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시를 써 볼까~' 사회교육원 시창작반을 기웃거렸던 적이 있다. 그때 같은 뜻을 가진 사람중에 시조 시인으로 등단한 언니가 있다. 2003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시조부분 수상자가 되었을 땐, 서울 시상식까지 갔었다. 물론 시상식 끝나고 친정가려는 속셈이 있었지만... ㅎㅎ

그 언니가 이번에는 2007년 광주문화예술진흥지원금을 받아 처녀시집을 내게 되었다. 시집에 담을 100여편의 시를 잉태하여 낳느라 얼마나 수고했을까 생각하니 대단하단 말이 절로 나온다. 아끼는 지인들이 조촐하게 마련한 출판기념회랑 우리 딸 수시 면접날이 겹쳐 참석하지 못했는데, 이웃 언니편에 시집을 보내왔다.

표제는 중앙신인상 수상작이었던 '앵남리 삽화'인데 주욱 읽어나가다 딱 마주친 내 얘기 같은 시, 바로 '어느 날 독백'이었다. 딸 키우는 엄마들은 사춘기를 접어들면서 딸과 꽝~~부딪혔던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그때 '너 같은 딸 낳아 키워봐라. 그때 에미속 알겄지...' 하셨던 우리 엄니 말씀이 귓전을 앵앵거렸는데, 시인 언니는 요렇게 한 편의 멋진 시를 낳았다. 역시 시인은 시인이다!

어느 날 독백      -정혜숙-

아귀가 맞지 않아 딸아이와 엇나간 날
실파를 다듬다가 매운 눈물 쏟는다
파, 고게 매워서인지
마음이 아픈 건지

남루한 인격의 나, 어린 널 이기지 못해
부르릉 시동이 걸려, 이단 삼단 가속이 붙어
아뿔사!
터지고 말았다
사방으로 튀는 파편

머-언 길 에돌아서야 비로소 깨우친다
내 어머니 가슴을 까맣게 태워버린......
얼룩진 낡은 일기를
아무도 몰래 꺼내본다

마침 이 시집을 받아 보던날, 기숙사에서 딸이 나와 있었다. "민주야, 이 시 한번 들어볼래" 하면서 읽어주었더니, 저도 속이 있는지라 실실 웃었다. 우리 딸과 한번 꽝~~부딪히면, 나는 꽤씸한 마음에 말도 걸지 않고 눈길도 주지 않던 매몰찬 엄마였다. 형제들보다 더 치열한 사춘기를 보냈던 나는, 내 속에서 나온 딸이니 나를 닮았을텐데도 마음으로 용서되지 않던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엄마 말씀 떠올려 맺힌 맘을 스르르 풀곤 했지만, 이 시를 읽으니 배시시 미소를 흘리게 된다.

이 시의 주인공인 시인의 딸은 지금 광주 00문고에 근무하는데, 엄마의 시집을 직원들에게 선물했더니, 바로 요 시를 본 직원들이 그후부터는 '아귀가 맞지 않아~!'라고 부른단다 ^^

지금 나를 닮은 따님과 꽝~~했거나 꽤씸해서 씩씩댄다면 위 시를 읽으며 위로를 받으시라!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비 2007-11-12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ㅎ 아귀가 맞지 않아라니!!ㅎㅎ
저도 매몰찬 엄마에욥!!ㅜ
제 딸은 절 넘 안닮아서 그런데,,,ㅎㅎ
순오기님 시 쓰셔서 카테고리 하나 만들어 올려주세요~~~.^^

순오기 2007-11-12 17:09   좋아요 0 | URL
제가 시를 써서 올리는 건 장담할 수 없고요~ㅎㅎ
시 카테고리는 하나 만들까 생각하고 있어요 ^^
매몰찬 엄마를 안 닮았다니 다행이라 해야할까? ㅎㅎㅎ

홍수맘 2007-11-1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상하게 애들하고 "아귀가 맞이 않으면" 먼저 눈물을 보이는 편이랍니다. ^^;;;
여섯살 수가 벌써부터 버거운데 사춘기가 되면 어찌 살려나....

순오기 2007-11-12 17:10   좋아요 0 | URL
오잉, 엄마가 먼저 눈물을 보이신다니 맘이 약하신가요?ㅎㅎ
애들이 커나가면서 엄마도 강해진답니다!

아영엄마 2007-11-12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아이들과 종종 아귀가 맞지 않아 삐걱거리곤 해요. -.- (와~ 식객을 다 사셨군요! 저도 살려고 벼르고는 있는데 어느 세월에... ㅠㅠ)

순오기 2007-11-13 04:33   좋아요 0 | URL
다들 아귀가 맞지 않는 겨우가 종종 있지요~ㅎㅎ
식객은 우선 10권까지 구입했어요. 11권부터는 2차로 구입해야죠 ^^

프레이야 2007-11-12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도 필요한 시에요.^^

순오기 2007-11-13 04:35   좋아요 0 | URL
혜경님은 따님이 둘? 다 큰거 같던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모녀간이 부럽던데요!

세실 2007-11-12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딸내미가 아닌 아들내미와 아귀가 맞지 않아 삐그덕 거립니다. 어쩜 저랑 그리 똑같은지...ㅎㅎ
마음으로 와닿는 시입니다.

순오기 2007-11-13 04:36   좋아요 0 | URL
아들내미... 전 아들에겐 마음을 많이 비웠어요. ^^
엄마들이 공감하는 시라는 건 우리들 얘기라는 거겠죠 ^^

뽀송이 2007-11-13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귀가 맞지 않아~!'
인상적인 말입니다.^^
우리도 그러했듯이 아이들도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조금씩 알아가겠지요.^^;;
부보와 자식의 풀리지 않는 엇갈림!! 헤헤^^;;
근데... 순오기님 이렇게 일찍 일어나신 거예요??

순오기 2007-11-14 00:40   좋아요 0 | URL
예, 뽀송이님, 요즘 커피금단현상인지 머리가 아파서 일찍 잤더니, 신새벽에 일어나 알라딘 들어왔지요~ㅎㅎ 또 다른 중독현상이겠죠?
ㅋㅋ~ 아들만 키우는 뽀송이님은 요런 감정 절대 모를꺼야요~~~
하지만, '아귀가 맞지 않아'는 부모와 자식의 영원한 엇갈림! ^^

bookJourney 2007-11-13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공감이 가는 시입니다. ^^

순오기 2007-11-14 00:39   좋아요 0 | URL
그렇죠? 딸 키우는 엄마들은 다 공감한다는...
아들만 키우는 엄마는 이런 감정 절대로 모를꺼야욧!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