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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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작가의 유머 시도다. 원래 이 정도의 유머 센스가 있는 작가였나 싶을 정도로 이 책에서 시도하는 작가의 유머는 칭찬해 줄만 하다. 그렇다고 매번 웃겼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내가 읽은 작가의 작품이 대부분 다소(?) 우울하고 건조했었다는 기억 때문에, 작가의 유머가 내게 잘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한데, 굳이 이렇게 글 곳곳에 ()괄호를 넣어가며 유머를 던져야 했나 싶었다.

작가와 별로 안 어울린다고나 할까. 근데 이게 원래 작가의 모습일 수도 있지 뭐. 그간 봐왔던 작가의 작품과 작가를 일치시키는 건 오류 투성이일 테니까.

어쨌든 소설가에게 소설가의 일을 듣게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물론, 이 책과 관련된 이벤트에 당선되었다면 더 좋았을 뻔했겠고. 크흐흐.

 

 

 

“소설가란 어떤 사람들인가? 초고를 앞에 놓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자기가 쓴 것을 조금 더 좋게 고치기’가 바로 소설가의 주된 일이다.” (p.75)

“소설에 이렇게 익히 알려진 단어보다 숨은 단어들을 더 많이 쓰는 건 나만의 문장, 나만의 미문을 얻기 위해서였다.” (p.178)

 

 

소설 비스무리 한 것이라고는 한 번도 써 본적이 없는 내게 소설가의 일은 낯선 것이었다. 특히, 단어와 문장에 대한 소설가의 집착을 엿볼 수 있어서 재미있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했다. 더군다나 작가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초고를 퇴고하고 또 퇴고하고 고치고 수정하는 작업이라고 하는 데, 이건 내게 쥐약이다. 내가 가장 못하는 일이기도 하고 내가 가장 귀찮아 하는 일이기도 하며 내가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뭐, 등단한 프로 작가도 아니고 원고료를 받고 글을 주는 사람도 아닌데 유독 나는 내 글 보는 것이 불편하다. 시장 통 한가운데 발가벗고 서 있는 느낌 정도로 내 불편함을 속시원하게 표현할 수 없다.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나도 모르기 때문에 더 불편하고 답답하다. 아내나 몇 몇 지인에게 보여주는 일은 있지만 대게 “뭐, 괜찮은 거 같애” 정도에서부터 “우와~ 정말 잘 썼다.” 정도에 다 포함되는 반응들이기에 블록을 설정해서 한꺼번에 삭제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영~ 글에 발전이 없나 싶기도 했다. 프로 소설가, 베스트셀러 작가조차 자신의 글을 철저하고 가학적일 정도로 퇴고한다고 하는데, 나는 옷도 벗지 않고 거사를 치르려는 무모함만 가득한 풋내기인 것 같다. “나만의 문장, 나만의 미문”을 얻기 위한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책을 읽다 처음보는 표현이나 단어나 나오면 사전적 정의를 찾아 메모해 두고 반복해서 찾아 본다. 그리고 서평을 쓰거나 할 때 종종 사용하기도 하는데, 엄밀히 말해 이것은 나만의 문장, 나만의 미문은 아닌 듯 하다. 누군가의 문장에서 그 부분만 쏙 뽑아내 내 것인양 사용하는 것일 뿐. 아마, 퇴고를 하지 않는 내 글의 가장 큰 취약점일 테다. 당장 소설을 쓴다거나 ‘돈을 줄테니 글을 주시오’라는 청탁도 받은 일이 없어 언제쯤 정정당당하게 내 글에 맞서 퇴고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시점이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정말 아무 생각도 없던 것보다는 구체적으로 발전했다는 점만 밝혀두기로. 크흐흐.

 

“나만의 문장, 나만의 미문”을 찾기 위해서인지, 소설 속 자료를 찾고 소설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인지 김연수 작가는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에 오랜 기간 머물었다고 한다. 부러웠다. 요즘같은 때, 아무리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해도 외국에서 할 거 다하고, 먹을 거 다 먹고 흥청망청 즐기며 시간을 보냈을리는 결코 없겠지만! 그래도 부러웠다. 몽골 사막에서 생애 첫 지평선에서의 일출을 본 후 내가 자연을 향해 하던 표현의 깊이가 달라졌던 것처럼, 실제 내가 쓸 글의 대상과 배경이 되는 곳을 걷고 보고, 냄새 맡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분명 설레고 재미있는 일임에는 틀림 없다. ‘나도 당장 그러고 싶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소설가는 아무나 되나? 생각만... 크흐흐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왜 소설은 안 쓰고 소설가가 될 생각을 했을까?” (p.99)

“아무리 멋진 소재를 안다고 해도, 남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험을 경험했다고 해도, 아무도 모르는 엄청난 비밀을 알고 있다고 해도, 쓰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p.199)

 

 

“나는 소설가가 될 테야.”라고 한 번도 말해 본 적 없다. 주위에서 기분 좋으라고 부추김을 받기는 했어도, “에이~ 내가 어떻게 소설을?” 했다. 맞다. 이래가지고는 소설가가 절대로 될 수 없다. 소설을 안 쓰고 어떻게 소설가가 될 수 있나? 절대 소설가가 될 수 없다. 아무리 기가 막힌 소재와 경험, 비밀을 알고 있어도? 쓰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소설가의 멘트에 K.O

쓰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맞다. 진짜 아무것도 아니다. 머릿속에는 이미 1억원이 넘는 고료의 주인공이 되어 등단을 하고 손가락 안에 드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종국에는 해외에도 내 작품이 번역되어 출간되고, 저 북유럽에서도 슬그머니 후보로 끼워주기도 하는 공상. 딱 거기까지다. 손가락에 의해서 종이에 쓰이거나 키보드를 두드려 글자를 만들어 내지 않는 이상 모!두! 공상!! 딱 거기까지.

 

 

“좋은 시를 쓰는 것인지 아닌지, 내게 시인의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따위의 걱정은 전혀 하지 않고 매일 한 몇 편씩, 때로는 몇 십 편씩의 시를 노트에 썼다.” (p.15)

“지금까지 수많은 작가들이 수없이 많은 책을 썼다. 거기에 무슨 새로운 내용을 더 보탤 수 있을까? 새로 쓸 수 있는 건 오직 문장뿐이다.” (p.192)

 

 

매일 한 몇 편씩, 때로는 몇 십 편씩의 시를 노트에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작가도 처음부터 시인이 될 테야. 작가가 될 테야. 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뭐가 그렇게 생각나서 쓸 것이 있을지 나는 우선 걱정이 된다. 하루 일이야 정해져 있는 것일 테고, 그 안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도 일정 정도의 범위를 벗어나기 어려운 데.

책에는 좀 더 친절하고 자세한 길라잡이도 등장한다. 이를테면, 세 시간 이상 글을 쓰지 마라 같은.

나는 그런 친절하게 자세한 길라잡이 보다 새로 쓸 수 있는 건 오직 문장뿐이다. 라는 직구가 더 와닿는다. 맞다. 뭐 얼마나 잘난 인간이라고 새로운 글을 써낼 수 있을까? 인류는 늘 기록하고 그리고 남기고 싶어했을 테니까. 수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인류 전체의 지적 양식을 채우는 고전도 한 두 권이어야 말이지. 새로 쓸 수 있는 건 오직 문장뿐이라는 소설가의 말이 무겁게 들린다. 일종의 자기 암시이자 최면인 것 같기도 하다. 직업 작가들만이 갖는 고충을 잠시 토로한 것 같기도 하다. 창작을 해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인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고충과 고통에 당장 뛰어들고 싶기도 하고. 크흐흐.

그런데 말이 쉽지. 나만의 문장을 만드는 일은 어렵고 지겹고 골치 아픈 일이다. 어딘가에 내가 쓴 이 문장들이 백팔십삼만육천이백칠십개 정도는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겁먹지 말고 나만의 문장을 만들어라’라는 말은 나도 하겠다. 어쩌라는 건지 김연수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새로 쓸 수 있는 문장은 뭡니까? 라고.

 

 

“흔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흔치 않은 사람이 되자. 미문을 쓰겠다면 먼저 미문의 인생을 살자. 이 말은 평범한 일상에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미문의 인생이다.” (p.174)

 

 

쉬운 듯 어렵다.

아니, 어렵다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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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 불멸의 인생 멘토 공자, 내 안의 지혜를 깨우다
우간린 지음, 임대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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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을 부축해 드릴 선생님이 없다.

 

 

“무우대에 이르러 나는 선생님의 팔을 부축하며 위로 올랐다.” (p.59)

 

 

그런 선생님이 계셨는데 지금은 부재하신 게 아니라 처음부터 없었다. 팔을 부축해 드린다는 것은 그만큼 선생님과 친밀하다는 것이다. 함께 계단을 오를 수도 있고, 등산을 할 수도 있고, 몸이 좋지 않으셔서 부축을 해 드릴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할 선생님이 없다. 처음부터 없었다. 다른 서평에서 여러 번 밝힌 바 있어 또 다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민망하지만 사실이기도 하고 부축해 드릴 선생님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는 방증이다.

 

 

 

“그때 선생님의 자상한 눈빛을 보았다.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p.63)

 

 

자상한 눈빛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시는 선생님이 나는 없다. 미간을 찌푸리신 채 무섭게 호통 치시더라도 그런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없다. 어릴 때는 잘 몰랐다. 인생의 스승이 없다는 부재가 주는 안타까움과 억울함을 느낄 새도 없이 지나가 버렸다. 아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별 필요가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가 꿈꾸는 대로 내 인생의 그림이 그려 질 것 같았다. 간혹 어떤 이들이 조언과 직언을 해주었지만 흘려들었다.

그런데 30줄을 넘기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니 선생님의 부재가 주는 안타까움과 억울함은 짙어만 간다.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교육정책의 구조적 문제를 탓하고 싶지 않다. 나와 같은 시절, 같은 교육정책 속에서도 인생의 선생님, 스승을 만난 사람들이 많으니까. 다만 내게는 왜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다. 너무 아쉬워서 억울한 것일 테다.

 

 

 

“미안하구나, 방금 한 말은 농담이었느니라. 자유 너의 말이 옳구나.” (p.240)

 

 

 

고맙다.

 

내가 유일하게 선생님으로 모셨던 분에게서 들었던 마지막 말씀이다. 고(故) 리영희 선생님. 돌아가시지 며칠 전 병상에 누워계신 선생님과의 통화 마지막 목소리다. 한 번도 만난 저거 없고, 뵌 적도 없는 분이지만 그분의 책을 읽고 내 인생의 선생님으로 모셨다. 내 인생관과 세계관, 내 인생의 지향성을 바꾸게 해준 게 리영희 선생님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멀리서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가르침을 얻고 마음에 새긴 것이 전부지만 좋았다. 건강하게 활동하시면서 내 인생의 가르침이 될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책도 써주시기를 바랐다.

어느 날 우연히 찾아 본 기사에서 선생님의 병환소식을 알게 되었고 위독한 상황이라 많은 제자들이 병원으로 찾아간 사진도 보게 되었다. 무작정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선생님과 통화했다. 선생님 책을 읽고 영향을 받은 사람입니다. 존경합니다. 쾌차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한참 무슨 말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말을 쏟아 냈다. 선생님의 대답은 한 마디였다.

고맙다. 고맙다.

아마 제자나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 한 명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힘겹게 고맙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내 유일했던 선생님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였다.

단 한번 뿐이었지만 이후 내 평생 동안 마음에 새기고 가슴에 박을 말씀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고(故) 리영희 선생님과의 마지막 통화, 마지막 대화가 생각났다.

 

 

 

夫子曰 : “小子識之, 苛政猛於虎也.” 《예기禮記》<단궁檀弓>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구나! 호랑이가 있는 곳에서는 그래도 모두가 잡아먹히지는 않지만, 가혹한 정치 아래서는 살아남을 사람이 없구나!”

“너희는 알아야 한다.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것을.”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서운 세상을 살고 있다. 자칫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천만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렇게 무섭고 위험한 시대와 세상을 사는 내게 자공의 눈에 비친 공자의 모습은 부러움 그 자체다. 가까이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선생님과 함께 먹고 자며 살았던 수십 년의 시간. 선생님과 나눈 대화, 겪은 사건, 보고 느낀 것들은 그대로 자공의 삶이 되었다. 장사꾼의 자식이었던 자공이 어떻게 공자라는 스승을 만났는지 정확하게 나와 있지는 않지만 수십 년 동안 한 선생님을 모신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책에서 자주 표현되는 대로 공자와 그의 제자들은 제자백가 시대를 살았다. 열국을 주유했다. 수많은 나라를 떠돌았다는 말이다. 열국을 주유했다는 말이 편하게 가르침을 전해주는 낭만적인 여행은 물론 아니었다. 중국의 역사에서도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살았던 공자와 제자들은 수도 없는 위험과 목숨의 위협 속에서 한 몸으로 지냈다. 아주 혹독한 훈련을 겪고 난 후 군대 동기들 간 더 끈끈한 동기애가 생기는 것처럼 공자와 제자들도 그랬을 것이다.

 

 

 

 

“선생님도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불편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고 감싸주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 (p.82)

“결코 높은 곳에 홀로 앉아 계시거나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을 드셨던 신선은 아니었다. 그 누구라도 선생님을 폄하하지 말고, 그렇다고 한도 없이 선생님을 우러르지도 말았으면 한다.” (p.383)

 

 

자공의 눈에 비친 공자의 모습은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 모습만이 아니다. 정치적 꾐에 넘어가 들러리를 서기도 하고, 뻔히 보이는 실수를 반복하기도 하고, 제자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어쩔 수 없는 생활의 곤궁함에 아끼는 제자의 관 하나도 마련해 주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많은 공자와 관련된 책의 내용처럼 이 책도 공자에 대한 찬양과 추앙 일색이었다면 리영희 선생님 생각은 손톱의 때만큼도 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공의 눈에 비친 공자의 모습은 평범한 생활인, 부족하지만 존경하는 선생님이었다. 그 모습을 공자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싶다. 자공의 눈이지만 저자의 눈이기도 하다. 이 책이 중국에서 큰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공자가 아끼던 제자 중 세 사람인 자공과 안회, 자로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데, 예수의 제자 중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겹쳐졌다. 자로는 무인이다. 무도가 뛰어나고 직설적이며 공격적이다. 책에서 여러 번 자로의 이런 면모가 표출되는 데, 매번 공자가 만류한다. 예수를 잡으러 온 군사의 귀를 칼로 자른 베드로의 모습이 비교되었다. 당시 로마와 빌라도 총독, 예루살렘의 기득권이었던 바리사이파를 향해서도 줄곧 비폭력 저항을 했던 예수는 이런 베드로를 꾸짖는다. 공자가 가장 아끼던 안회는 예수의 제자 중 사랑의 제자로 일컬어지는 요한과 비교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자공과 야고보인데, 둘의 유사점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공자와 예수가 아끼던 제자였다.

 

 

나는 베드로도 아니고 자공도 아니다. 자로도 아니고 요한도 아니다. 다만 그들처럼 내 스승을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보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아쉽고 억울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뭘 바꿀 수 있는 여지도 없다.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님이 부활하실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만약 부활하신다면 염치 무릅쓰고 계신 곳으로 찾아가 무릎 꿇고 사사를 간곡히 청하고 싶을 뿐이다. 자공도 요한도, 베드로도 자로도 공자 선생님과 예수 선생님이 후세에 이렇게 까지 존경받고 추앙받는 스승이 되리라 생각지는 못했을 것이다. 내 딸아이가 내 나이쯤 되는 시대에 리영희 선생님이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인정받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시대의 스승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현대인은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이야기는 흡입력이 있을 뿐 아니라 기억하기에도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인해 독자들은 옛사람과 현대인의 높은 장벽을 부수고 공자의 지혜를 직접 깨닫게 될 것이다.” (p.11)

 

 

자공의 눈에 비친 스승, 공자의 모습 이라는 접근 방식이 좋다. 현대인에게 어필하는 스토리텔링 좋다. 높은 차원의 경전을 번역하고 주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시중에 나온 수많은 공자와 관련한 책을 읽기 힘든 이유다. 이 책은 가까운 제자의 눈으로 공자를 본다. 그의 말과 행동과 삶을 가까이서 지켜본다. 살갑고 친근하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아, 자공 선생님의 친구이셨군요. 정말 잘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자공 선생님께 공자 선생님에 관한 말씀도 많이 들으셨겠지요? 제게도 그 이야기를 좀 전해주십시오. 자공 선생님에게 공자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p.366)

 

 

공자 사후 자공은 다른 제자들과 함께 3년 상을 한 뒤, 혼자서 더 스승의 묘를 3년 간 지킨다. 이후 관직이나 현실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다. 공자가 아끼는 제자였고, 학문과 정치의 경지가 굉장한 수준이었지만 산 속으로 들어간다. 수많은 권유와 요청과 부탁이 있었을 것인데, 모두 물리친다. 그리고 우연히 공자의 문하에 있던 사제의 제자를 만난다. 자신이 자공인지 모른 채 자공과 공자의 가르침을 요청한다. 책에서 저자가 상상해 풀어 낸 자공의 마음은 설렘과 떨림이다. 이미 공자 선생님은 세상을 떠나셨고, 자신도 산 속으로 들어간 지 한참이 지났지만 스승의 사상과 가르침이 대를 이어 전해지고 있다는 마술과 같은 사실 앞에서 다시금 선생님을 향한 경외와 존경심이 일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저자의 묘사는 간결하고 짧지만 충분히 그 느낌을 공감할 수 있다.

 

나의 권유로 리영희 선생님의 책을 읽은 내 후배와 함께 한참동안 리영희 선생님의 삶과 그 분의 책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너무 좋았다. 대화를 나누는 우리 둘을 지긋이 바라보시는 선생님이 함께 계신 선생님의 서재에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어지는 삶도 꽤 괜찮을 것 같다.

당장 뛰어 가 만나거나 전화해서 통화할 수 있는 선생님은 없지만 같은 선생님을 모신 이들을 발견하고 그들과 선생님의 이야기를 하는 것 말이다. 어떻게 보면 귀찮기도 하고 오랜 시간이 필요한 지난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가치 있는 일이다.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지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로봇처럼 입력한 대로만 움직이면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쉽고 간단하다면 누구나 별 노력 없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를 독려하고 위로하고 가르쳐 줄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 무엇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틀린 것이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인생은 각자 매길 수 없을 만큼 큰 가치를 가진 것이니까. 물론, 이것도 당위는 아니다. 그 무엇이 없이도 나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이미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책을 읽으며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모시고 팔을 부축해 드린 자공을 부러워하고 내 현재를 안타까워 하다가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님 생각에 한참을 빠져 있었다. 잠시지만 행복했다.

이 책이나 일상의 어느 순간을 통해 내게는 선생님이었던, 그 무엇을 발견하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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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남자
이상훈 지음 / 박하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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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토목건축가였던 박자청은 경회루를 건축했다. 박자청은 노비 출신이다. 그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새삼 노예제가 공식적이었던 세상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생각했었다. 노예제가 없어진 현재를 사는 나는 도무지 상상할 래야 상상할 수 없는 시대다. 단지 양반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과거에 응시할 수도 없으며 돈도 벌 수 없고, 무엇보다 노비가 낳은 자식은 계속해서 노비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시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절망이다. 조그만 희망의 빛조차 없는 시대를 살았던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그래서 가슴 아프다.

 

 

장영실.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교과서에 실린 몇 줄 정도의 설명 정도만 알고 있던 인물이다. 세종대왕을 도와 측우기, 해시계, 혼천의를 발명했다 정도? 이 책을 읽으며 작가가 지녔던 최초의 질문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세종대왕이라는 인물을 만난 것이 장영실이라는 인물의 행운일 수도 있지만 임금을 도와 만든 발명품들이 모두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것들이다. 그 정도의 인물이 우리의 역사에 흔하지 않다. 아니, 흔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전무후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장영실을 잘 알지 못한다. 처음 작가가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된 이유가 실록에 실린 장영실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 시대 최고의 과학자요 세종의 오른팔 중의 오른팔이었던 장영실이 말직에서나 맡았을 가마를 만드는 일을 했고, 그 가마가 부러지면서 파직 당했다는 것. 자세하게 실록을 들여다보거나, 장영실이라는 역사속 인물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닌 나와 같은 사람들은 쉽게 생각한다. ‘아~ 장영실이라는 사람 대단한 사람이구나. 잘 먹고 잘 사셨겠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한복 입은 남자」라는 그림에서 작가의 상상과 작품은 시작된다. 일본에 끌려 간 조선의 어린 소년이 유럽인에 의해 노예로 팔려 나가고 그 소년을 그렸다는 정설에 대한 의문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림 속 인물의 의복과 그림의 좌측하든 구석에 희미하게 그려진 동양의 배.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세계의 역사는 새로 써져야 해.” (p.468)

 

 

소설 속 내용이 사실이라면 정말 역사는 새로 쓰여야 한다. 소설에서 이 문제를 파고들어 실마리를 푸는 진석과 같은 사람이 실제 한다면 말이다. 물론, 중세 피렌체로 건너간 장영실일지도 모를 조선인의 이탈리아 후예가 실제하고 그가 지닌 선조의 기록을 현재의 글과 언어로 해석해 낼 진석의 친구, 강배와 같은 인물이 실제 한다면 말이다. 책을 읽지 않고 이 서평만 읽고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이런 종류의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최초 작가의 의문과 소설을 통해 풀어내는 전개에 푹 빠져 든다. 저자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이 책은 오랜 기간 동안 쓰였다. 소설의 소재와 내용 전개가 주는 허무맹랑함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사료 조사에도 충실했다는 흔적을 책을 읽는 내내 지울 수 없었다. 책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 역사적 고증과 관련된 전문가가 나오는 데, 실제로 작가가 만나서 인터뷰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로 사실적이다.

그리고 책이 재미있다. 이런 종류의 역사 픽션이 줄 수 있는 당혹스러움에서 벗어나 있다. 만약 철저한 사료 조사나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지 않았더라도 순전히 작가의 필력만으로도 작가의 다음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다.

 

 

 

“두 사람이 함께 배를 타고 항해에 나섰다는 사실은 상상만으로도 흥미진진하군. 조선의 위대한 과학자와 콜럼버스를 넘어서는 위대한 항해가의 만남이라니.” (p.265)

“영실이 피렌체에 정착한 지 어느덧 10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다. 영실의 가르침을 받은 다빈치는 천문과 기계설계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p.436)

“역사적인 만남은 1459년 어느 늦가을에 이루어졌다. 당시 다빈치는 7살이었고, 장영실은 50대 후반의 나이였다.”

 

 

노비였던 장영실은 동래 관아의 오랜 가뭄을 해결한 공로로 궁에 들어가게 된다. 시련을 뚫고 임금의 총애를 받는 조선 최고의 과학자, 실학자가 된다. 뭐, 늘 그랬지만 세종 시절에도 임금이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최우선으로 하였던 반대파들의 정치적 견제가 심했다. 조선만의 문자를 만들고 조선만의 월력을 갖고 조선만의 군사무기를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기술은 있고 의지도 있지만 사대국인 명나라의 눈치를 피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숨겨야 할 일은 더 드러나는 법. 명나라의 견제와 감시를 받게 된다. 급기야 조정 내 반대파와 조선에 들어와 있던 조선인 출신 명 황제의 환관의 음모로 장영실에 의해 펼쳐지던 과학조선의 꿈은 수포로 돌아가기 직전이었다. 급기야 자객을 이용해 쥐도 새도 모르게 장영실을 죽이려 했다. 세종은 장영실을 위해 장영실을 놓아주기로 한다.

역사적 인물인 ‘정화원정대’의 정화대장과 물밑으로 연락을 취해 그를 통해 장영실을 조선에서 탈출 시킨다.

장영실과 정화, 다 빈치의 생애가 묘하게 섞이며 그럴 듯한 개연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 책을 읽는 핵심이자 묘미다.

세상의 끝을 탐험하려는 원대한 꿈을 꾸던 정화대장의 희망이 꺼져갈 무렵이었고 명나라 황실을 피해 피신해 있던 정화대장에게도 장영실의 합류는 대단한 힘이었다. 이미 세상 최고의 과학 기술을 보유한 장영실과 함께 그의 원대한 꿈을 마무리 하려 한다.

그리고 아라비아반도를 지나 이탈리아 반도에 이른다. 거기서 교황을 만나고 또 다사 위험에 빠지지만 피렌체까지 이르게 된다. 거기서 장영실은 다 빈치를 만난다. 정화대장은 또 다른 원정을 떠난다.

이것이 소설의 줄거리다.

 

 

 

“15세기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이 유럽으로 건너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교류를 했다? 더구나 자신의 초상화까지 비망록에 버젓이 남겨놓았다? 그것도 당시 유럽 최고의 화가의 손을 빌려. 증거를 눈앞에 두고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과연 세상사람 누가 믿어줄 것인가.” (p.92)

“비차와 다빈치라...” (p.15)

 

 

책을 읽고 나서 장영실의 발명품과 다 빈치의 발명품을 찾아보았다. 정말 유사한 점이 많았다. 흡사 두 사람이 공동으로 발명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시대와 공간을 뛰어 넘어 비슷한 생각과 발명을 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만 그 가능성 정도가 아니라 정말 유사했다.

 

 

 

“이거 우리 가문, 중요한 문서입니다. 우리 조상님 다이어리에요.” (p.48)

 

 

사실 이 모든 개연성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엘레나 꼬레아가 진석에게 건네 준 다이어리다. 장영실이 후손에게 남긴 기록이다. 일종의 일기다. 피렌체에서 생을 다한 장영실은 이탈리아인과 결혼해 후손을 낳았고 이탈리아 반도 어딘가에 그의 후손이 살아 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소설 속 후반부 내용이 실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빈치, 어디를 가더라도 절대 내 얘기를 해서는 안 된다. 내가 가르쳐준 지식은 너 혼자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나에 대한 자료를 모두 지우도록 해라.” (p.439)

 

 

이 부분은 좀 아쉬운 부분이다. 굳이 장영실이 다빈치에게 “나에 대한 자료를 모두 지우라”고 했다는 내용이 필요했을까 싶다. 그런 말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중세유럽의 아귀다툼을 이겨내야 했었을 다빈치에게는 장영실의 존재를 알리기보다 당장 살아남는 일이 시급했을 것이다. 제후의 맘에 들어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중세유럽 예술가의 숙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장영실의 최후와 그의 기록이 여전히 알려지지 않는 이유를 독자의 궁금증으로 남겨 두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렇다 해도 이 책은 충분히 재미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장영실과 다빈치의 관계, 장영실의 최후를 꼭 밝혀야 해!!”라는 무리한 음모론을 제시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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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 - 암을 치유하며 써내려간 용기와 희망의 선언
이브 엔슬러 지음, 정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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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까지 추적추적 오는 오늘, 내 아버지는 또 일산 암센터로 가고 계신다. 벌써 몇 번째 인지 셀 수조차 없다. 지난 해 10월 암센터에서 퇴원한 후 3개월 만에 다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저혈압과 패혈증 초기 증상으로 인한 쇼크로 본가 근처 병원 응급실에서 앰뷸런스 타고 일산 암센터로 입원했다. 한 달이 넘는 입원 기간 동안 아버지를 간병하신 어머니는 허리와 무릎, 어깨가 망가졌다. 그래도 치료를 받고 내려 오셔서 본가에서 회복중이셨기에 시간이 지나고, 계속 본가 근처 병원에서 감염치료를 받으면 천천히 회복할 것으로 희망했다. 그런데, 아버지 몸속에 있는 농양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더 이상 약이 들지 않아 더 큰 병원으로 입원해서 외과적 치료(수술, 시술)를 받으라는 담당의사의 상담을 받은 것이 그저께다. 동생이 휴가를 내 경북 포항에서 경기도 일산까지 부모님을 모시고 갔다. 지난 연말부터 지금까지 정말 나는 정신이 없다. 안 좋은 일은 겹쳐서 온다는 말을 남의 일로 생각하고 흘려들었는데, 겹쳐서 와도 너무 겹쳐서 잔인하게 내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나름 열심히 살고 나름 신실한 신앙을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힘들다. 하늘을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고 원망을 쏟아냈다. 아주 작은 반응이라도 보여줬으면 좋겠는데, 그저 내 바람 만 흩날릴 뿐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다. 8년 째 투병 중이신 아버지 간병은 어머니가 전적으로 맡아 하신다. 지난 입원 기간 동안 어머니가 너무 힘드셔서 간병인을 알아봤다. 장루를 차고 오랜 항암치료와 양성자치료로 하반신 근육이 대부분 없어져 제대로 걷지를 못하는 아버지를 맡겠다는 간병인은 없었다. 정해진 간병비 이상을 주겠다고 해도 모두 손 사레를 치며 도망가듯 병실을 나갔다. 나는 대구에 살고 있고, 동생은 강릉에 살고 있다. 본가는 포항이다. 나와 동생은 대구와 강릉에서 일산과 포항을 오갔다. 내 아버지, 내 부모니까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이다. 8년 째 아버지를 간병하시는 어머니를 두고 힘들다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참 힘들다. 신이 내 기도를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

 

이 책 「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를 읽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요즘 같이 심신이 모조리 상실된 힘든 상황에서 책을 읽고 기한에 맞춰 서평을 쓰는 것 자체도 힘들지만 저자인 엔슬러가 책에서 표현하는 항암·화학치료의 과정에 너무 세세하고 너무 공감이 되는 것이 더 힘들었다. 2번의 수술, 3번의 시술, 3번의 항암치료와 1번의 양성자치료, 지금까지 진행 중인 농양치료…….

 

 

“나는 사투를 벌이고 있다. 내 주머니는 권총집이다. 그 안에는 농양과 배설물이 아니라 총이 들어 있고, 그것을 재빨리 꺼내 슬론-케터링을 겨누고는 탕! 총을 발사한다.” (p.102)

“살고 싶어요, 뎁. 살고 싶다고. 죽기 싫어.” (p.219)

 

 

이렇게 힘든 매일 중, 지난 주 금요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모님은 입원 중이시고, 동생은 중요한 진급시험이 있어 알리지 않았다. 아버지 병원 입·퇴원 일로 여러 번 휴가를 냈던 터라, 눈치가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3일 동안 친지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아버지 때문에 니가 고생이 많다. 그래도 환자가 제일 고생이다. 얼마나 힘드시겠니?”

 

 

맞다. 아버지는 얼마나 힘드실까? 당연한 것인데 쉽게 까먹고 있었다. 병원 냄새만 나도 속이 뒤틀리는 아버지가 가장 힘드실 텐데, 그런 아버지를 가장 가까이서, 가장 오랫동안 지키고 계시는 어머니가 가장 힘드실 텐데……. 생각하면서 전혀 좋아지지 않은 나를 둘러싼 어려움에서 잠시나마 탈출해 본다.

 

 

이 부분을 읽으며 멈췄다. 엔슬러가 겪은 고통과 참담함과 절망을 고스란히 아버지가 겪으셨을 것을 생각하니,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맞다. 나는 그 고통의 100분의 1도 가늠할 수 없다.

 

 

 

“내 인생 초반의 많은 부분을 이렇듯 비몽사몽 상태에서 보냈다. 그 상태에서는 한밤중에 아빠가 내 침대로 찾아올 때마다 시달렸던, 엄마를 배신했다는 뒤틀린 고통과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다.” (p.32)

“또한 나는 계속해서 섹스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아이였다. 섹스를 하면 고통이 완화되었는데, 나는 거의 항상 고통스러웠으므로 엄청나게 섹스를 해야 했다.” (p.149)

“나 자신의 오만함과 반항, 독선으로 엄청난 기회를 모두 잃어버렸다. 술과 마약을 끊는 것이 내가 평생 한 일 중 가장 힘든 일이었다.” (p.152)

 

 

암이 발병하기 전, 엔슬러의 인생 초기는 불행이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성적 학대와 폭력은 고스란히 상처로 그녀의 몸에 새겨졌다. 쉽게 치료하거나 지워 내거나 도려낼 수 없는 상처로. 평생을 고통 받아야 할 폭력이 다름 아닌 아버지로부터였고, 그 폭력과 상처에서 자신을 지켜줘야 할 어머니는 딸을 방치했다. 그녀가 기댈 수 있는 것과 곳은 아무도, 아무데도 없었다. 상처로 인해 너덜해진 자신의 몸뿐이었다. 그 몸을 향해 가학적 주사를 꼽아 넣었다. 술을 밀어 넣고 마약을 쏟아 부었다. 자신의 생식기로는 온갖 남성의 생식기를 받아 냈다. 마음대로 몸을 내버려뒀다.

 

 

“당신은 아주 많은 일을 해왔어요.”

“하지만 환자였던 적은 한 번도 없으셨죠. 이제 환자가 되는 법을 배우셔야 해요. 당신에게는 좀 어려울 거예요.” (p.82)

 

 

다행히 절망의 구렁텅이 나락 끝으로 떨어지기 전, 정신을 차렸다. 마약과 술을 끊어내고 자신의 몸에서부터 자신의 몸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처럼 폭력과 강간, 차별과 야만의 한 가운데로 내 몰린 여성들을 향해 자신의 몸을 던졌다. 각종 시민단체에서 왕성한 활동가로 살았다. 베스트셀러「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출간했다. 여성으로써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수많은 여성과 남성들에게 고민거리를 던졌다. 암 발병 전까지 그녀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그녀의 몸을 던져 넣었던 것은 콩고의 여성들이었다.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벌어진 내전과 콩고를 둘러싼 이해 집단(국가, 기업 등)들 간의 전쟁으로 피해를 본 것은 콩고의 여성들이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전쟁으로 인해 강간을 당하고 그 강간으로 인해 잉태된 생명을 낳아야 했다. 한 번 강간을 당하고 그만이면 그나마 다행일 텐데, 무자비한 폭력이 동반된 강간으로 인해 입은 질병과 상처를 치유하고 치료할 길은 없었다. 엔슬러는 콩고의 피해 여성들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재확인하고, 그 여성들을 돕는 것으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갔다. 그러다가 암이 발병했다.

이제는 환자가 되는 법을 배우라는 의료진의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암환자를 가족으로 두고 있는 내게 이 책의 내용은 참 힘들었다. 엔슬러가 표현한 고통과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냥 ‘아~ 정말 힘들었겠다. 아팠겠다.’정도가 아니다.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 마취에서 깨어나 끝을 알 수 없는 고통 속으로 빠져드는 아버지의 절규가 귓가에 다시 들렸다. 힘들었다.

 

 

“포트를 빼낼 때가 되자 간호사들은 기뻐하며 내게 와서, 최근 2년 동안 자신들이 포트를 삽입하고 또 제거한 사람이 내가 유일하다고 말한다.” (p.202)

 

또 한 번 다행히 엔슬러는 항암·화학치료를 잘 견뎌냈다. 회복이 되기 전 콩고로 다시 날아간 것이 걱정되었지만, 그래도 참 부러웠다. 암이라는 것이 워낙 고약한 병이라서 재발하는 가능성이 크다. 내 아버지가 그랬듯이. 엔슬러씨는 재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재발해 또 다시 입원하고 수술하고 치료하고 회복하는 과정 또한 이 책에서 다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우니까. 나는 알고 있으니까.

재발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내 아버지를 위해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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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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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씨와 함께 나온 방송에서 처음 본 김정운씨의 인상은 정말 별로였다.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심술이 가득한 인상도, 파마 머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은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하무인. 자기가 모조리 옳다는 투로 말하는 방식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영남씨도 평소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분야가 인문학 도서와 클래식 음악, 서양화, 동양화였는데, 그런 소재가 아니었다면 나는 바로 채널을 돌렸을 것이다. 그래도 그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 받은 고바야시 타끼지의 「게 공선」이 너무 재미있었다. 진행을 한 여자 아나운서가 아니었다면 아무리 좋은 소재와 주제였다 해도 나는 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김정운씨를 TV에서 보지 못했다. 평소 별로 좋아하지 않던 인물이었던 터라 관심이 없었다. 이 책을 통해 몇 년 만에 김정운씨를 만났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문제에 대해 서로 목소리 높여가며 이야기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본질적인 문제는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니, 남는 것은 동물적인 공격성, 분노, 적개심뿐이다.” (p.161)

 

 

역시 사람은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알 수 있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한 것은 아니지만 방송에 나온 김정운씨보다는 훨씬 나았다. 별로 싫지 않았다. 물론, 김정운씨가 쓴 책 한 권 읽고 당장 김정운씨가 좋아진 것은 아니다. 방송에서 보인 모습과 그가 쓴 글은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부정적인 면이 많이 사그라진 것 같다. 오히려 방송에서 보인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책에서 보였다면 나는 더 싫었을 것이다. 출판사에 책을 다시 보내줬을 것이다. ‘이 책 도저히 못 읽겠어요. 가져가세요.’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는데 일견 선입견을 가지고 계속 김정운씨를 판단한 것이 아닌 가 싶었다. 사회심리학을 전공한 학자답게 그가 내린 한국사회에 대한 진단은 꽤 정확하고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소통의 문제는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제오늘일도 아니다.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기에 더 골치 아픈 문제다. 나는 술을 마시는 식당에 갈 때마다 이것을 강하게 경험한다. 너무 시끄럽다. 특히 막창집, 삽겹살집 같은 곳. 가족단위로 식사를 위주로 하러 오는 식당은 덜하다. 오로지 술을 먹기 위해 가는 곳은 엄청나게 시끄럽다. 아저씨들이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흡연이 공공연하던 몇 년 전만 해도 그런 식당 안에는 자욱한 담배 연기와 자욱한 고성방가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평소 노래방이나 나이트가 시끄러워서 싫어하는 내게 이런 식당은 정말 최악이다. 굳이 듣기 싫어도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 탓에 옆자리에서 펼쳐지는 질펀한 욕지거리와 하소연을 모조리 들어야 했다. 그런 고성방가의 대부분은 욕이다. 욕. 말끔하게 차려 입은 아저씨들이 어떻게 그렇게 욕을 잘하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집에서, 직장에서, 출퇴근길에서 하지 못한 욕을 술과 함께, 담배 연기와 함께, 옆자리에서 자신의 고성방가를 참아내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욕을 쏟아낸다. 정말 남은 것은 동물적인 공격성, 분노, 적개심뿐이다.

어쩌면 이렇게 사회 곳곳에, 사람 각자마다 공격성과 분노와 적개심이 넘쳐나는 것일까?

 

 

“왜 한국 사람들이 이토록 분노와 적개심에 가득 차, 재미라고는 하나 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심리학적 설명이 내 주된 관심이다.” (p.273)

 

 

사회심리학자인 저자는 이것이 궁금했다. 재미라고는 하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 책을 읽으며 생각해보니, 재미있을 여유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저자는 재미를 추구하고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를 삶의 화두로 가지고 있음에도 넘쳐나는 강의요청에 헬기까지 타고 다닌 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비판을 약간 가하기는 한다. 그런데, 정말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 저자처럼 잘 나가는 교수, 강연자들은 많은 돈을 받으면서 헬기를 타고 날아다녀 재미를 추구할 시간이 없을 테지만, 당장 다음 달 닥쳐 올 대출이자와 원금, 각종 세금과 공과금, 연말정산이라고 해봐야 토해내야 할 돈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는 김정운씨의 재미와는 많이 다른 것일 테다.

 

 

“맛있는 게 뭔지를 알아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삶의 재미와 행복이 뭔지 알아야 즐겁고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다.” (p.63)

“결국 나와 같은 철없는 중년들의 ‘김혜수의 가슴’에 대한 열광은 소통 부재의 불안과 재미없는 삶으로부터 도피하려는 퇴행적 현상인 것이다.” (p.66)

 

맞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하지만 누가 재미없게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재미있게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다. 적당한 돈을 벌고, 적당한 집에 살면서, 적당한 정도로 쉬고, 적당한 정도의 사람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은 모두의 바람이다. 그런데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소수다. 애면글면 노력하고 온갖 수를 다 써도 매달 살아내는 것에 힘겨운 사람들이 많다. 적어도 어린 시절부터 큰 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김정운씨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아무리 심리학 공부를 많이 하고 좋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연구를 하고 논물을 쓰고 임상을 거쳐도 알 수 없는 부분이다.

김정운씨가 김선도 목사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이 책을 읽는 도중에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상을 치르는 중에 빈소에 광림교회 김정석 목사라는 이름이 적힌 화환이 있었다.

 

 

 

 

큰고모가 다니는 교회가 서울의 광림교회인데, 김정석 담임목사의 동생이 유명한 김정운교수라는 것이었다. 뜨악!!! 교회를 아들에게 세습해 넘긴 김선도 목사의 아들이란다. 그러고 보면 책에서 어린 시절 이야기가 별로 없다. 자신의 아버지가 노인임에도 종북세력을 향해 비판을 하시는 정정함을 보인다는 잠깐의 언급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잠깐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 형편이었다는 점이 언급되는 데, 갸웃했다. 광림교회 하면 한국의 대형 교회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교회인데, ‘아주 잠깐 어린 시절 가난했었나 보다’생각하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하지만 저자의 아버지가 김선도 목사고 교회를 아들에게 세습했고 다른 여러 가지 문제에 휘말렸던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저자인 김정운씨도 싫어할 필요는 없다. 그럴 수 있는 정당함도 없다. 최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책을 읽으려 노력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정신병리학에서는 ‘자폐증’이라고 한다. 폭탄주는 집단 자폐증상이다. 자폐증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아동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p.69)

 

 

앞서 언급한 술집에서의 고성방가와 똑같은 맥락이다. 빨리 취하기 위해 폭탄주를 마시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향한 가학성은 자폐증으로 치환된다. 심각한 일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아니 취하지 않으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없고 줄담배를 피워낸 후가 아니면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현상은 분명 사회적 자폐증이다.

 

 

“충족되지 않는 감탄의 욕구는 욕구좌절이 된다. 욕구좌절은 심리학적으로 뒤집어져 분노가 된다. 적개심이 되고 공격성이 된다. 아, 이 아저씨들에게 감탄을 연발해주는 곳이 단 하나 있다. 룸살롱이다. 화려한 화장을 한 젊은 아가씨들은 밤마다 끝없이 외친다.” (p.321)

“어머, 오빠!”, “오빠는 왜 이리 멋있어?”

 

 

어머!! 오빠~! 멋있다. 대단하다~! 술도 잘 마신다~ 노래도 잘 하네~ 우와~

아저씨들이 어디서 이런 말을 듣나. 그나마 한국 중년 아저씨들의 욕구좌절에 의한 공격성과 적개심이 테러나 폭력적 일탈로 분출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유흥업소의 아가씨들 때문일 것이다. 아리따운 아가씨들에게 칭찬과 감탄을 듣기 위해 거리낌 없이 지갑을 열고 결제를 한다.

 

 

“우리는 감탄하려 산다.” (p.325)

 

 

맞다. 감탄하려 산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 들어 선 나를 향해 아내가 칭찬을 하고 감탄을 하면, 단번에 사라진다. 현관의 도어록을 누르기 직전까지 고민에 고민을 더해 다 죽은 얼굴을 하고 서 있다가도 아내의 감탄을 마주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해진다. 맞다. 생각해보니 나도 감탄을 갈구하고 감탄에 목말라하며 살고 있다. 나도 그렇고 당신들도 그렇다. 솔직하게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의 문제이지, 맞는 말이다.

나도 갈구하고 목말라하는 만큼 아내에게 그렇게 했느냐 생각해 본다. 부족하다. 오늘 저녁 도어록을 누르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쏟아낼 감탄을 연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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