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기 전에 꼭 한 번은 논어를 읽어라 1 - 청소년을 위한 논어 어른이 되기 전에 꼭 한 번은 논어를 읽어라 1
판덩 지음, 하은지 옮김 / 미디어숲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많은 사람들이 논어가 정말 훌륭한 가르침을 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뭐 그리 대단하다고까지 느껴지지 않았다. 3천여 년 전 사람이 이 정도의 깊이까지 사색을 했고 깨달음을 얻었고 제자들을 양육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역사에서 성리학을 신봉한 특정 집단이 나라를 팔아먹고, 백성을 돌보지 않았기에 공자에 대한 반감이 심했다. 그리고 한자가 어렵기에 엇갈리는 해석이 분분하기에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도 서평단으로 선정되었기에 또 청소년을 위해 쉽게 풀이했다기에 용기를 가지고 읽어 본다.


#어른이되기전에꼭한번은논어를읽어라 책의 시작은 논어의 1장 1편 "학이"부터 시작한다.

배우고 제때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 여기까지는 알고 있는데, 그 뒤 구절이 있었다니 처음 알았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니 군자 답지 아니한가? 이런 문구가 있다니 아무튼 철학적인 명제인듯하다. 첫 문장, 배우고 제때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는 내 삶의 어려움과 문제를 처리하는 법을 알려준다면, 두 번째 문장인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는 나와 타인의 협력과 변화에 대처하는 자세를,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니 군자 답지 아니한가?는 한 개인의 교양과 인품을 수양하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책에 나온다. 뭐 쉽게 풀어 설명해 주니 읽을 땐 공감이 가지만 리뷰를 쓰는 지금은 뭐라고? 이해가 잘 안된다. 역시 논어는 쉽지 않다.

공자가 말하길, "나는 태어날 때부터 지식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옛것을 탐구하고 공부하는 걸 즐기며 배우는 데 부지런한 사람일 뿐이다."

어딘가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을 신처럼 떠받드는 걸 좋아했던 그 시대에 공자는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천재였잖아요. 우리랑은 다르죠.”

사람들은 누군가 뛰어난 장점이나 특기가 있으면 그건 원래부터 타고난 재능이라고 치부합니다. 그것으로 자신에게 일종의 변명의 구실을 마련하는 셈이죠. 왜 그럴까요? 사람들은 자신이 꿈꾸는 자아와 현실 속 자아 사이의 괴리감이 있는 걸 괴로워합니다. 자신이 꿈꾸고 그리는 자신의 모습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을 때 불편한 감정이 생기기 때문이죠. 이럴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변명 거리를 찾습니다. '그들은 천재이고 나는 범재이기 때문'이라고요. 하지만 많은 사람이 수준 높은 수준의 학문에 도달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타고난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전문적인 훈련을 오랫동안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습은 싫으면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 생기는 건 용납하지 않으니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핑곗거리를 찾는 거예요.

사실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건 비슷비슷해요. 심지어 공자 같은 사람조차 자신은 '태어날 때부터' 지식이 있던 게 아니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도 만일 뛰어난 사람들을 보면서 그게 모두 '타고난 재능' 덕분이라고만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여러분은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잃고 말 겁니다. 조금 더 용기를 가지세요. 그리고 자신을 믿어보세요. 공자가 했다면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청소년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이런 문장을 찾아냈지만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던 공자가 한자를 읽고 해석했다. 거기에 생계를 책임지고 살아가면서도 책을 읽으며 사상을 정립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거기에 뛰어난 화술에 3천 명에 달하는 문하생을 거두기까지 일반인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을 알아줄 위정자를 찾아 전국을 유랑할 수 있는 배짱과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아무튼 이런 위대한 사상가가 3천 년 전에 살았고 그의 제자들이 그의 사상과 글을 잘 정리해 두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쉽지 않지만 인생에 있어 어느 정도 참고할 지혜가 번뜩이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리학이 제갈량에게 말하다 1 - 탁월한 전략으로 승리를 추구하다 현대 심리학으로 읽는 《삼국지》 인물 열전
천위안 지음, 정주은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아이들 말로 삼국지에서 '핵인싸'라 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제갈량이다. 그의 지혜와 계략으로 유비는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얻었다.

또한 그로 인해 많은 인물들이 삶의 좌절과 희망을 맞보았다. 인기도 인기이지만 그의 삶은 항상 외줄 타기 하든 위태롭기만 하다.

제갈량은 출사하기 전에 유비에게 천하 삼분지계를 논하며 그 시작을 형주 땅을 차지하는 것으로 말했다. 하지만 인재 욕심에 눈이 멀었던 유비는 제갈량의 출사표를 건성으로 들으며 그의 출사에만 관심을 쏟았다. 서로의 욕심으로 인해 가장 기본이 되는 약속이 무시되며 그들의 시작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때맞추어 조조의 군이 쳐들어오며 발등의 불 끄기부터 시작되었다. 조조의 첫 공격의 제갈량의 화공으로 막아낼 수 있었지만 100만 대군을 이끈 조조의 친정에는 속수 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형주의 유표가 죽고 그의 차남 유기가 형주를 조조의 손에 넘기며 일은 더욱 꼬이게 된다.

의지할 땅도 군사도 없었던 유비를 구하기 위해 제갈량은 단신으로 동오로 향한다. 조조의 대군을 피해 항복을 종용하는 장소와 문관들 이와 반대로 조조와 한 판 승부를 겨뤄 형주 땅을 얻고 싶어 하는 도독 주유와 무신들의 의견이 충돌하였다. 이 둘 사이에서 교묘하게 이간질 시켜 결국 자신의 계략대로 일을 꾸려야 하는 위험하고도 중대한 일이었다.

귀족 집안에서 실패를 모르고 성장한 주유 역시 지혜와 계략에 능통하여 사사건건 제갈량과 대립한다. 서로의 이해관계를 앞세워 상대방을 공격하지만 주인공 버프인 제갈량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삼국지를 읽을 때는 몰랐지만 제갈량의 심리를 분석한 #심리학이제갈량에게말하다 를 읽으며 호승심으로 인한 제갈량의 실수를 깨닫게 된다.

유비에겐 제갈량과 관우와 장비가 꼭 필요했다. 다혈질인 장비는 오히려 제갈량이 다루기 쉬웠다. 하지만 논어와 충의를 중요시하는 관우는 의외로 제갈량에게는 껄끄러운 존재였다. 제갈량은 그런 관우를 휘어잡기 위해 군령장까지 받아 가며 그의 실수를 유인하는 덫을 놓았지만 유비의 개입으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남자들 간의 서열 다툼이란 그리 쉽게 끊나는 것이 아니었다. 집요한 제갈량과 굽힐 줄 모르는 관우의 자존심 싸움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결국 촉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옮기면서도 관우를 형주에 묶어두고 사지로 내모는 제갈량의 치졸함은 그 절정에 달한다.

단순히 소설로만 읽었던 삼국지, 전투 장면이 박진감 넘치고 제갈량의 신묘한 계략이 맞아떨어지는 재미에 인물들의 심리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심리학이제갈량에게말하다 책을 통해 자존심 덩어리 주유와 젊은 나이에 출사하며 권력을 향해 달려가는 제갈량의 심리를 알게 되었다.

이렇게 심리를 이해하며 삼국지를 다시 읽으니 그 재미가 더 쏠쏠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의 심리법칙 - 우리는 왜 가끔 미친 짓을 하는 걸까
야오야오 지음, 김진아 옮김 / 미디어숲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모두들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일까? 대부분 자기 이름, 직업, 역할, 가족 내 위치 등등 허울뿐인 것들을 이야기한다. 진짜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나도모르는내마음의심리법칙 책에서는 잠재의식, 우울증, 수면 장애, 최면, 호스피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의 마음속에 잠재되어 의식 속에 많은 상처와 아픔이 수면 아래 잠들어있다. 이런 상처들이 세상 밖으로 뛰쳐나와 사고를 치기 전에 내 안에 있는 자아가 이들을 통제한다.이를 통해 나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의 안전까지 책임지게 된다.

#나도모르는내마음의심리법칙 책에서는 어려운 용어 없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썼다. 하지만 다양한 예시나 전문적인 의견이 없다 보니 쉽지 않은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기에 더 어렵도록 만들었다. 책을 읽고 있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책을 다시 읽을 만큼 값진 것이 아니기에 이쯤에서 책을 덮었다. 다 읽었지만 왠지 더 어수선해졌달까? 책을 통해 심리 세계를 살짝 맛본 것으로 만족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일, 내가 다시 좋아지고 싶어 - 지금껏 애써온 자신을 위한 19가지 공감과 위로
황유나 지음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지붕 세 가족 드라마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40대 초반이거나 아니면 나와 비슷한 40대 후반이지 않을까?

평범한 여성으로 직장 생활의 애환과 어린 시절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겪은 다양한 굴곡을 이야기한다. 눈앞에서 목격한 자살의 현장, 계약직으로 기간 만료로 인한 퇴직, 대학 새내기 때 사상 교육에 반대해 자퇴한 이야기, 외국계 회사에서 홍보팀으로 근무한 이야기, 젊은 나이에 팀장이 되어 겪은 스트레스와 자승자박, 생각하기도 싫은 성폭행 이야기, 그리고 결혼 후 육아 이야기 등 자신의 일대기를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남자로 반평생을 살아온 나이기에 동일한 세대의 여성의 일상을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눈앞에서 자살한 현장을 목격한다면? 그것도 나와 이웃인 사람이 투신한 경우라면? 죽은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면?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현관을 열고 나와 이웃이 뛰어내린 난간을 마주한다. 참혹했던 현장은 온데간데없고, 새빨간 피가 흥건하게 번져 나가던 자리도 말끔히 치워졌다. 그녀가 투신하기 직전 밟았을 그 흔적 앞에 서 본다. 모골이 송연해진다. '죽음'과 시선을 마주친 이후 인생이 덧없게 느껴졌다. 아등바등하는 마음도 사라졌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하물며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한다는 것에 의미 있기는 한가. 산다는 건 결국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는 거침없는 몸부림. 그 안에서 꿈을 꾸며 나아가는 나.

내가 살면서 경험했던 우울은 '우울함'이라는 '감정'이 아니었다. 기쁨, 슬픔, 분노로 채색된 감정을 모조리 잃은 '상태'였다. 무의 공허. 삶을 비롯한 모든 것에 대한 집착과 욕망이 사라지는 것, 아니 스스로 놓아버리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어떤 위로나 조언, 책과 강연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상태가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다. 이대로 생을 끝내고 싶다는 유혹이 들었다. 왜 살아야만 하는가? 이 물음은 인생의 언제 어디서든 불쑥 찾아왔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 지금이 아니면 잠시 후 또 나를 덮여올지 모른다. 사건 이후, 진짜 두려워진 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생각, 기쁨도 의미도 없는 삶을 살았다는 후회가 밀려올까 봐 두려웠다. 원했던 삶을 살아가고 있진 못할지언정 최소한 원하는 '방식'대로 삶을 꾸려가고 싶었다.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죽음 앞에서 조금은 의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함으로.

그런데도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정답은 결국 찾지 못했다. 어떻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을지 아직 모른다. 죽음에 수천 가지 이유가 있듯, 삶에도 수천 가지 이유가 있으리란 믿음으로 버티고 있다. 사람마다 사는 목적과 이유가 다르다. 나는 나 자신에게 못난 존재가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하며 나아가기로 했다. 큰 기대를 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보잘것없는 '자기 구원'의 무게 중심을 잡기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나흘 주저 않고 사흘 일어나곤 하지만 그래도 내가 남기고 있는 자취에 떳떳해지고 싶다. 더불어 내 옆에 있는 한 사람만큼은 구원할 힘을 기르고 싶다.

사회에 주눅 든 나, 음지로 자꾸 기어드는 나, 그늘에서만 서성거리는 나. 나는 이런 내가 싫었다. 나에 대한 나의 거부감은 역설적이게도 이를 악물게 했다. 세상에 나가보자는 다짐, 대신 '진짜 나'를 감추고 '가짜 나'로 나가기로 했다. 진짜 '나'가 상처받으면 안 되니까 가짜의 '나'를 만들고 다듬었다. 누구나 인정하는 '착함'을 방패로 삼았다. 친구를 잘 도와주고 어른들 말 잘 듣고 순종하는 나로 개조했다. 그래서 나의 유년 시절은 안쓰러울 정도로 필사적이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착한 아이, 그게 바로 나였다.

'착한 친구'라는 가면은 심리적 약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내 유일한 생존 도구이자 무기였다. 고개를 가로저을 줄 모르는 아이, 아니라고 말 못 하는 아이, 누구도 귀찮게 하는 법 없는 얌전한 아이였다. 입을 떼면 내 약점을 들킬까 두려워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내리 짝꿍들과는 말 한마디 자연스럽게 나누지 못했다. 그저 고분고분 웃어주면 '너 되게 착하다'라고 하니 그 말을 위안 삼아 나를 다독였다. 그렇게 나는 착한 아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후, 나는 스스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하나 둘 단절해 나갔다. 애써 노력해야 하는 관계가 버겁고 불편했다. 학창 시절 얕게 유지되던 친분은 사회인이 되는 순간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항상 누군가에게 인정받길 원했다. 인정에 대한 내적 갈구는 커져만 갔다. 나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는 내가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러웠지만 늘 불안하고 외로웠다. 오롯이 혼자이고 싶었지만 혼자여서 괴로웠다. 땅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둥둥 떠있는 기분이었다. 모두가 나를 싫어하게 된 상황에서 모두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는 이 심리, 대체 무슨 아이러니인가.

수줍음은 '자기애'의 결정체이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극도로 예민하게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자연히 삶의 무게 중심은 나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가 있었다. 상대에게 내 우위를 허락하며 나 스스로 자세를 낮췄다. 그들이 반사하는 내 모습을 나의 '자아상'으로 만들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 어른들이 빚어준 내 모습은 못나고 혐오스러웠다. 왜곡된 자아상을 숨기기에 급급해하고 전전긍긍하느라 진짜 내가 어떤 모습인지 들여다보지 못했다. 보기 무서웠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할 것 같았다. 그로 인해 말을 잃었고 몸은 굳었다. 행동거지는 점점 부자연스러워졌으며 이 경직된 자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진심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진정으로 공감한 적도 없다. 내게는 그럴 여유나 에너지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추한(것이라고 여겼던) 구김살을 감추느라 전전긍긍했던 나에게 진정한 친구 하나가 남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자존감 높이는 비법이 궁극적으로는 남들에게 인기를 얻는 법, 남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법이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이 나를 높게 사면 내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이라고 믿은 때가 있었다. 상대나 어떤 대상으로부터 평가 절하를 당하면 내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그러나 나의 영역을 수호하고 그 안에서 내 소임에 충실한 것만으로도 칭송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때로 세차고 때로 약한 물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결국 '나 자신뿐이었다. 물론 남들의 칭찬과 인정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지극히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무엇이 그들을 특별하게 만드는지 의문스럽다.

타인들 역시 나와 같이 불완전한 존재이자 인간이지 않은가.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고 처분을 내릴 재판관도 아니다. 시비를 가릴 감독도 아니다. 애초에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내 자존감에 점수를 매길 수 없다. 남에게 나를 판단할 힘과 권리를 주어서도 안 될 노릇이다. 타인의 눈으로 나를 보고 타인의 인정을 구해서 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인생이 답답해진다. 나는 자존감에도 성장판이 있다고 믿는다. 이제부터라도 사소한 기특함을 벽돌 삼아 차곡차곡 쌓아 가려 한다. 끔찍한 치과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나왔을 때의 내가 기특하다. 문득 친구에게 책을 선물할 때의 기특함이나 안부 전화를 먼저 걸어주는 기특함 등 순간순간 '나 좀 괜찮은데'라는 생각도 잊지 않겠다.

내 안의 여섯 살 꼬마는 지금도 끊임없이 나를 찾아온다. 둘러보니 어린 나를 보아줄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가여워 안아주었지만, 어느새 훌쩍 자란 내가 안겼다. 내 품에 나를 안고 다독였다. "애썼다!"

어느 날 느닷없이 다가온 이웃의 죽음, 그리고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어릴 적부터 가면 속에 갇힌 자아를 되돌아보며 삶의 의미를 찾아본다.

나 역시 작가와 동일한 삶을 살아왔기에 그녀의 삶이 남 같지 않았다. 내 안의 상처받은 자아를 다독이는 순간 나도 치유를 받는듯했다.

감추고 싶은 속내를 모두 꺼내 공유한 작가의 용기와 그녀의 삶에 많은 위안과 격려를 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 한 번밖에 살 수 없다면 인문고전을 읽어라
김부건 지음 / 밀리언서재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솔직히 인문고전을 읽고 있으면 졸리고 재미없습니다. "이게 뭔 개소리야~!"를 시전하게 되지요. 이 책을 받고도 이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러 인사들의 추천사를 보며 이 책은 다르겠지 생각했지요. 예, 다 읽은 지금 역시나 나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답니다. 역시 인문고전은 어렵습니다. 그리 추천하고 싶지는 않네요.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알고는 있지만, 순순히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인격과 자존심도 같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오로지 칭찬이나 감언이설(甘言利說)에만 집중하며 진정 자신을 위하는 충고나 질타에는 되레 '너나 잘해!'라는 식으로 되받아칩니다. 결국 귀를 닫으면 마음이 닫히고 마음이 닫히면 사람들과의 소통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누가 지적하기 전에 내가 먼저 알아차립니다.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도 몰랐던 나의 잘못을 알려준다면, 되레 기뻐하며 흔쾌히 받아들여야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찾아옵니다.

진정한 성공의 원천은 남이 알아봐 준 것에 대해 으쓱해지는 기분이 아니라, 나를 이겨낸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고통스러운 그 과정마저 즐기며 감사해할수록 성공적인 인생을 위한 자신의 임계점이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신세 한탄만 하지 말고 자기가 잘할 수 있고 잘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야 합니다. 꿈을 이루는 사람은 꿈을 꾸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무던히 노력하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탈무드>에서 말하기를 승자가 즐겨 쓰는 말은 "다시 한 번 해보자!"이고, 패자가 즐겨 쓰는 말은 “해봐야 별수 없다!"입니다. 지금 겪는 가난과 불행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일상을 즐거움으로 채워나가야 합니다. 이때 비로소 당신은 인생의 승자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서 성과를 내려면 그것에 전념해야 합니다. 특히 경쟁 사회에서 그저 그런 성과를 내는 조직은 퇴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선택과 집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스티븐 코비의 아들 숀 코비는 목표를 정하기 전 점검 사항으로 4가지를 언급했습니다. 첫째, 내가 정말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는 재능에 관한 것입니다. 둘째,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이는 열정에 관한 것입니다. 셋째, 내가 돈을 벌면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 이는 필요에 대한 것입니다. 넷째,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양심에 관한 것입니다. 자신의 재능과 열정, 그 일에 대한 필요성과 양심에 부합된 분야에서 집중과 전념을 통해 최고의 경지에 이를 수 있어야 합니다.

책을 읽으며 그나마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문구들입니다. 100가지 이야기를 나열하지만 그다지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하네요.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면 좋았을 텐데... 이 책을 읽으며 지혜를 얻는 것이 아니라 '지겹다, 이걸 내가 왜 읽고 있을까'하는 자괴감이 점점 더 커졌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