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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이라면 군주론
김경준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12월
평점 :
'군주론'이란 책은 고전으로 추천될 만큼 오래된 책이다. 과거 왕과 절대 권력이 있던 시대의 책인데 굳이 오늘날에 읽어야 할까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온 국민의 머릿속에 "왜"라는 물음표를 심어준 대통령과 그를 있게 한 대한민국의 현시점에서 어떤 지도자가 정말 뛰어난 지도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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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그는 누구?
마키아벨리는 1469년 피렌체에서 변호사를 아버지로 둔 중류 가정에서 출생했다. 1469년이면 조선은 세조의 둘째 아들 예종 재위 시절이다.
예종은 1년 4개월 정도 왕위에 있었지만 당시 남이 장군의 역모 사건이 있었던 때다. 이렇게 조선시대와 비교하니 무척이나 옛날 사람이다.
타고난 재능을 인정받아 29세 때인 1498년 피렌체 공화국 제2사무국의 서기관으로 발탁되는데, 현재의 중앙부처 과장급에 해당하는 실무 관직이다. 같은 해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안보 담당 핵심 조직인 10인 전쟁위원회의 비서로도 선출되어 현직에서 물러나는 1513년까지 15년 동안 피렌체의 외교 전선을 종횡무진 누빈다.
15세기 대항해시대의 개막으로 지중해의 중요성이 감소하면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경제력 약화는 불가피했다. 경제 환경의 변화는 정치 환경의 변화로 이어져 중앙집권체제의 통일국가로 변모한 스페인, 프랑스의 부상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정치적 입지를 급격히 축소시켰다. 지중해 제해권을 장악했던 강대 세력 베네치아조차도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갈기갈기 찢어지고 분열된 이탈리아는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정치적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마키아벨리가 태어나고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시대가 바로 이때였다. 특히 마키아벨리의 조국인 피렌체는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이 참주 형태로 통치하고 있었으나 무능력한 통치로 추방되었고, 베네치아를 본뜬 공화정이 수립되었지만 정국의 불안은 지속되었다. 이 시점에 피렌체 공화국의 서기관에 임명되며 외교 실무를 담당하며 각국에 사절로 파견되었다. 신분제 사회에서 귀족이 아닌 평민 출신이었던 마키아벨리는 대사직에 적절치 않아 보통 차석인 부사로 실무를 책임졌다. 협상을 주도하고 본국에 보고서를 써서 보내는 역할을 수행하는 피렌체 외교의 최전선에서 국제외교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경험한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공직 생활은 44세가 되는 1513년에 끝났다. 피렌체에 정변이 일어나 메디치 가문이 복귀하면서 공화국의 충성스러운 관료 마키아벨리는 직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같은 해 반 메디치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투옥되었다. 이후 풀려난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남쪽 산탄드레아의 농장에 은둔하며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를 집필했다.
르네상스가 신에게서 인간을 분리한 과정이듯, 마키아벨리는 윤리에서 정치를 독립시켰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대의 대변자였다. 마키아벨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시민의 자유와 법에 의한 통치였다. 공화정, 군주정 같은 정치체제의 외양보다 실질적 리더십을 확보하고 시민의 자유와 법치가 이뤄지는 체제를 지향했다. 특히 도덕과 윤리라는 추상적 가치에 매몰되어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리더야말로 공동체를 파멸로 이끄는 무능한 사람이라고 규정하면서, 고귀한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선 실질적 힘을 확보하고 변덕스러운 군중의 심리를 다스리면서 공동체를 생존과 번영으로 이끄는 리더의 덕목을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책 속으로
리더는 공동체의 목표를 추구하고자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다. 리더가 이끄는 조직의 특성에 따라 목표는 다양하게 변주되지만 근본 성격은 '생존과 번영'으로 동일하다. 군주의 목표는 국가를 방어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하고 공정한 법치를 확립해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국가의 목표로 회자되는 '홍익인간' '부국강병' '국태민안' 등이 모두 같은 맥락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라면 선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분명히 전제한다. 단 군주가 선함을 유지하려면 악함을 이해하고 때로는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보통의 선악 개념을 초월해야 한다고 통찰한다. 실제로 악함이 겉으로 드러나는 악인은 악인이라기보다 차라리 바보에 가깝다. 진짜 악인은 선함을 가장하는 교활함이 있다. 선과 악이 세상의 두 가지 측면이라고 할 때 선으로만 상대하는 건 무기의 절반만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으로 포장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한 악인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선인으로 위장해 상대, 즉 선인을 공격하고 파멸시키는 일이 현실에서 드물지 않다. 따라서 리더는 악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악을 이해하고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즉 선을 바탕으로 하되 악덕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선과 악이라는 두 가 지 무기를 모두 사용할 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가 활동하던 시대의 유럽에서 교회는 종교적 권한 위임과 동시에 세속 권력이었다. 교황은 세속 군주로서 교황령을 통치했고 추기경이나 주교 등 고위 성직자들도 관할 교구의 정치 행정 지도자인 경우가 많았다. 마키아벨리는 신의 대리인으로 존중받는 교황조차도 현실 통치에선 피상적 선악 개념을 넘어서는 사례를 생생하게 체험하면서 선과 악에 대한 견해를 정립했다.
통상 거짓말, 기만, 책략 등은 비난받아야 할 악덕으로 간주되나 리더의 관점에서 봤을 땐 다르다. 리더는 도덕을 외치는 종교인도 아니고 윤리를 가르치는 선생도 아니다. 리더의 임무는 공동체를 안전하게 유지하고 번영으로 이끄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개인 차원의 윤리와 지도자의 덕목은 별개다. 예를 들어 거짓말은 악덕이다.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조직 차원에서도 악덕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거짓과 기만은 현실 세계에서 조직의 생존을 위한 기본 방식 중 하나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이러한 이중성의 변주를 이해하고 구사하는 게 리더에겐 필수적 덕목이자 역량이다.
마키아벨리가 "인간이란 어떤 악이든 예사로 범할 수 있는 게 아닐 뿐만 아니라 또 그렇다고 해 완전무결한 성인일 수도 없다(로 마사 논고』 1-27)"라고 지적한 것처럼 인간은 신처럼 성스럽기도 하고 야수처럼 잔인하기도 한 양면성을 갖고 있다. 신의 속성을 가진 성스러운 인간을 통치하는 건 법이고 야수의 속성을 가진 흉포한 인간을 통제하는 건 힘이다. 법으로만 야수를 통제할 수 없고 힘으로만 인간에게 인정받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국가 번영의 핵심 요건을 '좋은 법률과 강한 군대'로 규정했다. 강력한 국가의 소프트웨어는 법률로 이해하고 하드웨어는 군대로 이해한 것이다. 그는 타국과의 싸움은 외교와 무력으로 전개된다고 봤다. 외교는 상대국을 원칙과 법률에 기반해 말로 설득하고 동의를 얻는 과정이고 무력은 군대를 동원한 전쟁이다.
마키아벨리는 부유했으나 자체 군사력이 없었던 약소국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으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외교력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런 배경에서 현명한 군주는 법률과 무력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더의 엄격함은 개인적 성향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리더의 역할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국가지도자는 영토를 지켜야 하고, 군대 지휘관은 규율을 유지해 적군에게 승리해야 하며, 경영자는 경쟁력을 확보해 기업을 생존시켜야 하는 임무가 있다. 엄격함이 개인 차원의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공인의식에 기반하고 있다면 리더에겐 오히려 바람직하다. 이런 점에서 마키아벨리는 평면적 자애심이 아닌 '현명한 엄격함'이 조직 전체를 살리는 진정한 자비가 될 수 있는 리더의 역설을 꿰뚫고 있다.
리더는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에너지의 원천은 결국 '존경 아니면 두려움'이다. 사람들은 리더를 존경하기 때문에 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으면 벌을 받기 때문에 움직인다. 물론 자발적 동기가 가장 강력하지만, 이익과 직결되지 않는 사안에 많은 사람의 자발적이고 지속적인 동참을 기대하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사람들을 움직이는 1차적 동기는 결국 '이익과 손실'이기 때문이다. 소위 자비롭고 착하기만 한 리더는 태평성대에 초등학교 반장 역할은 무리가 없겠지만, 미래를 위한 변화를 이끌거나 난세를 돌파하는 역할은 수행할 수 없다.
목표를 갖고 성과를 내야 하는 조직에서 리더가 원칙을 지키고 잘못을 지적하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조직에 적절한 긴장감이 유지되고 질서가 잡힌다. 물론 두려움은 공포와는 다르다. 공포가 근거 없는 막연한 불안감이라면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두려움은 일정한 원칙과 질서에서 발생하는 긴장감으로 해석된다. 중간 간부 이상이 되어 실제 조직을 이끌어 가는 입장에 있다면 '사랑과 두려움' '존경과 긴장감'이라는 대칭적 요소가 주는 의미를 분명히 이해하고 적절히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지프 나이는 자신의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 개념을 마키아 벨리 『군주론』의 '사랑과 두려움' 프레임으로 설명한다. 군사력이나 경제력 같은 '하드파워'를 이용해 두려움을 이끌어 낼 수 있고 비전과 소통, 동기부여 등의 '소프트파워'로 사랑받는 리더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사랑만 받으면 하찮아 보이기 쉽고 두려움만 주면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조직의 생존과 발전이 현실론과 이상론의 합주곡이듯 리더십도 사람과 두려움의 합주임을 마키아벨리는 통찰했다.
마키아벨리는 리더가 관대한 정신을 가지는 건 바람직하나, 물질을 베풀어 관대하다는 평판을 얻으려는 건 파멸의 전주곡이라고 지적했다. 대중의 인기를 끄는 것으로 충분한 연예인과 달리, 리더는 인색하다는 평가를 감수하더라도 공동체의 기초 체력을 키우고 장기적 관점에서 발전시켜야 하는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리더는 진정으로 관대해지기 위해선 인색하다는 악평을 감수할 줄도 알아야 한다'라고 주장한 건, 리더란 대중의 인기에 울고 웃는 연예인이 아니라 올바르게 인정받는 리더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조직의 리더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현재의 구조를 재편하려면 고통이 따른다. 평온한 현실에 안주할 것인지, 고통스러운 재탄생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리더의 선택에 달려 있다. 리더가 찬사를 듣고 싶은 허영에 사로잡히면,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현재 가진 걸 나누려 하고 고통스러운 결정을 내리기보다 주변에 영합한다. 막연한 관대함이 아닌 '전략적 인색함'이 공동체를 부강하게 한다.
사람들은 다분히 자신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기 때문에 리더의 선행에도 불만을 갖는 경우가 많다. 리더가 베풀 때도 분명한 원칙을 유지하지 못하면 리더의 선행이 오히려 조직 내 구성원들 간의 갈등 원인이 된다. 원칙 없는 선행은 모두를 불만에 가득 차게 하기 때문이다.
한비자의 법가사상은 법치[法], 통치술[術], 세력[勢]의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군주가 내면적으로 통치술을 습득하고 외부적으로 법치를 시행해 세력을 유지한다는 개념이다. 여기서 법치의 핵심은 공을 세우면 반드시 포상을 받고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벌을 받는 신상필벌에 있다. 군주의 권위와 사회의 질서를 세우는 기본은 신상필벌에 따른 분명한 원칙에 있다는 관점이다. 그는 "상을 지나치게 남발하는 지도자는 되레 백성의 마음을 잃을 것이며, 형벌을 지나치게 가하는 지도자는 되레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국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기본적 힘은 군사력이다. 다음으로 넓힌 영토를 운영하기 위한 제도와 법률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군사력이 강해 일시적으로 영토를 확장했으나 이후 통치체제를 만들지 못한 세력은 단순한 정복국가로만 기록되었다. 그러나 군사력이라는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제도와 법률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갖춘 고대 로마, 칭기즈 칸의 몽골은 세계 제국으로 성장했다.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지만 읽을수록 옛사람의 통찰과 혜안이 빛을 발했다. 역시 50이라는 나이에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하다 보니 책 속의 주옥같은 글귀에 눈이 띈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