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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드라마가 되다 1 한국사, 드라마가 되다 1
호머 헐버트 지음, 마도경.문희경 옮김 / 리베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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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으로 남의 나라말을 배우고, 그 나라 역사를 책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쓰러져가는 조선을 자신이 태어난 나라보다 더 사랑한 사람. 
웨스트민스터사원 보다 조선 땅에 묻히길 원했던 사람.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라 극찬하며, 한글 사용이 저조한 것을 안타까워 한 사람.

1886년 육영공원 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20여 년 동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며, 선생이기에 앞서 신앙인으로 
이 땅에 희망을 심어주던 그는, 대한제국 고종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과 만국 평화회의에 참석합니다.

그만큼 조선을 사랑했기에 외국에 조선을 알리기 위해 조선 역사를 영어로 집필합니다.
고종 황제의 윤허를 얻어 조선왕조를 책에 실었고, 고대사와 중세사는 [동사강목]을 인용하고, 또한 [동국통감]을 참조하여 
철저히 검증하여 1,000쪽이 넘는 대작을 발간합니다. 이런 불후의 작품을 남긴 작가는 바로 호머 헐버트 선교사입니다. 

처음에는 과연 이방인이 얼마나 알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고대 설화와 중국의 문헌을 대조하며 정리한 것을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과연 단군 신화부터 삼국의 탄생 설화까지 한국인도 알기 어려운 내용의 글이 올라와 있습니다.
더욱이 이 책이 부각되는 것은 일제 강점기를 겪기 전 자주적인 조선의 역사를 반영했다는 점입니다.
한국사는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일본의 식민사관 교육을 통해 역사를 왜곡시켰습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 교과서 역시 이런 왜곡들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고,
거기에 군부 독재를 미화하는 내용까지 덧붙였다고 하니 더욱 개탄스러울 따름입니다.

[한국사, 드라마가 되다] 1권에는 고대사부터 조선 초기까지가 담겨 있습니다.
고대부터 중국이라는 강대국에 생존을 위해 머리를 숙이며 왕권을 인정받는 모습이 조금은 비굴해 보입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반론해 보지만, 
북방의 최강국이었던 고구려까지도 조공을 바치며 머리를 숙였다는 점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이런 아픈 역사 인식이 우리 세포에 남아있어, 중국 사람을 미워하고 깔보는 편견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전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경제력, 국방력을 갖춘 중국을 무시하는 민족은 한국 사람뿐이지 않을까요?

이 책에서 헐버트 선교사는
암울하고 쓰러져가는 조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외세 침략을 막아낸 전투와 훌륭한 장군을 소개합니다.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여, '조선 사람들은 예로부터 훌륭한 리더를 만나면 어떠한 난국도 훌륭하게 이겨나간다'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이 책을 읽는 대상이 외국인이라 쉽고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책을 기술하였습니다.
책 한 권에 무수한 세월을 정리한 만큼 자세한 기록보다는 큰 사건과 흐름을 위주로 하였습니다.
이 책을 통해 외국인이 바라본 한국사의 모습은 어떨지 만나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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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의 고수 - 노력과 승진은 비례하지 않는다
나이토 요시히토 지음, 강다영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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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라면 연봉이 많은 대기업에 취업해서 부사장까지 승진하여 명예로운 은퇴를 꿈꿉니다.
하지만 현실은 낙타가 바늘귀를 들어가기 보더 더 힘든 취업 경쟁에 밤늦게까지 야근이 필수인 생활입니다.
어느덧 40대가 되어 실무보다는 관리 업무가 주된 일이지만, 책을 읽으며 참 기발하고 참신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갓 입사한 새내기 직원에서 대리가 되기까지 기간은 회사에서 월급을 주며 업무를 가르치는 단계입니다.
새로운 업무를 하다 보니 실수도 많고, 업무의 숙련도도 낮아 주눅 들어 있는 시기입니다.  
이런 친구들에게 책의 저자는 "스피드의 법칙
"만이 성공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제안합니다.
예를 들자면, 노래방에서 먼저 노래 부르기, 회의 시간에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를 말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눈에 띄면 당연히 일도 더 많이 받게 되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발언하고 많은 말을 한 사람일수록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 실험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지적받는 즉시 일을 수행하며 나쁜 소식은 빨리 보고할수록 좋답니다.

대리에서 과장까지는 그동안 배운 지식을 가지고 업무를 숙련하는 단계입니다.
이때는 일이 재밌고 다른 일도 더 배우고 싶은 욕망이 가득한 시기입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섬세함의 법칙', '배려의 법칙', '인내의 법칙'
을 추천합니다. 
예를 들어, 하찮은 복사를 하더라도 연필로 쓴 메모가 있다면 복사 농도를 짙게 한다던지, 서류 철하기 편하도록 왼쪽 공간을 남겨두는 섬세함은 어떨까요? 그리고 과다한 상사의 업무를 보았을 때 시간을 내서 자료를 조사한다든지, 늦게까지 야근하는 상사를 위해 맛있는 커피도 대접하는 것도 좋겠지요. 그리고 상사와 의견 대립이 있을 때는 직접적으로 논쟁하지 말고 사실과 데이터만 살짝 들이밀어 보세요. 이렇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조금씩 자신의 능력을 넓혀보세요. 언젠가는 능력을 인정받을 때가 온답니다.

부장 이상의 관리자들에게는 '처세의  법칙'을 추천합니다.
업무를 지시할 때는 분명하고, 마감시한을 정해서,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직원의 부족한 점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하루에 3번 이상은 칭찬을 해야 합니다.
@@씨, 항상 고생한다고 사장님이 말씀하시던데요?
@@씨, 영업부에서 @@씨 도움으로 계약을 성사했다고 칭찬이 자자하던데요?
또한 어린아이를 대하듯 쉬운 말로 업무 지시를 하여 직원들이 업무의 목적을 정확히 파악하도록 해야 합니다.
관리자로서 업무가 막중하지만 직원들에게 미움받지 않도록 노력도 게을리하면 안 되겠지요?

사회 초년생에서 관리자까지 직장인이라면 다른 누군가의 돈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남의 돈 먹기가 그렇게 쉽지 많은 않죠? 일을 해야 돈을 받고, 또 일을 잘해야 인정받고, 승진해야 돈을 더 받는 세상이니까요.
남들보다 더 빨리 승진하고,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직장인이라면, 한 시간 독서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바꿔보는 것을 권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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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전략 - 불황에도 잘나가는 회사들의 27가지 비책
강성호 지음 / 페가수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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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돈 많이 버는 꿈을 가지고 창업을 시작한다. 
이를 반영하듯 
통계청과 중소기업청의 통계에 의하면 2000년 이후, 창업기업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4년에는 8만 개를 넘은 신생기업이 2015년에는 9만 개를 넘어섰다. 
창업의 열기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지만 생존 기업률은 얼마나 될까?
2015년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은 1,500여 곳으로 2009년 금융위기 속에 895개의 법정관리 기업보다 약 1.5배 증가한 숫자이다. 또한 대마불사라 믿어왔던 
국내의 굵직한 대기업인 STX, 웅진, 동양 같은 큰 기업도 법정관리를 받는 현실이다.
2013년 현대경제연구원의 연구결과에는, 신생기업의 17.3%가 1년을 넘기지 못하고 58.6%가 3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창업기업으로 10년 이상 사업을 지속하는 경우는 불과 8.2%라고 한다.
이렇 현실 속에서 경영자들은 뭐 새로운 것 없을까? 어떤 사업을 해야 돈이 될까? 경쟁자를 따돌리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한다.

그렇다면 혁신 제품을 개발하면 이런 경쟁에서 자유로울까?
 거빌이 2006년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시장에 출시된 신제품의 실제 가치를 3으로 가정할 경우, 제품 개발한 회사는 이 제품의 가치를 9로 인식한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소비자는 실제 가치의 삼분의 일 정도인 1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개발자와 실제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 인식의 차이는 무려 9배나 된다는 것이다.
결론은 혁신 제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어떻게 하면 시장을 정복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회사의 차별화된 가치 창출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기는 전략이란 바로 실천하는 행동을 의미한다고 한다.
아무리 멋지고 훌륭한 아이디어라도 이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를 반영하여 유통의 혁신, 협업, 신기술 도입으로 차별화된 전략으로 소비자들을 감동하게 하라고 한다.
미국 및 유럽의 기업들은 자본주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역사와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은 단기간 급성장을 한 탓에 기업문화나 전략이 특히 부족하다.
이런 제약조건을 한탄하지 말고, 우리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성장전략인 선두 기업을 모방하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을 잘 활용하여, 우리만의 독특한 차별화를 통해 생존을 넘어 승리하는 기업으로 이름을 날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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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
김동진 지음 / 참좋은친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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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아이들과 도보관광으로 양화진 외국인 묘역을 다녀왔습니다. 
많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무덤 중에 왠지 기억에 남았던 헐버트 묘비였습니다.
왠지 이유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그 이름만은 뇌리에 명확히 남았습니다.
2017년 설 연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러 서가를 옮겨 가는 도중 '파란 눈의 한국 혼, 헐버트'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황제의 밀사'라는 부제목에 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최근 서울역사박물관의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기획전시를 관람하며 34번째 
민족지도자라는 뜻을 다시 깨우치며 헐버트는 어떤 일을 했는지 책으로 만나봅니다.

갑신정변 이후 민족의 교육혼을 깨우기 위해 미국에서 3명의 교사를 초빙합니다.
'육영공원"이라는 근대식 학교를 세우고 고관과 양반 자녀를 특별히 입학시켜 미국인 교사 3명에게 교육을 받게 합니다. 최초의 학교라는 명분으로 고종이 직접 시험을 주관하며 궁궐에서 시험도 치르게 됩니다. 이때 3명의 교사 중 한 명으로 조선에 온 헐버트.
황후 시해 사건이 발생하자 신변의 위험을 느낀 고종은 외국인 선교사들의 불침번 속에서 기나긴 밤을 보냅니다. 
3인 1조로 불침번을 당번으로 궁궐을 지킨 헐버트.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미국에 알리기 위해 고종의 특사 자격으로 루스벨트를 만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외국인.
그는 미국의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모른 채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상원의원, 미국 정부, 대통령을 쫓아다니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이준, 이상설, 이위종 3인을 헤이그 특사로 알고 있지만, 4번째 특사인 헐버트에 대해 모르고 있습니다.
고종의 친서와 특사증을 가지고 제일 늦게 한국을 떠난 헐버트. 
일제는 헐버트가 특사 자격을 가지고 만국평화회의장에 들어갈 것을 우려해 그에 대한 감시를 철저히 합니다.
그 때문에 이준 열사는 일제의 눈을 피해 한국을 빠져나갑니다.
만국평화회의장에서 일제의 방해로 회의장에 입국하지 못한 3명의 특사를 대신해, 언론을 통해 대한제국의 억울함을 폭로합니다. 
이 때문에 고종이 강제 폐위되고 특사 3명에 대한 일제의 궐석 재판으로 사형과 무기징역이 선고됩니다.
이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일제의 만행과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강연을 통해 세계에 알립니다.
또한 언론을 통해 루즈벨트의 만행을 폭로하며 조국보다 더 대한제국을 사랑한 그.

죽음을 무릅쓰고 다시 한국 땅을 밟은 헐버트.
일제의 끊임없는 감시를 피해 을사늑약 당시 참정대신이었던 한규설을 만나 당시 상황에 대해 취재를 합니다.
또한 비밀리에 고종이 중국 상하이 독일계 덕화은행에 예치한 내탕금 $200,000을 찾아달라는 특사 자격을 위임받습니다.
일제에 의해 강제 폐위된 고종은 그 돈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헐버트를 통해 인출을 원했습니다.
헐버트가 상하이에 도착하여 예금을 인출할 당시, 그 돈은 이미 조선통감부에 지급된 후였다.
예금의 인출은 고종에게만 지급하겠다던 독일 은행장의 사인과 예치증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헐버트는 미국으로 건너가 변호사를 선임하여 이들과 소송을 진행했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시간만 흘러갔다.
1945년 해방을 맞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헐버트는 그가 특사로 위임받아 소지하고 있던 증거들을 이승만에게 인계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외교교섭으로 내탕금의 존재를 알렸지만, 신생 정부의 미숙 때문인지 유야무야되었다.

1949년 7월 29일, 86세의 노인이 된 헐버트는 이승만의 초청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습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마치 유언처럼 자식들에게 말했던 헐버트.
그 말이 현실이 되어 한국 땅에 밟은지 8일 만인 1949년 8월 5일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순국하였습니다.
그의 묘는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이승만 대통령과 이시영 부통령과 3부 요인이 참여한 가운데 사회장으로 치러졌습니다.
그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외국인 최초로 건국공로훈장 태극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아마도 제가 헐버트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 구절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묘비 중앙에 '헐버트 박사의 묘'로 한글로 새긴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이승만 대통령이 새길 예정이었지만 한국전쟁과 하야로 인해 새기지 못하고 빈 공간으로 놓여있다가, 
사연을 알게 된 김대중 대통령이 친필로 새겨 넣었다고 합니다. 
조국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 고종을 도와 조선의 독립을 세계에 호소한 헤이그 특사, 헐버트.
그분의 뜻을 기리고 나라를 더욱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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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 3 - 불안한 평화
구종서 지음 / 살림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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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권력이었던 4대 최씨 일가 무신정권이 끝이 나고, 왕정복고의 희망이 살아났습니다.
항몽이냐 화친이냐, 무권이냐 왕권이냐, 무신이냐 문신이냐, 자주냐 항복이냐의 지긋한 논리 싸움.
이것은 누가 참이고 거짓이냐를 논할 수 없는 이념 논쟁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처참한 도륙과 생산체계의 붕괴로 인한 나라로서의 시스템이 붕괴된 고려.

최씨 정권을 붕괴시킨, 김준. 
그 역시도 무인이라 항몽정책을 유지합니다.
절대권력 앞에서 왕정복고의 당면성은 사라지고 최 씨 일가의 횡포를 고스란히 이어받습니다.
이런 김준을 축출한 임연 역시 절대권력의 꿀을 빨며 왕권에 대항합니다.
결국 임연은 원종을 폐위하고 다른 왕세자를 왕으로 추대합니다.

세자 시절 몽골에 항복하기 위해 갔던 원종은 그곳에서 왕세제인 쿠빌라이를 만나 인연을 만듭니다.
후에 몽골의 다칸이 된 쿠빌라이는 원종이 폐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려에 군사행동을 개시합니다.
몽골의 무력시위에 놀란 임연은 다시 원종을 복위 시키고, 원종은 자신의 왕권 강화를 위해 몽골행을 택합니다.
쿠빌라이에게 1만의 군사를 빌린 그는 강도에 남아 항몽 세력을 이끄는 무신 세력을 축출합니다.

결국 이들은 백성을 위한다는 전제하에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상대방과 이념 및 전쟁을 일으킵니다.
어디에도 백성을 위하는 그들의 모습은 볼 수 없는 아이러니 속에, 과연 백성이 주인인가 하는 의문을 가져봅니다.
오늘의 민주주의 역시 백성이 주인이라고 하지만 역시 공허한 울림에 지나치지 않습니다.
나라도 정치도 권력도 모두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지금, 우리 백성은 어떻게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할까요?
그냥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개 돼지처럼 하루를 살아야 할지, 아니면 이상향을 찾아 떠나야 할지요?
개인의 삶과 목숨을 위해서는 국가라는 큰 힘에 기댈 수밖에 없지만, 그 국가의 횡포에 개인이 맞설 수 있을까요?
인생이라는 아이러니 속에 쏜살같이 흘러가는 인생을 과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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