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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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희한한 일이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 엄마가 아닌 시어머니의 삶이 길다란 끈처럼 느릿느릿 지나가다니. 고향이 그쪽이어서, 중요한 날 홍어를 내놓지 않으면 찾아온 손들에게 민망한 그 고장이어서 일까? 아니면 말투가 닮아서일까? 아니면 다 큰 자식(심지어 머리 희끗해진 나이의 아들) 등을 쓸어주는 행동이거나 늘 전쟁을 머리꼭지에 달고 살면서 쌀 떨어져 새끼들 입에 밥 못 들어갈까 봐 전전긍긍하는 태도이거나, 그도 아니면 온다 해놓고 늦어지는 자식들 기다리다 목이 빠지는 눈빛을 숨기지 못하는 것 때문에? 아니면 내 배로 낳은 내 딸을 나보다 더 바싹 붙어 길러낸 그 악착스러운 정성 때문에?

나는 시댁 식구들의 그 끈끈하고, 다정스러운 친밀함 때문에, 어머니의 그 온갖 토속신앙, 온전히 자식들 앞에 바쳐지는 기도 때문에 살며 좀 진저리를 낸 편이라,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더구나 시집온 지 17년 만에 어머니와 조금 격조해진 요즘이라 더 그랬다. 편치 않았다. 어머니의 삶을, 마흔 몇 해 여자로 살아온 내가 누구보다 잘 헤아리면서 외면했다는 사실이 자꾸만 목에 걸린 가시처럼 찔러댔다. 아, 죽겠다. 이 책.

신경숙 소설에다 ‘엄마’ 운운할 때부터 이 소설이 얼마나 나를 괴롭힐지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래서 ‘서평도서 신청하세요.’라는 어느 사이트의 글도 외면했는데, 결국 내 손에 들어왔다. 스탠드 불빛이 유난히 따갑다 느끼면서 읽어댔다. 눈물이 비질비질 흘러내리고, 불편해 죽겠는 심정으로.

나는 두 딸의 어미다. 그리고 한 여자의 딸, 한 여자의 며느리, 한 남자의 아내다. 그리고 그들에 붙은 온갖 군상의 무엇이다. 버겁기 그지없다 느낄 때가 많다. 그게 힘이고 행복이라지만 다 떼어 버리고 싶은 때가 왜 없겠는가. 그럴 때 인정하기 싫지만 시어머니의 삶을 떠올린다. 소설 속 ‘너’의 어머니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시어머니의 삶. 그녀와 17년을 살며, 나는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젊은 시절, 내가 시집 온 이후의 시절을 그림 그리듯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럴 정도도 많은 이야기를 듣고, 보고, 느꼈다.

언젠가 내가 시어머니거나 우리 엄마의 이야기를 쓴다면, 딱 이랬으리라 싶은. 그러나 작가 아닌 나는 절대로 쓰지 못했을, 그래도 한 번쯤은 내놓고 싶었을 이야기. 아직 엄마와 시어머니가 살아 계신 이들 모두가 하나씩의 결심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엄마가 여자이고, 엄마도 엄마가 그립다는 걸, 제발 좀 알아주자.” “엄마의 부재를 한 번이라도 뼛속 깊이 새겨 보자.”

아무튼 이래서 신경숙 소설이 읽기 싫다. 심장 속까지 후벼 파 대는 그녀. 그래서 신경숙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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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8-11-07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작품이 대체로 우울하게 만드는 게 좀 있어요.
그래서 저도 읽기를 주저하는 편인데...
이 작품은 더 낮은 저음이기도 해요.
파란흙님껜 더 절절했겠어요. 저도 그런데...^^

파란흙 2008-11-07 14:06   좋아요 0 | URL
너무 닮아서 좀 놀랐죠.^^
저녁에 오시죠?

파란 2008-11-16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하기 전에는 잘 읽었는데 지금은..외면하는 쪽에 가깝네요. 보고 뒤돌아서면 기운을 너무 빼서. 기운나는 책으로 발길을 돌리죠.

파란흙 2008-11-17 11:49   좋아요 0 | URL
제가 드라마를 안 보는 결정적 이유도 그거랍니다.^^ 이 책이네요. 리뷰 당선. 음~ 너무 내 얘기.^^;

순오기 2008-11-20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이 책을 읽어봐야 님의 시어머님도 알 수 있겠군요.^^
이주의 리뷰 당선 축하합니다~~~~~~

파란흙 2008-11-20 08:32   좋아요 0 | URL
네, 울 시어머니..아무튼 대단한 분이시죠.
온갖 감정이 오가는 분.^^
감사합니당~~

뽀송이 2008-11-20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흙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리뷰가 어째 짠합니다.^^
더불어 엄마를 부탁하는 작가의 마음도 들어보고 싶어집니다.


파란흙 2008-11-20 08:33   좋아요 0 | URL
짠~하나요?
그저 썼는데, 반응들이 그렇더군요.
읽어보실 필요 있는 소설이에요. 마치 진심 어린 참회록 같은.

stella.K 2008-11-21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리뷰 당선하셨슴까? 축하드려요!
나도 당선 좀 해봤으면...흐~

파란흙 2008-11-21 11:17   좋아요 0 | URL
에이,무신 소리를 그리 하셔요. 스텔라님 글발이야 제가 아는 걸요.

글샘 2008-11-24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이 리뷰를 읽음으로써 읽기를 마치겠습니다. ^^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

파란흙 2008-11-24 19:10   좋아요 0 | URL
헉, 그래도 읽어보셔야 제맛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