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시험을 앞두고 중3 아들을 시청앞으로....

기말시험을 앞두고 촛불시위에 가고 싶어한 아들녀석을 서울까지 보내면서, 반드시 다녀와서 성실한 후기를 쓰기로 했는데...... 이 글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많이도 흘렀고, 큰소리도 났었다지 아마~ ㅜㅜ 그래도 어제 담임샘과 반 전체가 강천사로 1박 2일 캠프를 가기 전에 마무리 했으니 그도 다행이다!^^

----------여기서부터 아들녀석이 남긴 기록


  시험을 이틀 앞두고 나는 서울에 가서 촛불시위를 했다. 주위 친구들은 미친 XX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기 싫은 시험공부를 하느니 차라리 역사의 현장에 가서 몸소 체험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 혼자 간 것은 아니고 누나와 함께 갔다.


  7월 5일 토요일, 학교에서 돌아와 채비를 하고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탔다. 진보신당에서 서울로 가는데 우리도 함께 가기로 해 집결장소로 가야했다. 약간 사소한 문제가 있긴 했지만(누나를 너무 믿는 게 아니었다.) 그럭저럭 집결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쭉 갔다. 가는 동안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놀았고 나와 누나는 그냥 잠이나 잤다. 5시 30분쯤에 서울은 비가 와 서울에서는 저녁을 먹기 힘들다고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냥 버스 옆에서 돗자리 같은 거 깔고 밥, 된장국, 김치, 콩나물, 장조림 등을 먹은 것이다. 별 불만 없이 식사를 마치고 1시간을 더 달려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도착하였다.

 

 

  광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깃발 아래에 모여 있었다. 또 여러 시민단체에서 천막을 세워 그 곳에서 사무를 보거나 단식투쟁을 하거나, 사람들을 향해 뭔가를 나눠주었다. 광장 주위에는 높은 빌딩들이 에워싸고 있었고 한쪽에 문화재 건물이 있어 그쪽으로만 뻥하니 통해있었다.(무슨 건물인지 모른다) 광장풍경은 다 좋았지만 한 가지 안 좋은 점이 있었다. 광장의 잔디에 시위대들이 앉고 편하게 지내자 잔디를 다 걷어 가버려서 광장은 흙으로 가득했다. 마침 비도 와서 흙은 진흙이 되어 짜증나는 상태였다. 그래도 광장에서 돌아보다가 광장 옆 대로 쪽으로 가보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람들이 길게 앉아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여 있다고 생각하니 ‘명박이’가 참 대단한 대통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되어 사람들이 모두 일제히 촛불을 켜자 멋진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 모습을 좀 더 높은 곳에서 봤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으로 위를 쳐다보니 기다란 크레인 위에 카메라가 보였다. 저 크레인 위에 올라가보고 싶었다. 광장 옆 대로(정확한 명칭은 모른다 왜냐하면 서울에 살지 않으니까)중간에 대형트럭으로 만든 무대와 무대 양쪽에 커다란 스크린, 그리고 커다란 음향시설이 있었다. 그 곳에서 자유발언, 각종 퍼포먼스, 노래 등을 보고 들었다. 무대 위 진행자 중 한 명이 이름은 모르나 얼굴은 자주 본 방송인이라 조금 놀랐다. 방송인을 자동차 무대 위로 불러올 만큼 촛불의 힘이 대단했다는 것과 방송인이 저래도 괜찮은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엄마: 그 방송인은 권해효 씨)


  무대 공연이 끝나고 거리행진이 시작되었다. 먼저 인간방패와 시민단체들이 앞장을 섰다. 인간방패는 자전거를 이용하여 만든 조형물에 사람이 올라가 가는 것이다. 나와 누나는 행진 대열의 중간쯤에서 걸어갔다. 거리행진은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다. 처음 온 서울인데 거기에 도로 위를 걸을 수 있으니 서울 풍경을 마음껏 감상했다. 서울은 높은 빌딩이 인상적이었다. 거리행진을 하면서 풍물놀이패의 풍물소리와 촛불소녀를 받드는 무당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 걸어가면서 옆에서 정차되어 있는 자동차들을 보니 자동차 속 사람들의   80~90%는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골을 먹었을 때의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피켓을 흔들며 시위대를 반기는 모습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시위대에서도 환호를 해주었다.


  거리를 지나가다가 전경버스로 길이 가로막혀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게 바로 그 유명한 닭장차구나라고 생각하며 신기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이미 사람들이 왔다 간 흔적으로 가득했다. 낙서는 기본이고 가장 웃겼던 지명수배 어청수 전단지가 있었다. 닭장차로 가득한 곳에서 빠져나와 서울 거리 곳곳을 걸어 다니다가 KFC에서 화장실도 들리고 휴식도 좀 취했다. KFC가 있던 곳이 아마 종로5가였을 것이다. KFC 밖으로 나와 또 시위대를 따라 걸어갔다. 그러던 중 또 다시 닭장차로 가로막혀있는 곳에 다다랐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닭장차 위로 전경 몇 명이 올라가 있는 것이 보였다. 전경들은 닭장차 위에 방어막 같은 것을 세워놓고 그 뒤에 서있었다. 몇몇 흥분한 아저씨들이 우산으로 자동차를 쿡쿡 찌르곤 했지만 그냥 서로 바라볼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곳에서 누군가가 만든 이명박 모형을 보았다. 이명박이 꽃을 꽂고 ‘30’이라고 적혀있는 소를 통째로 먹고 있는 모형이었다. 정말 기가 막히게 잘 만들어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져 나오는데 그 모형을 들고 있는 아저씨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굉장히 뿌듯한 표정이었다.

 

  닭장차로 막힌 거리에서 빠져나와 청계천에 도착했다. 이명박이 만든 그 유명한 청계천을 구경하고 싶어 아래로 내려갔다. 청계천은 조형미도 있고 물에서 놀 수도 있어서 이명박이 만든 것치고는, 환경이나 여러가지 문제가 많다지만 겉모양은 꽤 잘 만들었다고 생각됐다. 청계천에 발도 담그고 걸어 다니며 놀다가 다시 시청 앞 광장으로 돌아갔다. 광장은 이제 포장마차 등 먹을거리를 파는 이동식 매점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광장에 돗자리 같은 것을 깔고 앉아 뭔가를 먹거나 잠을 잤다. 나랑 누나는 광장을 둘러보다가 삼양 컵라면을 무료로 나눠주는 것을 보고 줄을 서서 받아먹었다. 컵라면을 나눠주는 의미는 잘 알고 있었지만 땅바닥에 주저앉아 컵라면을 먹는 내 모습을 보니 뭔가 처량한 느낌이 들었다. 컵라면을 비우고 촛불다방에서 무료 커피를 받아마셨다. 광장에서 굶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커피를 마시고 UCC 시연회를 보고 자리 깔고 앉아 보았다. 본 UCC는 ‘쥐코’와 ‘쥐박전’이었는데 ‘쥐코’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재미있게 만들었는데 다 보니 뭔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이명박은 지금 이 시간에도 일을 하고 있다’는 말로 끝나는데 소름이 쫙 돌았다. 쥐박전은 판소리로 지금의 사태를 표현한 UCC이다. 다 보고 나서 진보신당 인터넷방송 칼라TV를 찍고 있는 것을 보았다. 칼라TV는 별로 보고 싶지 않아 다시 공연을 하고 있는 무대 앞으로 갔다. 지켜보다가 한 관계자가 무대 위로 올라가 음향시설을 빌린 것이라 갖다 줘야한다고 공연을 끝냈다.  

 

 

  다시 광장으로 돌아가 노무현 대통령 때의 사회문제를 기록한 영화를 보다가 졸려서 잠깐 누워서 잠을 잤다. 자다가 안평동 사거리라는 곳에서 뚫렸다는 소식이 들려 그 곳으로 갔다. 가보니까 사람들이 좁은 골목과 넓은 대로에서 어디로 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딱 봐도 좁은 골목은 위험해보여서 그냥 넓은 대로에 있었다. 그냥 해 뜰 때까지 인도에 앉아 있다가 도로에 드러누워 잠깐 잠을 잤다. 시간이 한참 지나자 전경버스 뒤에서 뭔가 움직임이 느껴지더니 차 위에 세워둔 방어물을 내렸다. 그리고 차가 움직이고 그 사이로 전경들이 우루루 몰려나왔다. 전경들은 도로 위에 점거한 사람들은 인도 쪽으로 몰아붙이고 도로로 못 나오도록 서있었다. 그 사이에 전경버스가 차례차례 빠져나갔다. 그 곳에서 그냥 나와서 시청 앞 광장으로 돌아갔다. 광장에서 지하철을 타고 버스터미널로 가서 밥을 먹고 광주로 돌아왔다. 광주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시험공부도 빼먹은 1박 2일의 서울 원정 촛불시위는 좋은 추억이 되었다. 서울관광도 하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시위도 해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졌다. 덕분에 가기 전에 있던 입안 헐은 부위가 굉장히 커져서 치료하는데 조금 고생을 했다. 그리고 시험공부를 빼먹은 결과 그냥 저번만큼의 성적을 거뒀다.

 

 

*엄마 꼬리: 평점은 그냥저냥 비슷했지만, 영.수는 어이쿠야! 
                  덕분에 양가집 가문으로 등극했다나 전설의 56점을 갱신했다나~~ OTL
                  교대생 누나에게 영.수 집중과외를 받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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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8-07-25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성적도 물론 중요하지만 정말 오랫동안, 죽을때까지 잊지 못할 귀한 추억(이 씁쓸해서 아쉽습니다만..;;)을 만들었네요.
장해요 :)

순오기 2008-07-25 19:26   좋아요 0 | URL
학교성적도 중요한데~ 이 녀석은 중학교땐 이 정도만 하면 된다네요~`ㅜㅜ
에고~ 고등학생 된다고 하루 아침에 달라지진 않겠지만 믿어봐야죠!^^

2008-07-25 1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7-25 19:29   좋아요 0 | URL
예~ 감사합니다. 저도 처음인데 많이 다녀본 분들이 그런 조언을 하더군요.
우리 아이들도 YMCA에서 단체로 데려가니까 가방에 리본을 묶어서 바로 찾을 수 있게...^^ 이금이작가는 그래서 빨간 가방을 갖고 다니더군요.ㅎㅎㅎ
해남~~~ 땅끝마을~~~ 정말 가고 싶은데 부러워요~~~ 좋은 시간 되시기를...

마노아 2008-07-26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 경험을 하고 돌아왔어요. 비록 눈물의 성적표를 받았지만 그래도 어깨 으쓱이에요. 다음 번엔 성적도 분명 만회할 거예요. ^^

순오기 2008-07-26 02:07   좋아요 0 | URL
눈물의 성적표도 아니이에~ 아무 느낌도 없다네요~ㅜㅜ
그래도 믿어봐야죠~ 머리 좋고 공부안하는 녀석들이 많다지만, 내 아들이니까!^^

BRINY 2008-07-29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글을 잘 쓰네요. 우리반(인문계 고3) 애들과 비교됩니다.

순오기 2009-07-25 12:53   좋아요 0 | URL
다시 보니 여기만 답글을 빼먹었네요.
맘 먹으면 좀 쓰더라고요. 결국 글쓰기로 대학을 가야되는거 아닌가 생각도 해봐요.

부엉이마님 2008-07-29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드님 같은 소신있고 행동력 있으며 자신을 지지해주는 부모를 가진 친구들은 뭘 해도 하던데요. 동기부여가 확실하거든요. 그리 키우는 거 쉽지 않던데, 대단하십니다. 저도 3살만 되어도 백화점 문화센터다 놀이학교다 한글나라다 뭔가 두 개 이상씩은 다하는 또래 아이들 틈에서 꿋꿋하게(^^) 아무 것도 안 시키고 책만 읽어주고 있답니다. 쑥쑥닷컴의 서현주 대표를 만났는데 역시 이야기가 통하더군요. 아이를 잘 관찰하여 제 때에 동기를 유발해 주라는 것. '줄탁닷컴'을 준비하신다는데, '줄탁동기' 항상 새겨야 할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순오기 2008-10-02 10:20   좋아요 0 | URL
줄탁동기 깊이 새겨야겠어요. 우리 아들은 정말 이게 필요하거든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