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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 걸 ㅣ 푸른도서관 35
이은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난, 이 다음에 엄마처럼 안 살거야!"
"그래, 제발 엄마처럼 살지 마라!"
35년 전, 중학생이던 내가 엄마한테 했던 말을 중학생이 된 큰딸에게 들었었다. 처음 설전이 시작됐던 초등 4학년 겨울방학엔 "엄마는 내 맘을 몰라 줘!" 하면서 큰딸이 울었고, 강도가 점점 세졌던 중.고딩 땐 모녀가 같이 울었다. 사춘기와 처음 맞딱뜨린 모녀는 서로 감당이 안됐던 거다. 무엇이든 처음은 힘들다. 둘째는 아들이라 딸과는 다른 형태의 마찰이 있었고, 중2 막내와는 서로 큰소리 날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직까진 없없다. 착한 막내로 길들여진 이유도 있겠지만 이미 둘을 겪은 엄마의 여유도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자식을 여럿 키우면 엄마도 철이 드나 보다.^^
산뜻한 연두색 표지에 담긴 네 편의 단편을 읽으며, 내가 엄마한테 했던 말이나 우리 아이들이 내게 했던 말과 별반 다르지 않은 대화에 피시시 웃었다. 세대는 흘러도 원초적인 것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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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그깟 행복이 뭔데? 있으나마나한 존재감 없는 애로 사는 게 이제 지겨워. 봐, 난 그렇고 그런 평범한 애야. 공부? 잘하고 싶지만 아무리 해도 안 돼. 노래, 춤, 운동, 그림? 다 그저 그래. 특별한 정신세계가 있냐고? 개나 물어가라 그래. 꿈? 열정? 내가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몰라. 고딩이 된다고 달라질 것 없어. 지겨워! 외모라도 가꿔서 시시한 나한테서 벗어나고 싶어. 아무도 날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말이야. 그게 그렇게 잘못이야? (바비를 위하여,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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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에 올인하고 연예인 빠순이로 목숨 거는 십대들, 특목고를 목표하는 부모의 욕망이 버거운 모범생, 조기유학을 가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와 이방인이 되어버린 아이 등, 여중생들의 아프고 슬픈 현실과 심리를 잘 그려냈다. 우리 막내도 이 책을 읽으며 재밌게 공감했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빠져 있을 땐 잘 느끼지 못하지만, 한 발짝 떨어져 관찰자 입장이 되면 냉정하게 볼 수 있다. 여기 그려진 상황을 간접체험하며 질풍노도의 중학생들이 위로 받고, 자기들의 꿈과 길 찾기에 객관적 시각을 가지면 좋겠다.
지난 10월, 최규석 만화가(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 습지생태보고서, 대한민국 원주민, 100도C)를 초청했을 때, "난 책 같은 거 안봐도 다 알아, 이 우매한 것들, 돼지같은 것들아~" 이런 생각하지요? 라는 말로 소위 '중2병'의 엄청난 공감을 끌어냈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것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웃기는 짓이었는지 알게 됐고, 독서를 많이 하지 못했던 걸 후회한다고 말했다.
이 책은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나 질풍노도의 청소년, 특히 중2병의 여중생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