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서야, 겁내지 마! 네버랜드 꾸러기 문고 30
황선미 지음, 조민경 그림 / 시공주니어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967년 3월, 가슴에 콧수건을 달고 입학했던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언니가 3학년이라 당연히 언니 손을 잡고 학교에 다녔다. 당시는 한 마을 아이들끼리 같은 반을 했기에 하굣길은 삼삼오오 떼지어 돌아왔다. 쭉 뻗은 신작로를 지나 구불구불 마을 길에 들어서면, 나무 아래서 공기놀이와 고무줄놀이를 하기도 했다. 겨울엔 얼어붙은 논바닥에서 얼음도 탔고, 장마철엔 불어난 냇물에서 송사리를 잡는다고 옷을 버리기도 했다.

추억을 되돌려 봐도 등하교길이 항상 즐거운 건 아니었으니, 우리 동네로 들어서려면 거쳐야 하는 '지랄쟁이네' 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을 지나려면 손바닥에 땀이 배도록 긴장했다. 그집의 아들녀석이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막대기에 죽은 쥐나 뱀을 꿰어 쫒아왔고, 똥을 퍼서 뿌리며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내 위 언니 오빠도 그 곳을 지날 때마다 녀석들이 안보이면 후닥닥 달렸다고 했다. 이제는 나이가  50도 훨씬 넘었지만, 동문회에서 만나면 지금도 짖궃고 못됐다고 언니가 말해줬다. 고향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지랄쟁이네' 얘기를 하는 걸 보면, 근방에선 악동으로 소문이 자자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렇게 학교길이 겁나던 '지랄쟁이네'가 있었기에, 혼자서 학교 가는 걸 겁내는 은서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 


초등학교 입학한 다음날부터 혼자서 학교를 가야 하는 은서는 겁나는 게 너무 많다. 은행나무집 멍멍이도 황씨아저씨네 황소와 꼬꼬닭 때문에 학교에 갈 수가 없다. 게다가 기와집의 바보 아저씨는 들창으로 지켜보다가 종이새를 날리는데 그건 더 겁난다. 어린시절 별 것 아닌 거에 두려움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이야기다. 이제는 배시시 미소짓지만 그땐 어떤 것보다도 두려웠단 말이지.^^  은서가 무엇을 겁냈는지 친절하게 약도를 그려넣은 목차로 은서의 학교길을 알려준다. 

 


  
황소와 꼬다기에 겁을 내는 은서는, 그 길을 안 지나려고 채소밭을 가로질러도 가보지만  바보 아저씨의 들창문은 피할 수가 없다. 겁을 내던 은서는 어느 날 멋진 해결책을 찾아낸다.

 


은서는 친구 상민이의 로봇가면과 요술지팡이를 200원에 사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나타났다. 하지만 황소는 외양간에 들어가 있어 폼잡지 못하고, 깡패 꼬다기(암탉)만 혼내준다. 겁이 난 꼬다기는 은행나무집 멍멍이가 있는 대문으로 뛰어 들었다가 변을 당했다. 은서는 자기 때문에 암탉이 죽었다는 죄의식에 혹독하게 앓느라 사흘이나 결석했다.  

다음 날 학교가는 길, 어미 잃은 병아리에게 미안해 보리쌀을 가져다 주고 앞으로 잘 돌봐주겠다고 다짐하는 은서가 사랑스럽다. 

  
방 벽지를 뜯어 종이학을 접어 날렸던 바보  아저씨가 장가를 가게 되었다는 결말은 작가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땐 마을마다 모자라는 사람이 하나쯤은 꼭 있었고, 그런 이들은 보통 골방 신세을 면치 못했으니 안타까운 풍경이었다. 부모가 먼저 공감하고 아이들에게 엄마의 어린시절과 더불어 들려주면 좋을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길에 무엇이 겁나는지도 알아보고, 어른이 보기엔 하찮은 것에 겁내는 아이 마음을 인정하고 위로한다. 황선미 작가의 경험이 배어있는 듯, 아이들 마음을 잘 짚어낸 따뜻한 동화다. ^^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09-08-07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선미 작가 책이군요. 좋아하는 작가^*^
보림이는 강아지를 그렇게 무서워 했어요. 집에 키우자고 하면서도 어찌나 무서워 하던지...
은서가 무장을 하고 닭 혼내주는 장면 상상하느라 웃다가 사흘동안 앓았다는 그 맘 생각하니 마음이 짠 했습니다.

순오기 2009-08-08 10:22   좋아요 0 | URL
우리애들도 강아지를 무서워했는데 키우니까 안 무서워하더라고요.
하지만 돌보는 게 힘들어서...
엄청나게 꼬다기를 혼냈는데 그만~~ ㅜㅜ

같은하늘 2009-08-07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 시절이 그려지는 책인걸요~~^^

순오기 2009-08-08 10:23   좋아요 0 | URL
님도 학교길에 무서운 게 있었나요?^^

꿈꾸는섬 2009-08-08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들 강이지 엄청 좋아하면서도 막상 실물 앞에선 무서워서 꼼짝을 못합니다. 아이들의 서정이 담겨 있는 예쁜 책이네요.

순오기 2009-08-08 10:23   좋아요 0 | URL
무서워하지만 키우니까 무섬을 안 타더라고요.
예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