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 시즈코상 - 가장 미워하고 가장 사랑했던 이름
사노 요코 지음, 윤성원 옮김 / 이레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로 감동을 준 사노 요코가 가장 미워하고 가장 사랑했던 사람, 친정 엄마와의 애증을 고백한 감동에세이다. 이 땅의 자식은 그 누구도 부모에게 잘 했다고 자신할 수 없으리라. 이 책을 보는 내내 반성과 후회와 더불어, 부모를 감당하지 않으려는 자식들의 이기심에 부끄럽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시부모와 친정 부모에 대한 감정의 폭이 다르고 깊이가 다르다는 것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에 대한 생각으로 하루에 많이 읽을 수 없었고, 일 주일이나 끼고 읽으며 참회하는 심정이었다.  

내 엄마는 어떤 엄마였고, 나는 어떤 엄마인가? 사노 요코의 고백을 읽으며 나를 대입시키고 비춰보게 된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독자의 감성을 움직인 작품이라면, 사노 요코의 <나의 엄마 시즈코상>은 작가의 경우를 솔직히 털어 놓으며, 부모를 섬기는 방법과 자신의 노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쩌며 자신의 치부 하나쯤 꽁꽁 묶어둔 채, 아무렇지 않은 척 살다가 솔직한 그녀의 고백에 마음의 빗장이 무장해제 당하는 느낌이다.   

사노 요코의 어머니 시즈코상은 분명 보통의 엄마들과 다른 독특한 분이었다. 요코는 어려서 엄마의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했고, 잘한 일에도 칭찬이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동생들을 낳아 키우면서도 엄마가 감당해야 할 일을 맏딸인 요코에게 맡겨버린다는 느낌도 들었다. 반면 아빠의 든든한 사랑과 지원을 받은 요코는, 엄마가 여자로서 질투하는 거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는 음식도 잘 만들고 살림을 정갈하게 하는 솜씨꾼이었고, 항상 화장을 하고 집에서나 외출해도 흐트러지지 않았다.사교성이 좋아 사람들과 교류하면 금세 그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돈으로 버렸다. 사랑 대신 돈을 지불했다.(30쪽)

내가 어머니를 사랑했더라면 지금처럼 돈을 쏟아붓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일반 병실에 어머니를 모셔 놓고도 양심의 가책 같은 건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이 비싼 실버타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38쪽)   
가족이란 비열한 집단이다. 타인을 가족처럼 샅샅이 알게 된다면 친구도 지인도 소멸할 것이다.(114쪽) 

 
요코는 어머니와 살가운 사이가 아니다. 세상엔 자기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자식들이 많다는 걸 알기까지, 본인만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많이 괴로워했다. 엄마와 함께 살만큼 애정이 없어 실버타운에 맡기고, 사랑 대신 돈으로 엄마를 버렸다고 자책한다. 엄마가 자신에게 못되게 굴었다는 걸, 나이 먹으면서 더욱 선명하게 기억하는 요코는, 엄마에 대한 애정이 생기지 않았다. 자식 일곱을 낳아 셋을 잃었고, 겨우 마흔 둘에 미망인이 된 어머니에게, 열아홉 살 맏딸은 의지하며 친구처럼 지낼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돈도 집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뜬 남편을 대신해 자식들을 벌어 먹이기 위해 얼마나 고달픈 인생이었으랴. 자식들이 알지 못하는 엄마의 고통과 외로움도 있었겠지... 

요코는 "나는 어머니를 어머니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싫어했다." (135쪽)고 말한다. 요코는 어머니를 만질수 없을만큼 싫어했다. 요코의 어머니가 냉정하고 지나치게 이기적인 면도 분명 있었다. 친정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돌아가시기까지 자주 찾지 않았고, 장애 동생들도 철저히 외면했다. 그 모든 짐을 천사표 이모가 맡았지만, 이모는 행복하게 감당했다. 사람 됨됨이와 그릇의 차이가 실감되는 이모였다. 가족이기에 관계를 끊거나 버릴 수 없는 숙명, 그 짐을 지고 가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요코의 어머니는 20년 동안 애지중지했던 자신의 집에서 며느리 손에 쫒겨났다. 세 명의 친딸도 도망쳤으니 며느리도 힘들 거라고만 짐작했던 딸들은 늦게서야 어머니가 그동안 늘어놓은 며느리의 험담이 사실이었다는 걸 알았다. 혜택만 누리고 의무를 저버린 요코의 어머니 시즈코상은 결국 자신도 버림을 받은 것이다. 사람 일은 정말 알 수 없다. 누구도 늙음을 피해 갈 수 없듯이 우리 모두 노인이 된다. 친정 부모나 시부모의 현재가 결국 나의 미래라는 것을 인정하면, 조금 더 넉넉하게 마음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내 친정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7년을 혼자 지내셨다. 고향으로 이사한 작은 언니가 가끔 엄마를 모셔가 1~2주 쯤 함께 있는 정도였다. 언니는 친정엄마인데도 새 반찬이 없으면 "얘, 왜 이렇게 입맛이 없다니?"말하는 엄마가 이쁘지 않다고 말했고, 2주 이상 계실 땐 솔직히 엄마가 귀찮아져서 모셔다 놓고 마음으로 죄를 짓는게 괴롭다며 울먹거렸다. 친정엄마도 그럴진대 하물며 시어머니를 이뻐할 며느리가 있겠느냐고도 했다. 더구나 어머니의 도움이 필요해 같이 살자고 했을 땐 거절하더니, 늙고 병든 시어머니를 모시게 된 며느리가 곱게 여길 수 없는 건 인지상정이라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친정엄마는 오빠집으로 들어가고 3개월이 지나 며느리와 소원해졌고, 결국 5개월만에 동생이 모셔갔다. 한 식구가 되려면 미움과 다툼의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한가 보다. 

예닐곱 살이었을까? 동생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  
"나는 멀리 시집갈거야~"

라는 내 말에, 자기도 멀리 시집간다고 해서
"너는 아들이니까 시집가는 게 아니고, 색시한테 장가 들어 엄마 아버지 모시고 사는 거야~" 
라고 했더니
"엉아(형아) 있는데~"
라는 말을 했다. 살면서 그 얘기만 나오면 약코가 죽었던 내 동생은 늘 형보다 잘하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102살까지 장수한 시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내 시어머니는, 당신은 할머니께 친절하고 상냥하게 못하는데 남들이 효부라고 하는게 싫다고 하셨다. 더구나 여기저기서 주는 효부상, 효행상을 부담스러워 하셨다. 시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시기 한 해 전까지 평생 며느리로만 살아서 같은 여자로 생각할 때 짠한 마음이 컷다. 큰동서는 시할머니와 시부모를 모시고 4대가 함께 20년 넘게 살았으니, 어찌 스트레스가 없었으며 힘든 일이 없었으랴! 어쩌면 시어머니와 큰동서의 암은 그렇게 산 세월이 준 병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시부모나 친정부모를 모시고 살지 않은 사람은, 함께 사는 그들에게 잘한다 잘못한다 탓할 자격이 없다고... 나는 말한다. 특히 시누이들이 나서서 간섭하고 잘잘못을 탓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 그래서 친정엄마의 일도 일체 침묵하고 지켜보는 중이다. 나 역시 혼자 남은 시아버지를 선뜻 모시고 살겠다 하지 않은 죄인이고, 친정엄마를 모셔와 살거 아니라면 어떤 말도 공염불이고 간섭이기 때문이다. 우리네 인생 자체가 애증을 먹고 사니까, 싸움도 해결도 당사자들이 풀어가며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야 진짜 가족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요코는 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많은 기억을 잃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노인이 되어서야 50년간 짓눌렀던 자책감에서 해방되었다. 누군가에게 용서받은 느낌, 신에게 용서받는거 보다 스스로에게 용서받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엄마가 치매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모녀간의 애증을 풀 기회도 없었을테니, 지금까지 살아 치매에 걸려줘서 고마운 엄마. 그 어머니를 만질 수도 없었던 요코가 어머니와 한 이불 속에서, 가르지 않은 젓가락처럼 꼭 붙어 자장가를 불러주며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은 화해의 절정이었다. 

노래하면서 나는 어머니의 하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예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않던 말이 튀어나왔다.
"미안해요, 엄마. 미안해요."
나는 거의 흐느끼다시피 말했다.
"전 못된 아이였어요. 미안해요."
어머니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던 것일까?
"나야말로 미안하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란다."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폭발했다.
"엄마, 치매에 걸려줘서 고마워요. 하느님, 어머니를 이렇게 만들어 주셔셔 고맙습니다."
수십 년 동안이나 내 안에서 응어리져 있던 혐오감이 빙산에 뜨거운 물을 부은 것처럼 녹았다. 끝없이 김이 솟아오르는 듯했다. 어머니는 평생분의 '고맙다'와 '미안하다'를 치매에 걸리고 나서야 양동이째 쏟아붓다시피 하며 비운 것일까?  (200~201쪽)

 


작고 노르끄레해진 어머니의 손, 그 작은 손으로 자식들 먹여 살리며 모든 걸 감당해야 했던 어머니를 버렸기 때문에, 결국 어머니에게 다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진솔한 고백이 마음을 울렸다. 사랑하지 않은 엄마라 짐으로만 여겼던 요코. 먼 길을 돌아 돌아 애증도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확인시킨 요코의 어머니는 2006년 8월 20일 아침 아홉 시 반, 93세에 돌아가셨다. 꿈꾸던대로 도쿄대 출신이었던 남편과 산 세월은 20년이었지만 존경했으며, 나머지 50년을 딸과 애증의 세월을 살다 간 시즈코상은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었다. 

내 젊은 날, 스무 살에 찾았던 인천영락원 입구에 써 있던 말을 기억하며, 늙은 부모님의 현재가 결국은 나의 미래라는 걸 깨닫는다.

나 늙어 노인되고,
노인 젊어 나였으니
나와 노인 따로 없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10-31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1 0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0-10-3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와 자식의 문제는, 핵가족 속의 핵폭탄인 것 같습니다.
갈수록 쉽지 않은 문제일 거라 생각합니다.
애증의 물결은 거리감을 더 넓게 하기 쉽겠지만, 그 거리를 당기는 일은... 쉽지 않은 문제라 생각합니다.

순오기 2010-11-01 01:57   좋아요 0 | URL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미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 넣지 않으려는 게 핵가족의 본심이죠.ㅜㅜ
자식이 버린다는 생각만 안한다면 노인들 스스로 시설로 가야되는 세상 아닌가 생각중...ㅠㅠ

2010-11-01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1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같은하늘 2010-11-01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기언니~~ 잘 지내셨어요? 와락~~ㅎㅎ
오랜만에 들려 읽는 첫번째 글이 마음은 짠하게 하지만 확 닿는 글이네요.
어여 마무리를 보고싶어요.^^

순오기 2010-11-01 17:22   좋아요 0 | URL
마음이 무거워서 마무리가 쉽지 않았어요.ㅜㅜ

마녀고양이 2010-11-01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저는 이 책 못 읽을거 같아요...
아무래도 죄지은게 많아서, 내내 울다가 지쳐 잠들까봐 무서워요. 에그.

순오기 2010-11-02 21:20   좋아요 0 | URL
책 자체가 슬프지는 않아요~ 재밌고 유쾌하게 읽히는데
자기 문제 때문에 무겁지요.

2010-11-02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0-11-02 21:20   좋아요 0 | URL
다들 이 책 읽으면 자기 문제로 안착하게 될 듯해요.
세상엔 애증의 관계인 모녀가 많은가 봅니다.^^

hnine 2010-11-02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이런 내용이군요.
음...읽으시면서, 그리고 리뷰 쓰시면서도 내내 마음이 좀, 무거우셨겠어요. 저는 이 리뷰 읽으면서도 벌써 마음이 가라앉는데요.

순오기 2010-11-02 21:21   좋아요 0 | URL
사적인 얘기를 더 넣었다가 너무 불편해서 삭제했어요.
대부분 오십보 백보일거라고 생각은 들지만...

2010-11-03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3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