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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1권
굽시니스트 지음 / 애니북스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패러디로 살펴보는 2차대전사라... 일단 발상의 참신함은 대단히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두마리 토끼를 쫓다가 다소 무리수를 둔 책이 된 것 같다.
잘 된 패러디와 그렇지 못한 패러디를 가르는 필자의 개인적 기준은 '원작을 모르는 사람도 절로 웃음지을 수 있느냐'이다. 그리고 이 명제에는 많은 분들이 동감하리라고 본다. 패러디란 결국 원작에 대한 희화화와 디포메이션을 행하면서도 핵심은 유지하는 작업이기(실제 인물의 초상과 캐리커처의 관계로 보면 거의 틀림없다)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패러디에 대한 별도의 설명까지 들어가있는, 다시 말하면 그런 설명이 없으면 각종 대중문화에 익숙치 않은 사람을 도무지 웃기기는 커녕 이해시킬 수도 없다고 저자부터가 판단한 이 패러디는 기교 면에서 아직 미숙한 패러디이다. 게다가 그 패러디로 수많은 이설이 난무하는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소재를, 게다가 대중문화와는 별로 인연이 없는 소재를 풀어나갔다는 데서 상당한 무리수가 엿보인다. 즉, 여기 나오는 수많은 패러디의 소스인 각종 대중문화들과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이질적인 두 요소에 대해 정통하지 않은 사람이 보고 즐거워하기는 어려운 만화인 것이다. 조잡한 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친구에게 "모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의 명대사는 어쩌구 저쩌구~"해봤자 상대가 좋아하거나 흥미있어할 리는 적은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때문에 이 만화는 대중서를 지향하고 있으되, 도저히 대중서는 될 수 없는 만화이다.
또한 작가의 역사인식에도 딴지를 걸고 싶다. 표지에도 나와있듯이 이 만화에서 주로 묘사하는 전장은 유럽 전선이고, 작가 역시 2차대전을 히틀러전쟁으로 묘사하는 등 유럽 전선이 2차대전의 중심적 전투가 된 걸로 인식하는 듯 하다. 그러나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벌어진 제2차세계대전인 태평양전쟁은 그 중요성과 전선의 광대함, 희생된 인명 면으로 볼 때 어떤 의미에서는 유럽전쟁보다도 더욱 큰 전쟁이다. 게다가 우리까지 일본의 속국으로 말려들어 직접 피해를 본 전쟁이다. 그런 사실에 비추어보건대 책에서 나타나는 저자의 역사 인식은 상당히 서구편향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담이지만, 훌륭한 패러디에 관해서 추천할만한 작품이라면 개인적으로 <개구리 중사 케로로>를 권하고 싶다. 그 바탕이 되는 수많은 일본제 대중문화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필자도 보는 내내 배꼽을 잡고 웃어댈만큼 훌륭한 패러디 실력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책의 후기에도 썼듯이, 보다 갈고닦아 더욱 훌륭한 작품을 내놓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