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고3 딸과 잠시 출타했다 돌아왔다. 이름하여 수시 면접을 위한 나들이. 고3 학부모 맘이 다 그렇겠지만 쉽게 대학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입시를 앞두고 안타까운 파도가 일렁인다. 우리 딸도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와 맘처럼 되지 않는 현실에 까칠함을 드러내어 출발에 앞서 약간의 충돌이 있었다.

학교에서 같은 대학에 면접 볼 아이가 셋인데, 그 학교 선생님의 딸만 따로 특별대우하는 부당함에 아이는 여러번 맘이 상했단다. 면접 전날도 셋을 불러 면접 연습(?)을 해 주겠다던 선생님이 1시간을 기다려도 오시지 않아 찾아보니, 바로 그 학생만 데리고 따로 하는 현장을 목격한 딸은 여지없이 폭발해서 까칠함을 있는대로 드러내고, 교실로 돌아와 엉엉~~ 통곡을 하고 집에 돌아와 자고 있었다. 뒤늦게 돌아온 엄마는 그 얘기를 들으며

"우리 딸 많이 까칠해졌네~ 세상은 그런 부당함과 공평치 않음이 넘치는 곳이야. 너무 민감하지 말고 마지막에 웃자!"

위로해주니 그런대로 마음이 풀려 버논과 동생들이랑 핏자를 먹는데, 막내가  "언니 어디 가?" 하고 물었고 "민경인, 언니 어디 가는지 못 들었구나" 하면서 내가 웃었더니, 큰딸이 또 까칠하게 발끈한다. "애 맘하나 편케 못 해줘?"라면서 ......

"응, 엄마는 그렇게 못해! 네가 학교에서 당한 설움을 집에 와서 식구들에게 푸는거잖아. 다 마음 먹기에 달린 건데, 자기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그렇게 까칠하게 남 탓하려거든, 내일 면접에 갈 필요도 없어! "

난, 사실 고3이라고 공주마마 대접하는 거 죽었다 깨나도 못한다. 그렇게 오냐 오냐~ 키운 자식 좋은 꼴을 못 봤기도 하지만, 우리 자랄 때 부모가 바쁘고 먹고 살기 힘들어 뒷바라지 제대로 못해줬어도 다 부모를 끔찍이 알고 섬겼다. 나 역시도 그런 마음이라, 지금도 부모님 생각하면 눈물이 먼저 난다.

우리 딸도 부모를 종 부리듯 하는 친구도 보고, 자식을 상전 받들 듯하는 친구부모들 보며 나름대로 느낌을 피력한 적이 여러번이었다. 사실 착한 딸인데 엄마가 너그럽게 받아주지 못하고 그랬나 잠시 후회도 됐지만, 오늘 받아주면 내일까지 연장될 것 같아서 쐐기를 박은 것이다.

딸아이는 울먹이며 몇 마디 대꾸하더니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엄마가 꺾여주지 않으니 제가 꺾이는것 같아 짠하기도 했지만, 그 후 시간이 되어 고속버스에 올랐고 아이는 잠들었다. 깊게 잠들지 못하는 맘은 아이나 엄마나 똑같았다. 심야에 친정 동생집에 도착해 하룻밤 묵었고, 다행히 다음날은 상쾌한 기분으로 깨어 여유있게 신문을 뒤적이다 점심을 먹고, 약국에 들러 청심환도 사 먹이고 택시를 탔다.

00교육대학, 곱게 물든 단풍잎이 나란히 서서 우릴 반긴다. 예쁜 모습을 디카에 담으며 걷는데 입구부터 수험표를 가슴에 다는 비닐커버를 파는 아주머니들이 늘어섰다. 세상에 고까짓게 2,000원이나 한다. 10여명도 훨씬 넘는 아주머니들에게 다들 어쩔 수 없이 하나씩 산다. 학교에선 전형료를 기만원씩 받으면서 이런거도 안 해주냐~ 그러면 준비해 오라고 안내를 하던지, 우리도 사면서 투덜거렸다.

대한민국 수험생은 봉이다!

우리 딸 고1 여름방학 때, 이 학교에 와서 도서관이랑 강의실을 둘러보며 자신의 꿈을 다졌다. 초등 3학년부터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다는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 사대에 가서 국어나 국사 선생님이 되는 건 어때? 물어보면 중,고등학생은 싫고 초등생이 좋다고 말했다.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 그 영향이 절대적인 듯하다. 그러면서 초등 1학년부터 담임선생님을 읊었다.

초등 1학년 김미숙선생님, 2학년 류금석선생님, 3학년 이산암선생님, 4학년 황영란선생님, 5학년 김도현선생님, 6학년 김호진선생님, 중학교 1학년 조은미선생님, 2학년 여주영선생님, 3학년 000선생님, 고등학교 1,2학년 정경모선생님, 3학년 김윤철선생님

엄마하고 같이 읊어대는데, 중3때 선생님 이름만 생각나지 않는다. 도덕선생님이었는데... 뭐지? 뭐였지?  '아, 박석균선생님' 엄마가 먼저 생각해내자 기억력은 엄마가 한 수 위라고 웃었다. 이렇게 줄줄이 댈 수 있는 선생님들이 아이의 꿈을 변치 않게 잡아주신 은인들이다. 또한 그동안 읽은 책 중에 아이에게 영향을 끼친 '하이타니 겐지로'선생님도 빼놓을 수없다.


 

 

 

 

짧은 인생이지만 10년 넘게 키워 온 아이의 소중한 꿈이 '면접 합격'의 2차 통보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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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10-25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인물 뒤에는 더 훌륭한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셨어요.
많이 반성하고 갑니다.
그리고선 아이가 오면 또.....
저부터 철이 들어야 할텐데...

책향기 2007-10-25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따님이 꿈을 이룰 수 있길 빌께요~꼭 합격하길!!

프레이야 2007-10-25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3딸도 순오기님도 참 좋으세요^^
합격!! 꼭 될 것이라고 믿어요. 하이타니 겐지로의 책을 읽고
초등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한 딸, 대견합니다. 마지막에 웃자~
이 말 제게도 하고 싶네요. ^^

순오기 2007-10-25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민서님, 책향기님, 혜경님 감사합니다.
'합격'소식 지둘리며 차분히 수능날까지 최선을 다해야죠. 아이 맘 편케해주는 엄마 노릇도 하면서요 ^*^

뽀송이 2007-10-26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님의 말씀에 공감이 많이 갑니다.^^
무조건 제 자식만 귀하다 여기고 상전 모시듯 하는 게 능사는 아닐텐데 지나친 부모 욕심으로 도가 넘치는 분들 보면 안타까워요.ㅡㅜ
그래도 지금은 섭섭하고, 화가 나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장래를 스스로의 힘으로 떳떳하게 개척해 나가는 따님은 꼭!!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희 아이들도 점점 커가니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도 '하이타니 겐지로' 무척 좋아합니다.

순오기 2007-10-26 23:43   좋아요 0 | URL
그렇죠 뽀송이님. 마음으로 세상에 둘도 없이 귀한 내 자식이지만, 밖으로는 엄하게 때론 냉정하게 해야된다 싶어요. 스스로 커나갈 수 있는 기회를 뺏는 부모가 되진 말아야지요!
하이타니 겐지로... 정말 존경할만하지요 ^^

BRINY 2007-10-27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3 학부모님이셨군요. 찡~한 글이었습니다. 좋은 결과 있길 바래요.

순오기 2007-10-27 18:35   좋아요 0 | URL
같은 마음으로 읽어주시고 좋은 결과 빌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