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오브 워터 - 흑인 아들이 백인 어머니에게 바치는 글
제임스 맥브라이드 지음, 황정아 옮김 / 올(사피엔스21)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나의 아버지는 아프리카계 흑인 , 엄마는 1921년 폴란드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2살 때 랍비인 아버지와 한쪽 손은 굽어지고 다리는 절고 위에 병이 있는 엄마를 둔 레이텔 데버러 실스키란 이름의 백인 여성이다.  

위로 누나, 형이 7명, 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아버지는 침례교 개척 목사로 일하던 중 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이후 엄마는 나를 낳고 1년 후 정도인 시점에서 양부인 , 그것도 백인이 아닌 흑인과 인디언의 피를 가진 사람을 두번 째 남편으로 맞고서 그와의 사이에 4명의 자녀를 더 낳았다.  

이 글은 미국에서 재즈 뮤지션이자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아들의 글이다.  

글의 구성은 아들이 엄마의 과거를 묻기 시작하며서 부터 , 그것도 14년이 흐른 후에 엄마의 입을 통해 전해진 글을 가지고 자신의 이야기와 엄마의 회상으로 시작되는 두 갈래의 글로 나뉘어져있다.  

당시의 독일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서 엄마의 재력과 미국행이 용이하다는 이유로 맘에도 없는 엄마와 결혼한 아버지는 흑인을 극도로 싫어하며서도 그런 흑인을 상대로 배가 넘는 이익을 내는 장사를 해 경제적으론 궁핍함이 덜했으나 자신은 성적인 놀이대상이 되었고, 엄마를 무시하는 행동, 유대인이 지켜야 하는 성서구절의 암송, 안식일과 유대인의 음식만을 고수했던 생활에서 버거워하던 차 오빠는 가출을 하게 되고 먼 훗날 전쟁에서 전사했단 소식을 듣는다.  

자신을 유대인이라며 놀리던 백인 학생들에서 낄 수 조차 없었던 엄마는 자신이 사랑했고 서로 사랑했다고 믿었던 흑인 남학생 사이에서 임신을 하게 되지만 남학생의 책임감 없는 말과 다른 흑인 여학생과 결혼하게 됬다는 사실, 그에 앞서 엄마가 자신의 일을 알고 있었음에도모른 척 해주고  아버지의 후환이 두려워 서둘러 이모집으로 보내 중절을 하게 한 시절은 엄마에겐 성장의고통 그 자체였다.  

이후 엄마는 아빠되는 사람을 이모의 공장에서 일하던 중 알게되었고 백인과는 다른 부드러운 성격과 유머에 반해 동거를 시작하게 되고 가족들로부터 죽은 사람이란 선고를 받기에 이른다.  

아픈 엄마와 어린 여동생의 부탁을 뿌리치고 집을 나온 이후 두 남편과의 사별 후 엄마는 타이피스트로서 생활을 하게 되고 12명의 자녀들을 키워나간다.  

작가 자신 또한 항상 엄마의 흰 피부가 부끄럽고 궁금해서 매번 물어보지만 엄마의 대답은 확실한 것이 없는 채 뚜렷한 말도 해 주지 않을뿐더러 윗 형과 누나들은 말할 것도 없이 공부와 악기 연주외에 다방면에 걸쳐서 교육을 받게하는 억척스런 엄마로만 보일 뿐이다.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형과 누나들이   흑인 해방 운동의  열기로 휩싸이고 자신들의 정체성에 반항의 시기로 홍역을 앓게 되었을 때도 엄마는 꿈쩍도 안했으며 작가 자신 또한 고등학교 시절 뛰쳐나와 마약, 절도,주유소 직원,,, 온갖 일을 경험하며 인생에 대한 것을 배워나간다.  

정신을 차리고 대학과 신문사에 무난한 생활을 하던 중 엄마의 입을 통해서 할아버지가 살고 계실 만한 주소를 추적하는 일 , 엄마가 살았더 지역 탐방, 엄마의 유일한 친구와 다시 재회하게 했던 일, 개척교회로서 그 명성을 이어 나간 아버지와 뜻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교회에 참석함으로써 엄마의 오랜 옛 기억과 재회를 하고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된다.  

참으로 감동적인 글이다.  

작가의 얼굴을 보면 영락없는 흑인이다. 작가가 말했듯이 무슨 일이 발생해 엄마를 대동하고 나설 때의 상대방이 당황했던 얼굴 표정, 자동차가 있었어도 전철을 이용했기에 노선을 꿰뚫고 살았던 어려웠던 시절, 형제간의 먹기 위한 쟁탈전, 같은 흑인들이 다니던 학교를 거부하고 꼭 백인들이 다니던 학교에 다니게 했던 열성 , 윗 세대가 대학 관계로 집을 떠나게 되면 다음 차례가 수장이 되어 형제간에 우위서열을 다듬던 일등은 우리의 부모님들이 겪었던 일상생활사를 엿보는 듯하다.  

그런 가운데 별난 엄마의 아빠의 선택은 어쩌면 시대상 흑. 백간의 데이트 현장조차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결혼은 더더군다나 이해수준을 넘어 도저히 용납이란 것 자체가 허용이 안되었던 시기에  엄마의 자라온 성장배경과 무관치 않단 생각이다.  

같은 백인일지라도 유대인을 무시했던 왑스 계층, 그런 유대인들 조차도 흑인을 무시하던 시대에 자란 엄마는 정서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했던 어린시절이 흑인 소년을 만나게 되면서 진정한 사람에 대한 소통과 사랑이 무언지 깨닫게 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엄마의 생각은 피부색을 떠나 진실성, 성실성,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서 인간을 보았기에 두 사람의 남편의 피부색은 상관이 없었다.  

자식들의 교육 또한 유대인의 정신답게 돈만 있다고 세상은 살아지는 것이 아닌 이상 머리에 지식이 들어 있어야 한단 잔소리로 자식들의 앞날을 위해 억척스러울 수 밖에 없는 생활을 한다.  

무료공연이나 전시회 공연, 악기 다루는 일에 대해선 만사를 제쳐놓고 그 많은 아이들을 타인들이 보건 말건 자신의 뜻대로 밀고 나간 신념, 이웃이 뭐라하건 집 안의 일에 대해선 일절 밖에 나가서 함구를 할 것, 숙제와 공부타임을 중요시 한 점, 매를 들땐 용서가 없는 철칙을 준수한접, 이 모든 점이 자식들이 자신의 피부와 엄마의 피부가 다른 점에 대한 반항의 시절을 거치면서도 결국 돌아오게 만들수 밖에 없었던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작가 자신이 사회인으로 겪은 자신의 피 내부엔 유대인의 피가 흐른다고 인정하면서도 세상은 피부에 의해서 정치적,사회적으로 이용된다는점, 성공한 흑인들의 경우도 자신들이 어렵게 살던 그 시절의 사람들과 교류를 원하지도, 자신이 겪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하길 꺼려한다는 점에선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용광로의 피부 전쟁을 보느듯한 아슬함과 씁씁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혼혈로 살아간다는 건, 마치 재채기가 나오기 전에 코에서 느껴지는 따끔따끔한 느낌, 얼른 나오기를 기다리지만 절대 나오지 않는 느낌과도 같았다."라고 표현한 대목은 혼혈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저자의 솔직한 심정을 말해준 대목이다.  

저자 자신 또한 흑인과 백인 사회에서 보여지는 이견이 나올 시 맘속으로 흑인을 옹호하지만 겉으론 결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단 글엔 미국사회에서 부대껴 살아가야 하는,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만이 공감할 부분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도 이젠 다문화의 가정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인종간의 피부 외면과 멸시가 아닌 진정한 인간으로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교육적인 배려가 필요하단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저자 엄마의 확고한 신념의 토대로 유대교에서 자신의정체성을 기독교로 전환함으로써 비로소 인생의 참 된 삶을 알았다고 말하는 대목은 피의 색깔이 중요한 것이 아닌 내면의 감성과 자질, 그것을 주위환경에서 인식되어지는 수준에 의해서 일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의 폭이 얼마나 다양해 질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을 던진다.  

어렸을때 난 어머니가 어디 출신이고 어떻게 태어났는지 궁금한 적이 많았다.

어디 출신이냐고 물어보면 어머니는 "신이 날 만드셨지." 라며 말을 돌렸다.

백인이냐고 하면 "아니, 피부색이 옅은 편이지."라며 또 말을 돌렸다. 

위의 구절 처럼 엄마의 낙관적인 생각은 자식들의 교유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아주 훌륭한 사람으로 성공해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으로 거듭난 계기를 열어준 저자 엄마의 인생관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책 말미에 올해 1월에 타계한 레히첼 데버러 실스키(유대이름)에서 루첼 드와치라 질스키로 바뀐 미국에서의 이름, 다시 루스란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길 원햇던 엄마의 인생 전편에 흐른 이야기 구술은 자신이 잊고자 노력했었던 그 젊은날의 삶이 다시 아들로 하여금 불러내게 됬을 때 이미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모두 용서한 상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의 흐름이 솔직하고 강물처럼 유연하게 흐른 구성은 읽는 내내 손에 놓지 못하게 하고 진정으로 아름다운 생을 살았구난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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