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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해 마노아님한테 생일선물로 받은 책인데, 10월 후애님과의 경복궁 만남 상경 길에 읽었다.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아서 많은 이들이 노희경 극본의 드라마에 빠져들어도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곤 뒤늦게 왜 사람들이 노희경 드라마를 좋아하는지 이해하게 됐다.
우리집에선 막내 탄생에 얽힌 얘기가 자주 거론된다. 나는 결혼전부터 아이가 많으면 좋다고 생각했지만, 결혼생활에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보니까 셋째를 낳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신의 섭리로 우리에게 와야 될 생명이었는지, 둘째가 17개월이고 임신주기도 아닌데 덜컥 품게 되었다. 임신을 확인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아는지 뜬금없이 백설기가 먹고 싶어 이웃 아짐들하고 쌀 걷어서 떡을 해 먹었는데, 그게 입덧이었던 거다. 백설기를 먹은 덕분인지 삼남매 중에 가장 뽀얀 아이를 낳았다.^^
문제는 셋째 임신과 더불어 남편이 다니던 직장을 덜컥 그만두었고, 대책없이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두번째여서 좀 겁을 줄 양으로 "대책없이 직장을 덜컥 덜컥 그만두니, 어떻게 셋째를 낳겠느냐?"고 위협했었다. 그때 우리 남편은 진지하게 받아 들여 "어떻게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냐? 평생 책임질테니 그런 말은 하지도 말라."고 했었다. 아이들이 자라서 이런 비화를 들려줬더니 '셋째는 아빠가 살려낸 목숨'이라며 자주 입에 올리게 된 것이다.
어쩌면 상처가 될 얘기를 이렇게 대놓고 하냐고 큰딸이 퉁박을 주고, 막내도 같이 웃다가 "나 상처받았어."라고 하지만, 정말 아이를 지울 마음을 가졌다면 드러내놓고 우스개로 삼지 못할 테니까 내 양심에 걸리지는 않는다. "너는 우리에게 '덤'으로 온 선물이야! 엄마아빠가 이혼하지 않은 건, 셋째가 있기 때문이지."라는 말로 치하를 한다. 이혼만이 해결인 듯 감정이 극으로 치달을 때 '애를 셋이나 두고 이혼하는 건 미친짓'이라고 정신이 번쩍 들었으니까. 그땐 정말 치열하게 미워했는데, 지나고 보니 '미움도 사랑'이었다는 걸 알겠더라.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란 걸 깨달은 건 훨씬 이후의 일이었기에, 노희경이 주장하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노희경 탄생 비화를 읽으며 울컥 눈물나서 지하철 환승 구간을 지나 동대문까지 갔었다. 딸이라고 윗목에 밀어놓고 젖도 주지 않은 엄마는 할머니가 그랬다며 거짓말을 지어냈지만, 엄마의 죄의식을 이해하고 보듬은 노희경은 이미 상처를 극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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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 어머니의 나이는 서른한 살의 꽃다운 나이. 자식은 여섯에, 남편은 남만 못한 남자. 힘도 들었겠다. 자식이 짐스럽다 못해 원망도 스러웠겠다. 없었으면 천번 만번도 바랐겠다. 굳이 출생 즈음의 이야기는 안 해도 되는 걸 거짓말까지 해가며 나에게 해준 건, 죄의식이었겠다. 너무도 미안해서였겠다. 이후에, 나를 참 예뻐라 했으니, 그것으로 다 됐다.(3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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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건 이해하지 못할 일이 없어지고 투덜거리지 않게 된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상처받을까 봐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속성을, 자기 체험을 솔직히 털어놓으며 최선을 다해 사랑하라고 말하는 그녀가 예쁘다.
그녀의 드라마를 꼬박꼬박 챙겨 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그녀가 어떤 철학과 소신으로 드라마를 썼는지는 알겠다. ’드라마라고 무조건 재밌어야 하는가? 드라마를 왜 소설보다 한 수 아래로 생각하는가?’ 끊임없이 성찰하며 시청률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인간을 말하는 드라마를 만든 표민수씨와의 만남은 찰떡궁합인것 같다. 오십 중반 암으로 돌아가신 엄마를 끔찍이도 사랑했던 그녀는 드라마에서 그려내는 엄마로 그 한을 풀어내는 듯하다. 젊은날 가정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도 돌아가시기 전 수발을 들며 화해하는 모습은 진한 감동이었다.
우리네 인생이란 게 사랑하기에도 부족할진대, 우리는 미워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는가? 돌아보며 후회하고 반성하는 마음도 갖게 하는 책이었다. 2009년에 맘껏 사랑하지 않았다면 2010년엔 같은 후회를 하지 않도록 살자. 새해에는 더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을 일구는 노력을 해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