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유전자 - 제국을 향한 피의 역사가 깨어난다
에릭 두르슈미트 지음, 이상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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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냉전 체제 이후의 세계주도권은 구 소련이 해체된 후에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EU연합이 가세하면서 세계의 판도는 여전히 서양세력이 주도하고 있지만 중국이란 거대한 용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을 대하자면 먼 미래까지, 아니 가까운 몇 십년 후에도 과연 이런 판도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이 책은 던지고 있다 . 

순수 한민족이 세웠던 왕조부터 시작해서 중국인 역사에서 이민족이 중국이란 나라를 통일했던 왕조는 징기츠칸이 세웠던 원나라와 만주족이 세웠던 청나라_ 

저자는 징키츠칸이 유목민의 특성인 기마민족성을 내세워 동유럽까지 세력의 판도를 키웠던 시대부터 아바스 왕조 해체까지 자신의 힘을 과시했던 훌라쿠 칸에 이르기까지, 서양인들의 심성을 자극했다.  

이후 명대에 거쳐서 정화의 해외원정은 그 세대를 이은 왕의 전폭적인 지지만 있었더라면 서 유럽의 세력 판도는 어떻게 변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했다.  

세대를 이어져오면서 서방세계의 아편중독과 관리자들의 그릇된 사적인 탐욕이 빚어낸 제국의 영광은 점차 여러 불평등한 조약을 거치면서 광대한 중국땅은 야금야금 여러 열강들의 야욕으로 그 영토를 빼앗기에 된다. 서태후의 안일한 대처는 결국 태평천국의 난, 의화단의 역사사건으로 한 점을 긋게 되고 이어 청조는 몰락하게 된다.  

쑨원의 삼민주의를 기반으로 세워진 중국은 그를 초대 중화민국 대통령으로 앉히고 그의 뜻을 받든 장제스는 또 다른 세력인 공산당의 지도자 마오쩌둥과 힘의 대결을 겨루게 된다.  

서로간의 힘겨루기에서 장제스는 타이완으로 탈출을 하게 되고 마오쩌둥은 국내의 힘든 여건을 외부의 힘으로 돌리려는 전략에 맞춰서 티베트 점령과 한국전쟁에 참여를 하게 된다.  

이 와중에 스탈린과의 배신으로 점차 자신만의 공산주의 힘을 키울것을 맹세한 마오는 점차 그 세력을 키워서 핵무기를 보유하는 힘을 길러내게 된다.  

저자는 12세기에서 21세기에 걸친 중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나열하면서 한 때는 세계를 호령했던 막강했던 용의 모습에서 외부의 세력과 자국의 내부에서 벌어진 여러 권력다툼에서 온 힘없는 시절을 보내면서 무수히 많은 국민들의 그 장소에 유린하고 이용하는 목적에 지나지 않는 소모품으로 정치를 꾸려왔다.  

그런 중국이 마오의 철저한 , 그러면서도 소련과는 전혀 다른 공산주의 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은 현 시대에 이르러서는 경제적인 힘력을 과시하고 있다.  

과거의 전쟁에서 보듯이 엄청난 국민의 수를 자랑하는 인력을 이용한 인해전술과 등소평의 공산주의식 경제체제(고양이의 색깔이 어떻든 간에 잡기만 한다는 논리)에서 뭉친 중국민들의 힘은 지금의 세계경제계에서,또는 군사적인 힘에서 그 힘을 감히 업신여길 수 없음을 나타내 보여준다. 

천안문 사태에 이르러서도 서방의 인권논란의 비난에도 여전히 그 진실을 밝히지 않고 깨어있는 젊은이들의 개방화를 요구하는 개혁 앞에서도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된 정치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점에서 중국이란 용은 잠시 땅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을 뿐 그 힘의 저력은 여전히 진행중임을 보여준다.  

현재 각국, 특히 미국의 강력한 위안화 절상 압력, 핵무기에 대한 제제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 동남아, 남미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인 자원확보와 땅에 대한 미련, 그리고 우리나라의 동방공정의 실천에 따른 역사의 왜곡을 통한 땅에 대한 개념 자체를 바꾸려는 모습은 거대한 용이 서서히 힘찬 비상을 위한 전초적인 기치의 모습으로 비쳐보이고 있다.  

희귀금속에 대한 압박으로 인해서 강대국인 일본이 무릎을 꿇은 일은 비단 이 선에서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 일례라 할 수 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중국인들에게 19세기는 치욕의 시대였고, 20세기는 그것으로부터 탈출하는 회복의 시대였으며, 21세기는 우리의 우수성을 떨치는 시대가 될 겁니다.  

위의 말처럼 중국은 이제 중국이란 나라 안에서 뿐만이 아닌 저자의 말처럼 태평양 시대에 접어들 시대를 대비해 일본, 미국의 힘을 물리치고 자신들이 세계 제일이 되고자 하는 옛 중화사상에 걸 맞는 행보를 보인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이처럼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총성없는 전쟁이 실시간 진행되고 있는 이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그에 맞설 정책이나 경제적인 우위권 다툼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물음을 던진다. 

넓지도 않는 땅덩어리에 인구밀도는 최고, 저 출산율의 심각성마저 대두되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가 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정말 중요하다는 인식을 던져주고 있다.  

지적재산권의 확보와 활로를 개척하기 위한 예술계의 지원, 공공교육의 확장, 숨은 보물이 많은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에 대한 지원을 계속함으로써 우리의 숨을 재능을 쌓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원전수주나 차세대 주요 산업 육성 발표가 있는 지금은 위기가 곧 기회라는 생각에 발표된 좋은 결과란 생각이 든다.  

중국의 용은 서서히 , 그러나 누가 "어" 하는 사이에 세상의 주도권은 변하고 있는 이 때 우리의 보다 적극적인 자세와 그에 대비가 필요함을 여실히 느끼게 해 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소 작은 글씨로 중국의 주요한 역사적인 사건을 나열하면서 특히 우리의 역사 한페이지인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서술은 읽는내내 "만일"이란 단어가 이처럼 절실히 원한적도 없었을 만큼 안타깝고 아픈 현실을 드러낸 부분이다. 저자의 해박한 중국에 대한 취재와 중간에 일단락을 지으면서 보너스로 그 시기에 해당하는 역사의 이야기는 읽는 동안 지루함을 덜어주는 역할도 한다.  

다만, 광대한 대륙이다보니 지나온 역사를 더듬어본 과정이고, 특히 군에 대한 전술적인 이야기가 들어있기에 읽는 독자에 따라서는 지루할 수도 긴박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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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오브 워터 - 흑인 아들이 백인 어머니에게 바치는 글
제임스 맥브라이드 지음, 황정아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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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의 아버지는 아프리카계 흑인 , 엄마는 1921년 폴란드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2살 때 랍비인 아버지와 한쪽 손은 굽어지고 다리는 절고 위에 병이 있는 엄마를 둔 레이텔 데버러 실스키란 이름의 백인 여성이다.  

위로 누나, 형이 7명,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침례교 개척 목사로 일하던 중 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이후 엄마는 나를 낳고 1년 후 정도인 시점에서 양부인 , 그것도 백인이 아닌 흑인과 인디언의 피를 가진 사람을 두번 째 남편으로 맞고서 그와의 사이에 4명의 자녀를 더 낳았다.  

이 글은 미국에서 재즈 뮤지션이자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아들의 글이다.  

글의 구성은 아들이 엄마의 과거를 묻기 시작하며서 부터 , 그것도 14년이 흐른 후에 엄마의 입을 통해 전해진 글을 가지고 자신의 이야기와 엄마의 회상으로 시작되는 두 갈래의 글로 나뉘어져있다.  

당시의 독일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서 엄마의 재력과 미국행이 용이하다는 이유로 맘에도 없는 엄마와 결혼한 아버지는 흑인을 극도로 싫어하며서도 그런 흑인을 상대로 배가 넘는 이익을 내는 장사를 해 경제적으론 궁핍함이 덜했으나 자신은 성적인 놀이대상이 되었고, 엄마를 무시하는 행동, 유대인이 지켜야 하는 성서구절의 암송, 안식일과 유대인의 음식만을 고수했던 생활에서 버거워하던 차 오빠는 가출을 하게 되고 먼 훗날 전쟁에서 전사했단 소식을 듣는다.  

자신을 유대인이라며 놀리던 백인 학생들에서 낄 수 조차 없었던 엄마는 자신이 사랑했고 서로 사랑했다고 믿었던 흑인 남학생 사이에서 임신을 하게 되지만 남학생의 책임감 없는 말과 다른 흑인 여학생과 결혼하게 됬다는 사실, 그에 앞서 엄마가 자신의 일을 알고 있었음에도모른 척 해주고  아버지의 후환이 두려워 서둘러 이모집으로 보내 중절을 하게 한 시절은 엄마에겐 성장의고통 그 자체였다.  

이후 엄마는 아빠되는 사람을 이모의 공장에서 일하던 중 알게되었고 백인과는 다른 부드러운 성격과 유머에 반해 동거를 시작하게 되고 가족들로부터 죽은 사람이란 선고를 받기에 이른다.  

아픈 엄마와 어린 여동생의 부탁을 뿌리치고 집을 나온 이후 두 남편과의 사별 후 엄마는 타이피스트로서 생활을 하게 되고 12명의 자녀들을 키워나간다.  

작가 자신 또한 항상 엄마의 흰 피부가 부끄럽고 궁금해서 매번 물어보지만 엄마의 대답은 확실한 것이 없는 채 뚜렷한 말도 해 주지 않을뿐더러 윗 형과 누나들은 말할 것도 없이 공부와 악기 연주외에 다방면에 걸쳐서 교육을 받게하는 억척스런 엄마로만 보일 뿐이다.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형과 누나들이   흑인 해방 운동의  열기로 휩싸이고 자신들의 정체성에 반항의 시기로 홍역을 앓게 되었을 때도 엄마는 꿈쩍도 안했으며 작가 자신 또한 고등학교 시절 뛰쳐나와 마약, 절도,주유소 직원,,, 온갖 일을 경험하며 인생에 대한 것을 배워나간다.  

정신을 차리고 대학과 신문사에 무난한 생활을 하던 중 엄마의 입을 통해서 할아버지가 살고 계실 만한 주소를 추적하는 일 , 엄마가 살았더 지역 탐방, 엄마의 유일한 친구와 다시 재회하게 했던 일, 개척교회로서 그 명성을 이어 나간 아버지와 뜻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교회에 참석함으로써 엄마의 오랜 옛 기억과 재회를 하고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된다.  

참으로 감동적인 글이다.  

작가의 얼굴을 보면 영락없는 흑인이다. 작가가 말했듯이 무슨 일이 발생해 엄마를 대동하고 나설 때의 상대방이 당황했던 얼굴 표정, 자동차가 있었어도 전철을 이용했기에 노선을 꿰뚫고 살았던 어려웠던 시절, 형제간의 먹기 위한 쟁탈전, 같은 흑인들이 다니던 학교를 거부하고 꼭 백인들이 다니던 학교에 다니게 했던 열성 , 윗 세대가 대학 관계로 집을 떠나게 되면 다음 차례가 수장이 되어 형제간에 우위서열을 다듬던 일등은 우리의 부모님들이 겪었던 일상생활사를 엿보는 듯하다.  

그런 가운데 별난 엄마의 아빠의 선택은 어쩌면 시대상 흑. 백간의 데이트 현장조차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결혼은 더더군다나 이해수준을 넘어 도저히 용납이란 것 자체가 허용이 안되었던 시기에  엄마의 자라온 성장배경과 무관치 않단 생각이다.  

같은 백인일지라도 유대인을 무시했던 왑스 계층, 그런 유대인들 조차도 흑인을 무시하던 시대에 자란 엄마는 정서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했던 어린시절이 흑인 소년을 만나게 되면서 진정한 사람에 대한 소통과 사랑이 무언지 깨닫게 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엄마의 생각은 피부색을 떠나 진실성, 성실성,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서 인간을 보았기에 두 사람의 남편의 피부색은 상관이 없었다.  

자식들의 교육 또한 유대인의 정신답게 돈만 있다고 세상은 살아지는 것이 아닌 이상 머리에 지식이 들어 있어야 한단 잔소리로 자식들의 앞날을 위해 억척스러울 수 밖에 없는 생활을 한다.  

무료공연이나 전시회 공연, 악기 다루는 일에 대해선 만사를 제쳐놓고 그 많은 아이들을 타인들이 보건 말건 자신의 뜻대로 밀고 나간 신념, 이웃이 뭐라하건 집 안의 일에 대해선 일절 밖에 나가서 함구를 할 것, 숙제와 공부타임을 중요시 한 점, 매를 들땐 용서가 없는 철칙을 준수한접, 이 모든 점이 자식들이 자신의 피부와 엄마의 피부가 다른 점에 대한 반항의 시절을 거치면서도 결국 돌아오게 만들수 밖에 없었던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작가 자신이 사회인으로 겪은 자신의 피 내부엔 유대인의 피가 흐른다고 인정하면서도 세상은 피부에 의해서 정치적,사회적으로 이용된다는점, 성공한 흑인들의 경우도 자신들이 어렵게 살던 그 시절의 사람들과 교류를 원하지도, 자신이 겪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하길 꺼려한다는 점에선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용광로의 피부 전쟁을 보느듯한 아슬함과 씁씁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혼혈로 살아간다는 건, 마치 재채기가 나오기 전에 코에서 느껴지는 따끔따끔한 느낌, 얼른 나오기를 기다리지만 절대 나오지 않는 느낌과도 같았다."라고 표현한 대목은 혼혈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저자의 솔직한 심정을 말해준 대목이다.  

저자 자신 또한 흑인과 백인 사회에서 보여지는 이견이 나올 시 맘속으로 흑인을 옹호하지만 겉으론 결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단 글엔 미국사회에서 부대껴 살아가야 하는,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만이 공감할 부분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도 이젠 다문화의 가정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인종간의 피부 외면과 멸시가 아닌 진정한 인간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교육적인 배려가 필요하단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저자 엄마의 확고한 신념의 토대로 유대교에서 자신의정체성을 기독교로 전환함으로써 비로소 인생의 참 된 삶을 알았다고 말하는 대목은 피의 색깔이 중요한 것이 아닌 내면의 감성과 자질, 그것을 주위환경에서 인식되어지는 수준에 의해서 일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의 폭이 얼마나 다양해 질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  

어렸을때 난 어머니가 어디 출신이고 어떻게 태어났는지 궁금한 적이 많았다.

어디 출신이냐고 물어보면 어머니는 "신이 날 만드셨지." 라며 말을 돌렸다.

백인이냐고 하면 "아니, 피부색이 옅은 편이지."라며 또 말을 돌렸다. 

위의 구절 처럼 엄마의 낙관적인 생각은 자식들의 교유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아주 훌륭한 사람으로 성공해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으로 거듭난 계기를 열어준 저자 엄마의 인생관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책 말미에 올해 1월에 타계한 레히첼 데버러 실스키(유대이름)에서 루첼 드와치라 질스키로 바뀐 미국에서의 이름, 다시 루스란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길 원햇던 엄마의 인생 전편에 흐른 이야기 구술은 자신이 잊고자 노력했었던 그 젊은날의 삶이 다시 아들로 하여금 불러내게 됬을 때 이미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모두 용서한 상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의 흐름이 솔직하고 강물처럼 유연하게 흐른 구성은 읽는 내내 손에 놓지 못하게 하고 진정으로 아름다운 생을 살았구난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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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리에트가 웃는다
엘자 샤브롤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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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부 산악지대 남동부에 위치하고 있는 세벤 지방의 풀리주악이란 소 마을이 배경무대_ 

날마다 기상할 적마다 자신의 나이인 백한 살 하고도 몇 일째 하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마을 최고령 할머니인 쥘리에트는 언제 죽을지 모를 자신의 생의 마감에 대한 준비로 tv옆에 분홍색 대리석을 준비해 놓고 자신의 무덤위에 덮을 것으로 사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산다.  

너무나 잘 들리는 귀와 발코니가 있는 덕분에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그녀는  마을의 주민 연령대가 80을 넘기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그녀의 이웃인 방구쟁이 로베르, 정신을 놓은 식료품 주인이었던 리폴랭과 그 부인 자네트, 오토바이와 헤드폰을 끼고 있어서 감전된 놈이라 불리는 우편 배달부 엘비스, 59살의 전직 은퇴교사 부부인 프란츠 부부.... 소수의 주민들이 모두 문을 닫아놓고 살아가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그런 그 마을에 가장 나이어린 꼬마가 있었으니, 47살의 피에로_ 

185cm의 키에 97kg의 몸을 갖고 있는 그는 엄마와 단 둘이 살면서 마을의 온갖 식품 배달 심부름과 고칠것을 고쳐주는 팔방미인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엄마가 세상을 뜬 뒤 마을을 떠나 진정한 가족을 이루고 싶다고 떠나겠단다.  

후임자가 올 때까지 일하겠다는 그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어떻하든 붙어있게 하려고 머리를 쥐어짜 내지만 해결이 안보이는 가운데, 80이 넘은 숫처녀인 일명 "두더지"란 별명으로 살고 있는 레오니의 무심코 한 말이 도화선이 되어서 결혼 시키기 작전에 돌입하게 된다. 일명하여 나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바로 여자를 이 마을로 데려오면 되는 것! 

독일놈 이란 별명으로 불리게 된 은퇴 교사 프란츠의 컴퓨터가 컴 통신망이 연결되어 있는 쥘리에트의 집에 설치가 되고 고르고 골라서 러시아 태생의 이름은 타티아나를 갖고 있는 여성을 찾는것_ 

검색창을 통해서 그들이 원하는 여성과 연락이 되고 피에로는 졸지에 공중인이자 이름은 피에르 드 폴리주악으로 살아가는 인물로 창조된다.  

그녀를 데려오기 위한 십시일반의 돈이 모아지고 그녀를 만나서 데려왔지만 정작 그녀는 사내아이와 엄마가 있는 상태,  이런식으로 연결이 되서 만난 남자를 통해서 선물과 물품을 받고 고국에 돌아가 팔아가는 생활을 하는 여자였다. 

모든 정황을 알게 된 피에로는 두더지의 갑작스런 병으로 인해서 인근 병원으로 후송이 되고 빈 집이 된 그 곳에 타티아나가 계속 머물도록 상활이 돌아가는 가운데 그녀와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두더지가 죽고 타티아나도 고국으로 돌아간 사이 메신저 연락은 점차 드물어지면서 우편 배달하던 감전된 놈은 전자음악에 투신하기 위해 사표를 제출 , 대신 염소똥이란 별명을 얻게 된 조그만 40세 전후의 여인이 그 일을 대신하게 되면서 피에로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드디어 백두 살을 맞은 쥘리에트는 마을의 새로운 활기를 느낀다.  

아주 유쾌하게 웃으면서 읽은 소설이다.  

배경이 우리나라의 농촌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의 분위기와 아주 외진 산골마을이 갖고 있는 고립된 환경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각자의 생각속으로 살고 있는 곳이다.  

성실한 피에로에 대한 사랑과 그가 없으면 일절 생활에 필요한 모든 처리가 불편했던 노익장들의 활발한 장가보내기 활동은 처음 메신저를 보내기 위해서 쓴 편지 내용은 일말 유쾌함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숫처녀인 두더지가 노골적으로 비치는 일생 일대의 남녀간의 화합을 원하는 발언은 원색적이지만 맛이 간 여자란 느낌이 나도록 성격이 아주 잘 드러낸다.  

마지막 생을 마감함에 있어서 그녀의 소원을 들어준 로베르의 행동은 찡한 여운을 남기고 그녀가 돌아왔을 때 이제 몇 명이 남았다는 식의 사람 수를 헤아리는 말엔 원수같이 내뱉는 말에도 진한 우정과 서로간의 따스함이 느껴지는 묘한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여자를 데려오는 선발과정에서 동양인도 괜찮다고 하는 주장에 그런 결과가 계속 된다면 이 마을엔 눈이 찍 찢어지고 검은 피부의 사람들로 둘러싸일 것이란 말엔 인종색에 대한 차별성이 깃들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도 이젠 다문화 가정이 많은 가구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피에로같은 경우에 처한 사람이 없다곤 보기 어려울 정도인 것이 현실이다 . 

이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사람사는 곳은 어디서나 똑같고 사랑하고 싸우고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동안 서로의 진심이 통한다는 일말의 결과를 보여준다.  

수면제를 타서 잠들게 한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노인네들의 활약상은 그 어느 장면보다도 활력이 넘치는 장면을 제공한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세벤 사투리가 주는 뉘앙스를 알고 있었다면 이 책 내용이 더욱 감칠맛 나게 다가 올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의 내용이나 말의 화법이 우리가 알기 쉽게 해 놓아서 읽는 내내 즐거움을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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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박정호 지음 / 나무수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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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유혹을 느끼게 마련이다.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오직 내게 주어진 휴식과 안락을 위해서...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기에, 쉽게 직장에 사표란 것을 내던지고 나 홀로 지구 몇 바퀴식의 도전은 그저 한낱 꿈에서만 가능한 것 또한 현실에 처한 우리에 인생이다  

저자는 그런 것을 과감하게 던지고(정말 그 용기가 부럽다.) 터키행 티켓을 끊고서 헤르메스가 이끄는대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던진다.  

터키의 관문인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내린 즉시 그 나라사람들의 독특한 체취는 어쩌면 역시 우린 한 민족임이 틀림없어란 생각을 하게 한다. (우와! 저자의 표현자체는 그야말로 암~ 그려 그렇구말구, 나랑 어쩜 그리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냐? 하는 동질감을 느끼게 했다. ) 

유럽과 동양을 이은 특수지형에 따라 문화유산 자체도 동 서양의 혼합을 느낄 수 있는 90%가 이슬람 신자인 그들은 타 종교에 관해서 인정하되 선교 활동 자체를 금한다. 내가 믿고 있는 종교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관여를 하지 말고 당신들이 믿는 종교를 믿으라는 듯. 

시차가 크기에 저자가 도착 한 후 새벽에 눈이 떠지는 것은 당연! 특히 기도시간을 알리는 소리에 눈을 떠 보게 되면 어김없이 새벽을 저자도 첫 날 느낀 듯 하다.  새벽의 길에 나선 방랑자 처럼 아스라이 떠오르는 해를 보는 감상이 부럽단 생각이 든다.  (자유 여행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시리아에서의 순박한 사람들 모습, 페트라에서는 인디아나존스의 해리슨 포드를 만난 듯 반가웠고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는 그 위대한 솜씨에 고개가 숙여진다.  

산티아고의 기나긴 여정에서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성, 이슬람 마지막 왕의 고뇌에 찬 역사 일대기의 현장 알람브라 궁전은 세고비야 기타로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기억나게 한다.  

모든 인류의 시발점인 태고의 자연의 장소인 아프리카_ 

그중에서도 잘 산다는 축에 속하는 세네갈에서의 어부들의 조업방식이나 많은 것을 원하지는 않지만 이슬람의 신의 뜻에 따라 오늘도 고기를 잡는다는 그네들의 생활상은 오히려 산업화의 뿌리를 내린 현대인들의 고향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유럽인들에 의해 자행된 노예의 역사 현장은 지금도 그들의 뿌리가 세계각지에 뿌리를 내리게 한 원인을 제공하고 모진 픽박속에서 살아남은 그네들의 후손들의 나아지지 않는 현실의 어려운 상황은 우울함을 전해준다.  

탐험과 도전이 필요한 것이 여행이라면 안전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보수적인 여정 방식이 방문이라고 지은 저자의 글엔 동감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게 한다.  

타클라마칸의 사막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과 모래, 그래도 인간은 강하기에 그 안에서도 순수한 자신들의 유목생활과 신앙, 포도를 경작하는 위구르인들의 모습은 중국이 실시하는 정책에도 언젠가 그들이 원하는 시대가 왔으면 하는 바램을 지니게 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란 광고의 카피가 있듯이 노력해서 잠시나마 자신에게 보상의 의미로 떠나는 여행이 있는가 하면 산티아고 처럼 계속 걷기만 함으로써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자신과의 신앙과 싸움인 여행이 있다.  

여행을 어떤 목적으로 하든간에 저자의 말처럼 여행은 하나의 중독현상을 실현시킨다.  

떠날 때의 모든 짐을 버리고 홀가분한 기분이 설레임이란 단어로 압축이 되고 헤르메스가 여기가 좋다고 알려주는 대로 가 보는 장소는 해외든 국내든 일단 떠난다는 것에 대한 무게를 두자면 여지없는 중독의 일상으로 전환이된다.  

여행 중 그리워하던 음식이나 친구들, 가족들이 보고싶음에도 일단 돌아오고 나면 또 다시 어디론가 가야만 할 것 같은 증상, 바로 불안과 허무감이 내재된 여행을 해 온 사람으로서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작가의 직업상 세계여행을 돌아본 탓도  있고 아직도 가 봐야 할 곳이 많다는 것엔 떠나본 자만이 알 수 있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자연과 인간, 그리고 문화유산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그네들만의 소통과 길에서 만난 인연의 소중함을 모두 느낄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두루두루 유용하다는 느낌이다.  

나를 전혀 모른 곳에 대한 동경, 그 속에서 부대끼며 지내다 오는 일상 생활의 모습, 그것이 모태가 되어 나의 미래를 좀 더 진지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데에서 여행이란 단어는 그래서 더욱 정겹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저자 자신의 사진을 찍은 솜씨도 좋고, 유명지라고 해서 꼭 유명장소를 찍은 것만이 아닌 자연스런 거리의 풍경모습 사진은 읽는 내내 즐거움을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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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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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읽었던 책 중에서 다시 손에 들게되는 경우가 있다. 

읽었어도 다시 그 감흥의 여운이 내리 가시지 않는 책을 다시 손에 집어서 읽고 또 다시 다른 감흥을 주는 책들 중에서 바로 공중그네가 외국 소설류에 속한다. 개인적으론 한국소설로는 대하소설이나 성석제 님의 글을 좋아하지만 , 멀고도 가까운 나라인 일본의 유명한 소설을 접한다는 것은 우리네와 정서가 또 다른 점을 느낄 수가 있다.  

이라부 종합병원 신경과에 진찰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의 직업도 각양각색. 

야쿠자 조폭부터 서커스단 단원, 동기 의대생, 야구선수, 여류소설가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이들에게 오직 공통된 주사법은 바로 비타민을 넣어주는것!!! (섹스 글래머인 간호사가 주는 치명적인 주사법은 가공할 힘을 발휘한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선단공포증이 있는 야쿠자에게 매번 다른 방식으로 주사를 놓는 방법이나 자신만의 고민을 자신에게 말하는 환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해결을 해주는 방식은 정말 이런 의사가 있다면 세상만사 연일 제쳐놓고 긍정의 마인드로 살아갈 듯 하다.  

모두에게 있는 강박증이란 병을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 맞춰서 자신도 같이 동참함으써 병을 자연스럽게 유도해 나가는 방법은 물론 아버지로 부터 물려받는 병원이 있어서 그 만큼의 여유도 있겠지만 의사 자신의 성격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다시 읽었어도 배를 잡게 되는 동기생 의사의 병을 고쳐주는 "장인가발"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는 너무도 다른 유복한 처가댁에 심적부담,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장난끼 많은 행동을 의사라는 신분에 맞게 점쟎은 행동을 해 보여야만 했던 그가 장인의 가발을 들어보고 싶은 맘을 뿌리칠 수 없어서 이라부에게 말한 대목은 낄낄대며 웃게 만든다.  

이라부의 돌발행동은 끝내 폭소를 터트리게 하고, 어쩌면 시트콤으로도 이런 상황설정이 온다면 많은 호응을 얻지 않을까 싶다.  

 환자 개인적인 강박증에 대한 치료방법이 환자가 느끼기에 엉터리라든지 뭐야 하는 맘이 들게 하다가도 점차 그에게 빠져들고 스스로 수긍이 가게하면서 모나지 않는 행동으로 자신의 앞길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이라부의 성격 설정은 정말 유쾌하기 그지 없는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 냈다.  

기분이 쳐져있을 때나 좋지 않은 상황이 올 때 머리도 식힐 겸 맛난 음식을 먹는 것도 스트레스 해소법에 조그만 도움도 줄 수 있겠지만 이 책을 다시 집어들어 읽어보고 기분이 풀어진다면 그 또한 좋은 해소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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