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오브 브라더스
스테판 앰브로스 지음, 신기수 옮김 / 이미지앤노블(코리아하우스콘텐츠)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지난 2002년에 나온 이 책의 초판본을 보고, 너무나 어이없는 군사용어 번역에 헛웃음이 나왔다. 필자는 당시 이런 글을 썼다.


 

기관단총(sub machine gun)과 경기관총(light machine gun)을 헷갈리는, 비교적 ‘애교로 봐 줄 수 있는’ 오역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러분은 도대체 ‘반자동 기관총’이나 ‘톰슨 45구경 캐리버 경기관총’이라는 이름의 무기체계를 구경이나 해 본 적이나 있으신지? 기갑, 전차를 다 의미하는 독일어 panzer의 적당한 용례와 해석예를 몰라서인지 ‘팬저여단’ ‘적의 팬저들이 몰려온다’식의 글이 적혀있고, 타이거 I 사진에 ‘타이거 로열-이것도 로열 타이거, 즉 킹타이거의 오기로 짐작되지만-‘이라는 주석을 붙여놓거나, 카빈 소총 사진에 ‘M1 개런드’라는 주석을 붙였다던지 하는 식으로, 그림과 글이 따로 노는 것도 여러 번 봤고, ‘MG-42가 9밀리탄을 분당 750발씩 사격하고 이 총이 개량되어 MG-34가 되었다(!)’하는 식의, 사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주석을 태연히 적어놓은 것은 그 중에서도 정말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 했다. 철십자 훈장을 의미하는 영어 cross of iron을 몰라서 ‘철제 십자가’라고 번역해 놓은 곳도 있었다. 이것 외에도 2차대전 기본상식만 있다면 발견할 수 있는 버그가 여러 곳이 있지만 일일이 다 적지는 않겠다. 드라마의 명성을 믿고 뛰어난 번역상태를 기대했던 필자에게는 큰 실망이었다. 


 

이런 글을 쓰고 나서 8년이 지났다. 그런데 이 책이 개역이 돼서 새로 나왔다고 했다. 그래도 2002년판에 비해서는 번역이 나아졌겠지 하는 기대감에 한번 비교해 보고자 2002년판을 들고 서점으로 달려갔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9mm 탄을 분당 750발씩 쏘는 MG-42와 그 후계기종인 MG-34', 그리고 '톰슨 캘리버 45구경 반자동기관총', '팬저여단', '타이거 로열' 등은 2010년판에도 그대로 나온다! 물론 2002년판의 '연료전차'를 '연료탱크'로 고치거나, '철제 십자가'를 '철십자 훈장'으로 고치는 등 일부 나아진 부분도 있긴 하지만 2002년판에서 문제가 되었던 부분 몇 군데만 골라 부분 검수해본 결과 고쳐지지 않은 번역오류들이 더욱 많은 것 같다.

2002년 이래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을 시간이 무려 8년이나 있었다. 정 번역자 개인의 능력으로 해결이 안 되었다면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릴 시간도 충분했을 터이다. 아무리 출판계가 어렵다지만 정말 이래도 되나? 

 

리뷰를 쓰고 나니 누가 '친구 없는 오타쿠'라고 하는데...

이 책의 번역은 군사적인 지식 및 전문용어 번역을 차치하고서라도 충분히 졸역이다.

필자가 서문 1페이지를 리뷰한 내용을 아래에 올릴 테니 읽고 판단하시라.



밴드 오브 브라더스 번역 비평



이 글은 한국어판 <밴드 오브 브라더스>(스티븐 앰브로스 지음, 신기수 옮김, 코리아하우스 2010년 출간)의 번역 품질을 비평하기 위해 작성된 글이며, 원문 관련 각종 사항은 Stephen E. Ambrose, Band of Brothers, Simon & Schuster, 2001을, 번역문 관련 각종 사항은 앞서 말한 한국어 번역서를 기준으로 삼았음을 밝힌다.



*일단 헌사 번역에서부터 문제가 있다.



원문: To all those members of the Parachute Infantry, United States Army, 1941-1945, who were the Purple Heart not as a decoration but as a badge of office.

번역문: 훈장이란 의미를 넘어 참군인의 상징으로 ‘Purple Heart’를 받은 1941년부터 1945년, 미합중국 육군 공수부대원들 모두에게 바칩니다.

비평자 코멘트: office에 언제 참군인이라는 뜻이 있던가? 게다가 ‘1941년부터 1945년’이라는 표현도 대단히 어색하다. 필자라면 약간의 의역을 섞어 이 문장을 이렇게 번역하겠다.

추천 번역문: 1941년부터 1945년 사이에 복무했던 모든 미 합중국 육군 공수부대원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엄청난 희생을 치른 그들에게 전상장은 누구나 갖고 있던 신분증일 뿐, 절대 훈장이 아니었습니다.



*지도에 나오는 지명이 일절 번역되지 않았다. 알아서 보라는 뜻일까?



*원서의 색인(Index)이 번역되지 않았다.



*들어가는 말(Foreword)부터 오역 투성이이다.



원문(13p): They got a lot of attention from visitors, members of board, reporters, TV cameras-the works.

번역문(14p): 그들의 방문은 주위의 관심을 끌었는데,

비평자 코멘트: visitors, members of board, reporters, TV cameras가 일절 번역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They는 the works, 즉 행사를 의미한다.

추천 번역문: 그 행사는 방문객들, 행사 진행위원들, 기자들, TV카메라맨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원문(13p): There were thousands of World War II veterans at the various events-most of all in a two mile long parade where they rode in army trucks, waving to the hundreds of thousands of people lining the streets, may holding signs they said, simply, "Thank you," others holding up the front page of New Orleans Times-Picayune from V-E Day or V-J Day.

번역문(14p): 그곳에서는 수천 명의 참전용사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용사들은 군용트럭을 타고 약 3km에 이르는 퍼레이드를 하였고, 연도에 늘어선 사람들은 뉴 올리언즈 타임즈의 표지를 장식했던 대독전(代獨戰, V-E/Victory Europe)과 대일전(代日戰, V-J/Victory Japan) 승전을 알리는 푯말과 함께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쓰여진 판을 들고 환호했다.

비평자 코멘트: 딴 건 그렇다 쳐도, 용어 설명에서 한자 표기 및 해설까지 틀렸다. 원어의 V-E Day 및 V-J Day는 각각 Victory in Europe Day, Victory in Japan Day의 약자이며, 유럽전쟁 승전 기념일, 태평양전쟁 승전 기념일 정도로 번역되어야 옳다. 게다가 대일전 및 대독전의 대는 代가 아니라 對이다.

추천 번역문: 수천 명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들이 다양한 행사를 벌였다. 그들 중 대부분은 군용트럭을 타고 3km가 넘는 행렬을 지어 퍼레이드를 벌이며 거리를 따라 늘어선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구경꾼들 중 많은 사람들은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다. 유럽전쟁 승전, 또는 태평양전쟁 승전 내용을 담은 뉴 올리언즈 신문 <타임 피카윤> 지의 제1면을 들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원문(13p): It was the biggest military parade-bands, marching units, reenactors, fly overs, and, of course, veterans-since World War II.

번역문(14p): 이는 지금까지 그 어떤 군사행렬보다 큰 규모였으며, 붕대를 감고 당시 군복을 입은 배우들과 커다란 풍선까지 동원되어 장관을 연출했다.

비평자 코멘트: 어떻게 해석하면 ‘bands, marching units, reenactors’가 ‘붕대를 감고 당시 군복을 입은 배우들’로 해석되는 걸까?

추천 번역문: 군악대, 도보부대, 역사 재현가, 축하 비행, 그리고 물론 참전용사들까지 어우러진 이 행사는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대 규모의 분열식이었다.



원문(13p): When a group of rangers marched by, Tom leaped out of reviewing stand to shake their hands and ask for photographs

번역문(14p): 특히 의 주인공 레인저 부대가 모습을 드러내자 톰 행크스는 사열대를 뛰어내려가 그들에게 악수를 청하고 함께 사진 찍어줄 것을 요청했다.

비평자 코멘트: ‘의 주인공’에 해당되는 말은 원문에 없다.

추천 번역문: 레인저 부대가 행군해 오자 톰은 사열대에서 뛰어내려 그들에게 악수를 청하고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원문(13p): Steven also went up to veterans to ask for auotographs and photographs.

번역문(14p): 스필버그 역시 뒤따랐다.

비평자 코멘트: 스필버그가 레인저 부대원들이 아닌 참전용사들의 사인과 사진을 요구했다는 원문의 내용은 번역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추천 번역문: 스필버그 역시 참전용사들에게 달려가 사인을 해 주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원문(13p): They sent me scripts for each episodes.

번역문(p): (번역하지 않았다)

비평자 코멘트:

추천 번역문: 그들은 내게 각 화의 대본을 보내 주었다.



원문(13p): They paid attention to my comments and suggestions-although I must say that in no way am I a scriptwriter.

번역문(14p): 본인은 비록 그 드라마의 작가는 아니었지만, 그들의 요청에 의해 원고와 주연배우들에 대한 나의 조언을 충분히 반영해 주었다.

비평자 코멘트: 원문과는 지극히 동떨어진 번역문이다.

추천 번역문: 나는 비록 드라마 극본작가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나의 조언과 제언에 귀를 기울였다.



원문(13p): I know how to write books, not how to make a series or a movie.

번역문(p): (번역하지 않았다)

비평자 코멘트:

추천 번역문: 나는 책을 쓰는 방법은 알지만, 드라마나 영화를 만드는 법은 모른다.



원문(13p): They also sent scripts to the leading personalities in the story.

번역문(p): (번역하지 않았다)

비평자 코멘트:

추천 번역문: 그들은 이 이야기의 실제 주인공들에게도 대본을 보내 주었다.



원문(13p): Even more, the actors began calling the men they were portraying. How did you feel, they would ask, after this or that happened? Did you smile? Were you elated? Were you depressed? And more.

번역문(14~15p): 해당 배우들도 배역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전화를 하며 당시의 상황과 느낌을 물어보기도 했다.

비평자 코멘트: 차와 포를 너무 많이 떼었다! 이 정도면 번역문이 아니라 차라리 요약문이다.

추천 번역문: 더구나, 배우들도 자신이 연기하는 실존 인물들을 찾아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이 벌어진 후에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이 때는 미소를 지으셨나요?” “이 때는 신이 나셨나요?” “우울해 하셨나요?” 등의 것들을 물어 보았다.



원문(13p): I've already told, in the Acknowledgements of this book, how I came to write about Easy Company.

번역문(15p): 내가 어떻게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는가는 이미 책에서 소개하였다.

비평자 코멘트: 역시 차와 포를 너무 많이 떼었다.

추천 번역문: 내가 이지 중대에 대한 책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책의 ‘감사의 말’ 부분에서도 다루고 있다.



원문(13p): Tom and Steven read the book and decided to make a series out of it, but things weren't quite that simple.

번역문(15p): 행크스와 스필버그는 이 책을 읽고 곧바로 드라마 제작을 결정했는데,

비평자 코멘트: but things weren't quite that simple. 부분이 번역되지 않았다.

추천 번역문: 이 책을 읽은 행크스와 스필버그는 이 이야기에 기반한 드라마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간단하게 풀려주지 않았다.



원문(13p): First of all, there are hundreds, indeed thousands, of books on World War II.

번역문(p): (번역하지 않았다)

비평자 코멘트: 이쯤 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추천 번역문: 우선,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책은 수백 권, 아니 수천 권이나 있다.



*총평

원서의 제13페이지, 그러니까 들어가는 말의 첫 페이지 번역에서만 제대로 번역되었다고 볼 수 없는 문장 또는 누락된 문장이 무려 13개나 나왔다. 원서의 제13페이지에 적힌 한 문장으로 볼 수 있는 글 덩어리의 개수는 채 20개가 안 된다. 특히 원문의 내용 누락은 대단히 심각한 수준이다. 원고 첫 부분에서만 이쯤 되면 나머지 부분은 더 볼 필요도 없다는 것이 비평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번역자인 신기수 씨는 2002년에도 박순채 씨와 같은 책을 공역하였으며, 이번 2010년판에는 “...공동번역으로 인한 상이한 문체라든가 이름, 관점 등을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꽤 정리했다. 또한 부끄럽지만 오역부분도 다시 검토하여 수정하였다.(번역서 343p)”라고 했는데, 이게 대체 어디를 봐서 그만큼 고친 원고란 말인가?

리뷰한 부분에는 나오지 않지만 비평자가 스팟 체킹한 결과 각종 군사용어의 오역(9mm탄을 쏘는 MG-42, 톰슨 45구경 캘리바 반자동기관총, 타이거 로열 등...)도 2002년판과 거의 차이가 없던데, 도대체 뭘 믿고 독자들에게 이걸 ‘개역판’으로 봐 달라는 것인가?

지난 2002년판을 보고 어떤 독자가 이런 평을 남겼다. “원서와 드라마에서 느낀 감동은 전혀 느낄 수 없는 번역본”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서문 부분을 비교해 보니 2002년판과 2010년판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한국의 독자들은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진정한 감동을 느낄 기회를 이렇게 박탈당해야 하는 건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2권
굽시니스트 지음 / 애니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면에서 딱 상권의 연장선상에 있는 만화. 즉 상권만큼 좋고, 상권만큼 나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패러디로 살펴보는 2차대전사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매우 참신하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를 담아내는 방법 면에서는 여전히 전작에서 나타난 역량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다. 즉 패러디 소재를 모르는 사람도 쉽게 웃을 수 있는 패러디를 만들지 못하고, 그 패러디 소재 지나치게 일본의 애니메이션 또는 게임에 치우쳐 있다. 게다가 전작과 비슷한 볼륨의 하권에서 모든 이야기를 종결시켜야 한다는 점 때문인지 내용의 밀도가 상당히 짙어졌는데, 이로 인해 가독성 약화라는 문제가 새로이 발생했다.  

2차세계대전의 종전을 1945년 4월 30일로 여기고 있거나, 표지에도 태평양전선 관련 인물은 단 한명도 없는 등, 유럽 중심 시각에 치우친 모습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기록적인 판매고를 자랑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젊은 세대가 알게 모르게 일본 서브컬처에 깊숙히 젖어 산다는 현실의 반영일 것이다. 또한 말미에 전쟁의 영향을 평가한 부분에서는 '역시 역사학도'라는 안도감이 든다.

책을 덮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에다 신이나 고바야시 모토후미 처럼 좀더 진지한 방식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그려낼 역량있는 만화가는 없는 것일까. 우리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제2차 세계대전 만화는 이것 말고는 없을까 하는 의문이다.

*상권에도 없던 오탈자(심지어는 초판 사은품에까지 오탈자가 발생했다)의 빈발은 이 책의 진지함을 더욱 깎아먹는 요소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광고인의 고백
데이비드 오길비 지음 / 서해문집 / 1993년 9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부터 꼭 번역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 있었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바로 데이비드 오길비의 <어느 광고인의 고백>이라는 책이다. 대학교때 광고론을 들으면서 도서관에서 찾아보고서 그 번역의 조악함에 기겁을 했던 책이다. 십여 년이 지나도 계속 그 모양이길래 몇몇 출판사에 아래의 샘플 번역을 보내서 완역판을 내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재수가 없었던지 제안서를 보냈던 세 곳 모두에게 거절당했다. 출판사들의 행태중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발로 기획하지 않고서는 (일명, 발기획) 도저히 이해해 줄 수 없는, 명분도 실리도 한참 부족한 책들은 줄창 출간하면서 외부에서 제안한 기획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흠을 찾아내려 한다는 것이다. <광고인의 고백>은 광고계에서는 필독서로 자리잡고 있는 책이다. 신입사원 연수 때 나눠주고 독후감쓰라고 시키기도 한다. 엉터리 번역만 고쳐서 새로 내면 기존 광고업계 종사자들과 대학생 독자만 잡더라도 스테디셀러가 확실한 책이었다. 엉터리 번역을 고치니 명분 좋고 꾸준히 팔리니 실리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끊임없이 이상 자기계발서나 기획해서 쪽박차는 출판사들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까지 들었다. 아예 내가 자비로 출판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다가 다시 3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고 다시 한 번 몇몇 열심히 일하는 신생 출판사를 엄선하여 원고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재깍 피드백이 왔다. 작년에 완역판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확인해 보니 제목을 바꿔서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예상대로 꽤 팔리고 있었다. 

이제와서 남들 탓하면 뭐하겠는가? 내가 좀더 제안서를 그럴듯하게 포장했어야 한는 건데 노력이 부족했나보다...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번역한 부분이 아까워서 그냥 여기다 올리겠다. 우리가 15년이 넘는 세월동안 서해문집판 번역을 읽고서 그것을 데이비드 오길비의<광고인의 고백>을 읽었다고 착각한 사람들, 우리나라의 번역수준이 어떤지 확인해 보고 싶은 사람들 모두 모여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광고인 중의 한 명인 데이비드 오길비의 통찰로 가득찬 원문이 오역과 생략으로 난도질 당하여 술취한 동네 아저씨 잔소리 수준의 글이 되어버렸음을.....  어찌나 원문을 많이 생략해버렸던지 서해문집 번역판을 보면 원문의 양의 5분의 1도 안된다. 심지어는 오길비가 제시한 인재상은 1번부터 10번까지인데 서해문집판에는 9번까지만 나와있다. 이런 걸 보고 개판이라고 하는 거다. 검은색 글씨가 서해문집 번역본에서 한 글자도 안빼고 옮긴 내용이다. 







<어느 광고인의 고백 Confession of an Advertising Man>

 

* 검은색은 서해문집판에 실린 번역, 붉은색이 내 번역 *




배경

 

어릴 때 나는 런던 근처에 있는길포드 시의 루이스 캐롤에 살았습니다. 나의 부친은 스코틀랜드인으로 고전학자였으며 나의 모친은 아일랜드 여성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나는 길드포드에서 루이스 캐롤Lewis Carroll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집처럼 이상한 환경에서 살았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는 게일어(아일랜드 지방어 역자주)를 쓰는 스코틀랜드인이었으며, 고전학자 였고, 또한 완고한 불가지론자(인간이 인식하는 것은 현상뿐이나, 신은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인식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 역자주)였다. 어느날 아버지는 내가 몰래 교회에 다니는 걸 알아차리셨다.

얘야, 넌 어떻게 그런 같잖은 종교의식을 참아낼 수 있는 거냐? 그런 건 하인들한테나 어울리지 교육받은 사람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신사처럼 행동하기 위해서 기독교인이 될 필요는 없는거란다.

어머니는 아름답지만 좀 별난 아일랜드인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어머니의 도움 없이도 필요 이상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를 들어 유산을 물려주시지 않았다. 지당하신 말씀이었다.

나는 아홉 살 때 귀족계급이 다니는 더스보이홀의 기숙학생이 되었습니다 아홉 살에 나는 귀족들이 다니는 기숙학교인 이스트번Eastbourn의 도더보이즈 홀Dotheboys Hall에 입학했다. 교장선생님은 나에 대해 이렇게 쓰셨다. 이 아이는 눈에 띄게 독창적인 사고를 합니다. 선생님들과 논쟁하길 좋아하며 책이 틀렸고 자신이 맞다고 선생님들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독창성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나폴레옹의 형이 네덜란드의 왕이었으므로 나폴레옹도 네덜란드인이었을 거라고 말하자, 교장선생님의 부인은 내게 저녁도 주지않고 침실로 보냈다. 그녀가 코메디 오브 에러The Comedy of Errors의 수녀원장 역할을 맡은 내게 의상을 입혀주고 있을 때, 나는 그녀가 싫어하는 액센트로 서두 연설 연습을 했다. 그러자 그녀는 볼을 꼬집어서 나를 바닥에 넘어뜨려 버렸다.

13세가 되었을 때 나는 휑쓰에 입학했습니다. 이곳은 나의 숙부가 세운 스파르타식 교육법으로 이름 높은 스코틀랜드의 학교입니다 열세 살이 되자 나는 나의 종조부이자 스코틀랜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변호사였던 대법관 잉글리스 경이 확립한 스파르타식 교육 체계를 갖춘 스코틀랜드 학교인 페터스Fettes에 들어갔다. 이 훌륭한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중에는 이안 맥클로드Ian Macleod, 나이얼 맥퍼슨,Niall Macpherson, 녹스 커닝햄Knox Cunningham, 그리고 미래의 국회의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선생님들중 기억나는 분으로는, 내가 더블베이스를 연주하도록 격려해 주셨던 헨리 해버갤Henry Havergal 선생님, 그리고 역사를 가르치시면서 1066 and All That 이라는 책을 쓰신 월터 셀러Walter Sellar 선생님이 있다.

이어 나는 옥스포드에 진학했는데 옥스포드에서는 낙제생이었습니다. 장학금을 받는 등 많은 사람들로부터 후의를 받았지만 무엇을 해도 잘 안되는 낙제생, 결국 학교를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옥스포드Oxford 대학에 진학해서는 헤맸다. 역사학자인 키이스 필링Keith Feiling 교수님은 장학금을 주셨고, 또한 패트릭 고든워커Patrick Gordon-Walker, 로이 해로드Roy Harrod, A. S. 러셀Russel 외 많은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지만 딴데 너무 정신이 팔린 나머지 공부를 못해서 쫓겨났다.

그 때가 1931년, 불황의 시대였습니다. 그 후 17년간 나는 아무런 목적도 없이 세계를 모험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나는 파리에서는 요리사, 세일즈맨의 직업을 경험했으며 이후 에딘버러 지역의 사회사업가, 갤럽 씨의 영화산업을 위한 조사회사의 공동 경영자, 영국 보험 회사, 윌리엄 스티븐슨 경의 어시스턴트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펜실바니아에서는 농사일도 했습니다. 그 때가 1931년, 대공황의 바닥이었을 무렵이다. 이후 17년간 친구들이 의사, 변호사, 공무원, 정치가 등으로 활약하는 동안, 나는 뚜렷한 목적도 없이 세계를 여행하며 떠돌아 다녔다.  파리에서는 요리사로, 에딘버러의 빈민가에서는 방문판매원과 사회복지사로, 영화 산업을 위한 리서치를 위한 갤럽Gallup의 조사원으로, 브리티쉬 시큐러티 코디네이션British Security Co-ordination에서는 윌리암 스티븐슨William Stephenson경의 어시스턴트로, 그리고 펜실베니아에서는 농부로 일했다.

나의 소년시절의 꿈은 정치가였습니다만 현재는 메디슨 가의 광고대행사의 경영자가 되었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 영웅은 로이드 조지Lloyd George (영국의 정치가 역자주)였으며 장차 수상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 대신에 나는 결국 매디슨 애버뉴Madison Avenue의 광고대행인이 되었다. 내가 맡고 있는 19개 고객사들의 매출총액은 영국 정부의 총수입보다 더 많다. 맥스 비어봄Max Beerbohm이 S. N. 버만Behrman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만일 내가 많은 재산을 물려받는다면 모든 주요 일간지에 대대적인 광고 캠페인을 하겠네. 그 광고에 굵고 커다란 글씨로 딱 한 문장만 쓰는거야. 어떤 남자가 자기 부인에게 하는 말을 내가 들은 건데, 여보, 이 세상에서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라는 한 문장만 쓰는거야. 내 입장은 다르다. 나는 광고되는 상품은 보이는대로 몽땅 사고 싶다. 아버지는 광고에서 남들이 칭찬하는 제품에 대해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광고로 제품을 칭찬하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나는 내가 상품을 광고하면서 느꼈던 기쁨을 여러분들도 구매를 통해서 느끼기 바란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제1인칭을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나의 죄상을 고백하고 모험을 설명하는데 어쩐지 <우리들>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구식으로 1인칭 단수를 사용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현재의 미국식 관습을 어기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과실을 고백하고 나의 여정을 묘사하는데 우리라고 쓰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매사추세츠 입스위치에서Ipswich, Massachusetts

데이비드 오길비DAVID OGILVY

 

 

 

 

1 장. 광고대행사를 경영하려면 광고대행사를 운영하는 법

 

광고대행사의 경영은 조사기관이나 잡지사, 건축사무소나 커다란 조리실 등의 크리에이티브 조직과 비슷한 것입니다 광고대행사 운영은 여타의 창조적인 조직을(리서치 회사, 잡지사, 건축사무소, 대형 조리실 등) 운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30년전, 나는 파리에 있는 어느 호텔에서 요리사 노릇을 했는데 그 호텔의 요리사들은 모두가 다른 사람보다 좋은 요리를 만들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30년전 나는 파리에 있는 마제스틱 호텔Hotel Majestic의 요리사였다. 빠비용Pavillon지의 앙리 술레Henri Soule가 아마도 역사상 최고의 주방일 것이라고 내게 말했던 곳이다.

우리 팀에는 37명의 요리사가 있었다. 우리는 미친듯이 일했다. 일주일에 63시간을 일했는데 - 물론 노조는 없었다 - 아침부터 밤까지 땀에 젖어 소리치고 욕하며 음식을 만들었다. 누구나 목표는 하나였다. 다른 요리사가 이전에 만들었던 그 어떤 요리보다 더 훌륭한 요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의 기상은 가히 해병대의 귀감이 될만 했다.

나는 오늘날도 당시의 수석 요리사였던 피탈 씨가 부하들의 사기를 어떻게 북돋아 주었는지 알 수 있다면 광고대행사의 크리에이티브 부문에 응용할 수 있겠는데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그 당시 책임 주방장었던 삐딸씨Monsieur Pitard처럼 그렇게 뜨겁게 사기를 진작시키는 방법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러한 리더쉽을 광고대행사의 경영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항상 믿어왔다.

그는 그 많은 요리사 가운데 솜씨가 가장 좋았으며 1주일에 한번쯤은 직접 요리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들은 그의 요리솜씨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이런 보스를 위해서는 어떤 일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피탈 수석 요리사의 예에 따라 나도 오늘날 스스로 카피를 쓸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나의 솜씨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동료 카피라이터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선, 그는 주방 직원들 중에서 최고의 요리사였고 자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책상에 앉아서 메뉴를 짜고, 청구서를 검토하고, 재료를 주문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소모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주방 한가운데에 위치한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자신의 방에서 나와 요리 시범을 보이곤 했다. 우리는 빙 둘러서서 그의 묘기를 구경하느라 넋이 나갔다. 최고의 실력을 갖춘 명장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삐딸 주방장의 사례를 본받아, 나도 휘하의 카피라이터들에게 내 펜 끝이 무뎌지지 않았음을 일깨워주기 위해 아직도 가끔씩 직접 광고 카피를 작성하곤 한다.)

피탈 씨의 지도는 엄격했으며 쉽게 사람을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나는 부하를 잘 칭찬해 주지 않습니다.) 삐딸 주방장은 엄격하게 부하 직원들을 다뤘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두려워했다. 그는 권위의 상징인 유리방에 앉아 있었다. 나는 일하다 실수할 때마다 그의 송곳 같은 눈이 눈치챘을까봐 그쪽을 쳐다보곤 했다.

카피라이터들처럼 요리사는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일하기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기 쉽다. 마음씨 좋은 보스라면 우리의 경쟁이 싸움으로 번지는 것을 막지 못했을 것이다. 소스 담당요리사인 부르기뇽씨가 내게 말하기를, 요리사가 마흔이 될 때 쯤이면 죽거나 미치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것이었다. 어느날 밤 수프 담당 요리사가 마흔일곱 개의 날계란을 주방을 가로질러 내 머리를 향해 집어던져서 그 중 아홉 개를 명중시켰을 때, 부르기뇽씨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중요한 손님의 푸들강아지에게 줄 뼈다귀를 찾느라 그의 재료 단지를 뒤지자 그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던 것이다.

빠띠씨에patissier(제과 담당 요리사 역자주)도 괴팍스러운 점에 있어선 뒤지지 않았다. 매일 밤마다 그는 자신의 함부르크 모자(챙이 좁은 중절모자 역자주) 속에 통닭을 숨겨가지고 나왔다. 그는 휴가를 떠나게 되자 내게 수십 개의 복숭아를 자신의 기다란 속옷 다리에 채워넣도록 지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왕과 여왕이 베르사이유에서 정상 만찬을 하게 되자, 이 도둑질을 일삼던 천재는 프랑스의 모든 빠띠씨에들을 물리치고 선발되어 설탕으로 만든 장식용 바구니와 쁘띠 푸르petits fours glaces(디저트용으로 먹는 얼린 미니 케익 역자주)를 만들었다.

삐딸씨는 거의 칭찬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칭찬을 듣는 날이면 우리는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프랑스의 대통령이 마제스틱 호텔에서 열리는 연회에 왔을 때, 주방 안은 스릴넘치는 분위기였다. 이 기념비적인 날에, 나는 화이트 소스를 곁들인 개구리 다리를 맡아서 쳐빌chervil(파슬리의 일종 역자주) 잎사귀로 각각의 넓적다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삐딸씨가 내 옆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나는 너무나 떨려서 양 무릎이 서로 부딪히고 손이 덜덜 거릴 지경이었다. 그는 깨끗하게 다림질된 자신의 모자에서 연필을 꺼내어 허공에 흔들었다. 전직원이 집합하라는 신호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내가 만들고 있던 개구리 다리를 가리키며 아주 느리고 조용하게 말했다. 바로 이렇게 만드는 거야. 나는 그의 충실한 종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오늘날 나는 삐딸씨가 그랬던 것처럼 여간해서는 직원들을 칭찬하지 않는다. 그들도 내 칭찬을 흔히 얻을 수 없는 보상으로 여기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삐딸씨는 우리 모두에게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어느날 저녁 내가 수플레 로쓰차일드Souffle Rothchild를 준비했을 때 그는 나를 이층에 있는 식당 문 앞에 데려가서 폴 두메Paul Doumer 대통령이 내가 만든 것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3주 후인 1932년 5월 7일, 두메 대통령이 사망했다.[1]

(우리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중대한 상황에서 막중한 책임을 맡는다. 위기가 닥쳤을 때 밤새워 일하고 나면, 그 후로 몇 주가 지나도 충천한 사기가 꺼지지 않는다.)

피탈 씨는 요리솜씨가 없는 요리사는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솜씨없는 요리사가 곁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요리사의 사기마저 꺾을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삐딸씨는 무능함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않았다. 무능한 아마츄어들과 함께 일하다보면 프로페셔널로서의 자부심이 무너져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한 달 동안 세 명의 제빵 담당 요리사를 같은 이유로 해고시키는 것을 목격했다. 그들 모두 브리오쉬빵brioches의 윗부분을 일정하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수상의 첫번째 요건은 훌륭한 백정이 되는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졌던 글래드스톤Gladstone(19세기영국의 정치가 역자주)도 그러한 무자비함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그는 또한 요리를 제공하는데 시간 약속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나는 오늘날 오길비 벤슨 & 매더 사가 클라이언트에게 약속한 날짜에 광고나 TV 커머셜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매우 불쾌합니다. 우수한 회사는 언제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삐딸씨는 상식적인 수준 이상의 서비스 기준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예를들어, 한 번은 내가 웨이터에게 오늘의 요리todays special가 동이 나버렸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서 나를 해고하려고까지 했다. 훌륭한 주방에서는 메뉴에 약속된 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문제의 그 요리를 다시 만드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손님들이 기다려주지 않을 거라는 점을 지적했다. 오래전 일이라 그 요리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삐딸씨가 내게 했던 말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다음 번에 오늘의 요리가 모자라면 내게 와서 말을 해. 같은 요리를 찾아낼 때까지 내가 다른 호텔과 레스토랑에 전화해서 알아볼 테니까. 그리고 나서 자네를 택시 태워보내서 음식을 가져오게 하면 돼. 두 번 다시 웨이터에게 무슨 음식이든 동이 났다고 말하지 말게. (오늘날 오길비, 벤슨 앤드 매더Ogilvy, Benson & Mather의 직원중 누군가가 고객에게 약속한 날짜까지 광고를 만들지 못하겠다고 말하면 나는 불같이 화를 낸다. 최고의 회사라면, 얼마나 많은 비용과 고통, 그리고 초과근무가 발생하더라도 약속은 항상 지켜져야 한다.)

삐딸씨의 휘하로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서 나는 윤리적 딜레마에 봉착했다. 나의 아버지도, 학교 선생님들도 가르쳐 주지 않은 문제였다. 식료품 저장실 책임자가 나를 불러서 소스 담당 요리사에게 송아지 췌장을 보냈는데, 부패된 냄새가 나서 그걸 먹게되는 손님의 목숨을 위태롭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소스를 뿌려 냄새가 가려질 것이고, 손님은 그걸 먹게 될 것이었다. 나는 식료품 저장실 책임자에게 항의했지만 그는 자신의 명령을 따르라고 했다. 송아지 췌장이 동이 났다는 사실이 삐딸씨에게 발각되면 문책당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어릴 적부터 고자질하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일이라고 교육받아왔다. 하지만 나는 이 사실을 그냥 보고해버렸다. 나는 부패한 송아지 췌장을 삐딸씨에게 들고가서 냄새를 맡아보도록 했다. 그는 내게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곧바로 저장실 책임자를 찾아서 해고해버렸다. 그 나쁜 인간은 그 자리에서 당장 보따리를 싸야했다.

그는 또한 요리실을 깨끗하게 정돈해 놓도록 요리사들을 훈련시켰습니다. (그래서 나는 사무실을 언제나 정돈해 놓도록 부하들에게 주의를 환기시켜 놓습니다. 난잡한 사무실은 문란한 분위기를 만들며 중요한 서류를 못 찾아 야단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조지 오웰George Owell이 파리와 런던에서의 생활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에서 프랑스 주방이 더럽다고 말한 것은 마제스틱 호텔에서는 일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삐딸씨는 우리가 주방을 청결히 하도록 엄격하게 관리했다. 나는 고기저장소의 테이블 표면을 하루에 두 번씩 날카로운 대패로 밀어내야 했다. 하루에 두 번 바닥을 문지르고 깨끗한 톱밥을 뿌려야 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해충박멸 전문가가 부엌에 바퀴벌레가 있는지 살폈다. 매일 아침 우리는 깨끗한 유니폼을 지급받았다. (오늘날 나 역시 직원들이 사무실을 깨끗하게 정돈하도록 엄격하게 관리한다. 지저분한 사무실은 지저분한 분위기를 만들고 중요한 기밀서류 같은 것도 쉽게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 요리사들은 월급이 짰지만 삐딸씨는 납품업자들이 주는 커미션으로 성에서 살 수 있었다. 그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부를 감추기는커녕, 택시를 타고 출퇴근하고, 금장식이 된 지팡이를 들고 다녔으며 쉬는 날에는 부유한 은행가처럼 차려입고 다녔다. 이런 식의 부의 과시는 우리들로 하여금 그가 걸은 길을 따르도록 우리의 야망을 자극했다.

저 유명한 오귀스뜨 에스꼬피에Auguste Escoffier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런던의 칼튼호텔에서 최고주방책임자였을 때 그는 회색 포록 코트에 중산모를 쓰고서 4두 마차를 타고 더비 경마에 가곤 했다. 마제스틱의 동료 요리사들 사이에서 에스꼬피에의 요리 가이드Guide Culinaire는 요리법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을 때 대법원의 판결처럼 결정적인 권위를 가졌다. 그가 사망하기 얼마 전에 은퇴하여 우리 주방에 점심식사를 하러 온 적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브람스가 필하모닉 연주자들과 점심식사를 하는 것 같았다.

점심과 저녁식사 서비스 동안 삐딸씨는 우리 요리사들이 요리를 웨이터들에게 건네주는 카운터에 앉았다. 그는 주방을 떠나는 모든 요리를 일일이 검사했다. 가끔씩 그는 좀더 잘 만들라며 요리를 다시 요리사에게 돌려보내기도 했다. 그는 항상 접시에 너무 많이 음식을 담지 않도록 주의를 줬다. 식당의 이윤을 고려해서였다.

(그밖에 나는 피탈 씨에게서 배운 교훈을 바탕으로 클아이언트에게 제출하는 캠페인은 모두 내 스스로 점검하고 그 중 많은 것을 다시 손질하도록 명령하며 부하보다 항상 많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부하들은 시간 외 작업을 싫어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나는 고객들에게 전해지기 전에 모든 캠페인을 일일이 검사하고 그중 상당수를 좀더 잘 만들라며 돌려보낸다. 또한 나는 삐딸씨처럼 이윤을 창출하려는 열정을 가지고 있다.)

삐딸씨의 리더쉽에 있어서 내게 가장 강한 인상을 심어준 구성 요소는 아마도 그의 근면성이었을 것이다. 뜨거운 스토브 위에 허리를 굽혀가며 일주일에 63시간 이상되는 근무시간에 지쳐서, 나는 쉬는 날이면 풀밭에 등을 대고 누워서 하늘을 쳐다 보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삐딸씨는 일주일에 77시간을 근무하면서도 격주로 하루만 쉬었다.

(오늘날 나의 스케줄이 그렇다. 내가 부하직원들보다 더 오랜 시간 일해야 그들이 초과근무를 덜 꺼려할 거라는 생각에서이다. 최근에 우리 회사를 떠난 한 임원은 고별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당신은 맡은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모범을 보였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당신이 집에서 창가의 책상 앞에 꼼짝않고 앉아서 맡은 일을 처리하는 동안 옆집 정원에서 흥청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건 정말 곤란한 일이었습니다. 소문이 날 수밖에요.)

나는 마제스틱 호텔에서 다른 것들도 배웠다. 고객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면 절대로 해고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7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최고급 스위트룸에 묵는 아주 중요한 손님인 한 미국 여성이 매끼 구운 사과를 먹는 식이 요법을 하고 있었다. 어느날 그녀는 탱탱하게 꽉 찬 사과가 제공되지 않으면 리츠호텔로 옮기겠다고 경고했다. 나는 사과를 두 개 구워서 과육을 체로 걸러서 내과피의 흔적을 없앤 후, 한 개의 껍질 안에 두 개분의 과육을 채워 넣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 고객이 여지껏 구경도 못해봤던 탱탱한 모양의 구운 사과였다. 이 사과를 만든 요리사는 종신직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말이 주방까지 흘러들어왔다.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는 작고한 찰스 벌링햄을 꼭 빼어닮은 늙은 재무담당자였다. 내 친구는 공산주의자였지만 아무도 그런 것에 관해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내 국적에 더 큰 인상을 받았던 모양이다. 프랑스 주방의 스코틀랜드인은 뉴욕의 매디슨 애비뉴Madison Avenue의 스코틀랜드인 만큼이나 희귀한 존재였다. 내 조상들이 고지대에서 살던 이야기를 들은 동료 요리사들은 나를 미개인이라 명명했다.

광고대행사를 14년간 경영해 본 나는 결론적으로 우두머리에 선 사람은 하나의 책임을 지고 있다. 즉 <창조적인 인간이 유익한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윌리엄 메닝거 박사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광고업에서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창조적인 인간을 많이 기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다분히 매우 흥분하기 쉽고 재기가 있으며 기분대로 노는 반역아의 비율을 많게 할 것이다. 매디슨 애비뉴에 처음 왔을 때 나는 그보다 더한 미개인이 되었다. 광고회사를 운영하는 것이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14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서, 나는 최고책임자는 단 하나의 중요한 책임을 진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창조적인 괴짜들이 유용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윌리엄 메닝거 박사는 뛰어난 통찰력으로 그 어려움을 이렇게 묘사한 바 있다. 당신이 광고 업계에서 성공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필수적으로, 창조적인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다시 말해서 괴팍하고, 재주가 뛰어나며, 별종인 불순응형 인간들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신은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일주일에 7일, 밤낮으로 대기 상태에 있어야 한다. 광고대행사의 모든 임원들에게 가해지는 이런 끊임없는 압력은 상당한 육체적, 정신적 희생을 수반한다. 임원은 AE(Account Executive)와 부서장에게 압력을 가하고, 그들은 다시 제작부 사람들을 압박한다. 그중에서도 직원들과 당신에게 가해지는 고객의 압력이야 말로 가장 큰 희생을 초래한다.

광고대행사 직원들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문제점은 서로가 서로를 주의깊게 관찰한다는 것이다. 각자 누가 남보다 먼저 카페트를 깔게되는지, 누가 다른 남보다 먼저 조수를 얻게 되는지, 누가 다른 사람들보다 월급을 더 받는지 등을 살핀다. 진짜로 카페트나, 조수나, 돈을 원한다기 보다는 아버지로부터의 인정을 원하는 것이다.

임원은 필연적으로 아버지상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자녀에게건, 아니면 부하직원에게건 간에, 좋은 아버지가 되려면 이해심이 많고, 사려깊으며, 자애롭고 인간적이어야 한다.

 

나의 대행사에는 현재 497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들이 한 사람에 평균 100명의 친구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사람들을 합하면 49,700명이 됩니다. 그런데 나는 그 사람들이 한 사람에 평균 100명의 친구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사람들을 합하면 49,700명이 됩니다. 우리 대행사가 무엇을 하며 무엇을 믿으며 또한 어떤 야심을 가지고 있는가를 나의 부하에게 말한다면 그들은 그들의 친구들에게 이 말을 전할 것입니다. 그러면 49,700명의 오길비 벤슨 & 매더 사의 선전원을 얻는 셈입니다. 우리 회사의 초창기에 나는 모든 직원들과 무척 친밀하게 지냈다. 커뮤니케이션이 쉬웠다. 하지만 회사가 커지면서 그것도 점차 어려워졌다. 내 얼굴도 못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아버지상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 회사는 현재 497명의 남녀 직원들을 두고 있다. 각 직원당 평균 100 명 정도의 친구를 두고 있으므로 다 합하면 49,700 명의 친구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전직원에게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지, 우리의 야망이 무엇인지 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49,700 명의 친구들에게 말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회사는 49,700 명의 응원군을 갖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일년에 한 번 현대미술관의 대강당에 이들 전원을 모아 놓고 우리 회사의 경영이나 이익 그리고 그밖의 사항에 대한 정확한 보고서를 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어떤 유형의 행동을 내가 존경하는가에 대해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 현대 미술 박물관의 강당에 전직원을 모아놓고 그들에게 우리 회사의 현황과 실적을 보고한다. 그런 다음 내가 바라는 인재상을 말해준다.

 

1)           나는 성의를 다해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자신의 힘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싫습니다. 이러한 하드 워크는 경제적 이점도 있습니다. 부지런히 일하면 적은 인원으로도 되며 보다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우리들이 받는 보수는 딴 회사보다 많아질 수 있습니다. 나는 참고 견디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타인의 노력에만 의존하는 무임승차자는 싫어한다. 일이 없을 때보다 일이 많을 때 더 재미있는 법이다. 근면함에는 경제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열심히 일할수록 직원을 덜 고용해도 되므로 더 많은 이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윤을 많이 창출할수록 우리 모두에게 돌아가는 몫도 그만큼 많아지게 된다.

2)           나는 제1급의 두뇌를 가진 사람을 존경합니다. 왜냐하면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 없이 우수한 대행사를 이끌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두뇌가 성실과 연결되지 않으면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는 뛰어난 두뇌를 가진 사람을 존경한다. 똑똑한 사람들 없이 훌륭한 광고대행사를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적인 정직성intellectual honesty이 결여된 두뇌라면 곤란하다.

3)           나는 원칙적으로 부부를 함께 고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파문을 낳기 때문입니다. 나는 인척이나 배우자를 절대로 고용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한다. 직장 내 정치를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직원간에 결혼을 하게 되면 그 중 한 명은 떠나야 한다.

4)           나는 기쁨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은 존경합니다. 오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기쁘지 않으면 딴 일을 찾아 주십시오. 나는 신나게 일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당신이 현재하고 있는 일을 즐기지 못한다면,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스코틀랜드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살아있는 동안 행복해라. 어차피 오래도록 죽어있게 될 테니까.

5)           나는 상사에게 아첨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일반적으로 이런 사람들이 부하 직원들을 괴롭힌다.

6)           나는 자신의 직업에 긍지를 가지고 있는 직업인, 자신의 일을 최고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나는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발휘하는 장인, 즉 자신감 있는 프로페셔널을 존경한다. 이들은 항상 동료들의 전문성을 존중하며 남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7)           나는 자신에게 성공을 가져다 줄 부하를 고용하고 있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나는 우수하지 않은 부하를 거느리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을 동정합니다. 나는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훌륭한 부하를 채용하는 사람을 존경한다. 불안에 떨며 자신 보다 열등한 사람을 부하로 뽑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동정심을 느낀다.

8)           나는 자신의 부하를 키워주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을 동업자로부터 뛰어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부하직원들을 성장시켜주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래야만 내부에서의 승진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중요한 자리를 채워넣기 위해서 밖에서 사람을 찾고 싶지 않으며 그럴 필요가 없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한다.

9)           나는 타인을 인간으로 취급하는 신사적인 매너를 가진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반대로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해주는 매너있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싸움을 일삼는 사람들은 혐오한다. 나는 필전(筆戰 paperwarfare)을 벌이는 사람들을 혐오한다. 평화를 유지하는 최상의 방법은 솔직해지는 것이다.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시를 기억하라:

 

나는 친구에게 화가 났다;

분노를 말했으므로 분노가 사라졌다.

나는 적에게 화가 났다;

분노를 말하지 않았으므로 분노가 커졌다.

 

10)       나는 자신의 일을 시간에 맞추어 끝내도록 훈련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나는 정해진 시간 내에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완수하는, 체계적인 사람들을 존경한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아서 웰슬리Arthur Wellesley(the Duke of Wellington, 1769-1852)는 책상 위에 놓인 모든 업무를 끝마치기 전에는 귀가하지 않았다.

 

 







[1] 물론 내가 만든 수플레 때문이 아니라 미친 러시아인이 쏜 총탄 때문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케로로 > 최수연, 문희경 CD 구합니다.

011-9716-7356으로 전화 주셔요. 

좋은 값에 매입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편집자란 무엇인가 - 책 만드는 사람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김학원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상론이라는 입장으로 보면 좋은 책이긴 한데... 현실은 정말 시궁창이다. 그뿐이다.

대부분의 중소 출판사에서는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사람들'이 편집자가 된다. 이스라엘 수상 아리엘 샤론이 여잔줄 알만큼 상식이 없는 편집자도 봤다. 급한 출간 일정 맞추려다 오탈자 없이 보낸 원고에서 오탈자를 마구 만들어 내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형편없이 책을 만들어놓고도 저자 또는 역자에게 미안하단 소리 하나도 없다. 게다가 턱없이 박봉이다. 간단히 말해 유능한 인재들, 편집자 절대 못 되게 하는 데가 우리나라의 출판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에서 책 5권만 내봐라... 이 책에서 살짝 언급했던 '짜증나는 편집자' 다 볼 수 있다. 

시궁창 같은 현실과 너무나 원대한 이상 사이의 엄청난 갭 때문에 별은 3개만 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a_gidung 2009-09-18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들 눈에서 눈물이 나면...
인쇄소,제본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피눈물 흘리고, 피똥 싼다.
이해한다...하지만 이 바닥에서 더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고 편집자들은 좀 더 분발해 주길 바란다.

시궁창에서 피어난 꽃이 더 빛이 나지 않겠는가....

김대중 대통령이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가지고 살라" 했다.

이 책!!! 별 3개에서 하나 더 줘도 되겠다 ^---------^


이태원 2011-04-18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시궁창에서 꽃이 핀 걸 못 봐서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꽃이 피어나도 시궁창 냄새에 찌들 것이 분명하다. 꽃은 역시 아름다운 꽃밭에서 더불어 피며 더불어 향기를 발해야 한다.

편집자 중에 지가 원고를 컴퓨터로 고쳐놓고 나중에 역자한테 왜 그렇게 했냐고 문의하는 경우가 이는가 하면, 바로 전 페이지에 언급되었는데도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어처구니없는 편집자도 있다. 주변에 물으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비슷한 사례가 많다. 그리고 제멋대로 고쳐 멀쩡한 맞는 번역이 오역으로 출간되는 경우도 있다. 그 다음부터는 번역서를 볼 때 오역을 봐도 오역의 책임이 번역자가 아니라 편집자의 장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뭐, 실력은 워낙 바닥들이지만 모르는 것은 그래도 배우면 되니까 괜찮다고 양보해서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성의 결여와 기본적인 업무 태도, 사람 대하는 태도 등은 정말이지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다.

문제는 편집자를 단기 트레이닝시켜 양산하는 인스티튜트들이다. 몇몇 출판사 사장들이 돌아가며 강사로 뛰며 돈받아먹고 졸업생들을 싸구려 인력 풀로 활용하며 염가 노동력을 얻는 것이다. 우수한 사람들은 소수이다. 그들도 스스로 개탄한다. 그런 학원 출신자들을 고용하면 못 써 먹는다고 사석에서 하소연한다.

케로로 님의 "현실은 시궁창..." 내용은 나도 그대로 겪은 바이다!

아무는 "분발"해서 될 일이 아니다. 출판시장은 몰상식하고 제 주머니만 불리고자 하는 일부 출판사 사장들이 다 망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