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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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버지에게 갔었어

글쓴이: 신경숙

펴낸 곳: 창비

 

 

 

 은퇴할 나이를 이미 넘기셨건만, 엄마와 아빠는 아직도 일하신다. 어제는 아빠만 빠진 자리에서 생일 초를 껐다. 밤늦게까지 홀로 장사를 하다 돌아온 아빠는 피곤이 가득한 얼굴로 내게 말씀하셨다. '생일인데, 같이 밥도 못 먹고...' 끝내 맺지 못한 문장에 수많은 감정이 복잡하게 서려 있다는 걸 알기에 차마 아빠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날, 난 또 한 명의 아버지를 만났다. 신경숙 작가의 신작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손에 쥔 순간부터, 굳게 다짐했었다. 절대 울지 말자고. 지키지 못할 다짐인 걸 뻔히 알면서도 넋두리처럼 내뱉고는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토해냈다. 소설 속 아버지와 우리 아빠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왔지만, 두 분을 떠올리면 왜 이리 가슴이 시릴까... 엄마를 떠올렸을 때와는 또 다른 먹먹함에 스산해진 마음으로 나는 아직도 소설 속을 헤매고 있다.

 

 

 

 6남매 중에 넷째이자, 맏딸인 주인공 '헌'은 딸을 잃었다. 가족은 허망하게 딸을 보낸 헌에게 어설픈 위로나 원망, 이제 그만 제대로 살아가라는 채근도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바라보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뿐. 그런 헌이, 엄마를 병원에 보내고 고향에 홀로 남은 아버지를 돌보러 간다. '너, 본 지 오래다.' 고향에서 아버지와 함께하며 헌은 그동안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을 알아간다. 옛 기억을 자꾸 잃어버리는 아버지, 우연히 발견한 편지에 담긴 낯선 아버지, 다른 가족이 바라본 아버지, 눈물이 많아지고 수면 장애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버지... 헌이 아버지를 알아가는 여정은 지극히 낯설면서도 세상 모든 아버지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친숙하다. 아버지의 지난날과 현재를 오가며 한국 전쟁, 군부 독재 시절 등 1900년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 고단하고 힘겨웠던 삶을 살아낸 아버지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자꾸 흔들리며 희미해진다. 내가 헌인지, 헌이 나인지 모를 만큼 이야기에 깊이 빠져든 채로 나는 아직은 가지 마시라 외치며 그렇게 아버지의 손을 놓지 못했다.

 

 

 


 

 

 

살아냈어야, 라고 아버지가 말했다.

용케도 너희들 덕분에 살아냈어야,라고

신경숙 『아버지에게 갔었어』 p416 중에서...

 

 

 

 자식은 부모님 살아생전엔 절대 제대로 된 효도를 하지 못한다는 말을 실감한다. 늘 곁에 계시기에 소중함을 잊고, 모진 세상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부모님께 그대로 쏟아내기도 한다. 그 모든 잘못을 펑펑 운다고 지울 수는 없겠지만, 이 소설을 읽으며 상당 부분 치유한 느낌이다. 아기 새가 모이를 받아먹듯 자식은 입을 뻐끔거리는데, 쌀독은 금세 바닥을 보이니 무서웠다는 헌의 부모님. 그러고는 이내 무섭기도 했지만 살아갈 힘이 되기도 했다는 부모님. 우리 아빠, 엄마도 커 가는 나와 동생을 보며 두려운 순간들이 있었을까? 자식을 낳아봐야 어른이 된다고 하지만, 아직도 마음이 여물지 못한 나를 보면 그건 다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제 부모의 보호자가 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소설 속 큰오빠의 말처럼, 이제는 정말 내가 부모님의 보호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자꾸만 작아지고 수척해지는 아빠, 엄마의 모습에 늘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여전히 함께여서 얼마나 행복하고 다행인지... 신경숙 작가의 『아버지에게 갔었어』는 세상 모든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철부지 자식에게 보내는 따끔한 일침이다. 밀려오는 먹먹함이 조금 버겁지만, 너무 늦지 않게 이 책을 만나서 다행이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주관적인 생각을 담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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