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학교 작은도서관 8
이금이 지음, 원유미 그림 / 푸른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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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신자'
 아빠가 그럴 줄은 몰랐다. 고니가 태어나면서부터 느꼈던, 나 혼자만 따돌려진 느낌, 이제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다시 한번 마음속을 휘젓는다. 내 마음속에 텅 빈 운동장 하나가 생긴 것 같다. (9쪽) 

태몽으로 백조 꿈을 꾸어서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고니라고 불렀던 여동생이 태어나는 순간, 내 존재는 유행이 지난 게임 시디와 같은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12쪽)

터울이 긴 동생의 출생으로 배신감을 느끼는 정우의 속마음이 재밌게 펼쳐진다.^^ 태어난 동생과 엄마를 외가에 두고 집으로 돌아오던 정우와 아빠는 큰아버지의 심부름으로 고향에 들른다. 30년 전 떠나온 아빠의 고향은 송화리, 내겐 너무 익숙한 충청도 사투리라 마치 내 고향에 들른 것 같다. 예기치 못한 아빠 고향에서의 1박 2일이 정우의 속마음과 잘 버무려졌다. 

모두가 도시로 떠나고 시골에선 젊은이들이 없어 아기 울음도 들리지 않은지 오래다. 일제 강점기에 세워져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 작은아버지와 고모들이 다녔던 내 초등학교도 지금은 한 학년에 불과 20여명의 아이들만 남은 작은 학교가 되었다. 내가 50회로 졸업했으니 지금은 86회가 졸업했을까? 12년 전, 삼남매와 함께 찾은 내 모교는 그 옛날 엄청나게 컷던 추억 속의 학교가 아니었다. 어른의 눈에는 아주 작은 학교로 다가와 나혼자 콧날이 찡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연필삽화와 어우러진 이야기는 아이들보다는 시골에서 학교를 다닌 중년의 부모들이 더 감정이입 될 책이다.

아빠의 고향 방문으로 아빠의 유년기 추억에 동참하는 아들 정우는 모든 게 신기하다. 옛날엔 아이들로 복작댔던 아빠의 모교는 폐교되었다. 학교가 영원히 잠들어 버릴까봐 아침마다 종을 쳐서 학교를 깨우는 아이, 혼자서 축구를 하는 윤재를 지켜보던 정우는 자연스럽게 동무가 된다. 같이 공을 차고 조회를 서며 애국가를 부르는 녀석들은 교장선생님의 지루한 훈화도 재미있게 엮어낸다.  

항상 잘난 체하던 아빠가 공부를 잘하지 못했고 반장은 썰매를 주고 딱 한번 해봤다는 비화는, 배신한 아빠에게 복수하려는 정우 맘에 쏙 들었다. 교정의 살구나무에서 떨어져 팔이 부러졌던 아빠는 악동의 유년기를 여실히 증명했다. 아빠의 친구 경삼아저씨와 그 아들 윤재를 통해 이야기를 듣던 정우는, 은연중 아빠들이 그랬던 것처럼 꿀리지 않으려는 마음도 생긴다.

나무타기에 어설픈 도시 아이 정우는, 윤재처럼 살구나무에서 뛰어내렸다가 다리를 다친다. 하하하 그 아빠에 그 아들이다. 아빠의 재당숙 할아버지와 윤재 할아버지의 구수한 입담은 그 옛날 학교를 지었던 이야기에 이르면 가슴이 찡해진다. 폐교가 되었어도 운동장의 풀을 베고 돌보는 윤재 아빠 경삼아저씨, 학교가 잠들지 않도록 아침마다 깨우는 윤재와 수많은 추억을 가진 마을 사람들이 진짜 학교의 주인이다. 폐교를 누군가에게 빌려주어도 마을 사람들이 학교의 주인으로 살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마을 사람 모두가 힘을 모아 지은 학교였는데...

아빠와 친구들이 작업실로 학교를 빌리고 방학에는 아이들을 위해 캠프를 열면 좋겠다는 정우의 제안은, 학교를 지켜온 사람들의 꿈과 정우 부자의 꿈도 실현할 것 같다. 아이들이 없어 문닫는 학교가 많아지는 농촌 문제와 진정한 학교의 의미도 되새겨 보는 따뜻한 이야기다. 학교 다니기를 싫어했던 정우는 이제 학교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든단다.^^

학교를 지겨운 공부나 하러 다니는 데로 알고 있는 애들. 내가 바로 그런 아이다. 내 친구들도 그렇다. 학교에 가기 싫어 눈병이 나길 바라거나, 심지어 학교에 불이 나길 바라는 아이도 있다. 앞으로 10년도 넘게 더 다녀야 하는 학교와 나도 친해지고 싶다.(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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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0-03-0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댁엘 가면 신랑이 다니던 초등학교가 아직도 있어요. 올해엔 졸업생이 1명이어서 그 애가 모든 상이랑 장학금까지 휩쓸었다는 이야기를 설에 들었지요 ^^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 더 골짜기에 있는 초등학교 하나는 폐교가 돼서 예술가들이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제가 졸업한 초등학교는 서울 변두리였는데 지금도 있지요. 저 다닐때만해도 전교생이 4,500명 정도는 됐을테고 그 많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운동장에서 조회를 했는데 그만하면 참 큰 운동장이죠?
졸업하고 가본적은 없지만 지금도 가보면 크지 않을까 싶어요..
아닐까요.. 어려서 본 운동장이랑 지금 보는 운동장은 다를까요?
오랜만에 옛생각이 나네요 ^^

순오기 2010-03-03 17:21   좋아요 0 | URL
초등학교는 이제 추억으로 존재하는 학교겠지요.
무스탕님은 엄청 큰 학교에 다녔네요.^^
제 모교는 다행히 바다를 메우고 들어선 공단 덕분에 아파트도 많이 들어와서 폐교는 되지 않을 듯합니다.

꿈꾸는섬 2010-03-0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너무 보고 싶네요.

순오기 2010-03-03 23:04   좋아요 0 | URL
이거 사진 넣을려고 오후에 찍었는데 상가에 다녀오느라 아직 못 올렸네요.
우리가 곁에서 살면 빌려보고 좋을 텐데요.ㅋㅋ

카스피 2010-03-04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요즘 애들은 안나서 초등학생이 넘 없다고 하더군요.친구가 청계산 부근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서울임에도 현재 1학년이 11명 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순오기 2010-03-05 01:26   좋아요 0 | URL
참 큰일이에요~ 애들을 낳아 키우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국가가 양육 책임을 나눠야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