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말나리를 아십니까?
미르, 소희, 바우~ 세 아이들의 성장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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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의 방 ㅣ 푸른도서관 41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너도 하늘말나리야> 후속편인 <소희의 방>을 읽으며 완전 감정이입이 되어 펑펑 울었다. ㅜㅜ
지난 여름, 8월 31일부터 36회에 걸쳐 푸른책들 카페에 연재할 때 빠짐없이 읽었으니, 두번째 읽는데도 펑펑 울어버리다니... 1회씩 올라오는 연재를 보는 것보다 책으로 읽어서 더 몰입이 되었던 듯하다.
1999년 초판을 찍은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50만부를 돌파했고, 2부 소희의 이야기 첫 부분인 '혼자만의 얼굴을 본 사람이 가져야 하는 아주 작은 예의'가, 6학년 2학기 읽기에 '소희의 일기장'이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대한민국 청소년이라면 <너도 하늘말나리야>의 '소희'를 모두 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달밭마을을 떠나 작은아버지댁으로 간 소희는 잘 살고 있을까? 할머니와 살면서 제 또래들보다 일찍 철들어버린 소희의 다음 소식이 늘 궁금했었다.
결핍과 상처로 많은 것을 억누른 채 조숙해진 아이, 부모 없이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았지만 누구보다 반듯하고 자존감이 강했던 소희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소희에게도 그 또래 아이들다운 욕망이 없었을까? (작가의 말)
오랫동안 작가의 이야기 방에서 궁글려지며 훌쩍 큰 소희가 반가웠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소희는 달밭마을을 떠나 서울 작은아버지댁으로 갔는데, 어느새 중학교 2학년 열다섯 살이 되었다. 미용실을 하는 작은엄마를 돕고 눈칫밥을 먹으며 얹혀 살던 소희는 드디어 친엄마와 살게 된다. 아~ 이제 소희는 고생 끝 행복 시작이구나! 흐뭇한 마음으로 소희의 행복을 지켜보고 싶었는데, 윤소희에서 정소희로 성을 바꿔 새가족과 사는 일도 만만치 않다.
소희와 엄마 사이에는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커다란 기둥 같은 게 놓여 있어, 무심코 한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는다. 열 살 우혁이는 공연히 심통을 부리며 소희를 미워한다. 다행이 붙임성 좋은 여덟 살 우진이는 언제나 소희를 웃게 하지만, 소희에게 친절하고 한없이 좋아 봬는 새아빠 키다리 아저씨는 어떤 분인지 궁금하다. 함께 살면 모두가 행복할 줄 알았는데,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성격 좋은 채경이가 짝꿍이 되어 이것저것 챙겨주고, 방과후 동아리 영감부의 지훈이 오빠와 사귀는 소희는 자기를 무시하는 듯한 재서에게도 마음이 끌리며 비로소 또래가 누리는 감정을 경험한다. 시험성적을 걱정하고 엄마가 사주는 고가의 명품 옷보다 또래들처럼 유행에 어울리는 옷을 사고 남친과 놀이동산에 가는 소희. 디졸브, 플레시백, 페이드아웃, 오버랩, 클리셰... 영화 카페의 디졸브에게 하나씩 배워가는 영화 용어는 소희의 심경을 대신해주기도 한다. 오직 영화 카페의 디졸브에게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하늘말나리가 진짜 소희다.
새 학교로 전학한 소희가 자신을 숨기려고 거짓말을 지어내며 마음 고생할 땐, 중학교 2학년 때 촌에서 인천으로 전학했던 내 경험과 맞닿아 눈물이 났고, 소희와 엄마가 쏟아내던 상처와 족쇄... 우혁이의 말에 상처받고 패잔병처럼 돌아온 소희에게 들려주던 고모의 말, 소희를 데리러 온 엄마의 고백과 모녀의 화해는 또 어찌나 눈물을 쏟게 하던지... 성미 급한 남편의 폭력에 죽을 힘을 다해 버텼을 소희 엄마에게도 감정이입이 됐다.
제목은 소희의 방이지만 '방'이 의미하는 자기만의 공간, 즉 내면의 행복으로 바꿔보면. 소희와 엄마는 행복한지 묻게 된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소희와 엄마의 함께 살기는 행복한가? 소희와 엄마는 서로에게 다가서기 위해 자기의 방에서 천천히 숨고르기를 해야 했다.
소희의 디카가 없어졌을 때 우진이를 의심하는 소희에게
"우리 애들은 그런 짓 안 해."
'우리 애들이라니. 그럼 나는 엄마의 뭐지? 그럼 지금, 우리 애들이 아닌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건가?'
소희는 여태껏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고, 아니 구걸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슴에 박혔던 말의 파편이 소희의 가슴을 조각냈다. (155~156쪽)
"너는 그동안 내 족쇄였어."
"내가 족쇄였다구요?"
"그래. 너를 두고 온 그 순간부터 너는 내 삶을 옥죄는 족쇄였어. 너를 잃듯이 또 우혁이, 우진이를 잃을까 봐 나는 죽은 듯이 살았어."
떨어져 산 내내 자신이 엄마 삶을 옥죄는 족쇄였다는 말은 소희를 향한 원망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엄마에게 한시도 잊을 수 없고 떨쳐낼 수 없는 존재였다는 고백이기도 한 것이다. 그 생각은 냉기로 가득 차 있던 소희의 마음을 저 밑바닥부터 서서히 데우기 시작했다.(207~209쪽)
"내가 어리석었어. 자식을 잊는 게 무슨 복수라구. 너를 두고 온 뒤 난 행복한 적이 없었어. 자식 떼어 놓고 와서 행복하면 벌을 받을 것 같아서 늘 마음을 움츠리며 살았고, 우혁이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어."
"나도 널 데려오는 게 겁났어. 이유야 어찌됐든 난 널 버렸으니까. 잊지 않고 살았다고 해서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널 데려온 다음부턴 다리 뻗고 잘 수 있었어. 널 보내고 다시 그 지옥 속으로 돌아갈 순 없어. 이젠 못 해. 함께 살자. 소희야. 부탁이야."
엄마가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소희는 한동안 바라보기만 하다 주춤주춤 다가가 엄마의 어깨를 끌어 안았다. 엄마가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웠다. 소희는 엄마 머리에 뺨을 묻고 말했다.
"그럴게요. 그럴게요." (237~239쪽)
중3 막내는 펑펑 울었다는 엄마에게 "누가 불쌍해서 울어? 소희는 새아빠가 부자라서 부러울 게 없잖아!" 하고 반문했는데, 나는 소희에게 때론 엄마에게 수시로 감정이입이 돼 버렸다. 두 번이나 심각하게 이혼을 생각했기에 소희 엄마의 고통도 온전히 이해되었다. 그래서 소희와 엄마에게 독자로서의 거리두기가 안되고 심하게 감정이입이 됐던 것!
"사람 사는 일도 그런 거 아닌가 싶다.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떨어져 산 세월이 얼만데 그렇게 금방 그 시간들을 뛰어넘을 수 있겠니. 휴대폰 약정 기간처럼 너와 네 엄마. 그리고 네 동생들도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채워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거 같아." (227쪽)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는 무엇이든 허투루 듣지 않는 거 같다. 핸드폰 약정기간을 이렇게 멋지게 적용하다니... 소희와 엄마, 소희와 동생들, 소희와 아저씨, 소희와 아저씨의 딸 리나 언니, 그리고 소희의 친구들 채경이와 지훈이, 재서까지 모두 사랑으로 엮어지기 위해선 핸드폰 약정기간처럼 채워야 할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하늘말나리 소희의 말을 들어주던 디졸브의 정체는 짐작대로였지만 ^^ 소희와 함께 울고 웃으며 포근하고 따뜻한 위로를 경험한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