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정혜윤씨가 내로라 하는 독서가들을 만나 그들과 자신이 경험한 책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다. 덕분에 진정한 독서가들이 만난 훌륭한 책을 알아가는 것도 즐거웠다. 대부분 내가 못 읽은 책들이라 기죽기도 했지만, 이렇게 하나씩 알아가며 찾아 읽는 것 또한 독서의 맛이 아니겠는가 위로하며 오늘도 독서중!^^ 책 순서에 관계없이 내 맘대로 골라 읽었다.

진중권은 어려서 읽은 마크 트웨인의 짓궃은 유머 감각을 배우게 되어 지금도 짓궃은 장난을 잘 친다고 한다.^^ 베를린 자유대학 시절, 개가식 도서관에서 아무 책이나 펼쳐보면 다른 책의 인용으로 이뤄진 게 책이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독창성이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자기 식으로 배치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고. 정말 그렇다, 내가 읽은 책도 소설이나 에세이 등 장르를 막론하고 다른 책을 인용하지 않은 걸 못 본거 같다. 진중권은 발터 벤야민의 ’베를린의 어린 시절’과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등을 꼽았다.

공지영은 살기 위해 책을 읽었다는 말에 그녀의 삶을 아는 독자라면 공감할 듯. 안셀름 그륀 신부의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는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한다. 앤소니 드 멜로 신부의 ’깨어나십시오’도 그녀가 꼽는 책이다. 공지영은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서 딸 위녕이 읽으면 좋은 책을 줄줄이 소개했기 때문에, 이미 다 아는 듯이 생각됐다.

’엄마를 부탁해’로 나를 울렸던 신경숙, 그녀는 외딴방에서 자신의 삶을 풀어낸 것처럼 공장에서 일하며 산업체 야간학교를 다녔다. 어릴때 책을 읽으면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지 않아서 더욱 책 속에 빠졌고, 고등학교에서 만난 국어선생님이 소설 써 보라는 말씀에 고무되어 소설가가 되었다고 한다. 공장에서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필사했다니 놀랍다. 바슐라르의 ’몽상의 시학’에 매료되었고, 자신을 낮추고 싶을 땐 ’스콧 니어링 평전’을 읽는다고 한다.

우생순의 감독 임순례는 고2때 꼴등에서 두번째인 자기 성적을 보고 놀라서 학교를 그만두고, 2년간 빈둥거리며 오직 책만 읽었다고 한다. 그러다 퍼뜩 정신이 나서 고졸 자격 검정고시를 보고 프랑스 영화와 문학에 빠져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이 되기 위해서가 아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따르다 보니 영화감독이 되었다. 어려운 형편에도 ’알았다’ 한마디로 모든 걸 감당해준 오빠가 있었기에 유학을 떠난 것도 부럽다. 공선옥의 소설을 좋아해 그녀 가까이 곡성으로 이사가 살기도 했고,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과 ’동행’을 좋아했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온 이진경, 우리 아들이 가고 싶은 학교와 학과라 관심이 갔다. 그는 어려선 읽을 책이 없었고 중2때 친구 집에 가서 읽었다고 한다. 그는 카프카를 좋아했고, 감옥에서 김현의 ’시칠리아의 암소’를 통해 푸코를 알았단다. 우리 아들과 다르게 수학을 좋아하고 잘했다는데, 수능 보기 한 달 전 팔을 베고 잠들어 글씨를 쓸 수가 없어 시험을 망쳐 경제학과를 못가고 사회학과를 갔단다. 헐~ 대체 공부를 얼마나 잘했으면 망쳤는데도 서울대를 간 거야? 수학책을 혼자 풀어보고 대학에서도 수학 강의를 듣고 ’수학의 몽상’이라는 책을 썼단다. 그가 썼다는 ’철학과 굴뚝청소부’도 궁금하다. 

역사소설을 주로 쓰는 김탁환은 결핵에 걸린 열세 살에 ’절대로 뛰면 안된다’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축구선수의 꿈을 접고 책읽는 소년이 되었다. 중학교 1학년 백일장에 나가 일등을 하면서 글 잘쓰는 아이가 되었지만 중학교때는 독서보다 시쓰기에 주력했다. 장정일의 시를 열심히 읽었고 비평가가 되고 싶었단다. 현실이 지리멸렬해 역사소설을 쓴다는 그도, 미친듯이 책을 읽는 사람이기에 글쟁이가 되었다는 걸 확인한 독서였다.

정이현이 어려서 읽었다는 에이브 전집 88권은 우리집에도 있는 책이다. 우리 삼남매도 에이브와 더불어 자랐다.^^ 정이현은 존 치버의 ’다리 위의 천사’를 좋아하고, 은희경은 소설을 쓸때마다 책을 사는 거로 시작하는데 쿤데라의 ’느림’을 읽으며 자신 안에 있는 이야기를 소설로 묶어낼 단서를 찾았다고 한다. 변영주감독은 어려서부터 성애를 표현한 책들을 읽었고, 나쏘메 소세키와 박완서 소설을 읽으며 현대사와 아버지 세대를 이해하게 됐다고 한다. 문소리는 초등학교때 부산에서 야반도주한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와서도 공부 못한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공부해 1등을 유지했단다. 선생님이 되려고 사범대에 갔으나 연극에 끌려 배우가 되었고,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좋아한다고. 신생 러시아의 운명에 따라 박노자의 인생도 달라졌는데 한국어를 전공하고 한국인 여자와 결혼한 귀화 한국인으로 동양고전을 한자로 읽은 게 행복하단다. 장자를 제일 좋아했고 지금도 읽고 싶은 책이란다. 

독서가들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 책을 얘기하는 것보다 정혜윤의 책 이야기가 비중이 많아서 좀 헷갈리기도 했지만, 누구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미친듯이 책을 읽으면 길이 보인다는 걸 발견했다. 

*정혜윤의 첫번째 책인 '침대와 책'도 봐야겠다 생각했는데, 세번째 책 '런던을 속삭여 줄게'도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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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09-10-15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책이군요. 좋아하는 작가나 감독들의 독서 이야기, 흥미로워요.ㅎㅎ
이진경의 <철학과 굴뚝청소부>는 철학의 전반을 제대로 정리한 책이 아닐까 싶어요. 똑똑한만큼 책도 쉽게 잘 쓰시죠.^^

순오기 2009-10-16 09:32   좋아요 0 | URL
작년에 이 책 사서 부산에서 이금이작가 만났을 때 선물하고 여직 못 봐서 중학교도서실에서 빌려왔는데 다시 살까 생각중이에요.^^
철학고 굴뚝청소부~ 아이들과 같이 보면 좋을 거 같아요. 세상엔 정말 똑똑한 사람도 많아요.^^

qualia 2009-10-15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순오기 님이 정말 존경스러워요. 정말 엄청난 열정이십니다. 부럽습니다.

순오기 2009-10-16 09:33   좋아요 0 | URL
흐흐~ 존경씩이나요? 21일까지 빛고을독서마라톤 참여하느라 열심을 내고 있어요.^^

같은하늘 2009-10-16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바쁘신 분들이 책은 더욱 많이 읽으시는것 같아요.^^
이 책을 보니 <내 인생을 바꾼 한권의 책>이 생각나는군요.

순오기 2009-10-16 09:34   좋아요 0 | URL
이 책 5일에 걸쳐 한두 명씩 읽었어요.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우리도 꼽아보면 있겠죠~ ^^

마노아 2009-10-16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자세한 소개 고마워요. 책 제목에 이런 의미가 있었군요. 임순례 감독이 제일 인상적이에요.

순오기 2009-10-16 10:19   좋아요 0 | URL
5일에 걸쳐 읽어서 마라톤에 500자씩 남기다 보니 꼼꼼하게 적게 됐어요.^^

2009-10-17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9-10-18 02:49   좋아요 0 | URL
^^감사

노이에자이트 2009-10-17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순례씨는 개고기 식용반대운동 등 생명사랑운동, 채식운동에 열심이던데 그녀가 이런 운동할 때 자양분이 된 책을 알았으면 더 좋겠어요.

순오기 2009-10-18 02:55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 임순례씨가 '우생순' 만들기 직전까지 유기견을 챙겨주고 돌봐주는 개들의 어머니 생활을 하다가 주민들의 항의도 받았다고 나오더군요.
어떻게 인간은 개의 친구가 되었는가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면서 수의사 해리엇의 책과 제일구달의 책들, 희망의 이유, 내가 사랑한 침팬지, 데이빗 로로우의 월든, 스톳 니어링 부부의 책을 다 읽었는데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을 읽고 채식을 하게 되었다고 126쪽에 나옵니다. 답이 되었을까요?^^

노이에자이트 2009-10-18 10:16   좋아요 0 | URL
오...답이 되었습니다.우리모두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착한 사람이 됩시다!

순오기 2009-10-19 10:12   좋아요 0 | URL
예~
'아멘'이라고 할뻔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