평사리문학제에 박경리 선생과 함께 오신 작가를 뵈었다. 박완서 작가가 행사에 오는 줄 알았으면 책을 갖고 가 사인을 받았을 텐데... 그래도 같이 사진을 찍어서 행운이었다. 손을 들어 사진 찍기를 거절한 박경리 선생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포스였고, 아쉬워 하는 독서회원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 박완서 작가는 기념촬영에 응해주셨다. 포근하고 상냥한 작가의 마음이 감지되는 짧은 만남이었는데, 2011년 1월 22일에 돌아가신 작가를 이제는 만날 수 없다. 다시 뵐 수 없지만 수많은 작품을 남기고 떠난 작가를 추모하며, 박완서 다시 읽기로 나만의 작별의식을 치르는 중이다. 서가 한 자리에 모아 둔 그 분의 작품을 어루만지고 들춰보면서...
박완서 문학의 뿌리를 알려면 연작소설인 <엄마의 말뚝>1.2.3을 읽어야 한다. 작가는 5남매를 키워 막내까지 초등학교에 들어가 엄마 손길이 덜 가도 되니까, 자신이 겪은 6.25의 참혹함을 증언하고 싶은 욕구를 글로 풀게 되었다. 처녀작인 <나목>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분단의 비극을 무한반복으로 증언했기에, 전쟁을 겪지 않은 후세들이 몸서리치는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으니 참 다행한 일이다.
<엄마의 말뚝 1>은 개성 박적골에 살다가,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서울 현저동 상상꼭대기에 말뚝을 박은 가족사이고, <엄마의 말뚝 2>는 6.25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참혹하고 황폐한 삶과 오빠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엄마의 말뚝 3>은 아들을 잃은 상실감에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어머니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박완서 작품을 읽을 때마다 너무나 솔직한 진술에, 마치 내 속을 틀킨 것처럼 전율을 느낀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과 표현에.
"언제나 이 구질구질한 살림걱정 안 하고 살아보냐는 푸념을 나라고 안 하는 바는 아니다. 나만 없어봐라? 보다 더 자주 써먹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입술 끝에 달린 엄살일 뿐, 내 속셈은 어디까지나 내 살림의 종신집권(?)이다.(17쪽)
"충격 때문이 아니라 부끄러움과 졸음 때문이었다. 나 없는 동안에 일어난 재난의 당사자가 내 식구가 아니라 친정어머니라는 걸 알아들으면서 속으로 나는 얼마나 안도하고 기뻐했던가. 그 사실이 나를 심히 민망하고 부끄럽게 했지만 그런 죄책감조차 별로 절실하지도 못해 들입다 잠이 쏟아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나에게 힘이 되어 주려고 집에 남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 아이에겐 끝내 슬픔을 가장한 채 허겁지겁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마치 불륜의 쾌락처럼 단잠이었다.(27~28쪽)
이토록 섬뜩한 솔직함은 박완서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지만, 작가는 우리 안의 속물성과 허위의식을 탁월한 심리묘사로 여과없이 드러낸다. 소설이란게 작가의 체험과 상상의 글쓰기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황이 작가의 속내처럼 느껴져 친밀감을 더하게 된다.
6.25 전쟁의 공포와 환멸을 반복적으로 증언하는 건 일종의 트라우마로, 빨갱이냐 아니냐보다 더 지엄한 생존의 문제였다. 치욕스런 세월을 견디고 살아야 했던 작가는 그 당시를 증언하는 것으로 복수를 꿈꾸었다고 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겪은 6.25의 참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세상에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그 아들이 어떤 아들이라고 그 아들 목숨하고 바꾼 밥뎅이가 걸리지도 않고 이리 술술 넘어가노.... (78쪽)
어머니에게 아들이 살았느냐 죽었느냐가 문제지, 빨갱이냐 흰둥이냐는 문제가 아니었다.(80쪽)
"갸안 여자는 아니지만서두 병신이에요. 사람값에 못 가는 병신이니까 여자만도 못하죠. 병신자식은 평생 웬수죠."
어머니의 얼굴에 공포와 비굴이 차참하게 엇갈렸다. 어머니가 그렇게까지 강조할 것도 없이 오빠는 누가 보기에도 성한 사람은 아니었다.(88쪽)
어머니는 박적골을 떠나 현저동 상상꼭대기에 말뚝을 박았지만,6.25를 겪으며 당신 인생의 말뚝같았던 아들을 잃었다. 그리곤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희망을 버리지 않았건만, 끝내 당신 인생의 말뚝을 박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딸의 회상으로 그려낸 엄마의 말뚝은, 비로소 무덤에 묻히며 당신의 이름 석자를 새긴 말뚝으로 남았다. 고향을 떠나 대처에 살면서도 끝내 당신이 깃들일 고향을 꿈꾸었던 실향가족의 회한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언제나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강화도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는 이산과 실향가족의 아픔은, 반세기도 넘었건만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혹자는 분단을 겪은 그 세대들이 모두 돌아가시면 통일이 될거라는 얘기도 하지만, 우리에겐 멀고 먼 길이고 해결해야 할 민족의 과제다.
엄마의 말뚝 2.3과 말미에 실린 <황혼>은 환갑도 안된 시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우리집 노인네로 지칭하는 며느리와의 갈등이다. 젊은여자인 며느리는 한번도 어머니라 부르지 않고 아이가 태어나자 할머니라 부르며, 직접 말을 건네지 않고 아이를 통해 전달하는 방식으로 말을 했다. 이런 싸가지 없는 며느리 꼴을 보고 살아야 하는 늙은여자는 항상 명치 끝에 무언가 걸린거 같아 아들에게 만져보라거나, 스스로 쓸어내를 행동은 성욕을 품은 행동으로 오해받았다. 하하~ 시어머니를 성욕에 환장한 노인네로 몰아버리는 젊은여자는 자신도 머지않아 늙어간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늙은여자는 아들과 며느리의 불효에 앙갚음 하고 싶지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 다만 그들도 저희들의 표현대로 성욕에서 평생 놓여나지 못하는 늙은이가 되겠구나, 스스로 위로하는 것 뿐이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