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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해요 ㅣ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평점 :
사과하는 꼭두각시
이 책을 읽으며 MB정부의 꼭두각시 총리가 생각났다. 그는 세종시를 비롯한 정부의 잘못에 허수아비처럼 사과하러 다니기 바쁘다. 말로는 국민여론을 수렴해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하지만 그 말에서 진정성을 찾기는 어렵다. 우리는 지난 2년 간 겪을만치 겪어서 이 정부가 사과는 잘하는, 혹은 사과'만' 잘하는 정부라는 걸 알고 있다.
죄로 가득찬 사회
이기호의 '사과는 잘해요'는 복지시설에서 벌어지는 온갖 행태의 죄악이 담겨 있다. 부족하고 모자란 이들을 수용한 시설에서 무차별 폭력과 강간이 행해지고, 자살방조 및 사체유기도 서슴치 않는다. 돈이라면 무슨 짓이든 다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부정과 비리가 다 들어 있다. 그래서 책을 읽고도 편치 않아 선뜻 리뷰를 쓸 수 없었다. 수용시설의 폭력과 성폭행을 고발했던 '도가니'처럼 가슴이 콱 막히는 참담함과 부끄러운 죄의식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보다는 가볍게 조롱하는 느낌이랄까, 소위 '풍자'라는 이름으로 대체되고 '우화'라는 이름을 가져다 써도 좋을 듯하다.
이 책은 시설의 죄를 고발하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세상에 만연한 '죄와 죄의식'을 파고 들었다.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이 없을테니 우리 모두의 문제로 느껴지는 까닭이다. 반드시 죄사함을 받아야 구원받는 종교적인 문제로도 생각됐다. 어쩌면 누구의 말이든 곧이 곧대로 믿는 시봉과 나(진만)처럼 사는 게 당연한데, 그런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사회가 잘못 된 거 아니냐는 반발심도 일었다. 모자란 이가 바보가 아니라 스스로 잘나고 똑똑한 이들이 제대로 살지 못하는 이 사회가 정말 바보다.
내 죄가 무엇인가?
수용자들은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다. 단순 노동과 복종을 위해 정체도 알 수 없는 알약을 먹었다. 시봉과 나는 날마다 복지사에게 불려가 두들겨 맞으며 동병상련의 우정으로 한몸처럼 되었다. 이들은 죄를 고백하라는 매타작에도 정말 자신들의 죄가 무엇인지 몰랐다. 매를 덜 맞기 위해 죄를 만들어 고백했고, 거짓으로 둘러 댄 죄를 실천해야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이런 아니러니라니! 죄를 고백하기 위해 죄를 만들고, 죄를 만들었으니 실천하는 어리석음을 이들은 옳다고 믿었다. 사람이 길들여지고 세뇌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체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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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 네 죄가 뭔지 아냐고?"
"예, 저는 제 죄가 뭔지 알아요. 제 죄는....... 맞아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는 거예요."
(24쪽)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
"나는 맞는 게 싫어."
"난, 정말 아무리 맞아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거든."
(25쪽)
"너희들은 이제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죄야.그러니, 이제 할 수 있는 사과가 뭐겠어?"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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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죄를 대신 사과할 수 있는가?
시봉과 나는 스스로 시설의 기둥이라 생각하며, 원생들의 죄를 대신 고백하는 반장으로 활동했다. 원생들의 죄를 고백하고 대신 매를 맞으며 자신들이 진짜 기둥 같은 존재감을 느꼈다. 이들은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일은 사과라고 믿으며 뿌듯했다. 그 후 시설의 문제가 드러나 원장과 총무과장, 복지사는 감옥에 가고 원생들을 자유를 얻었다.
집을 모르는 나는 시봉의 집에 얹혀 살고, 시봉의 동생 시연은 경마에 빠진 무책임한 남자와 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몸을 팔았다. 시봉과 나는 백수로 지내기 미안해 일자리를 찾지만 포장과 '내부고발자'라는 이력으로 할 일은 없었다. 시연의 남편 뿔테 안경 남자는 시봉과 내가 잘할 수 있는 '사과 대행'을 시켰다. 시봉과 나는 시설에서 배운 사과 기술로 밥을 벌기로 하지만 만만치 않았다. 이들은 죄인을 찾아 나서야 했다. 아니 멀쩡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 갔다. 한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은 죄가 아니라 죄의식이라는 걸 보여 준 정육점 아저씨, 정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 죽을 수 있는가?
시봉과 나는 뿔테 안경 남자가 시키는 대로 사람들의 죄를 대신 사과하러 다녔다. 그러나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사과받을 수 없다는 김밥집 아주머니는 '대신 죽을 수 있느냐' 고 말한다. 시봉과 나는 대신 죽을 수는 없기에 일을 무르려고 했으나 이미 시연의 남편이 돈을 받아 썼고, 결국 만취한 그가 대신 죽었다. 시봉은 감옥을 나온 복지사들에 잡혀 죽었고... 나는 비로소 온전한 자유인이 된다. 나를 시설에 맡긴 아버지를 찾아 나서 밝혀낸 진실은 완전 뒷통수를 치는 충격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자신의 말처럼 자기 죄를 스스로 감당했다. 죄와 죄의식을 피할 수 없는 나도 결국 아버지와 시봉의 죽음으로 구원된다. 아버지가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나 뿐이었고, 내가 사과해야 할 사람은 시봉 뿐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죽음으로 사과했고, 시봉은 "나한테 사과할 일 있으면 네가 대신 받으라."는 말처럼 사과 받을 수 없는 곳으로 갔다. 그래서 나는 시봉에게 할 사과를 내가 대신 받고 죄의식에서 자유롭기로 맘 먹었다. 아니 원장의 말처럼 '죄는 모른 척해야 잊혀지는 법'이니까 이제부터 죄를 모른 척하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죄와 죄의식에서 정말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 작품은 끝까지 질문에 명쾌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시연과 내가 병원을 도망쳐 나와 끝없이 집을 향해 가듯이, 그 답을 찾아가는 건 독자들의 몫이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고 어떤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며, 과연 그 죄의식에서 자유롭기 위해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작가가 대속의 종교를 들이밀며 해답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개인의 죄와 사회의 죄를 집요하게 묻는 것 같아 그저 웃어 넘기기에 씁쓸한 것은, 나도 죄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기호 작가는 내가 사는 빛고을 광주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중인데, 2010년 2월 어머니독서회 토론도서로도 선정했으니 나중에 작가초청 강연을 가져볼까 생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