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 - 권정생 선생님이 들려주는 6.25 전쟁 이야기 ㅣ 평화 발자국 1
권정생 지음, 이담 그림 / 보리 / 2007년 6월
1980년대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에서 인민군을 주인공으로 글을 쓴 권정생 선생님, 정말 대단하시다! 비록 생전에 보지 못하셨지만, 2007년 6월에 출판되어 독자들에게 평화를 꿈꾸게 한다면 조금은 위로가 되실까?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인 우리나라, 분단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케 하는 묵직한 메시지가 담겨, 읽고 나면 맘이 착찹해지는 책이다. 일제치하와 한국전쟁을 겪은 권정생 선생님은 유언에도 제발 싸우지 말라고 쓰셨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기에 일궈낸 6.15 공동성명이 무색하게 싸늘하게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생각하면 이 책을 청와대에 보내야 될 거 같다.
6.25때 강원도 치악산 골짜기에서 죽은 아홉 살 곰이와 인민군이었던 오푼돌이 아저씨의 이야기다. 진달래가 붉게 피어나던 봄날, 죽은 몸에서 깨어난 영혼들이 둥근 달을 쳐다보며 나누는 이야기는 섬짓하고 가슴이 저리다.
오푼돌이 아저씨의 고향은 평안도 대동강 근처여서 대동강물에서 헤엄치고 놀았다. 곰이는 겨울이 길고 눈이 많아 오는 함경도가 고향이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아름답고 정다운 곳이다.
고향집에 할머니만 두고 엄마 아빠와 피난길에 올랐다. 전쟁을 피해 달아났지만 전쟁이 그들을 따라 왔고, 살려고 떠났는데 비행기에서 떨어뜨린 폭탄에 맞았다.
아저씨는 누구랑 왜 전쟁을 했는지 아홉 살 곰이는 궁금하다.
왜 아저씨와 국군은 서로 총질을 하고, 왜 서로 죽여야 했는지...
인민을 위해 싸운 건데 죽은 건 모두가 가엾은 인민들 뿐이고, 국군들도 나라를 위해 싸웠는데 결국은 제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인민군과 국군,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모두가 단군의 자손으로 북쪽에 살고 남쪽에 살았다는 것만 다른데...
아저씨와 곰이는 왜 죽어야 했는지... 산골짜기에 죽어 넘어져 6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오푼돌이 아저씨의 가슴에선 피가 흘러내라고, 곰이의 뒷머리에는 축축한 핏덩이가 엉켜 있다.
권정생 선생님은 옛이야기 해님달님 이야기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미국과 소련을 상징하는 두 마리의 호랑이를 등장시킨다. 곰이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기 속의 오누이는 호랑이한테 속지 않고 서로 위하니까 하느님이 새동아줄을 내려주셨는데... 오푼돌이 아저씨와 곰이가 본 오누이는 할머니를 잡아 먹은 호랑이한테 속아, 서로 앞문과 뒤문을 열었다가 잡아 먹혔다.
'미국놈 믿지 말고 소년놈 속지 마라
일본놈 일어나니 조선 사람 조심하세'
60여년 전에 이런 노래가 불려졌다는데....
오푼돌이 아저씨와 곰이가 쓰러져 죽은 자리에는 마른 억새풀 사이로 앙상한 진달래 꽃이 애처롭게 피어났고, 치악산 골짜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 이따금 먼 곳에서 호랑이에게 잡혀간 오누이의 부르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평화 발자국' 시리즈 첫번째 책으로 나온 '곰이와 오푼돌이 아저씨'는 분단을 넘어 평화의 땅 일구는 씨앗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권정생 선생님 영전과 어린이에게 바친다는 윤구병 선생님의 말씀도 가슴에 남는다. 권정생 선생님 가신 그곳에는 전쟁도 없고 모두가 자유롭고 사랑하기를...
*그림을 그린 이담은 <폭죽소리>를 그렸다. 밀랍을 녹여 종이 지면에 바른 후 이를 정교하게 긁고 닦아 가며 그리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그의 부인 김근희는 팔만대장경 이야기를 담은 <바람따라 꽃잎따라>를 그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