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김용택-장욱진 유화 · 카탈로그 레조네

◇봄날 그림에 취해

김용택

산골에 해가 진다. 달이 떠 있는 하늘은 높이 파랗다. 가시덤불이 우거진 앞산에 고향을 떠나지 못한 어른들 같은 굽은 소나무 몇 그루가 싱그럽게 푸르다. 산아래 강가에는 새 풀들이 돋아나 저무는 강물을 초록으로 잔잔하게 물들인다. 텃밭에서는 농부들이 거름을 뿌리느라 부산하다. 우리 집 뒤 빈터에 하얀 매화꽃이 한 그루 피어 있다. 장욱진이 많이 그린 흰 꽃나무다. 푸른 하늘 하얀 달 속으로 새가 세 마리 날아간다.

1976년경 이든가 나는 장욱진의 산문집 ‘강가에 아틀리에’라는 에세이집을 샀다. 그이가 덕소에 있을 무렵이었나 보다. 그의 에세이 집 첫 페이지에 보면 “나는 심플하다”라든가“나는 깨끗이 살려고 고집하고 있노라”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의 단순한 이 말을 넓고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그의 근황을 소개하는 기사가 나오면 나는 모두 오려 두었다. 시골 마을의 툇마루에 앉아 있는 그의 깡마른 모습, 그의 단순하고 생략된 고요, 그리고 고독이 나는 좋았다. 그리고 그는 언젠가 박목월 선생이 만든 ‘심상’이라는 시 전문지 표지에 집, 새, 나무, 강, 강아지, 아이들을 먹으로 많이 그렸다.

지난 겨울 나는 드디어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열리고 있던 그의 10주기 회고전을 보러 갔다. 아, 내가 정말 놀란 것은 그의 그림의 크기였다. 손바닥만한 세상에다가 ‘창조’해 놓은 세상은 참으로 아릅답고도 눈물겨운 세상들이었다.

우리 반 1학년 학수가 세상에 나와 처음 크레파스로 그린 천진스러운 집과 아버지 어머니 모습이 거기 그대로 있었다. 좋은 그림은 그림이 아무리 작아도 작아 보이지 않고, 아무리 커도 커 보이지 않는 법임을 나는 새삼 확인했다.

나는 박수근과 오윤의 화집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 두 권의 그림책은 늘 머리맡에 두고 본다. 그러다가 이번에 나는 ‘장욱진 유화―카탈로그 레조네’(정영목 지음·학고재·2001년 1월)를 구했다. 이제 내가 아끼는 그림책은 세 권이 되었다. 나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장욱진 예술과 인생의 창고인 이 화집 속을 들랑거린다. 늘 들어가 봐도 항상 신기한 세계가 거기 수도 없이 펼쳐진다.

이 글을 여기까지 쓰는 동안 날은 어두워지고 달빛이 강물에 떨어졌다. 산골은 눈물이 나오게 적막하다. 달, 산, 강, 집, 개, 하얀 꽃나무들이 그의 화집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와 제자리로 간다.

(시인)

동아일보  200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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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서지문-한티재 하늘 I, II

◇잊기엔 너무 서러운…

서지문

시인 구상(具常)은 일찍이 “원혼(·魂)의 나라 조국아,/ 너를 이제까지 지켜온 것은/ 비명(非命)뿐이었지”라고 노래했다. 비명이 지켜온 이 민족의 역사는 기억하기엔 너무 괴롭지만 망각하기에는 너무 귀중한 자산이다.

‘한티재 하늘’(권정생 지음·지식산업사·1998년)은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난 1894년부터 1937년까지 몇 가족의 4대에 걸친 삶을 진정한 서민의 어휘와 억양으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1937년생인 작가가 19세기 말부터 해방 전까지 민초들의 일상생활과 통과의례, 그리고 갖가지 생업에 대해 그렇게 상세하고 정확히 알고 있고, 그토록 현장감 있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수십 명의 주요 등장인물들에게 각각의 개성과 심성을 부여했다는 것은 정말 경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갑오농민전쟁, 국모(國母)시해, 한일합방과 일제의 수탈, 모진 질병, 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앙, 끈질긴 가난, 생이별과 사별 등 끊임없는 시련과 고난 속에서 대부분의 민초들은 그저 뼈 빠지는 노동으로 운명에 순응하며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각각의 개성이 있고, 의리와 인정이 있으며, 애달픈 사랑도 있었다.

시아버지와 남편, 모두 ‘빤란구이’(叛亂軍)로 일찍 죽고, 아들만 희망으로 키우며 살았으나 아들도 피를 속이지 못해 저항운동을 하면서 밖으로만 떠돌아 서럽고 며느리에게도 미안한 복남이. 자기 집 문 앞에 쓰러진 계집종과 사랑을 해 산 속으로 도망쳐 화전을 일구며 일생 성실하게 일해도 가난을 면할 길 없는 이석이.

내키지 않는 시집을 갔어도 부지런하고 알뜰하게 식솔 많은 살림을 꾸려가지만 시아버지의 병구완 때문에 빗을 지자 남편은 도박으로 집을 날린 뒤 징용에 끌려가고, 아이들과 낯선 타지에서 모질게 품 팔아도 살 수 없어 밀주를 빚다가 발각되어 벌금형을 받고, 벌금 때문에 몸을 팔고, 마침내 학수고대하던 남편의 소식이 왔을 때는 하룻밤 매춘으로 인해 만삭의 몸이 된 이순이….

모두들 문자 그대로 ‘죽어라고’ 일하고, 그래도 굶을 때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굼기 있다 안카나”하는 속담에만 의지하고 산다. 너무도 고달픈 삶이기에 나병환자 아들이라도 있는 것이 악에 받쳐 살게 하고, 미워할 대상이라도 있는 것이 맥을 놓지 않게 도와주는 삶. 그러나 춥고 배고프고 서러운 살림에도 최소한의 법도가 있고, 인간의 도리가 있고, 무엇보다도 일부러 마련하지 않아도 끝없이 솟구치는 정이 있다.

‘한티재 하늘’은 우리의 근원, 민족의 고향에의 순례이다.

(고려대 교수·영문학)

동아일보  200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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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내가 요즘 읽는 책]한명기-옹정제

◇관료를 개혁 않고는 …

1637년 3월 25일, 조선 국왕 인조는 초라한 복장으로 남한산성을 나섰다. 이윽고 그는 삼전도에서 청 태종 홍태시(紅太豕)에게 항복했다. 높다랗게 쌓은 수항단(受降壇) 위에 거만하게 앉은 홍태시에게 세 번 큰절을 올리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 홍태시란 ‘붉고 큰 돼지’를 뜻한다. 만주족을 멸시하던 조선이 태종을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인간’이 아닌 ‘돼지’에게 인조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병자호란은 그렇게 끝났다. 이후 조선 지식인들은 저주를 퍼부었다. “네까짓 오랑캐들의 운수가 얼마나 더 가겠느냐”고.

그로부터 7년 후 청은 베이징(北京)을 차지하고 한족(漢族)의 왕조인 명나라를 대신해 중원의 주인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순치제, 강희제, 옹정제 등 성군들이 잇따라 즉위하면서 국운은 날로 융성했다. “오랑캐의 운세는 100년을 못 간다”고 했던 조선 지식인들의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옹정제’(2001·이산)는 ‘한줌 밖에 안 되는’ 오랑캐가 세운 청이 267년 동안이나 중원의 주인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비결을 보여주는 책이다. 만주족의 지도자들은 성실하고 인내심이 강할 뿐 아니라 공동체에 바치는 희생정신이 뛰어났다. 황위 계승을 놓고 내분이 있었지만 일단 황제가 정해지면 군말 없이 승복했다.

옹정제는 근면하고 열정적인 황제였다. 강한 자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엄격했지만 힘없는 백성들에게는 온몸을 던져 보호하려 했다.

그는 민심을 파악하려고 모든 지방관들로부터 주접(奏摺)이라 불리는 민정 보고서를 받았다. 그것을 낱낱이 결제하고, 그 내용을 국정에 반영하기 위해 13년 동안 매일 밤 12시에 잠들고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또한 겉으로는 만주족의 무력에 굴복했지만 속으로는 ‘오랑캐’라고 업신여기고 있던 한족 지식인들을 제압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저자는 이 ‘양심적인’ 황제의 처절한 노력을 찬양하지만 동시에 ‘독재자’ 옹정제의 근원적인 한계도 명확히 짚어낸다. 13년에 걸친 옹정제의 ‘개혁 드라이브’도 뿌리깊은 관료제의 병폐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옹정제 사후 관료들의 반격이 시작되고, 청은 서서히 혼란 속으로 빠져들어 갔던 것이다.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일인 통치’에만 매달린 정치의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여전히 ‘개혁’이 화두인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주는 책이다.

(서울대 규장각 특별연구원)



  동아일보  200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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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아이의 눈에 눈물이 말라갑니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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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셀'.

자신만만하고 호기삼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꼬마

9살을 외모로 감추면서 12살이라 우리는 아이,

하지만 세상의 모든 아픔을 혼자 다 겪은 것처럼 슬픈 아이

스스로 낸 숙제를 아무도 모르게 해결해 나가는 아이

슬픔을 이겨내며 한올하올 9살의 시선으로 풀어가는 숙제들

파란 꽃병속의 'BLACK'라 쓰여진 종이와 열쇠는 숙제를 낸 장본인

오스카는 블랙을 사람이름이라 생각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사회와의 연관성을 찾아보고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조명해본다.

한 장 한 장 책장이 넘어가면서 보인든 사진들은 실제 존재한 픽션

모두가 계획된 드라마 영상이었으면 하는 갈망도 뭉개버린 실제상황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연관성을 찾아다니며 그 사랑을 확인해가는 아이

마지막 순간에 남긴 메시지를 들으며 아픔을 이겨내는 아이

아이가 차츰 그 아픔을 이겨내는 것을 서서히 보여주고 있다.

 

젊은 작가의 글답게 새로운 시도가 보인다.

조금 낯선 모습이지만 다 읽어갈즈음이면 그냥 무덤덤해지는 구성

아픔을 신선한 구성으로 이겨낸 듯한 이야기 전개가 좀 색다른 책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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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네킹 > 성공은 우리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선물
스펜서 존슨 지음, 형선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옆 책상위에 놓여있는 자그마한 '선물'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시간의 자투리를 이용해 보기 시작한 것이 단숨에 모두 읽어버렸다.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남아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 같아 다시 저녁시간을 이용해 읽어보았다.

빌이 리즈에게 들려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이야기

생각보다 훨씬 교훈적인 이야기로 메모하며 읽으면 더욱 좋을 이야기

한 소년이 지혜로운 노인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이야기를 들려주며 얼마나 성장해야 그 선물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될까 궁금해 한다.

소년은 선물이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마술같은 것인가요?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주는 타임머신 같은 건가요? 부자로 만들어 주는 건가요?

노인은 자신의 일에만 열중할 때가 행복했고 성공했던 거라 일러준다.

선물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에 관심을 쏟는 것이다. 과거에서 많이 배울수록 후회를 덜하게 되고 현재의 시간이 많아지게 된다. 미래의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고 행동으로 옮기면 삶과 일의 균형이 이루어진다.

소년은 자라서 중년을 지나 남들이 성공했다 하는 위치에 있게된다. 그리고 신입사원들에게 자신이 겪어왔던 그리고 체험했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이야기를 들려준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누구나 하찮게 여기는 작은 실천도 성공에 이르게 하는 지름길을 알려중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가벼움에 믿음을 주지않고 업신여기며 성공에 이르는 길을 막고 담을 쌓게 된다. 

'티끌모아 태산',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우리의 속담들이 한층 더 거대하게 나에게 다가옴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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