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태그 '성적표'는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을 드라마를 기대하고 내걸었나? 하지만 오늘 수능 성적표 때문에 희비쌍곡선이 그려질 수능생 가정을 생각하면 그리 편키만 한 주제는 아니다. 우리도 고3 딸의 수능 성적표가 나왔다. 등급 옵션에 걸리지 않는 점수라 수시 지원 학교에 가는 건 문제가 없지만, 지역장학금에 눈독들이던 일은 거둬야할 것 같다. 문제의 수학 때문에... 수학 싫어하던, 절대로 못한 게 아니라고 박박 우기는 지 에미를 닮아 우리 애들 셋 다 수학을 싫어한다. 타고난 문과생이기도 하지만, 하나 같이 수학을 배워서 뭐에 쓰냐는 정도다. 그저 사칙연산 할 줄 알면 되지 않겠냐고? 이런 마인드는 내 영향이 절대적이다. 내가 만날 이런 생각하며 살았으니 은연중 물들은 거지 뭐! 누구를 원망 하리, 누구를 원망해~~~~~>.<
학창시절 내 수학점수가 양가 가문이었다고 기억되진 않는다. 오직 중1때 노총각이었던 수학선생님이 좋아서 엄청 열심히 했던 기억과 애들이 못 푸는 문제를 칠판에다 쓱쓱 풀었던 황홀한 기억만 갖고 있다.
"엄마는 편리한 뇌구조를 가졌어. 엄마한테 불리한 건 기억하지 않잖아!"
이렇게 외쳐대는 아이들 표현대로 편리한 뇌구조의 덕을 보는 건지도 모르지만, 30년 만에 만난 초등담임선생님의 첫마디는 '순오기, 너 산수 못해서 나한테 많이 맞았는데...' 이러시는 거였다. 헉~ 그래도 내가 초등 때는 우등생이었는데, 수학도 아닌 산수를 그렇게 못했단 말인가? ㅠㅠ 난, 단지 수학을 좋아하지 않았을 뿐이지 지금도 절대로 못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래서 우리 애들한테도 수학을 못한다거나, 공부를 못한다는 말은 쓰지 않는다.
"얘들아, 너희가 수학을 싫어할 뿐이지, 절대 못하는 게 아니야!"
이러면서 마구 세뇌를 시키는데도 우리 집엔 전설의 56점이 존재한다. 바로 마의 수학 점수다. 큰딸이 중3때 꿍쳐두었던 성적표를 기어이 빼앗아 보니, 수학이 56점이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닌 두 번. 헉~~ 심장이 멈추는 충격, 하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목소리 쫙 깔고 물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야?"
"그냥 선생님이 싫어서 안했어. 엄마도 그 선생님 알잖아, 000선생님"
"그래도 한번이면 됐지 두 번이나 56이야? 이것이 네 인생에 결정적인 걸림돌이 될 수도 있어."
"알아, 나도."
"아는 것이 이래? 그래도 중학교 때 이러길 다행이지 고등학교에서 이랬다간 넌, 끝이야! "
"알아~ 이제부터 열심히 할게."
모녀간의 피 튀기는 설전을 치루고, 안되겠으면 과외 붙여준다 해도 스스로 해 보겠다며 중1 수학부터 방송강의 들으며 여름방학 내내 씨름하더니 88, 92 원래의 자기점수를 따라잡았다. 그래도 고등학교 3년 내 내신은 그런대로 돼도 모의고사는 언제나 등급이 낮았다. 안타까운 담임샘은,
"문과생들은 다 수학에 자신 없는 애들이라 조금만 하면 1~2등급도 받을 수 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그 말씀의 힘인지 2학년부터는 2등급도 받고 어쩔 땐 뜬금없이 1등급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수능엔 딱 82점으로 2등급에서 몇점 모자라 3등급이다. 아이는 기분이 별로지만, 전설의 56점짜리가 수능 3등급 받았으면 됐지~무얼 더 바래? 어찌됐든 수학 56점짜리가 학원도 안 다니고 교대 갔으면 된 거 아닌가! 이런 말로 위로해서 아이의 마음을 풀어주었다.
"민주야, 공부도 생각처럼 안 되는 거야, 그래야 잘 안되는 애들 심정도 알고, 그걸 왜 모르는지도 이해할 수 있어, 그래야 좋은 선생님 되는 거야! 공부를 잘 하기만 한 사람은, 어떻게 저런 걸 모르냐? 답답하게 생각하지 이해하진 못해. 넌, 좋은 선생님이 될 조건을 다 갖췄어~ 56점도 맞아 봤으니, 점수 못 받은 아이 심정도 알잖아!"
오늘 발표된 수능 성적표로 큰딸은 일단락되었고, 이제 중2 아들이 바톤터치를 했는데 문제는 이 녀석이다. 딸들은 점수가 안나오면 자존심 상해 씩씩거리는데, 아들 녀석은 도대체 개념이 없다. 중학교 입학 때 선서하고 들어가 엄마의 낯을 좀 세워주는가 싶더니, 계속 곤두박질! 월욜부터 기말시험인데, 오늘 배달된 해리포터 4권 보느라 정신이 없다. 전설의 56점은 이 녀석도 예외 없다. 1학년 2학기 중간고사와 2학년 1학기 기말시험에서 전설의 56점이 살아났다. 헐~ 못 말려 >.<
"민주야, 성주는 네 동생 확실하다. 전설의 56점을 계승 했어 그것도 두 번씩이나!"
"하하하~ 너도 56이야. 그것도 두 번씩! 짜아식, 꼭 그렇게 누님을 따라야겠냐?"
우린, 56점에 면역이 돼서 이 다음 자서전에 꼭 넣어야 된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그런데 개념 없는 이 녀석은 자존심이 상하지도, 잘 해야겠다고 주먹을 불끈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엄마가 위안을 삼자면 교대만 고집하던 큰딸과는 달리, 아들의 인생을 큰 틀 위에 놓고 보면 56점짜리 성적표가 뭐 그리 대수겠나 싶다. 그래서 오늘도 말한다.
"아들아~ 엄마는, 너를 믿는다!"
전설의 56점이 초등 6학년인 막내가 중학교에 가서 계승할지는 모르지만, 그럴지라도 이제 놀랄 일은 아니다. 공부는 자기가 좋아서 해야 하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면 하면 된다. 이렇게 한 발자국 떨어져 삼남매를 지켜볼 수 있는 엄마의 여유도 우리 애들을 믿기 때문이다. 영어나 수학도 학원을 보내며 조바심치지 않아도, 자기가 필요성을 깨달으면 그때부터 하면 된다고 믿는다. 대부분 학원가고 문제집 풀 때, 우리 애들은 뒹굴거리며 책을 읽는다. 왜? 책을 읽으면 행복하니까! 비록 엄마도 산수 못했다고 매를 많이 맞았다지만 편리한 뇌구조 덕분에 잘했던 것만 기억하고,
"나는 한다면 할 수 있어!"
이런 오기 하나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 나 어릴 때 시골에 살았어도 아버지가 수련장을 사주셨다. 하지만 내 기억에 한번도 제대로 다 풀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난 우리 애들한테 문제집 줄줄이 시키지 않는다. 다만 자기가 사와서 풀다가 남겨두었을 땐, 반드시 봄방학에라도 풀게 한다. 엄마처럼 다 풀지 않았다는 기억을 남겨주고 싶지 않아서. 또 하나 내가 고수하는 것은 우리 애들 성적표를 절대로 넘겨주지 않을 거다. 이 다음에 자식들 데리고 용돈 두둑이 담아갖고 와서 앨범도 보고 상장이나 성적표를 보라고 지금부터 말한다. 자기들 손에 넘어가면 잃어버리거나 혹은 나처럼 자존심 상한다고 어느 날, 확~~~불 질러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
우리 집 보물창고엔 아이들 사진, 일기, 공책, 그림 등 어려서부터 끼적거리던 온갖 것들이 담겨있다. 바로 요런 추억의 흔적들이 우리 집 보물이다. 이제 제법 굵어진 내 인생 나이테의 성적표를 들추자면, 우리 삼남매가 내 인생의 살아있는 성적표라고 내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