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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심리학 - 미술관에서 찾은 심리학의 색다른 발견
문주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9월
평점 :
미술관의 불친절함, 이 책을 만나고 사라지다
솔직히 말하면, 미술관은 늘 저에게 불친절하고 오만한 공간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른 박물관이나 체험관처럼 명확한 해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라는데 저는 도대체 뭘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는 그 묘한 불편함 때문이었죠. 특히나 유명 작가의 그림이 종종 이해하기 어려운 형태로 표현되어 있을 때, '이게 과연 명작일까? 정신병자가 그린 그림과 뭐가 다르지?'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비싼 입장권의 가치를 못 느낄까 봐 선뜻 발길이 닿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미술관에 간 심리학'은 이런 저의 편견을 완전히 깨뜨려주었습니다. 이 책은 미술 작품을 심리학이라는 렌즈로 재해석하며, 그림 속에 숨겨진 작가의 내면과 사회적 맥락을 깊이 있게 파고듭니다. 특히 정신질환을 앓았던 작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다루는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고통이 낳은 명작들
책을 읽으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나 에드바르 뭉크 외에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촌 간의 결혼으로 태어난 유전적 영향 때문에 키가 152cm에 불과했고, 평생 우울증, 불안증, 편집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독한 술 압생트에 중독되어 환각을 보기도 했고, 실제로는 있지도 않은 거미를 죽이겠다며 친구 옆에서 총을 쏜 일화는 그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엿보게 합니다.
아돌프 뵐플리의 비극적인 삶 또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다섯 살에 아버지가 집을 떠나고, 어머니에 의해 농장 노동자로 팔려가 어린 시절 내내 육체적 학대와 중노동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그는 공격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고, 여러 차례 감옥에 드나들다 정신병원에 수감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두 작가는 정신병원에서 치료의 방편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은 그들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였고,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그 자체로 명작이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아우구스트 나테라, 엘제 블랑켄호른 같은 정신질환을 앓았던 작가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집니다. 이들의 삶과 작품 세계가 궁금하다면, 꼭 책으로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살인마의 색, 초록
이 책에서 또 한 가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색채 심리학입니다. 특히 인류가 무채색을 제외하고 가장 먼저 이름을 붙인 색이 빨강이라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3만 5천 년 전부터 1만 1천 년 전 구석기 시대에 그려진 동굴 벽화에서 붉은 황토(오커)를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인류는 언어보다 그림으로 먼저 자신을 표현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색이 늘 아름다움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1775년 스웨덴 화학자 칼 빌헬름 셸레가 발견한 아름다운 초록색은 1세기 이상 유럽을 휩쓰는 유행을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이 초록색 염료는 비소를 포함한 치명적인 독성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셸레는 이 독성을 알고 있었지만, 아름다운 색이 주는 수익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이 '살인마의 초록'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인기를 잃었지만, 1930년대까지 살충제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소름이 돋습니다.
총평
'미술관에 간 심리학'은 미술관에 대한 저의 부정적인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꿔준 고마운 책입니다. 작가들의 정신 세계와 그들이 겪은 고통을 심리학적으로 풀어낸 작가의 통찰력 덕분에, 이제는 미술 작품을 보며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감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술이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분들에게 이 책을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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