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그렇게 쉽게 오는 사랑이라는 느낌도

어떤 누군가에게는 힘들고, 어려운 난제처럼 이리저리 둘러보고

찾아봐도 쉽게 보여지는 않는 미로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에게는 그 나이까지 몇 번의 사랑과 이별을 했다고 하는 말이

어떤 누군가에게는 꿈같고, 설레임으로 다가오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요원한 희망사항으로 변하고 만다.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고, 추억되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어떤 누군가에게는 한 번도 없다는 사실 자체가 화가 나고

때론 인생에 대한 절망하게 되는 한 이유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에 이별뒤에 오는 또다른 사랑이 있는가 하면

어떤 누군가에게는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사랑마저도

또다른 짝사랑으로 남아 마음의 상처로만  쌓여간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몇번의 연애뒤에 결혼이라는 목적지로 도달하는가 하면.

어떤 누군가에게는 소개팅마저 상실된 채 맞선으로 이어지는

지루한 릴레이속에

자신과 사회에 대한 괴리감을 품어야 한다는 사실을. 

 

사랑이 있어 행복하다는 것을 한다는 것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됩니다.

 

때론 서럽다. 화가 나기도 하지만

삶속에 놓여진 어쩔 수 없는 운명의 굴레라는 말속에

잃어버리거나 잊고 있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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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다 보면 온갖 모습과 성격 그리고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런 그들속에 나도 한 자리를 차지하는 만큼 나도 다른 사람들의 눈속에서는 이상한 놈의 행동쯤으로 치부되어지는 면도 있었을 것이다. 요즘은 좀 줄어들었지만, 동냥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때론, 감정적인 동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갖은 액션과 아픔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고, 당당하게 손바닥을 내밀면서 안 주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고 그리고 조그만 복사본 전단지에 엉성한 글씨와 더불어 거친 세상을 살아온 자신을 도와달라는 호소까지 정말 돈을 달라는 것을 분명한데 표현하는 방법은 사람들의 수만큼 다양하다. 아! 생각이 난다. 겨울만 되면 대학생 또는 어느 재단인지 몰라도 일본 유학생들이 포함된 멀쩡한 사람들의 이웃 돕기를 위한 외침들까지... 처음에는 착한 일도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까지 돈 몇푼 주는 것 대수인가? 생각하여 천원씩을 상납(?)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진실성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사건은 바로 이렀다. 평소 출퇴근 5호선 전철속에서 자주 보던 배가 엄청나게 아저씨. 눈이 장님이고 안 보이는 지하철을 지팡이로 두리번 거리면서 동냥을 하는데 누군가 뒤쪽에서 그 아저씨에게 돈을 주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소리가 그다지 나지 않았고, 소음도 많은 지하철 안인데 어느새 돈을 주려는 분 앞에 딱 하니 서서 돈을 받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난 그 아저씨를 의심했는데 영 그날은 영업(?) 이 신통치 못했는지 아니면 지쳤는지 일찍 사람들이 많이 내리지 않는 역에서 내리시더니 아니 재빨리 지팡이를 접고 당당하고 앞으로 나가시는 것이 아닌가? 그가 장애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속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고  그 충격과 함께 정당하게 진실하게 보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돈을 주지 않으리라 내 맘속으로 다짐까지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그들이 오면 애써 외면하거나 잠을 자는 시늉까지 나도 그들만큼 오버액션까지 도입하고 그들을 피하고 있다. 세상이 자신을 믿지 못하고 남도 믿지 못하는 세상. 웬지 씁쓸한 입맛 다짐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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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여형사 다모(茶母) - 전5권 - 방학기 시대극화
방학기 지음 / 천년의시작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어떤 깨끗한 물도 오랫동안  한 곳에서 정화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분명히 어느 순간부터 썩기 시작해 도저히 어떠한 살아있는 생물은 제대로 살 수 없는 폐수가 될 수 있다. 이렇듯 여러 사람들로 구성되고 만들어진 사회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지 않고, 과거의 영광이나 명예에 얽매혀 있다면 부패와 계층간 불조화는 뚜렷해져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태속에서 막연한 새시대에 , 새 인물을 요청하는 온갖 감언이설과 이를 통해 내부적으로 일어나는 민심의 동요가 오히려 사회의 크나큰 병이 되어 몰락되어가는 것을 우린 우리 역사와 타국가의 역사속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시작된 다모 이야기의 줄거리는 역사속에서 실재할 수도 있는 개연성을 가지고 진행하고 있다. 그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과 보여지는 사회상등은 어느 정도 긍정할만한 요소가 있었다. 하지만, 극적인 요소를 살리다 보니, 주인공 다모 채옥의 포도청 종사관 황보윤 대한 지나친 충성과 무술 실력 그리고 이야기와 관련된 인물들의 과거에 대한 조명등이 다소는 억측적이며, 받아들이기에 다소 무리가 있었던 부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인물들간의 숨막히는 속고 속임과 대립적 구조를 통해 극의 진행이 무척이나 빠르고 재미있었다. 다만, 작가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예전 사회상이나 쓰였던 언어나 지명등이 다소는 막연하고 무엇일까라는 의문과 모호함을 줄 수도 있는 것 같다.

특히, 드라마의 통해 다모에 대한 강력한 인상과 감동에 젖혀 있는 분이라면 원작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확실한 설명과 느낌의 열망으로 읽으신다면 괜찮을 수 있으나, 다소 드라마에서 나타나는 채옥과 황보윤의 로맨스나 장성백(책에서는 천두령과 비슷함)의 이미지는 여기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사전의 유통과 권력 창탈을 노리는 병조판서(정필준)간의 대립구조라는 이야기의 큰 틀은 변화하지 않은 것 같다.

'바람의 파이터'등과 같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색다른 발견과 조명을 시도하는 방학기의 거칠게 그려지면서 강력한 그림에 대한 매력과 함께 만화속에서 그려지는 시대의 모습속에 비쳐지는 새로운 세상과 새인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등은 아직까지 변화하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해결할 수 있는 숙제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책인 것 같다. 만화라고 우습게 생각하지 말고 한번 그것이 지니는 힘도 색다른 힘과 열정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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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
야마다 에이미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일본에서는 대중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갖춘 몇 안되는 유명한 여류 소설가이며, 여자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책 소개와 많은 분들의 서평글들이 이 책을 구매해서 읽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제목에서는 보이는 명랑소설과 같은 편안함보다는 문장 하나하나, 표현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고 있는 이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해 어려운 난간과 문화적, 정서적인 이질감 또한 극복해야만 했다. 특히, 근친상간, 불륜등 다소는 내가 살아온 도덕적인 틀에서 자유스럽지 못하는 사고의 방식은 이런 표현과 이해를 요구하는 시점에서는 굉장한 어려움과 시도가 있었음도 시인해야겠다.

이러한 난해함속에서 놓여진 이 책은 크게 다섯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야기의 진행방법이나 얘기하는 방식은 요시모토 바나나처럼 구어체로 말하면서도 그 말 한마디에 가치있는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사랑의 의미를 삶과 죽음의 순환적 틀속에서 그려내는 독특한 작가의 접근 방식은  읽는 이에게 색다른 질문과 더불어 답을 제공하는 듯하다.

특히, '메뉴'에서처럼 주인공인 남자의 어린시절 어머니의 죽음을 냉담하게 그려내는 모습이나 '체온재기'처럼 죽음을 앞둔 여성의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그것을 숨기려는 당당함은 쉽게 이해될 수 없지만 작가가 서문에서 밝혔던 것처럼 삶이 죽음을 부각시키고, 죽음이 삶을 부각시키는 순환적, 보완적 테두리속에서 본다면 그나마 이해가 될듯 싶다.  하지만, 근친상간이나 불륜등을 매개로 그것의 정당성을 내세우는 모습은 어찌보면 억지처럼도 보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작가는 사랑도 때론 앞서 말한 두 작품처럼 그러한 사랑류이외에 '피에스타'의 짝사랑, '공주님'의 숙명적인 사랑, '샴푸'의 첫사랑을 다양한 각도속에서 전개하고 있다. 특히 '피에스타'에서는 계속해서 사랑을 갈구하지만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곁에서 빙빙도는 감정의 굴곡들은 욕망이라는 인간내면속에 잠재되어 있는 객체를 통해 부각시킴으로써, 주인공의 내면속 직접적 접근보다는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업을 통해 독자에게 사고의 틈과 여유를 주려는 모습도 보였다.

'공주님'은 이 책의 제목처럼 작가가 말하려고 했던 모든 것을 총동원한 것처럼 어투나 행동측면에서 세심한 묘사와 심리적 동화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스스로에게 사랑이 오기를 거부했던 두사람 히메코와 마슈. 숙명적 사랑이 가지는 운명적 전개와 끝내는 그 사랑의 되돌아옴마저 죽음을 통해 실현(?)되는 지나치게 잔인한 결말은 작가가 죽음에 대해 떨쳘 버릴 수 없는 두려움처럼 보였다.  '샴푸'는 여자 주인공의 애완용 고양이의 이름처럼 가장 쉽게 다가오고 이해되었던 작품이었던 같다. 특히, 자신들에 대해 자신의 윗세대가 만든 엉망진창스러운 존재물로 묘사하는 장면이나 철이 덜듯하면서도 다정다감한 유리닦기가 직업인 아버지에 대한 묘사는 작가의 재치가 느껴졌던 작품인 것 같다.

작가가 말하려고 했던 삶과 죽음들. 늘 우리 곁에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지만 작가는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숙제와 고민처럼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있다. 죽음이 주는 단절성보다는 삶속에서 느껴지는 삶에 대한 진지한 판단과 사고의 확대가 이 작품집에는 녹아내려 있는 것 같다. 단순히 어렵다고 말할 수 없는 이 책이 주는 즐거움과 진지함에 대해 많은 분들이 느껴보고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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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성석제 지음 / 강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작가 성석제의 처음 안 것은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소설집이었다. 하도 많은 분들이 추천하다 보니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꾼이길래 이럴까라는 호기심에 책을 보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읽는 순간 그가 그려내는 글의 마력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을 정도로 무척이나 재미있게 작품을 보았다. 그후에 기회가 되어 보게 된 것이 이 책이었다. 그의 초기 작품집인만큼 작가로서의 신선함과 열정이 묻어나오는 것 같아 읽는 내내 즐거웠다.

그의 작품에는 특이하게 그의 직업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전문적인 내용을 각주와 자세한 설명까지 달아 이야기를 진행함으로써 오히려 논리적 타당성까지 확실히 갖춘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거기다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처럼 칼잡이 폭력배 두목이 다리 난간에 부딪쳐 떨어져 죽는 순간들을 슬로모션과 그가 살아온 인생들을 이중적으로 오버랩하면서 영화적인 구성을 보이는 작품도 있었으며, '이른 봄'처럼 동화적 구성을 빌어 화자가 꿩이 되어 인간을 조롱하고, 자연과 생태계의 무제한적 파괴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또한, 그는 내면적인 고백적인 어법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작품도 있었는데, 특히 '황금의 나날'처럼 불우한 가정 환경속에서 주인공에게 다가온 연상의 이성에 대한 집착적이고  무목적적인 잘못된 사랑을 표현하고 있으며, '첫사랑'에서는 아직까지 우리사회에서는 비이성적이고 윤리적으로 문제시 되는 동성간의 사랑을 거부할 수 없는 상황과 심리적 변화를 통해 보여주었으며, '금과 은의 왈츠'에서는 어린시절부터 존재했던 음악처럼 형태와 틀을 바꾸지 못하고 무의지적으로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의 이야기 덤덤한 문체와 진행을 산을 올라가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성석제는 '새가 되었네'와 '스승들'에서는 앞서 말한 작품들과 달리 현실에 대한 조명과 비판을 전해주고 있는데 특히, 성실하게 살았던 선량한 한 기업가가 사업 실패후 발견하는 참담한 현실의 벽과 그림자를 통해 우리사회가 안고있는 재물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사기의 연속 고리라는 악순환을 비판하고 있으며, '스승들'에서는 주인공이 살아오면서 자신에게 현실에 대한 배움을 주거나  앎을 가르쳐 대상과 물건을 스승으로서 규정하고 가르침을 장대하게 나열하고 있다. 배움이 단순하고 복잡한 진리가 아닌 현실적으로 사회라는 구성체에서 살아가면서 알아야 하는 모순과 불합리에 대해 자학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에서는 긍정과 더불어 어쩔 수 없는 허탈함마저 느끼게 되었다.

이렇듯 작가 성석제는 작품은 우리에게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여주면서도 그곳에 감동과 정의라는 실현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판단하고 이해하는 공간의 틈을 주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느끼는가를 독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닌 보면서 다양하게 판단하고, 느끼기를 바라는 것 같다. 대중성과 문학성을 모두 다 아울를 수 있는 그의 작품을 만나는 것 자체가 행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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