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책따세 추천도서였던 '호밀밭의 파수꾼'은, 존 레논을 죽였던 그 남자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세상을 향한 홀든의 절규 때문에 죽였다"라고 말하며 갖고 있던 책으로 유명했고, 이 책을 영화로 만들고 싶어도 '홀든이 싫어할 것'이라는 말로 거절하는 샐린저 때문에 상당히 회자되었던 책이다.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에 나오는 작가 포레스터씨가 바로 샐린저라는 것도 매니아들에겐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머니독서회의 1월 토론도서라서 어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직 자녀가 어린 엄마들은 '무슨 얘긴지 이해되지 않는다'였고, 중고등 자녀를 둔 엄마들은 '우리 아이를 이해하기에 좋은 책이었다'라는 상반된 반응이었다. 역시 세간의 평가처럼 갈라진 반응이었지만, 토론을 마친 후엔 다시 읽어보겠다거나, 처음 온 신입회원(중1딸, 중2아들)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자녀들과의 관계를 위해서도 꼭 읽어보겠다며 빌려갔으니 호의적이었다.

우리 큰딸이 중 1이던 2002년 7월 '중학교 학부모독서회'토론도서로 읽었을 때는, 우리의 문화와 상당히 다른 미국 청소년들의 이성교제와 자유분방한 생활에 공감하기 힘들었다. 또한 세상에 모든 흥미를 잃은 청소년의 삐딱한 세상보기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리고 왠지 내 아이에게 권하기가 꺼려지는 이유는 수위가 넘는 청소년들의 불량스러움도 작용했다. 그러나 딸은 중2때 읽고서 '어른들의 위선'에 치를 떨던 홀든에 충분히 공감하며 독후감을 쓰는 등 상당히 고무적인 반응이었지만, 담배와 술, 섹스까지 거론하는 미국청소년들의 문화와 정서는 그들만의 것으로 인정할 뿐이었다.

이제 중2 아들을 둔 엄마로 다시 읽으니 많은 부분에 공감이 갔다. 큰딸을 통해서 들은 우리 청소년들의 이성교제 애정표현도, 일부에서는 이미 이 책의 상황까지 도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불과 5년 전엔 우리 상황과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닌 우리 청소년들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래서 홀든이 불량한 문제아가 아닌, 지극히 순수한 영혼을 가진 예민한 청소년으로 받아들여졌다. 비록 학교 공부는 네 과목을 낙제했지만, 독서를 많이 하고 글을 잘 쓰는 똑똑한 홀든이 들어왔다. 성장기에 겪어야 할 통과의례지만,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순수함과 치열함이 정신적 성숙도 가져올 것이다. 신체적 성숙 뿐 아니라 정신적 성숙이 더해질 때, 진정한 성장을 하는 것이기에 이 책은 청소년을 성장하게 하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홀든이 거론하는 책 중에 내가 읽은 책이 나오면 그 반가움도 좋았다.^^)

네번째 학교인 펜시학교에서도 퇴학을 당한 홀든은, 부모님이 알게 되는 수요일까지 사흘간의 여유를 2박 3일의 방황을 통해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충동적으로 행동하며 방황하는 홀든이 끊임없이 전화하고 싶어하는 그 외로움이 안타까웠다. 누군가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는, 자기를 털어놓고 싶어하는 녀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선생님이나 모처럼 만난 친구도 홀든의 얘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지 않는다. 선생님은 충고하기에 바쁘고, 건성으로 듣거나 자기 얘기만 한다. 우울증에 빠진 누군가도 자기를 털어 놓을 수 있는 그, 단 한사람이 없어 자살하는 것을 봐 오지 않았는가!

홀든이 열세 살 때 끔찍이도 사랑했던 동생 앨리의 죽음으로 받은 충격을 아무도 위로하거나 알아주지 않았다. 홀든은 그 이후 세상살이가 심드렁해져 모든 걸 불평불만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여섯 살이나 아래인 동생 피비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변호사인 아버지나 옷을 멋지게 입힐 줄 아는 어머니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걸 동생에겐 얘기할 수 있다.  집을 떠나기로 작정하고 동생을 만나러 간 홀든에게 야무지게 묻는 피비와의 대화.

"오빠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뭐야?"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어린애들이 놀고 있는 호밀밭에서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야. 온 종일 그 일만 하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은 거야."

문제아거나 불량스런 청소년일 뿐인 홀든이 비로소 미래의 희망을 가진 젊은이로 다가오는 이 장면이, 바로 작가 데이비드 샐린저가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순수한 영혼의 피비를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가출을 실행하려다 함께 가겠다는 피비 때문에 집으로 돌아온다. 순수한 영혼 피비를 통한 홀든의 구원은,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정신병원에서 그 사흘간의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럼에도 홀든이 역겨워하던 룸메이트 스트라더레이터나 애클리 같은 친구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위선덩어리인 세상과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직 순수한 영혼으로 이 세상을 살려면 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적당한 타협과 적당히 때묻은 영혼만이 제 정신을 갖고 세상을 살 수 있는 것인가?ㅠㅠ 홀든은 그토록 갈망하던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여전히 궁금하다! 중3 되는 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한번 읽어보라 해야겠다.

*내가 갖고 있는 2002년 판에는 '금세'가 '금새'로 나와서 출판사에 연락한다고 동그라미 쳐놓았었는데, 최근 출판된 책은 '금세'라고 제대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번역이 매끄럽지 않았던 부분이 고쳐지지 않아서 별점 하나 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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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8-01-22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큰아이가 재미나게 읽더군요.
조금 아이들 수위를 넘는 장면들도 있었지만...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보다는 훨씬 빠르다는 걸 자주 느껴요.^^;;

순오기 2008-01-22 19:24   좋아요 0 | URL
이제 고등학생 되는 큰아드님에게 딱 맞을 것 같군요.
중학생이면 3학년 쯤에나 읽어야할 듯... 하죠? ^^

2008-01-23 0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08-01-23 00:52   좋아요 0 | URL
예, 이제 중학교에 가지요. 엄마의 초등학교 12년도 마감하는 거고요.^^

2008-01-23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1-23 0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8-01-23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보다는 님께서 쓰신 리뷰에 많이 공감합니다.
책을 읽는 독자들 사이에 말이 많은 책이 아닌가 싶어요.
추천도 드립니다.

순오기 2008-01-23 13:05   좋아요 0 | URL
그렇죠. 말이 많은 책이죠.부모 입장에서 자기 아이에게 권하기가 왠지 꺼려지는... ^^ 추천도 감사하고요!

프레이야 2008-01-23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문학과사상사 것으로 읽었어요.
당시 민음사 번역보다 낫다는 평이 있었는데 잘 모르겠지만요,
민음사 것이 좀 딱딱한 번역 같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반가운 책이네요. 근데 우리딸은 고전이나 명작을 안 좋아라해서
조금 걱정이긴 한데 다 때가 있으려니 하고 참아야겠죠?^^

순오기 2008-01-23 23:27   좋아요 0 | URL
그러죠. 민음사 번역이 좀 그렇더라고요~~ 어제 회원들이 가져온 문학과사상사였던가 더 나은거 같더군요. ^^

깐따삐야 2008-01-23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서 홀든에게도 공감했지만, 피비 같은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더랬어요.^^

순오기 2008-01-23 23:14   좋아요 0 | URL
깐따님은 피비 같은 동생일거 같은데요~~ 헤헤 피비같은 무수리! ^^

라로 2008-01-24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정성이 깃든 님의 리뷰를 읽지 않고 지나칠 수 없게 하세요~.
님께서 살아가는 방법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알기에 더 마음에 와 닿는것 같아요,,

순오기 2008-01-24 01:29   좋아요 0 | URL
나비님 야심한 시각에~~~ 육아만도 힘든데, 레슨까지... 얼렁 주무셔용!
전, 대충 대충 엉망으로 그냥 사람 사는것처럼 살아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