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 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
이은선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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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글 & 그림: 이은선

펴낸 곳: 아르테

 

 

 

 무소식이 희소식인 요즘, 예전보다 무료한 일상이 자주 이어지고 있다. 혼자서도 잘 노는 내가 가끔 사람이 그리울 정도인데, 늘 누군가와 시간을 함께 보냈던 외향적인 사람들은 오죽할까. 이럴 때일수록 혼자서도 영혼과 마음의 갈증을 잘 해소하는 게 급선무! 내게 가장 좋은 처방전은 책과 영화.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다. 이 세 가지만 있다면 혼자서도 며칠이고 놀 수 있음. 책과 영화를 많이 보다 보면 자연스레 더 눈길이 가는 장르가 생기고, 그렇게 나라는 사람을 소소하게 알아가는 즐거움이란! (어찌 보면 나라는 사람이 가장 복잡한 존재니까요... ^^;;)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을 땐 에세이를 읽는다. 이번에 만난 이은선 영화 전문기자의 에세이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는 오랜 친구와 대화하듯 편안하고 즐거웠다. 영화에 등장하는 음식 이야기와 함께 풀어낸 소중한 추억 조각들. 책, 영화, 음식이라니, 이건 뭐 시작부터 취향 저격이다.

 

 

 

 <줄리 & 줄리아>에 등장하는 뵈프 부르기뇽을 언젠가 꼭 지인들에게 해주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지닌 이은선 기자. 그녀에게 요리는 힐링이자 영혼의 비타민이다. <리틀 포레스트>에서 배우 김태리는 눈 쌓인 땅속에서 용케 배추 한 포기를 찾아내 국을 끓인다. 앞으로 어떻게든 새로 인생을 꾸려나가겠다고 굳게 다짐이라도 하듯이. <와일드>에서는 불을 사용할 수 없었던 여주인공이 오트밀을 물에 불려 질겅질겅 씹으며 하루를 살아낸다. <패딩턴>에서 자주 등장하여 나까지 입에 침이 돌았던 오렌지 마멀레이드는 마들렌은 찍어 먹거나 식빵에 발라먹으면 정말 딱인데!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대사에 등장했던 티라미수가 뜻밖의 섹슈얼한 역사를 지닌 디저트라는 건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다. 이은선 기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음식은 영화 <무뢰한>에서 배우 전도연이 김남길에게 해줬던 잡채.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났던 그 표정과 숨죽여 지켜보게 되는 두 사람의 대화. 그 순간의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듯 생생하게 떠올랐다. 역시 '전도연이다. 전도연이다. 전도연이다.'!

 

 

 


 

 

 시간이 바꿔놓는 풍경들이 있다. 우리가 통과하고 있는 이 시기 이후 무엇이 어떻게 바뀔지, 아직은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억지로 막아 세워졌던 2020년의 시간들이 우리의 몸과 기억에 무엇을 남길지를 생각한다. 타인과 함께한다는 말에 내포된 위험성을, 경제적 곤궁을, 필수재가 아닌 것들의 허망함을, 무력감과 패배감을 남길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바꾸어볼 수도 있다. 별것 아닌 일상에 깃든 귀함을,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타인과의 따스한 연결의 감각을, 잃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것들의 소중함을 알아차리는 경험을 남겼다고.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p72 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며 확장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행운이다. 나 역시 프리랜서이기에 또 다른 분야로의 도전을 꿈꾸곤 한다. 영화에 관해 쓰고 말하고 그리며, 자신과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따스한 밥상을 차려내던 이은선 기자. 이제 그녀는 영화와 음식이라는 소울 아이템을 하나로 잘 버무려 작가로의 첫발을 내디뎠다. 갯벌에서 소금물을 먹고 불쑥 고개를 내미는 맛조개처럼 툭툭 던지는 솔직한 문장이 마치 친구와 대화하듯 참 편안했다. 라면 취향이 다른 사람과는 절대 오래갈 수 없다는 진지한 투덜거림에 웃음이 터지기도! ㅋㅋ 살면서 늘 좋은 일만 가득할 순 없겠지만, 아무리 힘들고 괴롭더라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누군가 나를 위해 차려주는 따스한 밥 한 끼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 진심을 느낄 수 있을 거다. 나 역시 누군가를 위해 그런 밥상을 차려줄 수 있기를, 그리고 날 생각하며 밥상을 차려 줄 누군가가 있기를 조심스레 바랐던 시간. 이은선 기자, 아니 이은선 작가의 글은 참 따스하고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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