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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주민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8년 5월
평점 :
젊은 만화가 최규석이 사람을 울린다. 자기 얘기를 풀어냈는데, 그게 바로 내 얘기고 우리 시대 이웃집 얘기가 된다. 마치 내 앨범을 펼쳐 빛바랜 사진으로 추억을 더듬는 듯하다. 만화의 색감이 빛바랜 사진처럼 강렬하지 않고, 캐릭터의 표정과 절제된 대사로 슬픔과 기쁨을 고스란히 전한다. 따뜻한 시선과 솔직한 감정으로 독자를 울리고 웃길 줄 아는 최규석, 사진 보니 꽃미남이던데 완소남으로 다가온다. 아~~ 이사람, 내 맘대로 동생 삼아야겠다.^^ 책에서 보니까 누나가 넷이던데, 나이로는 내가 제일 위 누나가 될 것 같다. ㅋㅋ
내가 광주댁으로 산지 20년, 유일하게 나를 '당진댁'으로 부르는 지인이 있다. 내가 충청도 시골에서 못 먹고 못 살았던 이야기 - 그때 먹었던 보리밥에 질려 지금도 보리쌀 넣어 밥하는 게 싫고 내 돈 주고 절대 보리밥 안 사먹으며, 74년에 인천으로 이사왔는데 그해 8월 15일 육영수여사가 총탄에 돌아가신 날 내 고향에 전기가 들어왔다 - 를 했더니, 그렇게 살았던게 억울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때 우리집만 혹은 나 혼자만 그렇게 산게 아니고, 다들 그렇게 살았으니까 억울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런 긍정의 마인드가 오늘의 순오기를 있게 했다며, 그때부터 내 고향을 따와 '당진댁'이라 부른다.
최규석의 '대한민국 원주민'을 보면 정말 우리집 상황과 비슷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같은 세대를 살면서 다른 시대를 살았다는 말에 공감하는 이유다. 77년생이니 나보다 엄청 늦었는데도, 그가 살아온 시대는 나보다 훨씬 이전의 시대를 살아온 듯하다. 내 고향보다 더 시골이었거나 더 가난했기 때문일까? 7~80년대 현대사의 한 귀퉁이에서 밀려난 원주민의 삶이 리얼하다. 그의 큰누나가 동생들은 도시락을 싸주고 본인은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린 먹을게 없어 배를 곯지는 않았다. 하지만, 74년 인천으로 와서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참 힘겹게 살았다. 가장의 짐을 져야 했던 엄마는 생선다라를 이고 나섰고, 생선이나 새우젓을 팔아 이문이 너무 많으면 가슴이 벌렁거렸던 우리 엄마, 최규석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난 이 책을 보며 또 울었다.
이 책엔 가슴 찡하고 코가 먹먹할 이야기가 많지만, 다섯번째 이야기 '25년 만의 손님'을 보면서 나는, 그만 최규석에게 손들고 항복했다. 2페이지 17컷의 만화로 나를 압도한 사람, 그 장면을 여기에 옮긴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14960143379160.jpg)
어느 날 새벽 불쑥 달려든 25년 전, 다섯 살 소년이었던 자신을 안고 울었던 사람 최규석. 분명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일거라 믿는다. 이 만화의 특징은 자신과 가족이 시대에 동참하지 못하고 원주민으로 밀려나 살아왔던 시절을 얘기하면서, 현재의 상황을 등장시켜 연결고리를 갖게 한다. 그래서, '우리가 옛날엔 이렇게 살았었다.'로 끝나지 않기에 더 깊은 울림이 있다. 마음에 울림을 주는 만화, 눈가에 따스한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 사람이 좋다.
어머니 아버지의 입을 빌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대사를 관통하는 가족이야기로 우리 시대를 진단한다 볼 수 있다. 자본주의에 밀려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고 대한민국 원주민으로 살아온 최규석 가족이 살았던 시대에 공감하고 이해하며, 가족에게 쌓인 앙금이나 사회와 등진게 있다면 개인적인 화해를 시도하는 것도 독자의 몫이라 생각된다. 한국전쟁 이후 다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이나, 물질만능이 된 지금이나 없는 사람에겐 별반 나아진게 없는 것 같다. 있는 자는 풍족하게 누리고, 없는 자는 주리는 게 당연시되는 각박한 이땅에 그래도 따뜻한 가슴을 가진 젊은이가 있다는 게 행복하다. 이 책을 보며 공감하는 독자들이 있고, 광장에 꺼질 줄 모르는 촛불이 있음을 우리는 희망으로 새긴다. 오늘도 대한민국에서 원주민으로 등떠밀리는 그들과 함께 살아야 할, 우리들의 대한민국을 위해 촛불을 든 만화로 자리매김 해본다. 그래서, 난 '대한민국 원주민'도 최규석도 다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