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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나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바스티앙 비베스 지음, 임순정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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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엄마에게 이끌려 피아노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있다~ 라고 하는 것에는 흔히 말하는 프로의 경지가 아닌 이상 엄마들 사이에 통용되곤 하던 체르니 40번 정도만 치면 음악시험에 나오는 음표정도는 볼 줄 안다는 상식으로 통하던 그 때, 하긴 지금도 그렇다고들 한다.

 

난 재주가 없었다. 손도 작은데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손가락을 움직여주려면 여간 고충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정말 어지간히 음표정도만 볼 줄아는 정도에서 그치고 패스~

 

가끔 방송이나 유명 음악가들의 공연소식을 들을 때마다 아련한 피아노 기억이 떠오르는 건 미처 마치지 못했단 후회보다는 그 시절의 한 때나마 힘들었지만 그만 둘 때까지의 피아노 여정을 함께 했었던 추억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폴리나는 6살 때 엄마의 손에 이끌려 발레를 한다.

그녀의 특출한 재능을 알았던 보진스키 선생의 눈에 띄어 고학년 언니, 오빠와 함께 발레를 하지만 보진스키 선생님이 원하는 말과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수긍을 하기가 어렵다.

 

 

 

그러던 차, 솔로 공연 제의를 받고 연습을 하던 중에 러시아의 유명 프로 발레단에 발탁, 스승과의 공연은 무산이 되고, 예전의 스승이 가르쳐 준 것과 또 다른 훈련에 수긍과 왜 이래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하지 못한 채, 또 다른 공연팀을 만나게 되면서 그 곳에 둥지를 틀게된다.

 

 

 

 

사랑하는 안드리아와의 사이도 멀어지고, 다른 친구가 좀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갈 것을 계획하는 것을 알게 된 폴리나는 우연찮게 베를린에 머물게되면서 자신의 발레와 연극을 이용한 모임에 들어가면서 일약 유명한 인사가 된다.

 

 

저자인 프랑스 작가 바스티앙 비베스는  2007년 데뷔한 이 젊은 작가의 작품은 하나하나가 거창한 꼬리표를 붙이고 있다. 2012년 만화비평가 협회(ACBD) 대상, 2011년 만화 전문 서점상, '르푸앙' 선정 2011년 올해의 책 20선, '르푸앙' 만화상 최종 후보작. 2009년 <염소의 맛>으로 앙굴렘 세계 만화 페스티벌 '올해의 발견 작가상'을 수상했다.

 

한 소녀의 성장기이자, 예술의 흐름과 그 안에서 창작이란 소재를 덧 붙인 그래블노블 형태인 이 책은 동양화로 치자면 수묵의 향이 묻어나는 책이다.

 

많은 대사가 없는 가운데, 흰 여백과 검은 색채가 조화를 이루는 그림은 눈으로 읽는 맛과 더불어 보는 맛을 가감하여 차분히 들여다 보는 동시에 한 인간의 예술과 자신의 인생 진로를 개척해 나가는 삶을 보여주는 책이다.

 

어린 그 자신이 왜 발레에서 요구하는 동작과 그것에 대한 요구를 하는 스승의 말을 이해 못하는 가운데 자신의 부상, 연인과의 헤어짐, 이미 발레라는 울타리 안에서 또 다른 새로운 세계롤 진입해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는 그 과정들은 인생이란  여정 속엔 끊임없는 노력과 부단한 자신의 채찍질, 그리고 또 주어진 삶에 대해 하루하루 성실히 나아갈 것을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의 스승과 함께 한 춤은 그래서일까?

푸근함과 동시에 스승과 제자사이를 뛰어넘은 한 사람과 한 사람으로서의 춤으로 맺어진 교류를 들여다 보는 따뜻함이 들어있다.

 

 

중간에 체르니 40번까지 미처 마치지 못했던 나로선, 폴리나의 역동적이고도 발레에 대한 스승의 깨우침을 뒤늦게 알아가는 내공이 쌓인 감정의 표현들이 참 부럽기도 했다.

한 번 보고 두 번째 책장을 정리하다 그 자리에 앉아서 다시 둘러 본 책-

그림으로 그려진 책이라도 활자 못지 않은 강한 중독성을 가진 책, 스승이 건네 준 영상을 돌려보는 폴리나의 여유가 새삼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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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청접대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2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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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하지만 고치 현청에는 '접대과'가 실재합니다'라는 안내와 함께 소설은 시작한다.

 

일본 내에서도 작은 섬에 속하는 시코쿠- 그 곳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고치란 지방도시에 고치현청 소속의 '접대과'가 신설된다.

어떻게 하면 타지의 사람들인 관광객을 이 곳에 오게 만들 수있을까로 고심하던 접대과의 사람들은 고치 출신의 유명인사들을 홍보대사로 위촉해 홍보활동을 하기로 하고 그런 인사 중에서 소설가로서 이름이 알려진 요시카도를 막내 직원인 카케미즈가 섭외하고 요시카도는 이를 수락하기로 한 상태다.

 

하지만 일의 특성상 여러부서의 타진과 유치에 필요한 여러가지 협의조건을 진행하던 와중에 요시카도의 신랄한 비난을(공무원이 다 그렇지, 뭐', '관청이란…', '민간 감각을 어떻게 따라가겠어' 등등)듣게 되면서  가케미즈는 쩔쩔매게된다.

 

그러던 중 요시카도로 부터 몇 십년 전 판다유치계획을 주장하며 고향의 관광유치 계획에 획기적인 기획안을 내놓았던 전직 공무원을 찾아 가보란 말을 듣게된다.

 

프리랜서 직원인다키양의 힘을 빌어 기요토란 사람을 찾아 가게되고  그 곳에서 그의 딸인 사와의 갑작스런 대접을 받게되면서 왜 그녀가 현청사람들을 미워하게 됬는지에 대한 사연을 알게된다.

 

우리나라에도 방송프로그램인  ~6시 내고향~이란 것이 있다.

이와 비슷한 설정의 다른 프로들도 있는 바, 이런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노라면 비록 서울이 고향인 사람들은 직접 가 보진 못해도 맛난 제철의 음식향연과 그 곳 사람들의 구수한 입담과 인심, 그리고 미처 알지 못했던 구석구석 자자분하고 소소한 일상의 모습과 신기한 모습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또한 고향을 지척에 두고서 타향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련한 고향의 맛을 느끼는 그런 즐거움을 주는 프로그램들이 이 책을 읽다보니 가장 많이 떠오르게 된다.

 

말단직원이자 고향인 고치에 내려와 공무원으로서 첫 발을 내딛은 사회초년생인 가케미즈와 소설가 요시카도의 관계를 통해서 민간인들이 바라보는 공무원세계의 일 진척상황도의 이해못하는 심정, 잘 하고자하나 공무원이란 신분에 걸맞는 틀에 못 벗어나고 일정한 패턴만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좌충우돌 내 고향 알리기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서 흐뭇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세계를 보는 듯하다.

 포인트를 집어내며 홍보성의 아이디어내놓기와 그 실현방안을 두고 절치부심하는 젊은이들의 활기찬 모습들이 시종 유쾌함과 상큼함을 느끼게 해 준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작가들이 가장 자연스럽고 그 속속들이 추억에 깃들어 젖게하는 글들은 아마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표현들이 아닌가 싶다.

 

이 저자 또한 책 말미에 자신의 고향인 홍보대사를 경험삼아 이 틀을 기초로 글을 썼다고 하는데서 알 수있듯이 고향이 주는 안락한 느낌을 모든 사람들이 오고 싶게 만들어가는 프로젝트의 다양한 시설이용과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것들도 관광상품으로 이미지 변신시키는 전략의 흐름을 보노라면 일본만의 깍듯하고 절제된 힘을 통해 작은 마을이라도 관광의 이미지로 얼마든지 변신 할 수있단 가능성을 제시하는 작가의 상상력과 실제를 들여다 보듯 그려낸 취재의 꼼꼼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실현 불가능한 이유를 내세울 게 아니라, 실현을 위해선 어디를 밀고 어디를 끌지 끈질기게 달려들어야 한다.-p412

 

비록 소설이기는 하나, 가슴에 와 닿는 문구이기도 하다.  홍보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한 참고사항도 되는 책이고, 뭔가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는 가케미즈와 활달하고 당차고 적극적인 다키와의 신선한 사랑이야기, 사와와 요시카도의 사랑이야기도 그 색깔은 다르지만 읽는 내내 이들과 고치 현의 관광 곳곳을 같이 다녀본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책이다.

 

일본의 유명인들은 잘 모르지만 곧 영화화로도 된다고도 하니 한 번 보고싶단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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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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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p 188

 

 죽음이란 말을 가까이서 가슴 속에 크게 와 닿았던 것은 아마도 중학교 시절이었던 것같다.

아버지의 고향 친구분인 한 분이 암으로 떠나셨다는 말씀을 하시던 아버지는 친구의 죽음과 아직 어린 아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엄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병원으로 가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때는 왜 그리 가슴이 콩닥거렸는지, 죽음에 대한 어떤 확고한 이미지나 뜻에 대한 막연한 어떤 두려움이 있었나보다. 또한 혹시 우리 아버지와 같은 연세에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하던데, 우리 가족만은 아니겠지? 하는 어떤 희망적인 사항을 내포하고 있었는지도....

 

그러다  친.외할머니께서 연이어 돌아가시면서 처음으로 장사지내는 것을 보았고 무덤에 묻히는 장례 행렬까지 보았다.

그 당시에 엄마는 엄청나게 우셨던 기억이 나고, 나 또한 울었지만 엄마의 울음에 비한다면 그 슬픔의 강도는 비교가 안될 듯 싶다.

 

이렇듯 한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다는 것에 지금도 그렇지만  굉장한 회의가 들었던 기억이 난다.

평소 가까이 대화하고 같이 밥 먹고  웃고 울던 그 모든 것들이 한 순간의 죽음이라는 것 앞에 모두 신기루 같았던 그 느낌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소설에 나오는 화자인 '나'의 장례식도 그렇다.

관에 묻히고 주위의 사람들에 의해 흙이 한 줌 한 줌 뿌려지고 그것을 바라보는 그와 관련이 있던 조문객들의 반응들은 제각각이다.

 

두 아들을 둔 그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뭐라도 하나 남겨줄 요량으로 '에브리 맨'이란 보석상을 운영 하면서 자식들을 키워냈고 , 그 자신도 광고계에서 성공한 남자였다.

세 번의 결혼과 이혼을 거치면서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들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경멸을 지니고 있고, 두 번째 부인인 피시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낸시만이 오로지 그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보금자리 역할을 한다.

 

자신의 배반과 실수를 거치면서 은퇴 후 한적한 은퇴자들의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지만 어릴 적 부터 시작된 수술은 71살이 된 지금까지 온갖 몸에 병을 달고 살아왔고 지금은 심장에 제세 박동기마저 착용이 된 상태로 살아가는 노인이다.

 

젊은시절엔 뭐든 것이 가능하다. 섹스, 사랑, 남성다운 활력과 과시, 물론 그로인해 그는 혹독한 결과를 치르고 오늘 날에 홀로 살게 된 결과로 남았지만 ,  그래도 이 모든 일의 결과는 결국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단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때때로 닥쳐오는 건강에 관한 두려움은 그림을 그리는 교실을 열어 같은 은퇴자의 모임을 만들게 되지만 이마저도 모두 같은 공통의 관심사로 쏠리게된다.

 

"당은 어떤가요? " "혈압은 어때요?" "의사는 뭐래요?"-p85

 

그는 생각한다. 부모의 죽음을 생각하고 자신의 건강을 위해 하루에 일정 시간 수영과 해변 산책을 하고 조깅하는 젊은 여인에게 또 다른 꿈을 꾸며 대시를 하지만 모두 부질 없고 어떤 뚜렷한 목적을 잃어버리고 하루하루가 그저 세끼 먹고 다량의 약을 먹으며 24시간을 메워나간단 생각에 노년에 드는 외로움과 병과 점점 친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깨닫는다.

 

 

수업에 참여한 한 여인의 자살을 두고 그는 그녀가 죽기까지 죽음에 대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마지막 들이킨 물 맛을 느꼈는지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그 동안 자신이 지나온 인생의 발자취를 생각하다 결국엔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자신이 원초적인 제공자였음을 알아가면서 드디어 참을 수 없음을 알게된다.


자신이 없애버린 모든 것, 이렇다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스스로 없애버린 모든 것, 더 심각한 일이지만, 자신의 모든 의도와는 반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없애버린 모든 것을 깨닫자, 자신에게 한 번도 가혹하지 않았던, 늘 그를 위로해 주고 도와주었던 형에게 가혹했던 것을 깨닫자, 자신이 가족을 버린 것이 자식들에게 주었을 영향을 깨닫자, 자신이 이제 단지 신체적으로만 전에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쪼그라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깨닫자,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p164

 

한 생명이 태어나 한 줌의 흙으로 가는데엔 나이도 , 성별도, 제한을 두지 않는다.

 어릴 적에 상처는 금방 아물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상처의 더딘 회복속도, 갈수록 현저히 떨어지는 기력, 하나의 병에 보너스 내지 더블로 찾아오는 질병들, 장성한 자식들은 제 살길 바빠 부모의 노쇠한 육,정신적인 보살핌을 살필 겨를 없는 바쁜 생활....

 

노년에 이르러서야 젋었을 적 시절의 왕성함을 기억하고,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맘이 굴뚝 같지만 세월은 누구나 평등하게 주어졌기에 노년이란 말  그 말 한마디엔 많은 인생의 뜻을 간직하며 살아 갈 수밖에 없다.

 

노년은 전투예요. 이런게 아니라도 , 또다른 걸로 말이예요. 가차 없는 전투죠. 하필이면 가장 약하고, 예전처럼 투지를 불태우는 게 가장 어려울 때 말이예요." -p 149

 

200페이지도 안되는 지극히 평범한 한 남자의 늙고 병들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다시 한 번씩 꺼내볼 때마다, 즉 나이가 한 살 더해짐에 따라 받다들여지는 강도가 달리 와 닿는데서 일말의 울림을 준다.

 

탄생이 시작되는 순간, 이미 죽음이란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단 사실을 인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한 인간의 전체적인 삶을 통해 드러나는 병마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하나 둘씩 친한 관계의 사람들이 사라지는 광경을 보면서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보게 되는 책이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에브리 맨(보통 사람들)- 언젠간 죽는다는 사실을 ..

 

"현실을 다시 만들수는 없어요." 낸시는 아버지에게 그 말을 돌려주었다.

"그냥 오는대로 받아들이세요.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p13


냉철한 문단과 어느 것 하나 아끼지 않을 수없는 노년에 드리운 감정을 이렇듯 무심한 듯 관조적인 자세로 쓸 수있는 작가의 노련미에 다시 한 번 읽어보게 하는 책이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메모하지 않을 수 없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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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노이의 불평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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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마다 성에 대한 표현과 인식의 차이는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를 비롯해 흔히 알고있는 동양권에서 다뤄지고 있는 '성'에 대한 표현법과 그것을 둘러싼 환경, 교육과 실 생활에서의 행동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드러내야하는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생활의 표현이 대부분이었다.

 

인간의 기쁨 중 하나가 동물과는 달리 서로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성 생활을 할 수있다는 데서 동물과 다른 점이란 글이 생각난다.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사랑의 행위를 통해 기쁨과 환희를 느끼며 어쩌면 미래의 내 종족번식의 한 절차의 하나로까지 여겨지는 '성'이란 말에는 이렇듯 여러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성'이란 단어 그대로 우리가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대로 아무런 타인이나 환경의 제약에 걸림돌 없이 그대로 표현하고 싶은 대로 표현을 모두 하고 살 수있을까?

이런 질문에 "예"라고 답할 수 있는 몇 사람이나 될까?를 생각해본다.

 

여기 아주 특별하지만,특별하지 않고, 그렇다고 이상한 성 도착자 같기도 하지만 그렇지도 않은, 변태라고 불를 수 있을까? 꼭 그렇다고 말할 수없는,아주 기막힌 요즘 말로하면 '별종 중의 아주 별난 별종이요, 특별한 존재라면 특별한 사람'이라 여겨지는 사람이 나온다.

 

바로 학벌, 인물, 재정적인 능력을 모두 갖춘 유태인 엘리트 변호사 앨릭잰더 포트노이다.

앨릭스는 가난한 동네의 할렘과 푸에르토르코인들에 둘러싸인 허름한 빈민가를 돌아다니며 그들의 미래에 비오는 날에 대비해서 우산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아래 그들에게 보험을 팔려다니는 외판원이자 항상 변비와의  씨름을 아침의 대부분을 보내는 아버지, 자신에게 항상 이래야한다, 저래야한다, 하며 모든 행동과 말을 간섭하는 엄마, 일테면 유태인들이 먹은 음식 외에 패스트푸드 음식을 먹고 온 날이면 그 음식을 정말 먹었는지, 변기에 토해낸 것을 확인해야만 한다는 그런 엄마,  그리고 위로 누나를 둔 사람이다.

 

  포트노이증(症) Portnoy's Complaint .... 앨릭잰더 포트노이의 이름을 딴 병명. 강력한 윤리적, 이타주의적 충동들이 종종 도착적  성격을 띠는 극도의 성적 갈망과 갈등을 일으키는 질환....슈피포겔은  이 증상들 가운데 다수는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에 널리 나타나는 결속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작가가 의도한 바 (인위적으로 만든 병)대로 이 작품의 주된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성공을 하고 부모로부터 독립해 살고는 있지만  포트노이는 여전히 마마보이면서 자신의 성적인 감정을 주체 못해 어릴 적부터 집  화장실, 학교 화장실, 그리고 누나의 속옷까지 응용해 가면 자신의 몸 일부인 거시기를 만지고 흥분을 느끼면서 길거리에 맘에 드는 여인이 있다면  즉시 콜을 하는 ,이른바, 확실한 엘리적인 면모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손장난을 하루에 한 번으로만 줄일 수 있다면. 아니 두 번, 아니 세 번만으로 버틸 수 있다면! 하지만 곧 영원한 망각이 찾아들 거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오히려 신기록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식사 전에. 식사 후에. 식사 도중에. 식탁에서 벌떡 일어나며 비극적인 동작으로 배를 움켜잡는 거죠. 설사예요! 그렇게 소리치는 겁니다. 설사가 나오려고 해요!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누나 옷장에서 훔친 속옷을 머리에 뒤집어씁니다. 돌돌 말아 손수건에 싸서 호주머니에 넣어온 거죠. 면이 입에 닿는 느낌이 너무 짜릿해서—“팬티”라는 말도 너무 짜릿해서—사정 궤도가 전에는 도달하지 못한 놀라운 높이에 이릅니다. 로켓처럼 내 물건을 떠나 곧바로 머리 위의 전구를 향하더니 놀랍게도, 또 두렵게도 전구를 맞히고 거기 그대로 매달려 있습니다. -p33

 

 

 

이런 그가 슈피포겔 박사를 만나 자신의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겪어 오고 행해 오고 있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원인과  그 불평불만을 두서없이 과거로, 현재로 오가며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사람으로 나온다.

 

그의 이런 행동은 자신이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인들이 믿는 종교를 믿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충격을 주고, 주위의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넌지시 함으로써 자신에게 결혼을 강요하는 엄마의 말 뜻에 거부를 하는 이유가 절절히, 아주 가슴에 와 닿게 자신의 성적인 조절을 주체못해 퍼 붓는 행동의 양식으로 나타나는 불평을 하나하나 한 인간의 성장을 지켜보는 독자들에게 흡입을 시킨다.

 

언뜻 보면 무척 난해할 만도 하고(뭐가 부족해서 이런 행동을?) 자식 가는 길에 허튼 소리 할 부모가 어디있으며(그러나 그가 느끼기에 엄마는 정말 주도면밀하게 그를 감시했다.) 일정한 나이가 차서 반드시 결혼을 해야만 해야하는 당위성에 대해 반기를 든다.

 

 이런 흐름의 과정에 있어서 분위기상 무척 무겁고, 대화를 통해서 나타나는 각 사람들의 주장을 듣노라면 누가 옳고 그른지를 독자의 입장에선 어려울 것 같은데, 작가는 배가 굴러가도록, 입가가 아파서 인위적인 행동으로 다물어줘야 할 정도로 유머, 그것도 세상의 유대인들에 대한 잣대와 그들의 행동방식과, 종교적인 생활, 그리고 성적인 표현 자유에 대해서 비판, 조소, 원망, 빈정거림을 모두 내포한 단어들로 독자들을 정신없게 만든다.

 

그의 부모는 미국이란 거대한 나라에서 유대인으로 살아간다는 것,그 안엔 오랜 세월 유대인들만이 느끼는 다른 백인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그것을 이겨나기위해선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한 것,또한 자신들의 처지와도 같으면서 약간 다른 할렘가의 사람들을 대하는 유대인들을 바라보는 포트노이에게 유대인식 생활을 주입시키려 하지만 포트노이는 반발한다.

 

이방인 이라서 나쁘다느니, 유대인이라서 좋다느니! 사랑하는 부모님, 어쩌다가 나를 자식으로 낳아주신 두 분. 모르세요? 그런 생각이 약간 야만적이라는 걸?  두 분이 표현하고 있는게 두 분의 공포라는 걸? 내가 두 분에게서 배워 가장 먼저 구별하게 된 것이 밤과 낮도 아니고,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도 아니고 이방인과 유대인이라는 걸! ...(중략) 유대인 유대인 유대인 유대인 유대인 유대인! 벌써 내 귀에 들여오기 시작하네요. 고난당하는 유대인의 이야기가!  내 민족이여, 제발 부탁인데, 당신네 고난의 유산은 당신네 고난당하는 똥구멍에나 꽂으세요. 나는 공교롭게도 한 인간이기도 하단 말이야! -p 112~113

 

여기에, 포트노이의 성적인 표출방식이 그 어느 소설에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원색적이고 적나라한 단어들 일색인 면에서 작가의 또 다른 '성'에 대한 생각이 드러나보인단 점에서 두드러진다.

 

겉으로 안그런척 , 젊쟎고 고품위의 단어를 적절히 써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원초적이고 태고 적부터 유전인자에 감추어진 '성'에 대한 활발한 행동들을 하는 그 양식을 인류가 만들어 놓은 절차와 테두리 안에서 자유롭게 표현하고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빈정거림이 있다.

 

부모를 기쁘게 하려고? 규범에 순응하려고? 도대체 내가 왜 몇 년 전만 해도 명예로 여겨지던 독신남이라는 것에 이렇게 방어적이 되어야하는데? 결국 그게 핵심인 거죠. -독신남 생활. 그게 뭐가 죄라는겁니까? 성적 자유가? 요즘 같은 시대에? 왜 내가 부르주아지에게 허리를 굽혀야 합니까?....(중략)...왜 내가 정직과 자비로 나의 욕망을 정당화해야 하는 겁니까! 그래요, 나한테는 욕망이 있어요. - 다만 그게 무한할 뿐이라고요. 무한하단 말입니다.!-p151~152

 

사랑을 위해? 사랑이 뭔데요? 우리가 아는 저 모든 남녀, 굳이 자신이 구속되는 것을 허용하려 드는 그 사람들을 함께 얽매어놓는 게 사랑입니까? 사랑보다는 오히려 허약함에 가깝지 않을까요? 오히려 편의와 냉담과 죄책감이 아닐까요? 오히려 두려움과 피로와 무기력, 아니면 아주 단순하게 그냥 배짱이 없는 것 아닐까요?....(중략) 제발 "사랑"과 그 지속 기간을 두고 서로 거짓말하지 말자고요. 그래서 내가 묻는 것 아닙니까. 앞으로 오. 육. 칠 년이 지나면 신선한 새 보지를 사냥하러 거리에 나설 걸 뻔히 알면서 내가 어떻게 "사랑" 하는 사람과 결혼 할 수있는냐고요. -p154

 

대부분의 문학작가들에게 닮고 싶고 배우고 싶고 존경하는  작가들 중에 한 사람인 필립 로스는 이 작품으로 인해 많은 이슈를 낳게 했던 작가라고 한다.

 

이 작품이 나온 연대인 1960년를 감안해도 성과 결혼에 대한 생각은 확실히 지금에 읽어도 획기적인 이슈를 낳을 만했고 같은 유대인이면서 차갑고 냉철하게 유대인들을 바라 본 그의 시선이 이 작품에 유머란 코드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써 놓았기에  것의 느낌을 그대로 받은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책을 살 경우 책의 선전문구나 추천사를 보게 되는데,아마도 국내에 다른 제목으로 나온 적도 있는 작품이라고는 하나 이번 작품이 온전한 완역에 가깝도록 만들어진 것 같다.

번역자의 말도 그렇고 선전문구, 추천사가 거짓이 없게 느껴지는 경우도 드문데, 이 책의 경우엔 모두 해당된다는 느낌이다.

 

호밀밭의 파수꾼과는 또 다른 느낌의 30대 남자의 불평을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그 느낌을 고스란히 받을 수있는 책!

꼭 읽어보라고 강추한다.

 

 

***** 비밀을 하나 간직하는게 인간적이듯이, 그것을 언젠가 밝히는 것도 인간적이다.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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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패밀리
토니노 베나키스타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프랑스 노르망디의 숄롱쉬르아브르(가상의 마을)에  일가족이 한밤중에 이사를 온다.

 

대낮도 아닌 한밤중, 그것도 소리없이 들어온 가족은 블레이크 프레데릭씨를 중심으로 엄마 매기, 딸 벨, 아들 워런, 그리고 기르는 개 말라비타이다.

자신들의 위치를 드러내놓고 싶지 않은 이들에겐 과연 무슨 사연이 있을까?

 

본명은 조반니 만초니-

미국 마피아계의 거물로서 마피아들의 오랜 전통인 오메르타 서약을 깨고 증인신분으로 마피아의 거물들을 체포하는 데 일조를 하면서 증인 보호프로그램의 자격으로 프랑스까지 피신해 살고 있었던 것-

이사 온 집에서 발견된 구닥다리 타자기를 발견하곤 노르망디의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란 소개로 이웃들에게 환심을 사고, 매기는 자원봉사활동에 열혈자로 일하면서  마피아 두목의 부인으로서 살아 온 삶에 대한 반성의 일환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어릴 적 주의의 환경이 주는 익숙함에 자신들의 처신은 어떻게 해야 좋은지를 일찍이 터득한 두 남매들은 학교에서도 그 빛을 발하게 되는데, 벨은 자신의 뛰어난 미모로 인한 주위의 관심을 라켓으로 날려버리는가 하면, 워런은 등교 첫 날, 빼앗긴 돈을 되찾기 위해선 어떤 행동과 포섭을 해야 장악할 수 있는지를 계획하면서 학교의 여러 친구들에게 지지를 받게된다.

 

그들 가족을 감시하는 FBI의 토머스 퀸틸리아니는 블레이크가 때때로 저지르는 일로 인해 또 다시 이사를 해야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

 

하지만 이들의 존재를 끝까지 추적하는 마피아들의 행동은 우연찮게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신문이 미국 감옥까지 가게 되면서 걷잡을 수없는  사건에 휘말리게된다.

 

마피아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와 책, 그리고 대표격인 대부시리즈를 통해서 마피아의 자생력이나 그들의 광범위한 활동에 많은 사람들이 익숙해져있다.

 

증인의 신분을 택함으로써 자신 뿐만이 아니라 가족들까지 이리저리 이사를 해야만 하는 블레이크란 사람은 소위 말하자면 자신의 감정 그대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면, 부인,딸, 아들 할 것없이 모두 같은 다혈질의 성격들을 갖고있단 설정부터가 예사스럽진 않지만, ㅋㅋㅋ..의 웃음을 자아내면서 처리방식들을 읽노라면 역시 마피아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뜻하지 않게 자신과 토머스, 단 둘이서만 자신의 목숨을 빼앗으러 온 마피아들을 상대하게되는 과정과 처리 과정은 그의 두 자녀들의 행동과 맞물리면서, 특히 워런의 행동은 그 아버지의 아들이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복수의 칼날은 영원히 해결이 될 때까지 한다는 마피아의 맹세는 선택사항이 없는 항상 가슴조이면서 살아가야하는 신분의 블레이크에겐 한 때는 최고의 권력자로서 살아온 사람이 한 순간에 권력의 힘에 의해 자신의 행동을 저지당할 수 밖에 없는, 힘의 지배 논리에 대한 비유가 작은 사건들과 큰 사건들을 통해서 인생에 대한 무상함을 느끼게 해 준다.

. 원제가 말라비타(나쁜 인생)이듯이 개가 마피아에게 복수하는 것이나 사람들이 상대방에 대해 복수하는 것이나 인생, 그 자체는 나쁠 수도 있다는 암시를 한다는 점에서 이 위험한 패밀리가 겪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그저 행복하다고만은 할 수없는 쓸쓸함이 유머를 포함해 무거운 소재지만 가볍게 읽을 수있는 책이다.

 

한국에선 '위험한 패밀리'로 상영이 된 터라 책과 함께 비교해서 읽으면 좋을  듯 하다.

특히 로버트 드 니로, 미셸 파이퍼, 타미리 존스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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