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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죽소리 ㅣ 길벗어린이 작가앨범 1
리혜선 지음, 이담 외 그림 / 길벗어린이 / 1996년 3월
평점 :
예전에 우리 농촌은 가난해서 먹고 살기도 힘들었다. 지주나 양반들은 넓은 토지를 가지고 농민을 부리고 살았지만, 정작 피땀 흘려 농작물을 가꾸는 소작농은 지주에게 바치고 나면 먹을 양식도 부족했다. 일제강점기엔 더 심했지만 그 이전에도 살길을 찾아 중국으로 떠나야 했던 조선인의 이야기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아는 초등 고학년이 보기에 좋을 책이다.
조선족이 분지를 태워 농토를 만드느라 연기가 가득했던 남강을 앤지(燃集)라 부르다 얜지(延吉)라고 글자만 바꾸었고, 두만강을 건너온 사람들이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세우고 한복을 입고 우리 말을 하면서 떳떳하게 살고 있는 곳이다. 이 책은 가난한 조선인이 씨앗을 구하기 위해 중국인에게 자식을 팔아야 했던 슬픈 이야기다. 아마도 부모 마음은 중국인 집에서 종살이 할지언정 배는 곯지 않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1884년 겨울, 왕씨는 조선족 부부에게 종자 한 되와 수수쌀 되를 주고 부억데기로 쓸 여자 아이를 거두었다. 여자 아이 이름은 '옥희'였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왕씨 부인은 '써우즈-말라빠진 아이'라고 불렀다. 옥희는 병든 할머니를 수발하고 제사상을 차렸지만, 제상에 음식이 없어져 훔쳐먹었다는 의심을 받았다. 왕씨 부인은 남편이 없는 사이 옥희를 시장에 팔려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상한 차림의 옥희를 구경만 할 뿐 사가지 않았다. 왕씨 부인은 다시 데려와 노망든 할머니 시중에 온갖 허드레 일을 해야만 했다. 개, 돼지, 닭 등 짐승도 돌봐야 했다. 쌍둥이 자매는 옥희를 마구 부려 먹었지만 제기를 잘 차는 옥희를 시샘했다.
옥희는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엄마가 날 버린건 아닐거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이웃의 밍밍이라는 사내 녀석의 친절에 위로를 받으며 제기(위모첼) 차기를 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마, 쩨꺼'라는 두 마디로 뜻은 통했다. 어느 날 냇가에서 빨래를 하다 진주를 발견했고 빨래함지에 담아 온 진주를 팔아 많은 돈을 받은 왕씨 부인은 옥희에게도 옷 한 벌을 해주었다. 하지만 쌍둥이 자매는 또 모함을 꾸며 결국 시장에 팔게 했다. 옥희를 사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다시 왕씨 집으로 돌아온다. 옥희는 밍밍과 차츰 말이 통하게 되고 연날리기를 하며 엄마 아빠와 헤어진 사연을 들려주었다.
설이 되어 중국인들이 즐기는 폭죽소리를 들으며 옥희는 조선에서 했던 쥐불놀이를 생각한다. 쌍둥이 자매는 쥐불놀이가 재밌다며 같이 놀았다. 더러워진 아이들을 보고 왕씨 부인은 매질하려 했지만, 쌍둥이 자매는 처음으로 옥희를 편들어 주었다. 그날 밤 옥희는 자기를 편들어 준 쌍둥이 자매가 고마워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옥희는 열다섯 살 예쁘고 바느질 솜씨 좋은 처녀로 자랐다. 왕씨 부부는 옥희를 내세워 선을 보이고 자기 딸을 부잣집에 시집 보냈다. 옥희는 밍밍한테 5킬로 떨어진 곳에서 옥희와 같은 옷을 입은 화전민들이 있다는 걸 듣고 부모를 찾아 떠난다. 십리만 가면 내 부모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어디에 살든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만나게 될 것이다. 연변 조선족의 슬픈 이야기를 조선족 작가가 잘 그려냈다. 제목은 폭죽소리지만 '쥐불놀이'라고 했어도 좋았을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