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장난>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
-
못된 장난 ㅣ 마음이 자라는 나무 22
브리기테 블로벨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시베리아와 우크라이나를 오가는 기차 안에서 태어난 아이, 우리의 주인공 스베트라나 올가 아이트마토바는 열네 살이다. 기차에서 출산을 도와준 두 여자의 이름이 스베트라나와 올가였기에 그 이름을 붙였다. "인생에는 자신이 직접 선택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고 말하는 스베트라나는 키 173센티에 O형의 활발하고 적극적인 학생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독일로 이주한 엄마와 새아빠의 보살핌을 받으며 실업학교에 다니던 스베트라나는, 똑똑하고 공부를 잘해서 한 명의 통학생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고 엘리트만 다니는 '에를렌호프 김나지움'으로 전학간다. 무한한 가능성과 행복을 꿈꾸며 전학 간 아이가 불과 4개월만에 킬 병원 정신과 병동에서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을 진술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에를렌호프 김나지움 아이들은 가정이 깨져 부모로부터 기숙사에 버려졌다고 생각한다.이혼으로 가정이 깨지면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야 할 아이들이 피해를 입는다. 사랑받거나 존중받지 못한 김나지움 아이들은 스베르타나를 괴롭히는 못된 장난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통학하하는 스베트라나를 질투하고, 자기들과 신분이 다른 가난한 이방인 주제에 공부를 잘하고 적응도 잘해서 왕따 시킨다. 명품만 걸치는 아이들은 스베트라나의 옷이 싸구려라고 대놓고 무시하고 모욕을 주며, 마치 투명인간을 대하듯 아무도 상대하지 않는다. 이방인이라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스베트라나는 아이들과 같은 소속감을 갖고자 집착한다. 그애들과 똑같은 명품을 걸치면 친구로 받아줄까 싶어 도둑질을 한다. 덜덜 떨며 처음 물건을 훔치던 스베트라나는 점점 대범해져 옷과 신발, 벨트, 운동화, 향수 등 필요한 모든 것을 훔친다.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헛간에 숨겨두고 등하굣길에 갈아 입는다.
나도 중학교 2학년 4월에 충청도 시골에서 인천으로 전학했기에, 스베트라나에게 완전 감정이입이 됐다. 전학 초기에 똑똑해 보이는 이*우에게 친구하자고 쪽지 보냈다 거절당했고, 짝꿍이던 68번 윤*실 외엔 다른 아이들의 친절을 받지 못했다. 교과서가 달라 배우지 않은 인수분해 숙제를 못했을 때, "애들은 뭐 알아서 하는 줄 아냐? 다들 베껴내는 거야!"라면서 복도에 나가 무릎 꿇게 했던 주*동 선생님은 지금도 용서하지 못한다. 나의 자존심이 한없이 뭉개져, 인정받기 위해선 공부를 잘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촌닭 같았던 내 눈엔 아이들이 다 잘나 보여 엄청 떨었던 5월 중간고사에, 비교적 좋은 성적을 얻어 비로소 아이들에게 존재감을 인정받았던 아픈 기억이 있다. 35년 전이라 지금 아이들보다는 순진했을 텐데도 전학생이 무리에 끼어들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저런 감상으로 스베트라나와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며 두 번이나 펑펑 울었다.
청소부의 딸이라는 걸 알아버린 김나지움 아이들은 사람으로선 도저히 할 수 없는 짓들을 저지른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극치를 보여주는 인터넷 카페에 올려진 스베트라나의 사진과 글, 삭제하거나 댓글을 달 수 없는 스베트라나가 도저히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수시로 보내는 비열하고 혐오스런 문자와 사이버 스토킹은 똑똑한 스베트라나의 정신을 병들게 한다. 먹을 수도 잠잘 수도 없는 스베트라나는 점점 마르고, 열성적이었던 공부에도 의욕을 잃는다. 수업시간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아이들의 못된 장난을 피하기 위해 쉬는 시간은 화장실로 숨어들거나, 식당에도 가지 않고 도서실로 도피한다.
똑똑하고 활달했던 스베트라나는 불과 4개월 만에, 아이들의 왕따와 사이버 스토킹에 몸과 영혼이 파괴된다. 스베트라나에게 유일하게 잘해주는 라비가 심각한 상황을 알고 돕겠다고 말했지만, 스베트라나는 이미 아무도 믿지 못할 만큼 지쳐버렸다. 사춘기 소녀의 자존심으로 라비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기대어 울 수 없었다. 아~ 라비의 말처럼 선생님께 모든 걸 다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면 좋겠다고 맘을 졸였다. 최진실씨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사이버 스토킹의 폐해를 알기에, 스베트라나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 뿐이라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
|
|
|
"무조건 자기편을 들어주는 사람, 우는 모습을 마음 놓고 보여주어도 괜찮은 사람이 없다면 누구든 끝장이다!"(267쪽) |
|
|
|
|
라비가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에게 모든 사실을 알렸지만, 스베트라는 마지막 도피처였던 헛간까지 아이들이 알아버렸기에 이미 끝내기로 작정한 후였다. 스베트라나는 도둑질을 고백하고 학교를 나와 철길에 몸을 눕힌다. 하지만 스베트라나의 죽음을 허락지 않고 목숨을 건져 낸 손길이 있었다. 아슬란 위츠귈은 달리는 기차에서 던져 버린 아들녀석의 비싼 가방을 찾으러 나왔다가 스베트라나를 구한다. 아슬란은 한 생명을 구한 알라신을 찬양하고, 스베트라나는 옷을 가다듬고 머리빗을 찾는다.
그 후 아무도 못된 장난을 하지 않는 안전한 곳, 킬 병원 정신병동에서 지난 일을 기록하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한다. 인생이란'앞으로'만 살 수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새기며, 엄마 아빠와 프랑스 여행길에 오른 행복한 마무리에 마음이 놓였다.
청소년 소설에도 죽음으로 끝내는 작품이 점점 많은데, 스베트라나가 죽지 않고 건강하게 본래의 삶으로 복귀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김나지움 아이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개과천선 했을까?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김나지움 아이들도 상처받은 아이들이니 따뜻하게 품어줘서 사랑을 느끼면 좋겠다. 이런 끔찍한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우리 청소년들이 이 책을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