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 우리가 가진 솔루션과 우리에게 필요한 돌파구
빌 게이츠 지음, 김민주.이엽 옮김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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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글쓴이: 빌 게이츠

옮긴이: 김민주, 이엽

펴낸 곳: 김영사

 

 

 

 남태평양 중앙에 있는 아름다운 섬, 투발루. 하지만 이 섬이 처한 절박한 현실을 알고 나면, 무지함과 이기심으로 우리가 어떤 상황을 초래하고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9개의 섬 중, 2개의 섬이 이미 가라앉았고 2060년이면 투발루의 모든 섬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멀쩡한 섬까지 바다에 잠기게 만드는 인간의 잔혹한 행위. 그 중심엔 무분별한 개발과 편리한 생활을 위한 타협이 빚어낸 과도한 탄소 배출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세계의 유명한 석학들은 이대로 가면 50년 후엔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거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경고한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창업자이자 억만장자인 빌 게이츠 역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에 주목하며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운동에 힘쓰고 있다. 이번에 출간한 『빌 게이츠,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그는 지구의 현재 상태를 눈에 보이는 수치로 정확하게 진단하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해결책을 제시한다.

 

 

 

수년 안에 반드시 달성해야 할 세 가지 과제

1. 기후재앙을 피하기 위해 제로를 달성해야 한다.

2. 태양광과 풍력 등 이미 보유한 수단들을 더 빨리, 그리고 더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

3. 나머지 목표 달성에 필요한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출시해야 한다.

 

 

 

 이 책의 서문에서 빌 게이츠는 탄소 배출로 인한 아슬아슬한 지구의 상황과 왜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해야 하는지를 물이 흐르는 수도꼭지와 욕조에 비유한다. 수도꼭지를 콸콸 틀든, 졸졸 틀든 결국 욕조엔 물이 차게 된다. 아슬아슬하게 찰랑거리던 물이 마침내 욕조를 넘어서는 순간, 지구는 재앙을 맞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탄소를 '제거'하지 않고 단순히 배출량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탄소 배출 제로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여기서 뜻하는 '제로'는 탄소 배출을 0으로 맞추겠다는 게 아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탄소를 배출해왔다.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지구는 위험한 상태에 이르렀을까? 그 비밀은 '순 제로'에 있다. 순 제로는 배출되는 양과 제거되는 양이 같은 상황을 의미한다. 탄소 중립과도 같은 개념인 이 순 제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인간 활동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지구가 자체적으로 정화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배출량을 끌어내려야 한다. 지구는 위대한 생명체이기에 우리가 노력한다면, 반드시 건강했던 이전의 상태로 회복할 수 있다. 아직은!

 

 

 

 

 

 

이대로 기온이 계속 상승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기온 상승으로 인해 이점을 얻는 곳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기후가 더워질수록 문제가 많아진다. 상승 기온은 더 파괴적인 폭풍을 일으켜 재산 손실과 인명 피해를 키운다. 산불은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더 파괴적이 된다. 한반도 면적의 두 배에 달하는 숲을 태웠던 호주 산불은 너무도 처참했다. 인위적 기온 상승으로 인해 해수면도 상승한다. 때문에 바닷물이 수도관으로 역류하고, 투발루와 같이 고도가 낮은 섬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식물과 동물 또한 영향을 받는다. 환경 변화로 인해 재배할 수 있는 농작물이 대폭 줄어들고 변경되면서 지금 우리가 차려내는 식탁의 풍경은 점점 옛날 일이 되어 갈 거다. 비는 내리지 않지만, 폭우는 쏟아진다. 더운 날씨로 인해 모기가 폭발적으로 번식하며 말라리아를 포함한 곤충들이 옮기는 질병이 도처에 창궐하게 될 거다. 열사병 역시 문제다. 눈에 보이는 수치를 확인하면 불안감은 더 커진다. 글로벌 팬데믹이 세계 사망률을 얼마나 증가시킬지 추정한 연구에서 팬데믹으로 인해 매년 10만 명당 14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는? 21세기 중반이면 팬데믹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가고 21세기 말에는 10만 명당 75명에 이를 거라고 한다. 우리가 그냥 지금처럼 산다면 말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중 각각의 인간 행위가 차지하는 비중

무언가 만드는 것 (시멘트, 철, 플라스틱) - 31%

전기 (전력 생산) - 27%

무언가를 기르는 것 (동물, 식물) - 19%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 (비행기, 트럭, 화물선) - 16%

따뜻하고 시원하게 하는 것 (냉난방 시설, 냉장고) - 7%

 

 

 

빌 게이츠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얼마나 큰지 알고 싶다면 온실가스 배출 총량인 510억 톤의 몇 퍼센트인지 계산해서 수치를 꼭 확인하라고 한다. 전기 생산, 제조, 사육과 재배, 교통과 운송, 냉방과 난방 등 온실가스 배출량의 Top 5를 차지하는 분야를 꼼꼼하게 살펴보며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우리가 지녀야 할 인식을 살펴본다.

 

 

 

그렇다면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세계를 이끄는 리더들이 나서야만 변화를 일으킬 수 있지만, 가장 궁금한 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였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하나둘 손을 모아 열심히 노력하면 분명 유의미한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믿기에 올바른 방향을 알고 싶었다. 빌 게이츠는 정치인이나 자선사업가가 아니어도 각 개인도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시민의 목소리를 정치적 압력으로 바꿔 정치인들이 실제로 행동에 옮기도록 촉구한다. 전화를 걸고 편지를 쓰고 공개 회의에 참석하라. 선두에서 더 활발히 활동하고 싶다면 공직에 출마하라. 청정 에너지원으로 만든 전기를 사용하고 백열전구를 LED로 교체하자. 스마트 온도조절기를 설치하고 유리창은 단열 처리,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을 사거나 기존의 냉난방 시스템을 열펌프로 교체할 수 있다. 전기차를 구매해라. 인공 고기와 유제품을 먹어라.

 

 

 

 그저 막연하게 지구가 위험한 상황이고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고만 알고 있던 터라, 무엇부터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야 할지 상당히 막연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유레카'를 외칠 정도는 아니지만, 정확한 수치로 상황을 파악하고 세계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과 올바른 인식을 한눈에 정리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빌 게이츠처럼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는 건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다음 세대에게 아름다운 초록별을 잘 물려주기 위해, 현재 지구의 사용자인 우리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변화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골든 타임이기에! 워낙 관심 있는 주제라 더 재밌게 읽었지만, 이 책 『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은 흥미로워도 너무 흥미롭다. 2021년에 만난 최고의 책 후보로 꼽고 싶을 만큼 알차고 파격적이었던! 엉덩이 무거운 나까지 움직이게 했으니, 이 책은 정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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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짐을 안고 있는 당신에게
나이토 요시히토 지음, 민경욱 옮김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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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의 짐을 안고 있는 당신에게

글쓴이: 나이토 요시히토

옮긴이: 민경욱

펴낸 곳: 김영사

 

 

 

 11년 차 프리랜서인 내게 일과 삶의 경계는 상당히 모호하다. 처리해야 할 일이 몰아치면 밤샘 작업을 하기도 하고, 예상보다 일정이 일찍 끝나면 대낮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은 즐기기도 한다. (주량이 한 캔이라 상당히 아쉬운...) 일과 삶을 나누는 문제에 있어 물리적 시간은 어떻게든 노력하면 가능할 것 같지만, 사실 더 중요한 건 심리적인 요소가 아닐까? 바쁘면 바쁜 대로 괴롭고, 쉬면 또 찝찝한 우리의 인생. 놀 땐 신나게 놀고 일할 땐 스트레스를 덜 받는 비법이 담긴 책을 만났다. '심리학자가 알려주는 일과 삶을 분리하는 방법 44가지'라는 표지 문구가 마음을 사로잡은 책 『마음의 짐을 안고 있는 당신에게』.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이 고질적으로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을 알아주고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저자의 카운셀링이 심심한 위로와 안정감을 준다. 어찌 보면 저자가 동양 사람이라 우리와 더 잘 맞을지도!

 

 

 

 좀처럼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건,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선택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망설이게 만드는 요소를 최대한 줄여라. 오래 공들여 찾을수록 만족하지 못했을 때 실망감이 크다. 정보 검색도 좋지만, 적당할 정도로만 해라. 지나치면 독이 된다. 생활 습관을 루틴화하여 생활하면 스트레스를 느끼는 빈도가 줄어든다. 단순한 라이프 스타일을 구축해보자. 기준을 정하고 '기준에 맞는지 아닌지만' 판단하면 만사가 편하다. '나만의 규칙'을 정하자. 속도를 아주 조금이라도 줄이면, 기분 전환도 되고 결과적으로 다 잘 돌아간다. 늦장을 피우라는 것이 아니라, 바삐 돌아가는 일상에 머리를 식히고 정리할 쉼표를 잠시 찍어주라는 말씀. 무슨 말을 듣더라도 적당히 흘려버려라. 객관화는 부정적인 기분을 억누르거나 조절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지금 나의 감정 상태는 몇 점인지 점수를 매겨보자. 분노의 감정을 빨리 없애려면 분노의 대상을 딱 90초만 생각하지 말아보라. 허세를 부리지 않아야 편하게 살 수 있다.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며 기분을 전환해라. 릴렉스를 하기 위한 습관이나 취미가 있다면 좋다. 이유 없이 마음이 무겁고 의욕이 없을 때는 '나는 뭘 하고 싶은 거지?'보다는 '나는 뭘 하고 싶지 않지?'라고 생각해보자. 부정적인 이미지가 꼭 나쁘지만은 않다. 불안 수준을 상승시키는 불안감을 행동 에너지로 전화하면 된다. 다소 겸손한 나르시시스트를 목표로 해보자. 신나고 즐거운 순간을 기록으로 남겨라. 한심한 기분을 수없이 곱씹지 말고 내 고민은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지녀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어야 좋을 때도 있어요

『마음의 짐을 안고 있는 당신에게』 p185 중에서...

 

 

 

 일터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까지 들이지 말 것! 현관문을 열기 전에 잠시 멈추고 심호흡하며 그날의 기분을 털어내자. 내 경우엔 일을 마치고 컴퓨터를 끄며 쭉 기지개를 켜고 만세를 부르면 좋겠다. '이제 놀자!' 가장 실천해보고 싶은 라이프 스타일은 습관의 루틴화와 비움. 일과 운동처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필요한 일을 할 때마다 하기 싫다는 청개구리가 불쑥 고개를 들지만, '이건 이 시간에 해야 하는 일이니까 정해진 대로 하자'고 생각하면 좀 더 수월하게 해낼 수 있다. 새벽 4시 30분 기상으로 많은 이의 삶에 새로운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은 유튜버 김유진 변호사님도 모닝 루틴의 중요성에 관해 말한 바 있다. 일찍 일어난다고 끝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할지가 더 중요하다고. 소중한 새벽 시간을 자기 계발의 원동력으로 삼으라고 말이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징글징글한 코로나의 여파로 일상이 무너진 요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그 힘찬 시작에 이 책 『마음의 짐을 안고 있는 당신에게』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거다. 알고 있던 내용이라도 잘 정리한 책으로 읽으니, 사뭇 다른 느낌! 오늘 하루도 멋지게 잘 꾸려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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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피카소 할애비다 - 최영준 수묵화 에세이
최영준 지음 / 김영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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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가 피카소 할애비다

글쓴이 & 그린이: 최영준

펴낸 곳: 김영사

 

 

 

 유쾌하고 재밌는 성격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걸까? 이 시대의 마지막 변사이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광대 화가'라는 최영준 님. 띠지와 작가 소개에 실린 사진과 책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연극배우로 출발하여 개그콘테스트 입상 후에는 <유머 일번지>에서 코미디언으로 활약했고 <6시 내 고향>에서는 장터 여리꾼,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했다니... 우와, 정말 파란만장한 인생이다. 게다가 취미라고 하기엔 예사롭지 않은 글솜씨와 그림 솜씨. 팔방미인, 아니 팔방미남이란 이런 분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겪는 희로애락과 더불어 인생 선배의 허심탄회한 조언이 담긴 수묵화 에세이. 마음에 와닿는 그림과 글귀가 한가득하다.

 

 

 

책임감이 버거울 때면 무책임하게 살자. 살아보니 무책임이 더 어렵다.

날마다 새로 태어나고 다시 시작.

인간의 가치는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에 있다.

자신감과 자만심은 다르다.

세상 모든 갈등의 근본은 과도한 욕심이다.

큰일을 저지르고 싶다면 경계를 넘어야 한다.

진짜 멋쟁이는 뒷모습이 멋있다.

일편단심 민들레로 살지 마라. 떠난 놈은 글렀다.

안 좋은 기억은 망각으로 삭제되고, 좋았던 기억은 따로 저장되어 추억이 된다.

인생도 유효기간이 있다. 유효기간이 끝나면 겨울이다. 준비하지 않으면 얼어 죽고 굶어 죽는다.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바꾼다.

불확실성은 예술의 매력이다.

넘보지 마라, 독도는 우리 땅이다.

 

 

 


 

 

 아파트 지하주차장 바닥에 남은 자국과 스크래치를 보며 피카소 그림을 떠올렸다는 최영준 님. '라파엘로처럼 그리기 위해서 4년이 걸렸어. 그런데 어린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 걸렸지.'라는 피카소의 인터뷰를 떠올리며 '단순하게, 쉽게, 어린아이처럼 그리자'라고 결심한 후, 석 달간 300점의 수묵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중 가려 뽑은 작품이 이 책에 담겼다. 수묵화를 보는 안목은 없지만, 붓끝이 남겨놓은 역동적인 움직임과 힘찬 응원, 훌훌 털어내고 비워낸 후련함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쉽고 재밌는 그림에 촌철살인의 풍자와 유머 그리로 따끔한 충고까지 담겨 있으니 이 정도면 종합 선물 세트! 받는 사람의 취향을 잘 고려해야 하기에 책 선물을 늘 고민되지만, 이 책은 어르신들께 선물하면 호불호 없이 모두 즐겁게 보시지 않을까 싶다. 어르신들에게는 황혼 녘의 동무처럼, 젊은이들에게는 앞으로 살아갈 날을 잘 이끌어줄 선배처럼 재밌고 다정한 친구가 되어줄 『내가 피카소 할애비다』. 이건 뭐, 그림과 글도 좋지만 이미 제목부터 유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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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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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버지에게 갔었어

글쓴이: 신경숙

펴낸 곳: 창비

 

 

 

 은퇴할 나이를 이미 넘기셨건만, 엄마와 아빠는 아직도 일하신다. 어제는 아빠만 빠진 자리에서 생일 초를 껐다. 밤늦게까지 홀로 장사를 하다 돌아온 아빠는 피곤이 가득한 얼굴로 내게 말씀하셨다. '생일인데, 같이 밥도 못 먹고...' 끝내 맺지 못한 문장에 수많은 감정이 복잡하게 서려 있다는 걸 알기에 차마 아빠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날, 난 또 한 명의 아버지를 만났다. 신경숙 작가의 신작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손에 쥔 순간부터, 굳게 다짐했었다. 절대 울지 말자고. 지키지 못할 다짐인 걸 뻔히 알면서도 넋두리처럼 내뱉고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토해냈다. 소설 속 아버지와 우리 아빠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왔지만, 두 분을 떠올리면 왜 이리 가슴이 시릴까... 엄마를 떠올렸을 때와는 또 다른 먹먹함에 스산해진 마음으로 나는 아직도 소설 속을 헤매고 있다.

 

 

 

 6남매 중에 넷째이자, 맏딸인 주인공 '헌'은 딸을 잃었다. 가족은 허망하게 딸을 보낸 헌에게 어설픈 위로나 원망, 이제 그만 제대로 살아가라는 채근도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바라보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뿐. 그런 헌이, 엄마를 병원에 보내고 고향에 홀로 남은 아버지를 돌보러 간다. '너, 본 지 오래다.' 고향에서 아버지와 함께하며 헌은 그동안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을 알아간다. 옛 기억을 자꾸 잃어버리는 아버지, 우연히 발견한 편지에 담긴 낯선 아버지, 다른 가족이 바라본 아버지, 눈물이 많아지고 수면 장애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버지... 헌이 아버지를 알아가는 여정은 지극히 낯설면서도 세상 모든 아버지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친숙하다. 아버지의 지난날과 현재를 오가며 한국 전쟁, 군부 독재 시절 등 1900년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 고단하고 힘겨웠던 삶을 살아낸 아버지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자꾸 흔들리며 희미해진다. 내가 헌인지, 헌이 나인지 모를 만큼 이야기에 깊이 빠져든 채로 나는 아직은 가지 마시라 외치며 그렇게 아버지의 손을 놓지 못했다.

 

 

 


 

 

 

살아냈어야, 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라고

신경숙 『아버지에게 갔었어』 p416 중에서...

 

 

 

 자식은 부모님 살아생전엔 절대 제대로 된 효도를 하지 못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늘 곁에 계시기에 소중함을 잊고, 모진 세상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부모님께 그대로 쏟아내기도 한다. 그 모든 잘못을 펑펑 운다고 지울 수는 없겠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상당 부분 치유한 느낌이다. 아기 새가 모이를 받아먹듯 자식은 입을 뻐끔거리는데, 쌀독은 금세 바닥을 보이니 무서웠다는 헌의 부모님. 그러고는 이내 무섭기도 했지만 살아갈 힘이 되기도 했다는 부모님. 우리 아빠, 엄마도 커 가는 나와 동생을 보며 두려운 순간들이 있었을까? 자식을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고 하지만, 아직도 마음이 여물지 못한 나를 보면 그건 다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제 부모의 보호자가 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소설 속 큰오빠의 말처럼, 이제는 정말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자꾸만 작아지고 수척해지는 아빠, 엄마의 모습에 늘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여전히 함께여서 얼마나 행복하고 다행인지... 신경숙 작가의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세상 모든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철부지 자식에게 보내는 따끔한 일침이다. 밀려오는 먹먹함이 조금 버겁지만, 너무 늦지 않게 이 책을 만나서 다행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주관적인 생각을 담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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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 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
이은선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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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글 & 그림: 이은선

펴낸 곳: 아르테

 

 

 

 무소식이 희소식인 요즘, 예전보다 무료한 일상이 자주 이어지고 있다. 혼자서도 잘 노는 내가 가끔 사람이 그리울 정도인데, 늘 누군가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외향적인 사람들은 오죽할까. 이럴 때일수록 혼자서도 영혼과 마음의 갈증을 잘 해소하는 게 급선무! 내게 가장 좋은 처방전은 책과 영화.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다. 이 세 가지만 있다면 혼자서도 며칠이고 놀 수 있음. 책과 영화를 많이 보다 보면 자연스레 더 눈길이 가는 장르가 생기고, 그렇게 나라는 사람을 소소하게 알아가는 즐거움이란! (어찌 보면 나라는 사람이 가장 복잡한 존재니까요... ^^;;)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을 땐 에세이를 읽는다. 이번에 만난 이은선 영화 전문기자의 에세이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는 오랜 친구와 대화하듯 편안하고 즐거웠다. 영화에 등장하는 음식 이야기와 함께 풀어낸 소중한 추억 조각들. 책, 영화, 음식이라니, 이건 뭐 시작부터 취향 저격이다.

 

 

 

 <줄리 & 줄리아>에 등장하는 뵈프 부르기뇽을 언젠가 꼭 지인들에게 해주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지닌 이은선 기자. 그녀에게 요리는 힐링이자 영혼의 비타민이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배우 김태리는 눈 쌓인 땅속에서 용케 배추 한 포기를 찾아내 국을 끓인다. 앞으로 어떻게든 새로 인생을 꾸려나가겠다고 굳게 다짐이라도 하듯이. <와일드>에서는 불을 사용할 수 없었던 여주인공이 오트밀을 물에 불려 질겅질겅 씹으며 하루를 살아낸다. <패딩턴>에서 자주 등장하여 나까지 입에 침이 돌았던 오렌지 마멀레이드는 마들렌은 찍어 먹거나 식빵에 발라먹으면 정말 딱인데!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대사에 등장했던 티라미수가 뜻밖의 섹슈얼한 역사를 지닌 디저트라는 건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다. 이은선 기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음식은 영화 <무뢰한>에서 배우 전도연이 김남길에게 해줬던 잡채.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났던 그 표정과 숨죽여 지켜보게 되는 두 사람의 대화. 그 순간의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떠올랐다. 역시 '전도연이다. 전도연이다. 전도연이다.'!

 

 

 


 

 

 시간이 바꿔놓는 풍경들이 있다.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이 시기 이후 무엇이 어떻게 바뀔지, 아직은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억지로 막아 세워졌던 2020년의 시간들이 우리의 몸과 기억에 무엇을 남길지를 생각한다. 타인과 함께한다는 말에 내포된 위험성을, 경제적 곤궁을, 필수재가 아닌 것들의 허망함을, 무력감과 패배감을 남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바꾸어볼 수도 있다. 별것 아닌 일상에 깃든 귀함을,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타인과의 따스한 연결의 감각을, 잃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것들의 소중함을 알아차리는 경험을 남겼다고.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p72 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확장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행운이다. 나 역시 프리랜서이기에 또 다른 분야로의 도전을 꿈꾸곤 한다. 영화에 관해 쓰고 말하고 그리며, 자신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따스한 밥상을 차려내던 이은선 기자. 이제 그녀는 영화와 음식이라는 소울 아이템을 하나로 잘 버무려 작가로의 첫발을 내디뎠다. 갯벌에서 소금물을 먹고 불쑥 고개를 내미는 맛조개처럼 툭툭 던지는 솔직한 문장이 마치 친구와 대화하듯 참 편안했다. 라면 취향이 다른 사람과는 절대 오래갈 수 없다는 진지한 투덜거림에 웃음이 터지기도! ㅋㅋ 살면서 늘 좋은 일만 가득할 순 없겠지만, 아무리 힘들고 괴롭더라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누군가 나를 위해 차려주는 따스한 밥 한 끼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 진심을 느낄 수 있을 거다. 나 역시 누군가를 위해 그런 밥상을 차려줄 수 있기를, 그리고 날 생각하며 밥상을 차려 줄 누군가가 있기를 조심스레 바랐던 시간. 이은선 기자, 아니 이은선 작가의 글은 참 따스하고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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