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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세계를 다시 그리는 대륙
강행구 지음 / 북랩 / 2025년 4월
평점 :
30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다양한 외교 업무를 수행했다는 저자는 아프리카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이 책을 펴내게 되었다고 한다. 아프리카는 54개 국가와 3천 개가 넘는 민족, 수천 년의 문명을 품은 대륙으로 결코 단일 문화나 정체성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를테면 서아프리카의 세네갈인들은 웅변과 사교에 능한 반면, 말리인들은 이야기와 음악, 공동체 중심의 조화로운 삶을 중시하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인종과 계층이 교차하는 복합 사회라고 말한다. 이렇게 외형상으로는 수많은 민족과 문화가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아프리카 문명은 놀라운 연속성과 공통된 기원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일강 유역이 아프리카 문명의 발원지라면서, 고대 문명의 지식과 기술, 신앙 체계 등이 여기서부터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되었다면서 말이다. 전반적으로 아프리카인의 세계관은 감각과 통합을 중시하는 존재 인식, 논리보다는 직관, 분석보다는 공감을 중시하는 삶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면서, 개인은 공동체 안에서만 정체성을 형성하며, 스스로를 설명할 때 개인의 성취보다 소속된 씨족, 지역, 혈통을 먼저 언급하게 된다고 말한다. 공동체 중심의 유동적인 시간 인식과 하루하루의 생계 활동에 초점을 둔 생활 문화는 장기적 계획이나 국가 행정에 낯설게 반응했다면서 말이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춤은 삶의 언어이자 감정의 표현이며 공동체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이라면서, 기쁠 때나 슬플 때, 전쟁을 앞두고 있을 때나 수확을 마친 후에도 아프리카인들은 춤을 춘다고 말한다. 그 감정 표현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 모두가 공감하는 정서적 울림으로 확장된다면서 말이다.
아프리카의 가족주의 문화는 성공한 개인에 대한 집단적 기대 속에서도 드러난다고 말한다. 경제적으로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친족 전체가 그의 성공을 함께 나누는 것이 당연시 된다면서 말이다. 이러한 공동체의 기대는 아프리카에서 기업가 정신이 정착되기 어려운 구조적 배경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성공한 개인은 장기적 자산 축적보다는 단기적인 분배 요구에 시달리고, 공동체는 그를 공공 자산처럼 인식하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많은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숙명론적 사고방식이 지배적인데, 인간은 단지 개인이 아니라 조상, 공동체, 자연과 긴밀히 연결된 존재이며 생명력을 증진하는 행위는 '선', 공동체를 해치는 행위는 '악'으로 간주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윤리적 관점은 아프리카 공동체의 조화와 지속 가능성을 유지하는 밑바탕이 되어 왔다면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법과 질서는 화해와 회복을 중시하며, 분쟁 해결의 목적 역시 공동체의 지속성과 평화를 유지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토지와 자원에 대한 인식 역시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성한 유산으로 여겨지며, 개인은 그것을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존재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인식은 토지의 매매나 사유화를 공동체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로 여겼으며, 이는 식민주의가 들어오면서 주요 갈등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아프리카의 전통 왕정은 '신의 대리자'이자 '공동체의 화신'으로서 왕을 중심으로 정치와 종교, 사회적 합의가 통합된 유기적인 정치 시스템이었다고 언급한다.
가나, 나이지리아, 보츠와나 등지에서는 지역 족장들이 분쟁 조정, 토지 분배, 문화 행사 주관 등의 역할을 수행하며, 서구식 정치 체계와 공존하는 이중 권력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구조는 국가 행정의 혼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공동체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유지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한편 유럽 열강은 아프리카의 언어, 종족, 종교, 지리 등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분류했으며, 아프리카는 '문명화가 필요한 후진적 지역'이라는 이미지를 고정시켰다고 말한다. 이러한 식민지에 대한 왜곡된 지식은 학술 논문, 탐험기, 선교 보고서, 교과서, 문학 작품 등을 통해 유럽 전역에 퍼졌으며, 식민지 주민들에게도 반복적으로 주입되었고, 그 결과 현지인들 스스로도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도록 강요 받았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식민 기록 속에서 아프리카인의 저항은 '폭동'으로, 유럽인의 폭력은 '질서의 회복'으로 묘사했다고 덧붙인다. 아프리카 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서양 노예무역이 남긴 구조적 유산을 직시할 필요가 있는데, 16세기 초부터 약 400년에 걸쳐 진행된 노예무역은 단순한 인신매매를 넘어 아프리카 사회 전체의 권력 구조와 경제 체계, 공동체 질서를 뿌리 채 흔들었다고 말한다. 아프리카 지배층은 전쟁 포로나 납치한 사람들을 노예로 팔아 무기와 외래 물품을 확보했고, 이 과정은 아프리카 내에서 부족이나 지역 간의 갈등을 더욱 격화 시켰으며, 사람들 사이의 믿음과 공동체의 유대감을 크게 훼손시켰다고 말한다.
유럽 열강의 아프리카 식민 통치는 정치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는데, 자의적으로 그은 국경선은 수많은 민족과 언어, 종교 공동체를 인위적으로 하나의 국가 안에 묶어 놓았고, 이는 민족 간 갈등과 국경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질적인 민족들이 하나의 국가 안에 억지로 묶이는가 하면, 하나의 민족이 인위적으로 나뉘어 여러 국가에 걸쳐 분산되기도 했다면서 말이다. 이는 곧 정치적 갈등과 민족 간 경쟁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식민 통치 과정에서 만들어진 왜곡된 권력 구조는 독립 이후에도 이어져, 일부 엘리트 계층이 권력을 독점하거나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구조적 문제로 남았다고 덧붙인다. 한편 현금 작물 중심의 경제 구조는 아프리카 경제의 가장 뚜렷한 변화였다면서, 코코아, 커피, 면화, 고무, 사탕수수 같은 수출 작물들이 식민 정부와 유럽 기업 주도로 대규모로 재배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공동체 단위의 자급 농업은 점차 사라졌고, 식량 작물 재배는 줄어들면서 대륙 전역에서 기근과 영양 부족이 만성화 되었다고 한다. 단일 작물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는 세계 시장의 가격 변동에 따라 쉽게 흔들렸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아프리카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으로 남아 있다면서 말이다. 또한 광물 자원의 경우 대부분 유럽 기업에 의해 원재료 상태로 채굴되어 외국으로 반출되었으며, 아프리카 내에서의 가공이나 산업화는 의도적으로 억제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오늘날까지도 원자재 수출에만 의존하는 왜곡된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철도, 도로, 항만 등 기반시설들은 대부분 자원과 농산물을 항구로 운반하기 위해 일직선 구조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프리카는 독립 이후에도 여전히 과거 식민 지배국과 다국적 기업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고 한다. 냉전 시기에 강대국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아프리카의 전략적 자원과 지정학적 중요성에 주목했는데, 독립 국가들을 자신들의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군사적, 경제적, 외교적 수단을 총동원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콩고, 앙골라, 모잠비크,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지에서는 외세의 개입과 함께 내전과 쿠데타가 잇따랐다면서 말이다. 물론 냉전의 한가운데서 강대국 어느 편에도 서지 않겠다는 비동맹의 정신을 외교 정책에 적극 반영하기도 했지만, 독립 이후 많은 국가에서 권위주의 정권이 등장했고, 군사 쿠데타와 일당 독재가 확산되었다고 말한다. 아프리카 현대 정치사에서 군사 쿠데타는 단순한 정권 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정치 체제의 불안정, 제도의 미비, 그리고 시민들의 정치적 무력감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말한다. 이러한 현실의 뿌리는 식민지 시대에 형성된 군대의 태생적 역할에서 찾을 수 있는데, 식민지 시기의 군대는 식민 지배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기에 국민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도구로 기능했다고 한다. 식민시기 내내 국민을 감시하고 억제하는 데 익숙해진 군은 독립 후에도 정치적 질서 유지의 책임을 자신들이 떠안아야 한다고 인식했고, 때로는 정권을 직접 장악하는 것을 정당화했다고 말한다.
냉전구도가 점차 해체되면서 아프리카 정치 지형도 변화되었는데, 국제사회는 아프리카 국가들에 정치 개혁과 인권 보장을 강하게 요구했고, 특히 외국 원조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민주주의적 제도 정비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그 결과 일부 국가에서는 일정 수준의 개혁과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면서 말이다. 오늘날 아프리카 민족주의는 단지 과거의 독립운동을 기념하는데 머무르지 않는다면서,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이라는 역사적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민주주의, 시민권, 경제적 정의, 세대 간 형평성 등 현대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포괄하는 사상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2020년대 들어서며 말리, 기니,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등에서 군사 쿠데타가 연이어 발생했는데, 이는 과거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군의 정치 개입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으며, 민주주의 체제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언급한다. 또한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은 긴급 재정 지원을 조건으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도입했는데,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 프로그램을 수용하며 세계 자본주의 경제 질서에 본격적으로 편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장 중심의 경제 시스템 도입, 국영기업의 민영화, 무역 자유화, 외국인 투자 유치 등을 핵심 개혁 과제로 추진했는데, 이러한 조치는 공공 서비스의 축소와 사회 안전망의 붕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한다. 국가의 복지 기능이 축소되자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NGO와 민간 부문이 부상했는데, 이들의 접근은 대부분 단기 프로젝트 중심이었고 어떤 NGO는 서방 외교 정책의 도구로 활용되었다면서, 국가의 정책적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한편 세계화는 일부 대도시에서 금융, IT, 통신 산업의 성장과 함께 신흥 중산층의 형성을 이끌었다면서, 나이로비, 라곳, 요하네스버그 등지에서는 새로운 일자리와 소비문화가 등장했고, 다국적 기업과 연결된 산업 구조가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외부 흐름에 아프리카 각국은 고유한 방식으로 대응했는데, 일부 국가는 성장의 기회를 포착했지만, 다수는 기존의 구조적 불균형과 내부의 제도적 취약성이 오히려 심화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아프리카는 더 이상 수동적인 원조의 수혜자가 아니며, 정치적 자율성과 시민사회의 역량을 바탕으로 일방적인 수용이 아닌 자주적 협력의 틀 안에서 주체적으로 재정립 되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한편 도시 청년들 사이에서는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운동화, 미국 힙합과 한국 케이팝, 영국식 영어 발음 뿐 아니라 틱톡 챌린지, 아프로비트 패션, BTS와 같은 글로벌 스타들이 새로운 사회적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전통 의례나 공동체 중심에서 아프리카 청년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재구성해 나가는 과정이라 설명한다. 한편 농업을 통한 발전은 지역 공동체의 통합, 사회 안정, 자긍심 회복이라는 다층적 효과를 동반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이는 곧 아프리카가 독립 이후 수십 년간 해결하지 못했던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과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라면서 말이다. 그 밖에도 아프리카는 현재 산업화와 도시화의 급속한 진전 속에서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많은 국가에서 전력 보급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하며, 이에 따라 에너지 플랜트 산업은 아프리카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