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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당연함을 버리다 - 고지마치중학교의 학교개혁 프로젝트
구도 유이치 지음, 정문주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2월
평점 :
학교의 역할이란 무엇인지 본질적인 질문을 하게 하는 책!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학교 교육의 비전을 제시하다!
최근 갑작스레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8년째 살고 있는 현재의 동네에서 계속 머무를 것인지,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진학할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를 고려해서 안정적으로 초·중·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는 동네로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아이를 둔 부모라면 당연한 결정이겠지만 우리는 ‘학교’를 우선순위에 두기로 했다. 학교는 물론이고 학습 환경의 자원이 넉넉한 곳으로 보낼 수 있는 동네에서 일찍 터를 잡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학교가 우리 아이가 다니기에 더 적합한지, 이 학교의 비전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사실 많지 않았다. 그저 학급 수가 얼마나 되는지, 시설은 잘 갖춰져 있는지, 예전에 나와 남편이 나고 자랐던 동네인 만큼 옛 기억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기 이전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사회로 나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장소인 만큼, 비슷비슷한 내용의 홈페이지가 아닌 다양한 정보와 운영방식, 비전 등을 외부에서도 자세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지만 학교의 재량을 믿고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문득 궁금해진다. 지금, 우리의 학교는 어떤 곳인가 하고. 또 학교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하고.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필요한 힘을 기르는 학교가 되기 위해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폐지, 고정담임제 폐지, 숙제 전면 폐지. 믿기지 않지만 기존의 교육 제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학교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아이를 보내고 싶은 중학교 1위로 손꼽힌 일본의 고지마치 중학교의 이야기다. 이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자 『학교의 당연함을 버리다』의 저자인 구도 유이치는 학교가 존재해야 할 본래 목적이란 무엇이며 기존의 수많은 학교가 ‘당연’하게 여겨 온 것들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고민한 교육자다. 이 책은 그의 새로운 교육 철학을 반영하여 추진한 학교 개혁의 사례집으로, 일본과 유사한 교육 환경을 갖추고 있는 우리에게도 매우 의미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지 않기
상위 목표를 기억하기
자율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교육을 중시하기 / 7p
학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저자는 안타깝게도 현재 일본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교육 활동은 ‘사회에 나가서 더 잘 살아가게 하기 위한’ 본래의 목적을 잃은 것 같다고 지적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활동과 실제 사회 사이의 괴리가 클뿐더러, 아이들에게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 수단이 되어야 할 학습지도요령과 교과서가 목적으로 둔갑해 절대적인 기준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관례에 의해 작동되는 온갖 규정들이 학교를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주요 요소들을 방해하고 있다. 하지만 학교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자질’, 다시 말해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사회가 눈부신 속도로 변화하는 지금이야말로 이 같은 교육의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교장이 각오하고 자기 학교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진지하게 추구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학교 관계자들이 그런 관점으로 매일의 교육 활동에 임한다면 학교가 변하고 나아가 사회도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제도들을 재검토하고 더 나은 학교를 만들겠다는 저자의 교육 철학은 학교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증명된다. 이를 테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폐지하고, 고정담임제와 숙제를 폐지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모든 학생이 효율적으로 학습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학습 시스템을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고, 이에 단원 테스트라는 이례적인 방법을 도입했다고 한다. 단원이 끝나면 테스트 하는 식으로 학습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작은 시험을 쳤고, 연 3회 치르던 실력 테스트를 5회로 늘림으로써 학생들이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단원 테스트로 확인하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그 시기에 바로 복습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때 단원 테스트는 재도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제대로 모르는 부분을 하나씩 챙기면서 다시 공부해 실력을 꾸준히 올릴 수 있도록 지도해나갔다. 또 학년 담당 교사 전원이 해당 학년 학생 전체를 보살피는 ‘전원담임제’를 도입해 교사가 각자 잘하는 분야를 살려 해당 학년을 운영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숙제 제출 양으로 성적을 평가하는 방식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그는 숙제를 전면 폐지함으로써 시켜서 하는 학습이 아니라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배우게 하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했다.
그의 말처럼 어쩌면 숙제, 정기고사, 고정담임제는 모두 오랜 학교 교육의 역사 속에서 당연하게 존재했고 그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고 지속해 온 관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도나 시스템은 시대와 함께 변해야 한다. 교장을 비롯한 교육 관계자들은 학교 교육의 상위 목적에 비추어 최적의 수단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것은 설사 100년을 고수해 왔다 할지라도 바꾸려는 유연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학교는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배움을 얻는 장소다. 학교에서 배운 아이들이 훗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단계는 그 결과일 뿐이다. 이 부분에서 착각을 일으키면 안 된다. ‘학교에 가는’ 행위는 사회에서 더 잘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 우리 어른들은 더 유연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 57p
새 학습지도요령은 ‘액티브 러닝(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주체적인 학습법)’을 요구한다. 나는 학습 방식을 ‘액티브 러닝’으로 다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사람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액티브 러닝’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잠자코 앉아서 타인의 이야기를 일방적 강의 형식으로 듣는’ 행위는 세상 이치에 맞지 않는다. 당연하지 않다는 말이다. 이야기를 나누고, 무언가를 내놓고 받아들이며, 합의하기. 그런 형태로 문제를 해결하기. 이것이 사회의 모습이다. 그러니 학교에서도 사회의 ‘당연함’을 배울 수 있게 해야 한다. / 62p
이 외에 오리엔테이션 합숙, 여행사와의 제휴를 통한 기획형 취재 여행, 모의 인턴십, 지역사회와 연계한 애프터스쿨, 영 아메리칸즈 행사 등도 눈길을 끈다. 특히 매년 10월에 열리는 모의재판 행사가 상당히 흥미롭다. 3학년 대표 약 20명이 단상에서 변호사와 검사, 피고, 판사, 재판원, 증인 등을 연기하는 것인데, 아이들이 사전에 진짜 형사 재판을 방청하는 등 사법 제도에 관한 이해를 키운 다음 배역을 정해 모의재판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방식이다. 이때 전문적인 부분은 니혼대학 법학부와 일본 법육학회가 아이들을 지도하게 해줌으로써, 법률과 규칙은 자치를 실천하기 위한 시스템이며 합의가 이루어지기까지 거치는 일련의 과정은 민주성, 시민성을 함양하기 위한 중요한 배움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도한다. 이 뿐만 아니라 ‘고지마치 중학교 학원’을 열어 학교 안에 무료로 다닐 수 있는 학원을 연 것도 인상적이다. 도쿄대학, 조치대학, 도쿄 이과대학 세 대학의 연구실에 요청해 교육에 관심이 많고, 아이들을 좋아하며, 인간관계가 매우 좋은 대학생을 세 명씩 받아 학원 운영 일체를 맡김으로써 아이들만이 아닌 대학생들의 공부에도 도움이 되고자 한 것이 특히 의미 있다. 과열된 사교육 시장을 조정하고, 사교육으로부터 소외된 학생들에게도 좋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 역시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스킬 업 합숙의 목적은 일반적인 행사가 내세우는 우정 쌓기, 유대감 강화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갈등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목적 중 하나다. 사람은 각자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생각하기에 여러 사람이 하나의 아이디어를 모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의견이 부딪히면 어른들도 짜증을 낼 때가 있다.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해결해 나가는 스킬을 철저히 배우게 하는 것이 이 행사의 목적이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다채로운 사회에서 살아간다. / 102p
나는 ‘문제 상황을 배움으로 바꾸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아이들에게 무언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그 문제를 아이들이 어떻게 자율적인 배움으로 바꾸어 갈지가 최상위 목적이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그 과정을 통해 어른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부모의 신뢰를 얻으면 아이들의 성장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교사와 학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어렵거도 중요한지 공유할 수 있게 되며, 아이들은 자신이 그 당사자이며 ‘해결은 자신의 몫’임을 깨달아 변화하게 된다. / 134p
고지마치 중학교의 사례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학교란 학생들이 충분히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스스로 점검하고 키울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시스템을 고안해야 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관행이라는 틀 안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아이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가두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우리도 고심해볼 문제다. “무언가 과제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를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주위와 함께 해결하는 힘. 그 힘을 길러 주기 위해선 ‘세상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어른들은 꽤 멋지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는다”는 저자의 말은 우리 교육계 전체가 함께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이 우리 교육을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