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책쟁이들 -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임종업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에 소개된 책쟁이들은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호의적인 평가를 줄 만하지만, 저자가 남자라 그랬는지 아직도 여자들이 잘난 척 나서는 게 못마땅한 사회적 시선 때문인지, 여자의 서재는 달랑 둘 뿐이다. 물론 부부로 소개된 세 쌍이 있으니 다섯이라고 한다면 그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조금 삐진 순오기의 별점은 넷 뿐이다.^^ 그래도 내겐 충분히 매력적이고 도움이 되었으며 저자인 임종업씨까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마을도서관을 꿈꾸는 순오기, 한국의 책쟁이들은 어떤 책을 어떻게 사모으고 관리하는지 궁금해서 서평단으로 신청해 받은 책이다. 그만큼 기대도 컷고 꼼꼼히 읽으며 연방 감탄하고, 아낌없이 밑줄 좍좍 그었다. 명색이 마을도서관이라면 좋은 책은 반드시 소장해야겠다고 불끈 다짐하며,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저자는 한국의 책쟁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사람을 찾기 위해 헌책방에 잠복했으며, 책쟁이들은 서재공개를 꺼리고 책 외엔 별다른 취미가 없다는 공통점을 얘기한다. 내가 보기엔 책쟁이들은 책을 모으기 위해 많은 부분의 희생을 기꺼이 감수했고, 어떤 형태로든 사회와 나누었으며, 결국은 집필과 저술활동으로 귀결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책에 미친, 아니 평생 책을 사랑한 28인의 책 연애사를 5부로 나누어 소개했다. 스스로 책만 읽는 바보라 했던 간서치 이덕무의 후예들이, 현대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장시간의 인터뷰와 사진으로 보여 준다. 이 책에 나온 그 어떤 사람의 서재도 한결 같이 책으로 포위된 이런 모습이다. 물론 여기 보여지는 사진은 새발의 피다.^^

 
 

1부 꿈꾸는 자들의 책. 첫무대를 만화 마니아 박지수씨로 시작한 건 신선했다. 오늘날 만화의 위상이 짐작되고 만화를 사랑하는 알라디너 덕분에 귀에 익은 만화가 이름이 여럿이라 좋았는데, 결정적으로 '최규석'을 거론하지 않아서 미워할거야! ㅜㅜ 두번째는 알라디너로 '나는 오늘도 유럽 출장 간다'와 '밑줄 긋는 여자'를 낸 수선님의 등장이다. 책이 너무 좋아 책으로 밥법이도 하고 싶었다는데, 글쟁이가 되니까 읽고 싶은 책을 맘대로 못 읽어서 밥벌이로 하지 않길 잘했다고 말한다. 생김처럼 야무진 사람 같다. 다음엔 SF 마니아 박상준씨, 아내는 빵을 굽고 남편은 저술가로 활동하는 춘천의 북카페 김종헌.이형숙부부, 장서가로 무지개 쫒는 60대 소년 이석범씨가 나온다. 

2부 사람을 읽다 책을 읽다. 젊은 나이에 화천 상서우체국을 운영하는 전작주의자 조희봉씨,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이윤기씨의 저서와 번역본까지 200여권을 독파하고, 800자 원고지 10장에 빼곡히 사연을 적어 결혼 주례로 모셨다. 이런 독자라면 결혼 주례 아니라 지옥까지 와 달라고 해도 거절 못하지 않겠는가! 이윤기씨는 당연히 주례를 섰고 이제는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책을 나누며 집착을 버리고 동두천 시인이 된 김경식.이주원부부. 생리를 일컫는 월경(月經)은 성경.불경.역경처럼 최고의 가치를 지닌 생명 경전으로, 폐경은 생명 창조의 임무를 완수한 완경이라 해야 한다는 이유명호 한의원장은 책쟁이가 아니고 글쟁이로 소개된 듯하다. 책 중간상으로 사멸될 책들을 살려내는 김창기씨. 책은 물건으로 펼쳐져 읽힐 때 비로소 책이 되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 다시 물건으로 책이 되려는 기다림으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책과 결혼한 장서가 박세록씨, 삼성맨으로 부기와 연애에 관한 책을 쓰려고 준비한다. 영화 2천편 봤지만 돈키호테 한 편만 못하다 젊은이들이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서에 필이 꽂혀 책이 주인이고 자신은 머슴이라며 책에 자리 내주고 골방을 차지한 화봉책박물관장 여승구씨.   

3부 배움의 즐거움. 독서동아리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목재상 김태석부부. 낮에 장사하고 밤에 공부하며 세상을 보는 눈, 정의와 진실이 무엇인지 알게 됐지만, 지금은 먹고 사느라 책잡기가 어렵단다. 전문가가 되려면 그 분야의 책 1천 권은 읽어야 한다며 직원 한 사람당 일년에 백만원의 책값을 지원하는 이메이션코리아 이정우 대표. 북랠리 행사와 독서동아리가 있는 회사, 8시 출근에 5시 퇴근하면서 회사에서 눈치 안보고 책을 읽어도 되는 회사. 인센티브 여행으로 해외에 보내주는 회사라니 부럽다 부러워! 재밌는 글쓰기와 책읽기를 가르치며 아침 독서 10분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윤태규 교장선생님, 아침 독서 10분 시간에 방문하면 그 누구라도 기다려야 하고, 학교도서실은 밤 9시까지 개방한다. 요즘 공공도서관도 6시면 칼퇴근인데... 평생 괴테를 제대로 읽히기 위해 가르치고 번역의 오류를 바로 잡는 독문학자 최두환 레기네 부부. 군인도 총만 쏘고 살 수 없다고, 책나눔 운동으로 세운 병영도서관. 2002년 국방비 16조 3,640억 중에 도서비는 0.006퍼센트란다. 보통 2년만 군인으로 있기 때문에 바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군대에서도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 100% 동감이다. 



4부 진리를 찾아서. 한 달 도서구입비로 5~60만원씩 쓴다는 논술강사 정윤식씨. 100번 이상 읽어 성경이 너덜너덜해진 토라 연구가 이기대씨. 컬렉션으로 초기 천주교 책들을 선택한 송명근씨는 책수집 요령을 다섯 가지로 요약했다. 

1.자신의 전공을 정하라.
2.시리즈를 구상하라.
3.공간을 생각하라.
4.중심을 잡아라.
5.수집 뒤를 생각하라

 나도 이분의 조언을 받아 들여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주제를 한가지 생각해 봤고, 현재 3,000권 이상이라 곧 넘쳐 날 경우를 대비해 대안을 생각해 봤다. 내가 꿈꾸는 명실상부한 마을도서관을 만드는데도 도움이 될 거 같다.

수입의 60%를 저축하고 나머지로 책을 샀고, 지금도 제자들과 고전강독을 즐기는 배상현 동국대 한문학과 명예교수. 1992년 교수직을 정년퇴임하면서 강남대에 기증한 '한실문고' 이상보 국민대 국문학과 명예교수는, 1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좁쌀책'에 대한 욕심은 못 버렸다고 한다. 교회는 섬기는 곳이라며, 강단 꽃꽂이도 안하고 한 분기에 300권씩 한해 1,200권의 신간을 들여오는 은광교회 김종대 목사 기념도서관. 지역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한 달에 한번씩 독서토론회도 모인다. 교회들이 이런 마인드로 운영돼야 하는데... 내가 80년대에 사서로 일했던 교회도 사회적 소명으로 이렇게 했었다. 농어촌에 도서도 보급하며 독서운동에 일찍 눈을 뜬 교회였다.^^



5부, 사회를 생각한다.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에 실패한 뒤 '우리들은 지지 않았다'는 시를 내보냈던 시인 피디 이도윤씨. 모아진 시집은 조태일 기념관으로 보내고, 스승 조태일 시인을 기리며 108일 금주한다니 놀랍다. 촛불집회가 있으면 직원들 퇴근도 일찍 시키고 현장에 나가는 두리미디어의 최용철 사장. 1989년 도서출판 가교를 차렸다가 3년만에 도산하고, 절치부심 1997년에 시작해 '청소년을 위한 역사교양 시리즈'로 성공했다. 시리즈 한 권을 낼 때마다 좋은 대학 하나 세운다는 생각으로 하단다. MB는 성공한 CEO가 아니라며, 그는 소비자를 상대로 사업을 한 적이 없고 정부와 관료만 상대하는 일을 했을 뿐이란다. 그에겐 국민이 없고 사원처럼 명령만 내리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말에 절대 공감이다.  



친일인명사전으로 집중조명 받는 상식 밖의 역사 바로 세우기,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 박한용씨, 1989년 친일문제연구가 임종국 선생 빈소에서 싹이 터 우여곡절을 겪으며 비로소 결실을 맺었다. 박원순 변호사가 장서를 기증했고 뜻있는 분들의 자료 기증을 기다리며, 전산입력된 인물정보 250만개를 바탕으로 친일총서를 펴낼 계획이란다. 우리 삼남매 중 한 녀석이라도 이런 곳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어사전을 모으는 국어학자 박형익씨, 조선총독부의 조선어사전으로 한국어사전을 만들었기에 한국어사전의 독립을 위해 자료를 모은다. 인문학은 학문의 학문으로, 상상력, 동착성, 상상력을 길러준다. 답이 하나이고 그것을 맞추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고 말한다. 간다라 불교 연구와 성서가 불교 영향을 받았음을 밝히는 연구 중이다. 대구 남평문씨의 '문중문고'를 지키는 문태갑씨. 문중에 전해온 '광거당 전수규약'을  보면, 독서와 학문을 하루도 폐하지 말 것, 책을 열람할 때 더럽히거나 찢지 말 것, 가벼이 빌려주지 말 것,7월 초에 한 차례 햇빛을 쬐어 좀과 습기를 막을 것지시했다.  

하루에 두세 명만 살펴보느라 꽤 여러날을 끼고 읽었다. 나도 훗날 이런 책쟁이 대열에 끼어보자고 언감생심 욕심을 내보는 행복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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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11-10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길어서 일단 올려두고 날새면 다시 팍~ 줄여야 겠다.ㅜㅜ

메르헨 2009-11-10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두가 안나서 펼치지 못하고 있는데..리뷰를 보니..보고 싶어졌어요.^^
리뷰만 봐도...저 글속에 저도 들어가고 싶네요.^^
요런 욕심은 좋은거죠?

날이 서늘하니 딱...가을 느낌입니다.
가을 만끽 하시길 바래요.^^

순오기 2009-11-10 11:30   좋아요 0 | URL
음, 나는 하루에 2~3명씩 읽었으니 꽤 여러날을 끼고 살았지만
그래서 행복한 독서였어요.^^

카스피 2009-11-10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좋은 리뷰시네요^^
저 책장들을 보니 웬만한 분들은 꿈도 꾸지 못할 서재시군요.아마도 모두 장서가 수천권씩은 되실것 같네요.
사실 우리 나라의 문제점은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외국만큼 도서관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죠.외국의 경우 책이 나오면 도서관에서 한 두권씩 구매를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예산 문제때문인지 도서관의 도서구매가 부족한 편이죠.

순오기 2009-11-10 11:33   좋아요 0 | URL
내용을 팍~ 줄여야지 생각했는데 좋은 리뷰라고 하시니 줄이기도 어렵네요.ㅋㅋ
우리나라 도서관은 예산이 적다는 말을 내걸고 살지만, 일찌감치 문닫아서 있는 책을 볼 시간도 많지 않지요. 물론 이것도 예산 때문이겠죠. 예전엔 밤 10시까지 했었는데, 인건비를 줄이느라 연장근무를 못하게 했겠죠.ㅜㅜ

메르헨 2009-11-10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전에 도서관 가서 요 책 빌려 왔어요.
서두 읽었는데 오...감이 좋네요.^^

순오기 2009-11-10 11:33   좋아요 0 | URL
볼만해요~ 책에 미쳐 사는 사람들, 하지만 아름다운 미침이죠.^^

다락방 2009-11-10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읽고 싶어졌어요. 특히 수선님이 나온다는 부분이요. 전 수선님의 팬이거든요. 그분의 책장도 볼 수 있을까요? 이거 땡스투에요, 순오기님!

순오기 2009-11-10 11:34   좋아요 0 | URL
수선님 서재는 전체 나오지 않고 책장 사이로 빼곰히 내민 얼굴에 한두칸만 보여요.^^

섬사이 2009-11-11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를 가나 이 책이 눈에 띄네요.
저는 속으로 '책을 덜어내야지, 덜어내야지..'하는데
순오기님 리뷰 읽으면서 잠깐동안 쌓아둘까? 하고 흔들렸어요. ^^

순오기 2009-11-11 22:39   좋아요 0 | URL
제가 리뷰를 길게 쓰면서도
정작 이들이 어떤 책을 사들이고 관리했는지는 소홀했네요.ㅜㅜ
쌓아두고 좋은 일하면 되지요.
우리집은 고정 대출자가 여럿이라 쌓아둬도 좋아요.^^

노이에자이트 2009-11-1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희봉 씨 덕에 이윤기<하늘의 문>을 읽게 되었지요.아주 좋았습니다.

순오기 2009-11-11 22:40   좋아요 0 | URL
아하~ 조희봉씨 덕에 하늘의 문을 읽으셨군요.
전작주의자는 정말 대단해요~~ 존경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