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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카로 가는 길 - 이슬람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영적 가르침
무함마드 아사드 지음, 하연희 옮김 / 루비박스 / 2014년 11월
평점 :
20세기 가장 위대한 무슬림 저술가라는 소개의 말이 무색하지 않게 이 책은 자서전의 성격을 띠고 있음에도 이슬람과 서양의 인식에 대한 많은 지식들과 생각할 거리를 가득 담고 있다. 한 유럽인이 이슬람을 알게 되고 그들의 사회에 동화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 기저에는 역사와 철학, 그리고 종교에 대한 다양한 담론들이 존재한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배경과 무관하지 않은 듯 싶다. 유대계 오스트리아인으로 아버지가 변호사였으며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것과 함께 빈 대학에서 예술사와 철학 공부했다는 것부터 그렇다. 개인적으로 지난 5월말과 6월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면서 19세기말과 20세기 초 빈을 중심으로 한 지성과 예술의 새로운 변화의 역사를 몸소 보고 왔는데, 바로 그 때 이 책의 저자가 그 한복판에 있었던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빈 대학에서 예술사를 공부한 것은 그 당시 영적인 진공 상태를 어떻게 해서든 채워보려고 했기 때문이라는데, 그 당시 전쟁으로 인해 수세기 동안 면면히 계승된 윤리적 가치가 무너졌고 새로운 가치관은 채 확립되지 않았기에 그랬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예술사가들도 형식이라는 문제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었고, 또 다른 탈출구로 여겨졌던 정신분석학도 기대에 못 미쳤다고 한다. 인간 자아의 신비를 그저 신경유전적 반응으로 치부하는 오만함이 거슬렸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유대교에 대해서도 불만을 가졌으며 탈무드에서 말하는 신은 너무 과도하게 의례에 집착하고 선택받은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부족 신처럼 여겨진다고 생각했으며 처음부터 시오니즘에 대해 반감이 강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제도화된 종교를 모두 거부하는 불가지론자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예루살렘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삼촌의 편지를 받고 중동으로 첫발을 내딛게 되었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만난 베두인이 자신에게 케이크 한 조각을 나눠준 일로 호의적이 되었으며, 이후 그들의 삶을 보면서 유럽인의 삶을 그토록 추하게 만드는 영적인 분열과 공포, 탐욕을 찾아보기 어려웠기에 무슬림의 정신세계에 점점 더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순수함이나 정신적 방황이 바로 저자가 이슬람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라 할 수 있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듯 그 이후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 무척이나 많은 경험들과 함께 역사적 현장에 서 있었다. 막심 고리키 부인의 특종 인터뷰를 따내서 독일 신문사에 정식 기자로 취직한 이후 중동관련 전문 취재원으로 활동을 시작해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븐 사우드 국왕과의 친분을 통해 중동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각종 내전에 참여하며 비밀임무까지 수행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의 절반은 칼릴 지브란의 경건한 책을 읽는 것 같고, 나머지 절반은 아라비안나이트를 읽는 것 같았다. 또한 개인적으로 이슬람에 대해 잘 몰랐던 많은 부분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를테면 오늘날 이슬람에 대한 서구인들의 인식과 정서는 과거 십자군 전쟁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을 하나로 묶는 기독교 국가란 개념이 바로 유럽인들에게 문화적 자의식과 동질감을 심어 준 반면 이슬람에 대한 선입견이 발전했다면서 그 때부터 이슬람 교리와 이상은 의도적 왜곡되었고 무슬림 선지자 무함마드는 적그리스도로 낙인찍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무함마드는 신앙에 대한 유일한 접근법이 이성임을 강조했으며 반계몽주의 대신에 지적 탐구를, 침묵 대신에 행동을, 금욕주의 대신 활기찬 삶을 추구하라고 가르쳤기에 이슬람은 인류의 문화적 성취에 커다란 동기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한편 다성음악이 발달한 서양에 비해 단조로우면서도 강렬한 노래 가락의 아라비아의 노래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척박한 사막과 스텝 지대에 사는 그들에게 감정의 황혼이나 극적인 반전들이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고, 내면 깊숙한 곳까지 완벽히 자유롭기에 아랍 가정이 모든 손님들을 극진히 보살피고 대접할 수 있다는 것, 이슬람은 종교라기보다는 생활이며, 신학 체계라기보다 신에 대한 의식을 바탕으로 한 개인적, 사회적 행동 양식이라 봐야 한다는 것, 원죄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 기독교는 신의 영역과 카이사르의 영역은 다르다는 오랜 원칙에 얽매여 사회 문제에 개입하지 않았기에 현실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지 않아서 모든 종교의 기본적 역할이라 할 수 있는 올바르게 사는 법을 알려주는데 실패했다는 것, 이란에서 토착 범신론이 유일신을 믿는 이슬람으로 대체되면서 반발작용으로 나온 것이 수니파와 시아파라는 것 등이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내용들은 육체적 욕망의 합리성을 부인하면 결국 도덕적 가치를 부정하게 된다면서, 욕망, 유혹, 갈등이 있고, 그래서 옳고 그름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때 비로소 영혼을 가진 도덕적 존재가 나올 수 있다고 언급한 것과 일부다처제가 인간 본성에 초점을 맞추는 이슬람 율법으로 결혼의 사회생물학적 기능을 보호하고 있다는 언급이었다. 원래 남편과 아내가 자유롭게 이혼하고 재혼할 수 있는데, 무슬림 쇠락기 수백 년간 여성들이 율법에 보장된 이혼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는 것도 함께 언급되고 있다. 그 밖에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집은 들어가 살기 위한 공간인 만큼 집 외관에는 별달리 신경 쓰지 않지만 실내를 꾸미는 데 치중한다는 그들의 관습과 해질녘에 뱀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관습, 그리고 라바이크, 알라후마, 라바이크라고 메카를 향해 외치는 구호가 아브라함에게서 나왔다는 것 등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