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3년 7월 3일 밤새 내리는 빗줄기에 잠못들며 썼던 나의 사부곡입니다. 당시 암으로 투병하던 아버지를 이제는 보내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작별을 준비했지요. 내 홈피에 이걸 올리고 이리저리 알게 된 형제들과 조카들이 들어와서 읽으며 울었던...  항상 자식들에게 해 준게 없다고 한스러워 하시던 아버지께, 형제들이 이 글을 출력해 보여드렸었지요. 아버지는 고맙다고 하시며 그 해 가을에 먼길 가셨습니다. 어려서부터 멀리 시집간다고 했던 말처럼 나만 멀리 떨어져 살았기에, 아버지 가시기 전 한번이라도 더 뵈려고 격주로 인천을 오르내렸지요. 그렇게 아버지를 보내고 가을마다 혹독하게 겪어야 했던 천식을 달게 받았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추억하는 한 방법이었으니까요~~~~그래서 또 가을은 아팠답니다.ㅠㅠ 

아버지를 추억하며  - 작성일 2003-07-03 04:52:00

  창밖엔 엄청난 비가 쏟아지고 있어 심야의 정적을 온통 흔들어 깨웁니다. 잠든 식구들 귓전을 때리는 빗소리에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자리 편치 않을까 살펴보며, 나 혼자 이 밤과 동무하고 있네요.

  엊그제 동생이 전해 준 아버지 소식~ 큰딸 집에 가 보고 싶어하신단 소리에 마음 저려오더니... 큰언니 집에 들르셨다 혈관질환 수술 앞둔 작은 아버지 문병 가서 형제분이 손잡고 울었다는 친정엄마 전화에 가슴끝이 아려 옵니다. 늦은 밤 작은언니 전화로 상황 설명 듣고 나니, 가슴이 아리다 못해 미어지며 멍멍함에 잠은 저 멀리 가 버렸습니다. 눈물 많은 우리 형제 아버지와의 작별을 준비하는 떨림이~ 이 밤 소리쳐 내리는 빗줄기처럼 내 마음 영 추스르기 어렵네요.

  아버지를 추억하면~ 집 앞에 든든하게 자리잡고 있던 감나무처럼 쌈싸롬한 감 꽃부터 풋감의 떫은 맛, 달콤한 홍시의 맛까지 다양하게 체험케 한 아버지의 모습은 언제나 자랑이었고 든든함이었습니다. 때론 까치 밥 남겨두는 조선의 마음처럼 인자하신 아버지였습니다.

  우리 아버진 시골에선 흔치않은 열정으로 우리 5남매의 공부를 다 봐 주셨습니다. 깎아만든 앉은뱅이 책상 앞에 두고 맏이의 공부를 가르치시며 어깨 넘어 배우는 둘째의 영특함을 알아보셨고, 셋째, 넷째, 막내까지 그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연필 바로 잡아라~ 머리 들고 등 꼿꼿이 세워라~ 책을 너무 가까이 보면 안 된다~ '늘 귓전에 맴돌던 아버지 말씀처럼 나도 우리 애들에게 그리 합니다. 항상 반듯하게 연필을 깎아주시며 까아만 연필심을 삭삭삭~ 소리나게 도슬러 주시던 아버지...나도 일주일에 서너 차례 스무 자루의 연필을 깎으며 그 소리까지 따라하고 있네요. 어떤 생각, 어떤 정성으로 연필을 깎아주셨는지 가늠이 되고도 남습니다.

  하얀 손수건 가슴에 달아 입학시키면, 담임선생님 담배 한 보루 사들고 꼭 학교를 찾으셨다는 아버지~ 선생님의 각별한 관심속에 우린 자부심으로 학교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 공부야 제 하기 나름이었겠지만. 아버지는 우리 앞길의 시작을 그렇게 열어 주셨습니다.

 3학년인가 4학년때 서울에서 노란 가방 두 개를 사 오셨습니다. 꼬불꼬불 파마머리 '캔디'그림이 있던 가방이었죠. 언니랑 그 가방 들고 얼마나 어깨 힘 주고 뽐내며 다녔든지~ 아이들이 그 가방 한 번 들어보려 순서까지 정해서 따라 다녔던 유년의 기억이 슬며시 웃음짓게 합니다.

  아버지의 성격을 제일 많이 닮은 나는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 편애를 받기도 했지요. 서울 다녀오시며 동물과자랑 호두과자 사오시면 잠자리에 든 우리들 앞에 구구구~ 모이 준다며 방바닥에 놓아주신 어머니, 우린 그게 재미있어 병아리처럼 입으로 콕콕 쪼아먹었습니다. 우리가 잠든 뒤에 오시면 내 몫의 과자를 더 많이 숨겨 두셨다 슬쩍 주시기도 했지요. 그 추억이 좋아서 지금도 나들이 다녀오면 우리 애들 줄 호두과자 꼭 사들고 들어갑니다.

  아버지를 추억하며 빼 놓을 수 없는 건 우리 집 노래방입니다. 일찌감치 저녁상 물리고 둘러앉아, 아버지가 깨알같은 글씨로 적어 놓은 노래 책을 보면서 목청껏 따라 부르기도, 앞서 부르기도 했던 우리만의 노래방이 밤마다 성업 중이었지요. 눈물 젖은 두만강, 선창, 불효자는 웁니다, 울고넘는 박달재, 아내의 노래, 단장의 미아리고개~ 참으로 많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중에 18번은 단연 '눈물 젖은 두만강'이었고 항상 마무리곡으로 또 한 번 불렀지요. 한 길에서 4~50미터 들어가 앉은 우리 집 앞을 지나는 마을 어른들이 들으며 흥겹게 따라 불렀다 하셨으니까요. 그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음치를 면한 것 같습니다

  언니 오빤 중학교 마치면 인천으로 올라 와 학교 다니고, 직장 다녔고, 막내 남동생은 6학년 때 인천으로 전학 시켰지요. 나 혼자 중학교 2학년까지 시골에 남아 부모님과 함게 살았습니다. 인천으로 다 이사온 후에도 학교 마치고 독립하는게 소원이었던 나는, 결혼 외엔 절대 독립할 수 없다는 아버지 무서워 꼼짝없이 있다가 스물 아홉에 시집갔으니 이래 저래 부모님과 제일 오래 살았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달랑 인천으로 이사 와 방 두 칸 셋방살이가 왜 그리 부끄러웠는지, 친구 사귀면서 집에도 오고 가고 했을텐데 한번도 집에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울한 사춘기를 보내었지요. 그땐 아버지가 한없이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네요. 당신도 힘겹고 버거운 객지살이였을텐데 난 힘이 되기는 커녕 나만의 사춘기를 치열하고 적나라하게 겪어내고 있었으니~ 생각하면 아버지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사춘기 이후엔 아버지와 제일 많이 싸움(?)도 했습니다. 성격이 똑 부러지는 아버지 닮아 자기 주장 강하고~ 나 하는 건 다 옳고 남하는 건 다 시원찮아 보이니 원~ 똑같은 부녀간에 마찰도 젤 심했지요. 다른 형제들 다 착해 아버지께 감히 반기를 못 드는데, 난 꼭 따져들며 시시비비를 가렸으니, 제 잘난 맛이라 해도 그러고 나면 맘이 불편해
  "괜히 아버지께 그랬나 봐~" 후회하면 우리 언니들 왈~
  "얘 너 같은 애도 하나는 있어야 돼~" 그랬으니,
후회하는 건 잠시 뿐, 다음에 또 그리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지간히도 철딱서니 없었지요.

  대부분의 가난한 집 아이들이 그렇듯이 우린 그 이후 철이 들어버렸습니다. 고단한 현실을 비켜서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사시는 부모님 보면서 우리도 그렇게 당당하게 살아내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학업을 계속 했고, 만학으로도 과정을 다 마쳤으니 우리 부모님은 당신의 끈들을 당당하게 세상에 내 놓으셨습니다. 우리도 이제는 제 몫의 삶을 뚜벅뚜벅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으니까요.

  집 앞의 감나무에 올라가 깃발을 흔드는 꿈을 꾸고 장남의 앞길을 예감하신 부모님~ 5월 1일 대통령 표창 받은 우리 오빠~ 그 아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표창장과 대학원 졸업사진 액자에 넣어 걸어두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버지 뵈니 내 가슴이 촉촉하게 젖었습니다.

  치열하게 겪어낸 사춘기나 내 청춘의 방황으로 잠시 흔들렸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나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자랑이고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본대로 들은대로 한다는 말씀처럼 나도 우리 아버지 하신대로, 우리 아이들에게 똑같이 하고 있는걸 발견합니다.
회갑을 맞아 덕수이씨 우리 집안 가승보(家承寶)를 내셨고, 고희를 맞아 가정예절요람(家庭禮節要覽)을 한정 출판하여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약골이셨기에, "회갑까지 살아줘서 고맙다"는 엄마의 찬사를 받으셨던 아버지. 이제 일흔 일곱 되셨으나 어느 자식이 부모의 수가 흡족하겠으며, 떠나시면 애닮다 않겠는가요. 건강하게 장수하셔야지 통증으로 고생하시는 아버지 뵈면 더 오래 계시라 붙들기가 송구할 따름입니다.

**이후에도 아버지를 추억하는 글을 참 많이도 썼는데...... 편애를 받은 만큼 애증도 많았던 우리 부녀......사랑은 추억입니다. 지금도 철들지 않은 난, 아버지의 사랑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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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08-05-08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효...눈물납니다...

순오기 2008-05-08 19:33   좋아요 0 | URL
아버지의 사랑을 추억하는 거지요.ㅠㅠ

잎싹 2008-05-08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ㅠㅠ
저도 어머니보담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은데...
순오기님, 오늘도 좋은 날되소서.

순오기 2008-05-08 19:33   좋아요 0 | URL
우리도 어머니는 삶의 전선에서 바쁘셨어요~ ㅠㅠ

2008-05-08 2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5-09 08:31   좋아요 0 | URL
'애증'은 또 하나의 사랑이겠죠!
아들은 엄마 닮은 여자를, 딸은 아빠 닮은 남자를 무의식적으로 찾는다던데...내 주변을 봐도 맞는 말 같아요.^^

마노아 2008-05-09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부터 날마다 편지를 썼어요. 일을 나가면 엄마가 아빠에게 편지를 읽어주시곤 했죠. 일곱번째 편지를 쓰던 날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이미 차갑게 식은 아빠 발치에서 울며 그 편지를 읽어드렸죠. 그리고도 날마다, 꼬박 서른번째까지 편지를 썼어요. 부칠 수도 읽어줄 수도 없었지만요. 좋은 추억도 많았는데, 아빠를 떠올리면 언제나 눈물이 앞서요. 십년이 더 지났는데도 아직도요.

순오기 2008-05-09 08:33   좋아요 0 | URL
서른번째까지 편지를 쓴 님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저도 돌아가신 후까지도 여러번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썼으니까요~~~ 그래서 지금도 그 편지를 읽으며 추억하지요.ㅠㅠ

웽스북스 2008-05-09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글도, 마노아님 덧글도 ㅜㅜ

순오기 2008-05-09 08:38   좋아요 0 | URL
살아계실때 잘 해야 한단 말이 실감나는 건, 꼭 가신 다음이라는...

비로그인 2008-05-09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보고 참았던 눈물이 마노아님 댓글에서 터졌습니다.

순오기 2008-05-09 19:29   좋아요 0 | URL
같은 마음을 느낀 승연님을 토닥여주고 싶어요.

2008-05-10 0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5-10 02:12   좋아요 0 | URL
아아~~~ 님, 묻어두었던 기억을 떠올려 힘들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버지는 우리 기억속에 늘 살아 있어 이렇게 불쑥 차고 올라오면... 참, 견디기 힘들 시간을 또 보내게 되지요. 그게 다 사랑이라고... 그런게 사랑일거라고 생각해봅니다!ㅠㅠ

2008-05-13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5-13 17:59   좋아요 0 | URL
그렇죠~ '꽃들도 사랑을 한다...' 세상에 생명 있는 모든 것은 사랑을 하지요~~~ 토요일에 초등생들과 에니메이션 영화 '호튼'을 봤는데, 작고 하찮은 것도 생명은 소중하다는 주제의 좋은 영화였어요. 항상 애들 영화도 짝짓기 사랑 타령이나 한다고 내가 투덜거렸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